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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485 챕터

제411화

수업하는 내내 유시아는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강의하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금고 비밀번호만 유추하고 있었다.‘어머님 생신도 아니고 우리 결혼기념일도 아니야. 그렇다면 또 뭐가 있을까?’‘또 다른 소중한 날을 내가 잊고 있는 걸까? 그걸 비밀번호로 정한 걸까?’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슬슬 아프기까지 했다.수업을 마친 뒤, 퇴근하려고 한창 준비하고 있던 그때 임재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시아야, 아직도 머리 아파?”“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임재욱은 요즘 영문도 알 수 없는 채 스쿠터에 푹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유시아에게 푹 빠져서 스쿠터는 그냥 핑계일 지도 모른다.유난히 눈에 띄는 스쿠터를 타고 거의 매일 회사로 마중을 나왔었는데 오늘은 오지 않았다.스쿠터를 타고 다니면 차가 막히지 않아서 좋았는데.“시아야, 갑자기 회사에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겨서 마중 가지 못했어. 조심해서 들어가고 밥 잘 챙겨 먹고 먼저 자. 좀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임재욱의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유시아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한동안 야근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임재욱은 늘 제시간에 맞춰서 마중을 나왔었으니 말이다.오늘 도청 장치를 그의 사무실 의자 밑에 붙이자마자 야근한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도둑이 제 발에 저린 걸까?심지어 거짓말까지 하고서 몰래 반월 별장에 갔었고 HT 아파트의 모든 물건을 몰래 옮겨버리기도 했다.‘재욱 씨가 알아버린 걸까?’서로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한참 동안 돌아오는 답이 없자, 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시아야, 왜 그래?”“별거 아니에요.”유시아는 멋쩍은 웃음과 더불어 덧붙였다.“쉬면서 일하세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더 스케치 화실은 정운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저녁 무렵이 되니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몹시나 시끌벅적거렸다.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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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용재휘가 그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유시아는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뿐더러 용재휘의 그림 작품은 늘 살아 숨 쉬고 있는 느낌을 주곤 했다.그 말인즉슨, 그림을 그만두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말이다.임재욱과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당분간 해외로 갈 일도 없이 평범하게 좋아하는 그림 그리면서 사랑을 쏟아부은 화실을 운영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심하윤은 고개를 들자마자 한껏 어두워진 유시아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 천천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시아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언젠가는 가업 이어받으러 해외로 떠났어야 했어. 다만 부득이한 일로 좀 앞당겨진 것뿐이야. 삼촌이랑 숙모에게 자식이라고는 재휘 하나뿐인데, 당연히 가업을 이어가게끔 했을 거야. 내 말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미술에서 큰 성과를 따내지 못한 이상 재휘는 집안 어른들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하물며 삼촌 눈에는 재휘 그림 실력은 한낱 보잘것없고 동네 아이들이나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계시거든.”유시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르고 심하윤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지막이 물었다.“잘 지냈어?”실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묻고 싶었으나 미안한 마음에 도통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임재욱 그 나쁜 놈 옆에서 잘 지낼 리가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만약 심씨 가문의 일만 아니었다면 유시아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면서.심하윤은 생각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깊어져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시아야,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실은 모르겠어...”그런 그녀를 향해 유시아는 봄날의 햇살처럼 웃었다.“괜찮아요. 저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어쩌면 재욱 씨랑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자꾸 이렇게 얽히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저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들은 없어요.”홀가분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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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5년 전, 피고석 자리에 처량하게 서 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유시아이다.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양손을 묶고 있는 수갑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유시아는 재판장의 선고를 들어야만 했다.한 적도 없는 일이지만 죄명에 따라 그 증거는 더없이 정확했다.하늘에 맹세코 절대 한 적이 없다고 해도 재판장의 소리는 서서히 숨통을 조여왔었다.임재욱을 상대로 단 한 번도 경계심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유시아는 그의 함정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빠져들면서 그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다.