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걸었을까, 나상준은 택시를 잡았다. 그녀를 택시에 태운 다음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고 택시에 올라탔다.호텔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나상준이 그녀를 돌볼 이유는 없었다.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6시가 되었고 하늘도 어두웠다.점심을 늦게 먹었기에, 지금 배고프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면 간병인은 그녀에게 저녁을 준비해 줄 것이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다시 핸드백에 넣었다.그때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데상타이로 가주세요."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호텔이 아니었다. 차우미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뚝뚝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을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나상준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고민만 더 늘고 싶지 않았다.운전기사는 두 사람을 태우고 데상타이로 향했다. 20분도 안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상준은 다시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뒤, 레스토랑 안으로 그녀를 밀고 들어갔다.데상타이는 중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붉은 등이 걸려 있는 레스토랑의 아래층은 사람으로 꽉 차 아주 시끌벅적했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얼른 뛰어와 둘을 반겼다. "예약하셨습니까?"나상준이 답했다. "네, 3508번이요.""네, 위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직원은 두 사람을 위층으로 안내했고, 그들은 룸에 들어갔다.직원은 나상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나상준은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지 않고, 혼자 주문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을 끝낸 직원은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그틈에 컵에 마실 물을 따랐다. 그리고 조용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나상준은 그녀가 따른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는 그의 말을 들은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상준의 눈에 서운함이 더욱 깊어졌다.나상준은 손가락으로 컵을 만졌다.차우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만졌다.곧 음식이 나왔고
차우미는 순간 멈칫하더니 시선을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발신자는 하성우일 것이다.하성우에게 인내심이 없는 것 같았다.결국 차우미는 가방에 넣었던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발신자는 하성우가 아닌, 낯선 번호였다.차우미는 의아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하성우가 머리를 써,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언니!"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도 잠시, 차우미는 당황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성우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던 그녀였다.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심나연이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발신자에, 다소 당황했다.그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심나연에게 물었다. "옆에 성우 씨 있어요?"하성우가 나상준과 연락이 닿지 않자, 심나연이 그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어! 언니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눈치 빠르네요! 전 성우 오빠랑 같이 있어요. 지금 밥을 먹으러 가려고요, 언니 혹시 상준 오빠랑 같이 있어요?"차우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심나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언니, 상준 오빠 기분은 어때요? 안 좋아요?""왜 성우 오빠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심나연은 말이 많았다,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차우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차우미의 시선이 나상준에게 향했다.'기분이 안 좋냐고?'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물론, 그러지도 않았다.그는 자기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래서 간파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오늘 그가 한 말로 볼 때, 나상준은 기분이 나빴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아니요, 상준 씨 화장실 갔어요.""아~ 어쩐지!""그럼 언니랑 상준 오빠는 지금 어디예요? 호텔이에요? 밖이면 저희가 거기로 가도 돼요?""밖이에요.""데상타이에 있어요.""네! 저희 금방 가니까 기다려줘요!"말을 마친 심나연이 전화를
밥을 먹은 뒤, 나상준은 일하러 가고 그녀는 호텔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두 사람은 접촉할 기회를 줄이는 편이 좋았다.나상준은 덤덤하게 밥을 먹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차우미는 뜨거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하게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결국 수저를 놓고 어두운 눈빛으로 차우미만 바라보는 나상준이다.심나연과 하성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언니, 상준 오빠!"심나연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둘을 찾았다. 즐거운 얼굴로 차우미의 곁으로 달려가 앉았다. 심나연은 어느새 차우미에게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하성우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상준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는 하성우도 어느 정도 눈치챘으나, 여기에 와서 직접 보니 그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상준의 곁에 앉았다. 하성우는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발은 어때요?"심나연은 그제야 차우미가 발을 다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성우 오빠가 언니가 발을 다쳤다고 해서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 다친 거예요?""형수님, 많이 아프세요? 걸을 수 있겠어요?"그녀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차우미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요, 살짝 삐끗한 거예요." "진짜요? 성우 오빠는 언니가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하던데."심나연은 고개를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상준 오빠, 언니 어쩌다가 다친 거야?""이 발로 어떻게 걸어."나상준은 하성우의 오른쪽에 앉아 눈을 늘어지게 뜨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심나연의 악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하성우는 심나연을 저지하기는커녕, 태연하게 주문을 했다.그는 아직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차우미는 심나연이 나상준에게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다. 나상준이 대답할 기미
