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모든 챕터: 챕터 171 - 챕터 180

736 챕터

제171화

나상준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걷어 올렸다. 그의 굵은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차우미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가서 일해, 난 간병인이 있으니까 괜찮아."간병인이 있기에 굳이 그가 돌볼 필요는 없었다.워낙 일이 많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를 돌볼 필요는 없었다.나상준은 양쪽 옷소매를 걷어붙인 뒤 그녀의 뒤로 가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벌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어젯밤과 매우 흡사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차우미는 그의 차분한 발소리에 집중했다.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의 입술도 서서히 닫혔다.나상준은 차우미가 탄 휠체어를 밀고 호텔에서 나왔다. 식사 후 한가한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서서히 퇴근 시간과 가까워졌고 도로에는 차들이 점차 많아졌다. 인도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로등도 하나 둘 켜졌고 도시의 열기가 한층 무르익어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어디 갈까?"나상준의 질문에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렇게 한동안 목적지 없이 걸을 줄 알았다.차우미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냥 걸어."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경치를 볼 생각이었다."음."낮은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시 두 사람을 감쌌다.차우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사고였고 마음에 두지 마.""발이 완쾌하지 않아 한동안 더 치료해야 할 것 같아, 큰 문제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간병인이 아주 친절해, 세심하고 일도 잘해. 그러니까 안심해.""가서 할 일 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는 호텔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간병인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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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차우미가 명확하게 말했기에 나상준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휠체어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도 안심되었다.나상준은 알아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의 말이다.그녀가 상상치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차우미는 한동안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나상준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이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3년간 봐온 나상준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속마음을 잘 숨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다.그러나 두 사람은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부부였고, 그녀만큼은 나상준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녀가 아는 나상준은 절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나상준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앉은 휠체어를 밀며 앞을 주시했다. 평소처럼 앞만 바라보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평소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차우미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베일듯한 턱선, 날카롭게 솟은 콧날, 그녀가 처음 보는 짙은 눈동자였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나상준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나상준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다.차우미는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은 어제도 느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도 살짝 깨물었다.그녀의 뇌리로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순간, 차우미가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내가 외도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그가 온이샘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가 내뱉은 말뜻은 아주 명확했다.그는 주로 밖에서 일했고 집에서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할아버지를 믿었기에, 그녀도 의심하지 않았다. 차우미의 가족을 믿었기에 그녀를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이혼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생겼고, 나상준은 둘 사이를 외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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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얼마나 걸었을까, 나상준은 택시를 잡았다. 그녀를 택시에 태운 다음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고 택시에 올라탔다.호텔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나상준이 그녀를 돌볼 이유는 없었다.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6시가 되었고 하늘도 어두웠다.점심을 늦게 먹었기에, 지금 배고프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면 간병인은 그녀에게 저녁을 준비해 줄 것이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다시 핸드백에 넣었다.그때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데상타이로 가주세요."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호텔이 아니었다. 차우미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뚝뚝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을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나상준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고민만 더 늘고 싶지 않았다.운전기사는 두 사람을 태우고 데상타이로 향했다. 20분도 안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상준은 다시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뒤, 레스토랑 안으로 그녀를 밀고 들어갔다.데상타이는 중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붉은 등이 걸려 있는 레스토랑의 아래층은 사람으로 꽉 차 아주 시끌벅적했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얼른 뛰어와 둘을 반겼다. "예약하셨습니까?"나상준이 답했다. "네, 3508번이요.""네, 위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직원은 두 사람을 위층으로 안내했고, 그들은 룸에 들어갔다.직원은 나상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나상준은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지 않고, 혼자 주문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을 끝낸 직원은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그틈에 컵에 마실 물을 따랐다. 그리고 조용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나상준은 그녀가 따른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는 그의 말을 들은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상준의 눈에 서운함이 더욱 깊어졌다.나상준은 손가락으로 컵을 만졌다.차우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만졌다.곧 음식이 나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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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차우미는 순간 멈칫하더니 시선을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발신자는 하성우일 것이다.하성우에게 인내심이 없는 것 같았다.결국 차우미는 가방에 넣었던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발신자는 하성우가 아닌, 낯선 번호였다.차우미는 의아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하성우가 머리를 써,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언니!"