‘3년’이라고 떡 하니 쓰여 있었던 재판서와 이혼 합의서는 그녀에게 준 임재욱의 신혼 선물이 된 셈이었다.어느덧 시간도 지났고 전에 있었던 일이라 유시아는 그 모든 걸 잊은 채 살고 있는 줄만 알았다.하지만 임재욱의 사무실에 다시 들어선 순간 악몽과도 같았던 그 모든 순간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운명은 그토록 기묘하고 잔인하다고.하지도 않은 일을 신서현 하나 때문에 억지로 자기한테 뒤집어씌웠다고.하지만 지금은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때 하지도 않았던 일로 대가를 받아야만 했었던 ‘죄’들을.다시 감옥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임태훈처럼 위험 저택을 찾아서 죽일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임재욱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해보고 싶었다.심하윤과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두 사람은 영화도 한 편 보았다.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쇼핑까지 하다 보니 그린레이크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9시쯤 되어 있었다.별장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시아는 임재욱이 평소에 자주 몰고 다니는 마이바흐를 보게 되었고 2층 침실의 전등도 켜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벌써 온 거야? 왜 전화 한 통 없었지?’유시아는 시선을 거두고 쇼핑백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아가씨, 쇼핑하고 오셨어요?”허씨 아주머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저녁은 드셨어요? 대표님께서 아가씨께 드릴 음식을 준비해 놓으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유시아는 웃으며 대답했다.“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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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복지원에서 자라서인지 임재욱은 대학교에 다녔을 때도 친구들과 그리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같은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는 친구들과 사이가 그나마 괜찮았을 뿐 집단 활동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그때 유시아는 그런 임재욱이 폼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와 정반대이다.고독하고 괴벽하며 무엇인가 사람이 뒤틀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 잠시 멈칫거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맞아. 듣다 보니 일리가 있네.”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자, 유시아는 오히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옷방으로 들어가 잠옷을 꺼내서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욕조로 들어간 유시아는 사르르 몸이 녹아들었다.바로 그때 욕실의 간유리를 통해 임재욱의 우람진 몸이 시야로 들어왔다.이윽고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는데.“시아야, 문 열어.”당황한 유시아는 욕조 안으로 몸을 더 깊이 숨기려고 했다.“왜 그러는 거예요!”“내가 회사에서 말했었지? 회의 끝나고 나서 하던 거 마저 하자고. 근데 왜 도망갔어?”임재욱은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말했다.기분이 꽤 좋아 보였고 열쇠로 문을 열고 바로 들어왔다.욕실로 들어서는 순간 당황해 마지 못한 유시아의 얼굴이 보였는데.“거봐, 평생 도망갈 수는 없다고 분명히 얘기했잖아.”“...”임재욱은 과연 뱉은 말을 기필코 지키는 남자였다.한 번 도망간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욕조 안에서 사랑을 탐구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지난번 유시아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는데,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멀쩡하다.임재욱의 남자다움을 몸으로도 머리로도 고스란히 제대로 느낀 유시아이다.굵은 팔다리로 물 안에서 해초처럼 유시아를 칭칭 감싸 안은 채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마지막으로 달리고 있을 때 유시아는 겨우 크게 숨을 내쉬며 온몸에 힘이 쫙 풀려버렸다.젖어버린 머리카락이 어깨에 찰싹 붙어있어 더더욱 괴로웠다.만족한 임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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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포악적인 임재욱의 모습에 이미 습관 되어 있는 유시아이다.임재욱의 성격을 바꿀 수 없거니와 그러고 싶은 의향조차 없다.지금 유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이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적응성이 강한 여성이다.임재욱은 그녀의 어깨를 확 감싸 안으며 말했다.“네가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별장이었어. 달마다 여러 비용도 지급해야 하잖아.”임재욱이 알고 있는 바로는 유시아가 야생가에서 출근하면서 받은 월급 중의 절반을 반월 별장과 HT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받쳐야만 했었다.하물며 소현우도 없는 이상 집을 놔둬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었다.소현우가 남긴 집을 처리하지 않은 이상 유시아는 과거에서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에 받칠 비용으로 부담만 더해질 것이다.이유라고 하기에는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임재욱의 ‘변명’을 듣고서 유시아는 피식 웃었다.“하긴, 제가 대표님처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장 하나를 따로 장만하여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임재욱은 바로 말 속에 숨겨져 있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그가 소현우의 흔적에 신경을 쓰듯이 유시아 역시 신서현을 기억하는 것이다.심지어 임재욱이 더더욱 신경 쓰는 편이다. 신서현을 위해 유시아를 감옥으로 보낼 정도로.“...”유시아의 말에 임재욱은 말 문이 턱 막혀 순간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유시아는 이미 그의 손을 뿌리쳤고 욕조에서 일어나서 샤워 타월로 몸을 감쌌다.이윽고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는데.온몸이 이미 사르르 녹은 유시아는 머리를 말리자마자 바로 침대로 몸을 던졌다.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힘들었다.