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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남자는 튼실한 팔로 온하나를 안은 채 방 안으로 들어와 문 뒤로 몰아붙였다.

온하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고 사정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마치 그동안 억눌렀던 분노를 전부 쏟아내기라도 하듯 뜨거운 키스가 그녀의 목에까지 전해졌다.

남자는 뜨겁고 커다란 손으로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쇄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키스하면서 그녀에게 숨 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빠르고 사정없는 움직임에 온하나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차우빈의 몸에 밴 짙은 술과 담배 냄새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온하나가 반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한데 엉켜있었고 야릇한 공기 속에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몸이 점점 나른해졌고 더는 반항하지 않았다.

“쓰읍.”

갑자기 밀려온 아픔에 온하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파.”

온하나의 위에서 키스하며 깨물던 차우빈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파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후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달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내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니.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목소리가 어찌나 싸늘하지 온하나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차우빈은 고개를 들어 코를 그녀의 코에 대고 비비적거렸다. 겁에 질린 온하나의 모습에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내가 무서워? 온하나, 무서운 게 뭔지 알기나 알아?”

어둠 속 그의 차가운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

“여긴 어떻게...”

온하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우빈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반항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던져버린 후 그녀를 덮쳐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에게 적응할 시간이라곤 전혀 주지 않았다.

차우빈은 2년 전부터 온하나를 미워했다. 그 미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깊어져서 이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온하나도 예전에는 차우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여 이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때의 그 달콤했던 시간들이 밤마다 온하나를 힘들게 괴롭혔다.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온하나는 그때 그 사랑이 넘쳤던 차우빈이 왜 갑자기 그녀를 치를 떨 정도로 미워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2년 동안 정신이 멀쩡할 때 그녀에게 스킨십을 한 적이 없었다. 술을 먹고 취한 날에만 이렇게 이성을 잃었다.

두 시간 후, 드디어 만족을 느낀 차우빈은 온하나의 예쁜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아래턱을 어루만졌다.

검고 그윽한 두 눈에 분노가 조금 담겨있었다.

“온하나, 넌 내 거야. 내 것이라면 내가 가지기 싫어도 절대 남한테 주지 않아.”

온하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생각할 맥이 없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서 옷을 입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화가 조금 풀린 듯했지만 하는 말은 여전히 그녀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마치 누군가 심장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차우빈은 나가기 전에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불빛이 어두운 탓에 온하나는 그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쿵...

현관문이 닫혔다. 아주 단호했고 그 어떤 미련이나 온기도 없었다. 방안에 울려 퍼진 메아리마저 분노가 묻어있는 것 같았다.

온하나는 몸이 점점 불편해졌다. 쉬려고 가만히 누워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당황한 그녀는 힘겹게 일어나 옷을 입은 후 조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병원에 도착했을 때 조수연도 마침 차에서 내렸다.

“왜 혼자야? 그 X자식은? 널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냥 갔어?”

안색이 말이 아니게 창백했고 아파서 허리도 펴지 못하는 상황이라 조수연의 말에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온하나가 침대에 눕자 조수연이 그녀의 몸을 살폈다. 여기저기 생긴 멍 자국을 본 순간 조수연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차우빈 이 나쁜 자식,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놔?”

침대에 누워있는 온하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산부인과 의사인 온하나는 이런 상황을 자주 봤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차마 입 밖에 꺼내질 못했다.

...

이튿날 아침, 온하나가 깨어났을 때 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마른 나무가 마치 지금의 그녀처럼 고집스럽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차우빈이 대놓고 못살게 굴겠다고 밝힌 이상 온하나가 아무리 피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의 그 일이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온하나는 알고 있었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 날도 이젠 거의 끝이 났다. 차우빈이 이때 돌아왔다는 건 집에서 다그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한 간호사가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조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어떤 환자와 싸우고 있어요.”

온하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죠? 조 선생 오늘 진료 없는 거 아니었어요?”

“환자가 선생님의 진료를 예약했는데 지인이라면서 죽어도 취소하지 않겠다고 한 바람에 조 선생님이 대신 진료했거든요. 그런데 어찌 된 건지 갑자기 싸우기 시작하더니 환자 가족이 조 선생님 진료실을 막으면서 온 선생님이랑 조 선생님을 컴플레인 걸겠다고 했어요.”

온하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코트를 입은 후 진료 동으로 향했다.

어젯밤 조수연이 밤새 옆을 지켜줬는데 그녀의 환자까지 조수연에게 피해를 주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간호사가 그녀를 부축하여 진료 동에 도착했을 때 온하나는 이미 연신 심호흡했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최소 절개술이긴 해도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한걸음 옮길 때마다 상처가 너무도 아팠다.

머리를 대충 하나 묶어 잔머리가 이마에 찰싹 붙었다. 손바닥만 한 얼굴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고 연약한 모습에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아팠다.

진료실 문이 열리자 그녀를 본 조수연이 화들짝 놀랐다.

“누워있지 않고 이렇게 걸어 다니면 어떡해?”

온하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진료실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남자는 다리를 꼰 채 건방진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타고난 귀티는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듯 덤덤한 눈빛으로 온하나를 경멸스럽게 힐끗거렸다.

그녀의 모습에 차우빈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웃을 듯 말 듯 했다.

“멀쩡하네요, 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긴 무슨. 조 선생님, 나한테 거짓말한 겁니까?”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조수연은 온하나가 안타까워 대신 소리를 질렀다.

“차우빈 씨, 당신이 인간이에요? 대체 눈이 어느 정도로 삐었길래 쟤가 지금 아픈 것도 안 보이는 건데요?”

“수연아, 무슨 일이야?”

온하나는 조수연의 말을 가로챘다. 특히 양지원의 앞에서는 어젯밤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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