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도 잠시, 차우미는 당황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성우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던 그녀였다.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심나연이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발신자에, 다소 당황했다.그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심나연에게 물었다. "옆에 성우 씨 있어요?"하성우가 나상준과 연락이 닿지 않자, 심나연이 그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어! 언니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눈치 빠르네요! 전 성우 오빠랑 같이 있어요. 지금 밥을 먹으러 가려고요, 언니 혹시 상준 오빠랑 같이 있어요?"차우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심나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언니, 상준 오빠 기분은 어때요? 안 좋아요?""왜 성우 오빠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심나연은 말이 많았다,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차우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차우미의 시선이 나상준에게 향했다.'기분이 안 좋냐고?'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물론, 그러지도 않았다.그는 자기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래서 간파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오늘 그가 한 말로 볼 때, 나상준은 기분이 나빴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아니요, 상준 씨 화장실 갔어요.""아~ 어쩐지!""그럼 언니랑 상준 오빠는 지금 어디예요? 호텔이에요? 밖이면 저희가 거기로 가도 돼요?""밖이에요.""데상타이에 있어요.""네! 저희 금방 가니까 기다려줘요!"말을 마친 심나연이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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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밥을 먹은 뒤, 나상준은 일하러 가고 그녀는 호텔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두 사람은 접촉할 기회를 줄이는 편이 좋았다.나상준은 덤덤하게 밥을 먹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차우미는 뜨거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하게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결국 수저를 놓고 어두운 눈빛으로 차우미만 바라보는 나상준이다.심나연과 하성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언니, 상준 오빠!"심나연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둘을 찾았다. 즐거운 얼굴로 차우미의 곁으로 달려가 앉았다. 심나연은 어느새 차우미에게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하성우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상준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는 하성우도 어느 정도 눈치챘으나, 여기에 와서 직접 보니 그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상준의 곁에 앉았다. 하성우는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발은 어때요?"심나연은 그제야 차우미가 발을 다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성우 오빠가 언니가 발을 다쳤다고 해서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 다친 거예요?""형수님, 많이 아프세요? 걸을 수 있겠어요?"그녀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차우미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요, 살짝 삐끗한 거예요." "진짜요? 성우 오빠는 언니가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하던데."심나연은 고개를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상준 오빠, 언니 어쩌다가 다친 거야?""이 발로 어떻게 걸어."나상준은 하성우의 오른쪽에 앉아 눈을 늘어지게 뜨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심나연의 악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하성우는 심나연을 저지하기는커녕, 태연하게 주문을 했다.그는 아직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차우미는 심나연이 나상준에게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다. 나상준이 대답할 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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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차우미는 나상준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여겼다.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상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나상준의 태도가 납득가지 않았다.나상준의 두 마디 말에 심나연과 하성우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한참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서둘러 말했다.한 명은 나상준을 속이 좁다고 나무랐다. 차우미와 다툰 그를 원망하며 차우미를 달랬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에 나상준을 용서해달라는 말로 보충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아 얼굴을 붉히며 나상준을 대신해 항변하는 심나연과 하성우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컵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차우미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심나연은 그녀에게 밖으로 나가 걷자고 제안했다. 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따라가지 말라고 눈짓했다.차우미의 휠체어를 밀고 심나연은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길에 빛나는 등불이 가득했다."언니, 상준 오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성우 오빠보다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에요. 상준 오빠를 먼저 알게 되었으면 나도 분명 상준 오빠를 좋아했을 거예요."심나연은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여기고 얼른 변명했다. "오해하지 마요. 성준 오빠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니까 언니가 그만 화 풀었으면 해서요. 언니가 화를 내면 성준 오빠가 가슴 아파할 거예요."심나연에게 나상준은 하성우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더 좋은 사람이다.나상준은 그녀의 이상형이었다.하지만 나상준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하성우가 제일 좋았고, 아무도 하성우을 대신할 수 없었다.차우미는 밖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숨 막히는 공간에 있지 않아 정신이 맑아졌고 그녀의 의심도 사라졌다.그녀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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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맑고 깨끗한 내가 하성우한테 아까워요!""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흥!"차우미는 심나연이 화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놓지 못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눈이 있는 사람이면 심나연이 하성우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한편, 데상타이.차우미와 심나연이 나 뒤, 나상준과 하성우는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소란스러운 바깥 소음이 줄어들고 나서야 하성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쯧쯧~ 쯧쯧~"하성우는 설교하는 모습에서 한순간에 얼굴을 바꾸고 고소하면서도 기쁜 듯 나상준을 바라보았다."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세상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여자, 여자란 말이야...""평소에는 한없이 부드럽고 현모양처 같지, 귀엽고 발랄하고 섹시하게 유혹을 하지. 널 좋아할 땐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줄 것처럼 굴다가도 네가 속상하게 하면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어 널 죽이려고 든다고."하성우의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비유가 찰떡같아 나상준의 현 상황을 제대로 설명했다.나상준은 입안에 물을 쏟아넣으며 말했다. "너부터 조심해야겠다."