다행히도 밤새 두 사람은 서로를 터치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잠만 잤다.다음 날 아침, 핸드폰 벨 소리에 유시아가 깨어났다.눈을 떠 보니 침실에는 오직 유시아 혼자만 남아 있었고 임재욱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침대 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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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임청아 씨는 단순한 사람이에요...”“어릴 적부터 고생 한번 한 적 없고 나쁜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데...”“청아 아프게 할 일은 없을 거야.”유시아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한서준이 덧붙였다.“우리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치고 유시아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미간이 찌푸려진 유시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점심시간이 다 되자, 유시아는 한 시간 전에 미리 집을 나섰다.실은 어제저녁에 심하윤과 밥을 먹을 때, 심하윤이 유시아에게 광고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친구가 운영하는 회사라면서 더 스케치 화실을 위해 무료로 광고를 해줄 수 있다고 그랬다.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유시아가 직접 담당자와 의논해야 했다.경제가 내리막을 타고 있는 이 시기에서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화실에 학생들도 들이기 힘들 것이다.더 스케치 화실을 광고라도 하면서 어떻게든 홍보해야만 했다.유시아도 전에 화실 장부를 본 적이 있는데, 심하윤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용재휘가 화실을 넘겨준 이상 유시아는 반드시 보란 듯이 제대로 운영하면서 어떻게든 화실을 지켜야 한다.하여 시간을 자아내 광고 회사 담당자와 얘기하려고 온 것이다.심하윤의 소개로 찾아온 손님이라는 걸 알았을 때, 광고주는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유시아를 접대했다.여러 가지 홍보 방안까지 보여주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편하게 훑어보세요. 마음에 드시는 방안대로 실행에 옮기면 되거든요. 심씨 가문과 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온 사이라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유시아는 광고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네, 고마워요.”말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방안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그중의 한 방안으로 선택하고 나서 광고회사에서 나왔는데,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회사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부근에 있는 한 유리문 앞에 모여들어 시끌벅적했다.실은 광고회사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단독 건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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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오후, 대학 병원에서.유시아가 병실에 앉아 병상에 누워있는 이채련을 보고서 살짝 넋이 나갔다.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고 그동안 무척이나 수척해진 것만 같았다. 피부도 예전처럼 곱게 빛나지 않을 정도로.의사의 말로는 별다른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다만 적지 않은 충격으로 혈압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이다.더 이상 그 어떠한 충격도 정서 파동이 심해져서도 안 된다면서.유시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이채련처럼 시야도 넓고 그동안 이러저러한 경험도 많이 쌓았을 것인데 이러한 사기극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말이다.바깥에서 문을 천천히 밀면서 간호사가 들어왔다.그녀는 이채련이 복용해야 할 약들을 침대 머리에 가지런히 놓고 입을 열었다.“환자분 깨어나시면 꼭 드시게 하세요.”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맙습니다...”두 사람의 말 소리에 이채련이 깨어났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는데 유시아를 보자마자 당황함은 곧 짙은 혐오로 변하고 말았다.“네가 어떻게 여기에?”“쓰러지셔서 제가 병원으로 모시고 온 거예요.”유시아는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으세요? 좀 어떠세요?”“내가 아프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이채련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시아를 노려보며 덧붙였다.“우리 현우가 남겨준 집도 그놈한테 줬지? 이제 곧 결혼까지 해서 사모님 소리 들으려고? 한창 바쁠 텐데 나한테 이렇게 시간 들이는 이유가 뭐야? 그 사모님 자리에 내가 침을 뱉을 수도 있는데 두렵지도 않아?”욕설이 장마처럼 쏟아져 내려왔다.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입을 열었다.“제 얼굴 보기 싫으시면 도우미 보내드릴게요.”이채련은 그녀를 싫어한다. 가능한 한 죽이고 싶을 정도로.유시아를 보게 되면 이채련은 하나뿐인 아들 소현우가 저절로 생각나기 때문이다.만약 소현우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고집만 피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결혼식 당일에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사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소현우를 죽인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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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유시아는 입술을 사리물었다.“알았어요.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병실 문을 닫았다.병실을 떠난 그녀는 이채련을 전담 마크하고 있는 간호사를 다시 찾아갔다.“죄송합니다만 우리 아주머니 좀 많이 신경 써 주세요. 제가 요즘 좀 바빠서 자주 올 수 없거든요. 이따가 가사 도우미가 올 거예요. 도우미도 연세가 꽤 있으시고 아주머니도 지금 날이 서 있는 상황이라 힘들어도 좀 많이 신경 써 주세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지갑에서 20만 원을 꺼내 간호사에게 주었다.“부탁 좀 할 게요.”“이러실 필요 없어요.”간호사는 연신 거절했다.“처음 겪어보는 케이스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 직업이기도 하니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돈은 됐어요.”아무리 밀어 넣어도 받으려고 하지 않자, 유시아는 하는 수 없이 돈을 도로 거두었다.그러고는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주는데.“만약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수시로 전화 주세요. 시아라고 부르시면 되고요.”간호사는 유시아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화실 수업을 미뤄버리고 유시아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허씨 아주머니는 유시아의 이마에 작은 붕대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아가씨, 다치신 거예요?”“괜찮아요. 살짝 부딪힌 것뿐이에요.”유시아는 개의치 않아 하며 슬리퍼로 갈아 신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하지만 순순히 보내주는 허씨 아주머니가 아니었다.유시아 앞을 가로막고서 이마를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흉터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러세요. 감염될 수도 있는데... 홈닥터 오라고 할게요. 아니면 대표님과 병원으로 가셔서 검사받아 보실래요?”유시아는 어이가 없었다.“그 정도 아니에요. 그냥 아주 살짝 다친 거예요.”말을 마치고 허씨 아주머니를 돌아 바로 올라갔다.허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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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손가락은 왜 그렇게 내밀고 있는 거예요?”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유시아는 의아하기만 했다.그와 반대로 임재욱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용케 알아 보고 바보가 된 건 아니네.”“재욱 씨!”유시아는 그제야 알아차리면서 넓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솜 주먹으로 임재욱을 때리면서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는데.“나빴어요! 재욱 씨야말로 바보 아니에요?”임재욱은 나지막이 웃으면서 여세를 몰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들어 안았다.그렇게 한 몸이 된 채로 침실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유시아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서 얼굴을 가슴에 기대었다.불현듯 신서현과 함께 있을 때 그의 모습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그 모습이 과연 어떠할지 알 길도 없었다.자기와 함께 있을 때는 이러한 모습인데,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알콩달콩한 분위기 속에 두 사람 모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임재욱은 그녀를 들어 안은 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조금 높은 서랍장 위로 내려놓았다.워낙 10센티미터 정도 키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다.평소에 유시아는 늘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이렇게 내려다보는 건 처음이었다.살짝 붉어진 얼굴에는 아직도 수줍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한 송이의 백합처럼 순결하지만 강인해 보여 좋았다.임재욱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턱에 입을 맞추었다.“시아야, 좋아?”그 질문에 유시아는 살짝 놀라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질문 속에 다른 뜻이 들어있는 것도 같았다.유시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임재욱은 뒤꿈치를 들고서 그녀의 얼굴에 뽀뽀했다.그러고는 애매하기 그지없게 웃기 시작하는데.“그럼, 내가 기분 좋게 만들어 줄까?”바로 그 뜻을 알아차린 유시아는 그를 확 밀어 버렸다.“안 돼요! 아직 날도 밝은데...”“커튼 치면 어두워지잖아.”임재욱은 말하면서 그녀를 서랍장 위에서 내려 주면서 그대로 안고 침대로 갔다.여름이라 해가 무척이나 길었다.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임재욱은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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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전 괜찮아요. 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전해주세요.”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의 말을 끊어버리는 동시에 재빠르게 운동화로 갈아신었다.묵직하고도 화려한 출입문을 열고서 종종걸음으로 다급하게 문을 나섰다.별장 구역을 지나 거리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나서야 빈 택시에 오를 수가 있었다.유시아는 택시에 오르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대학 병원으로 가주세요.”...병실 안에서.이채련의 정서는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했다.진정제를 맞고 이제 겨우 잠에 들었고 간호사는 유시아를 한쪽으로 불러와 나지막이 말했다.“오후 내내 다른 가족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어요. 환자분 정서 파동도 엄청 심하고 자살 경향까지 있어요. 옆에서 좀 지켜보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시아는 한숨을 깊이 내쉬고 말했다.“네, 고마워요.”“아니에요.”간호사는 말하면서 유시아에게 명세서 하나를 주었다.“이거 가지고 가셔서 병원 비용 지급하시면 돼요. 아주머니 상황을 보아서는 당분간 퇴원하기 힘들 것 같은데, 선급금을 좀 더 내셔야 할 거예요.”유시아는 명세서를 건네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고 올게요.”어찌 됐든 목숨은 건졌으니 다른 일은 멀리 내다보면 된다.유시아가 기억하기로는 소현우가 죽고 나서 대부분의 재산을 이채련에게 건너간 것을 알고 있다.적어도 수십억은 될 것이고 소씨 가문의 저택까지 있으니 넉넉할 수밖에 없다.제태크 회사의 수단에 말려들지만 않았더라면 돈 때문에 자살하려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도 없다.스스로 목숨을 끊은 끔찍한 행동까지 하는 걸 보면 아마 그 손실이 막심할 것이다.감당하기 힘들 정도로.‘도우미 온다고 했는데, 왜 아무도 안 왔지? 병원 비용 내주는 사람 하나 없고?’유시아는 머리가 아파났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병원비를 지급하려고 카드 안에 있는 돈을 한꺼번에 모두 넣어버렸다.돈을 내자마자 임재욱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시아야, 너 지금 어디야? 아주머니께서 그러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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