모처럼 나상준을 걱정하던 하성우의 가슴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조심하라니? 난 너랑 달라. 내가 형수님 같은 분을 만났으면 매일 손에 움켜쥐고 입안에 머금고 아주 조심스럽게 사랑해주고 아꼈을 거야.""넌 늦었어!""보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럽지, 하지만 주관이 매우 강해 한번 내린 결정을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이 아직도 널 좋아할까?""우미 씨는 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던데, 자칫하다간 너랑 아주 멀리 거리를 둘 것 같아.""나였어도 너랑 마주치지도 않았을 거야. 3년 동안 뭘 해주길 했나... 이혼한 뒤에야 챙기는 척하긴... 죽을 때가 되어서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할걸!"하성우가 내뱉는 말은 나상준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나상준은 무표정하게 컵만 매만질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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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하성우는 고개를 돌려 나상준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차가웠다.'아이라...'하성우가 다시 물었다. "네가 피임한 게 아니면, 설마 우미 씨가 피임한 거야?""아니, 우미 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인데 어떻게 3년간 피임을 할 수 있어? 분명 아이를 원했을 건데, 게다가 그 정도 기간이면 시부모가 오히려 더 서두렀을 텐데?""손자 한 번 안아보려고 하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엄마도 맨날 재촉하는데, 어서 결혼해서 애부터 낳으라고. 나연이가 없었다면 그 잔소리 속에서 어떻게 버텼을지... 얼마나 가시방석이던지..."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나상준이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하성우는 깜작 놀라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나상준은 자기 휴대폰을 챙겨 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하성우는 멍하게 멀어지는 나상준을 쳐다보았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하성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나상준이 이미 가버린 뒤였다. 크게 열려 있는 문으로 바깥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하성우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나상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우미에 관한 일에서는 그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하성우는 혼잣말로 탄복했다. "역시, 하느님은 공평하셔. 한 명에게 모든 재능을 줘서는 안 되지."술잔을 들고 감탄하던 하성우는 시간을 확인하고 심나연에게 연락했다.바로 이때,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하성우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살짝 굳었다.발신자는 주혜민이다.심나연이 차우미와 함께 떠들썩한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둘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차우미의 기분을 전환하게 하려고 나온 것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심나연이 더 신나버렸다. 차우미는 환하게 미소 짓는 심나연을 바라보며 덩달아 웃었다.심나연은 좋은 사람이다.하지만 하성우의 냉소적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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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차우미는 고민에 잠겨 누군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를 덮었고 무거운 눈빛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것인지, 그녀는 떠들썩한 주위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치 혼자 떨어진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집중하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그녀였다.나상준의 눈빛이 짙은 빛깔에서 점차 옅어졌다."어, 상준 오빠!"심나연은 회전목마에서 내려 다가왔다. 그녀는 뒷모습만으로 나상준을 알아보았다.그는 짙은 셔츠와 정장 바지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왁작지껄한 이곳과 어울리지 않은 차림이라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차우미는 심나연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심나연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뒤를 바라보았다.차우미도 얼른 몸을 돌렸고 그의 시야로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나상준이 보였다.심나연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두 사람이 이렇게 또 한 공간에 있게 될 줄 몰랐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등장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다시 평온하게 고개를 돌렸다."오빠, 왔어? 성우 오빠는?"심나연은 오자마자 하성우부터 찾았다. 그러면서 나상준의 등 뒤까지 살펴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 "아직 데상타이에 있어.""음? 아직도 거기 있다고? 왜?"심나연의 얼굴이 순간 보기 싫게 구겨졌다. "지금 가야겠다, 오빠랑 언니 잘 가요!"심나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성우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차우미는 심나연이 쏜살같이 택시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하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비록 심나연이 성인이긴 하지만, 이렇게 늦은 밤 그녀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다.나상준은 그녀가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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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할 말은 전부 다 했고 더 말하면 의미가 없었다.게다가 기분에 따라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이미 계획까지 다 짰을 것이다.그가 행동에 옮긴 마당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더군다나 그녀가 말을 해도 나상준은 그것을 들어줄 리 없었다.나상준은 어젯밤처럼, 그녀를 안고 욕실로 가 그녀를 씻겼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옮긴 뒤,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 뒤에야 자기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향했다.차우미는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결정을 이렇게 후회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날이 평온하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뒤에는 나상준과 더는 엮이지 않을 생각이다.나상준은 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두어 번 털어내며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창문을 마주하고 누웠다. 이불을 덮은 채 눈을 감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깔고 있었다.잠이 든 건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그는 눈을 감은 차우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수건을 소파 위로 던지고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고요한 적막감이 방안에 깃들었고 방 안의 전등이 전부 꺼졌다. 바깥의 등불만이 희미하게 들어올 뿐이다.나상준은 눈을 감고 팔을 머리 뒤에 베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두운 밤, 도시 전체가 잠든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뜬 나상준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차우미는 잠이 들었다.며칠 간 많은 일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불면증에 들 정도까지는 아니다.그녀는 자기감정을 잘 통제했고 그만큼 자기를 아꼈다.지잉-순간, 그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나상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바로 끊었다,전화를 끊는 순간, 바깥의 빛이 창문을 통해 그녀의 얼굴에 비추었고 차우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감고 있던 눈은 뜨지 않았다.주위가 다시 고요해지자, 그녀의 구겨진 미간이 다시 펴졌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안심한 나상준은 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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