차우미는 나상준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여겼다.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상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나상준의 태도가 납득가지 않았다.나상준의 두 마디 말에 심나연과 하성우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한참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서둘러 말했다.한 명은 나상준을 속이 좁다고 나무랐다. 차우미와 다툰 그를 원망하며 차우미를 달랬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에 나상준을 용서해달라는 말로 보충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아 얼굴을 붉히며 나상준을 대신해 항변하는 심나연과 하성우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컵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차우미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심나연은 그녀에게 밖으로 나가 걷자고 제안했다. 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따라가지 말라고 눈짓했다.차우미의 휠체어를 밀고 심나연은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길에 빛나는 등불이 가득했다."언니, 상준 오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성우 오빠보다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에요. 상준 오빠를 먼저 알게 되었으면 나도 분명 상준 오빠를 좋아했을 거예요."심나연은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여기고 얼른 변명했다. "오해하지 마요. 성준 오빠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니까 언니가 그만 화 풀었으면 해서요. 언니가 화를 내면 성준 오빠가 가슴 아파할 거예요."심나연에게 나상준은 하성우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더 좋은 사람이다.나상준은 그녀의 이상형이었다.하지만 나상준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하성우가 제일 좋았고, 아무도 하성우을 대신할 수 없었다.차우미는 밖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숨 막히는 공간에 있지 않아 정신이 맑아졌고 그녀의 의심도 사라졌다.그녀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맑고 깨끗한 내가 하성우한테 아까워요!""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흥!"차우미는 심나연이 화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놓지 못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눈이 있는 사람이면 심나연이 하성우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한편, 데상타이.차우미와 심나연이 나 뒤, 나상준과 하성우는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소란스러운 바깥 소음이 줄어들고 나서야 하성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쯧쯧~ 쯧쯧~"하성우는 설교하는 모습에서 한순간에 얼굴을 바꾸고 고소하면서도 기쁜 듯 나상준을 바라보았다."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세상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여자, 여자란 말이야...""평소에는 한없이 부드럽고 현모양처 같지, 귀엽고 발랄하고 섹시하게 유혹을 하지. 널 좋아할 땐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줄 것처럼 굴다가도 네가 속상하게 하면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어 널 죽이려고 든다고."하성우의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비유가 찰떡같아 나상준의 현 상황을 제대로 설명했다.나상준은 입안에 물을 쏟아넣으며 말했다. "너부터 조심해야겠다."모처럼 나상준을 걱정하던 하성우의 가슴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조심하라니? 난 너랑 달라. 내가 형수님 같은 분을 만났으면 매일 손에 움켜쥐고 입안에 머금고 아주 조심스럽게 사랑해주고 아꼈을 거야.""넌 늦었어!""보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럽지, 하지만 주관이 매우 강해 한번 내린 결정을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이 아직도 널 좋아할까?""우미 씨는 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던데, 자칫하다간 너랑 아주 멀리 거리를 둘 것 같아.""나였어도 너랑 마주치지도 않았을 거야. 3년 동안 뭘 해주길 했나... 이혼한 뒤에야 챙기는 척하긴... 죽을 때가 되어서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할걸!"하성우가 내뱉는 말은 나상준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나상준은 무표정하게 컵만 매만질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하성우는 고개를 돌려 나상준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차가웠다.'아이라...'하성우가 다시 물었다. "네가 피임한 게 아니면, 설마 우미 씨가 피임한 거야?""아니, 우미 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인데 어떻게 3년간 피임을 할 수 있어? 분명 아이를 원했을 건데, 게다가 그 정도 기간이면 시부모가 오히려 더 서두렀을 텐데?""손자 한 번 안아보려고 하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엄마도 맨날 재촉하는데, 어서 결혼해서 애부터 낳으라고. 나연이가 없었다면 그 잔소리 속에서 어떻게 버텼을지... 얼마나 가시방석이던지..."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나상준이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하성우는 깜작 놀라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나상준은 자기 휴대폰을 챙겨 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하성우는 멍하게 멀어지는 나상준을 쳐다보았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하성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나상준이 이미 가버린 뒤였다. 크게 열려 있는 문으로 바깥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하성우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나상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우미에 관한 일에서는 그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하성우는 혼잣말로 탄복했다. "역시, 하느님은 공평하셔. 한 명에게 모든 재능을 줘서는 안 되지."술잔을 들고 감탄하던 하성우는 시간을 확인하고 심나연에게 연락했다.바로 이때,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하성우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살짝 굳었다.발신자는 주혜민이다.심나연이 차우미와 함께 떠들썩한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둘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차우미의 기분을 전환하게 하려고 나온 것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심나연이 더 신나버렸다. 차우미는 환하게 미소 짓는 심나연을 바라보며 덩달아 웃었다.심나연은 좋은 사람이다.하지만 하성우의 냉소적인 얼굴
차우미는 고민에 잠겨 누군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를 덮었고 무거운 눈빛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것인지, 그녀는 떠들썩한 주위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치 혼자 떨어진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집중하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그녀였다.나상준의 눈빛이 짙은 빛깔에서 점차 옅어졌다."어, 상준 오빠!"심나연은 회전목마에서 내려 다가왔다. 그녀는 뒷모습만으로 나상준을 알아보았다.그는 짙은 셔츠와 정장 바지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왁작지껄한 이곳과 어울리지 않은 차림이라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차우미는 심나연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심나연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뒤를 바라보았다.차우미도 얼른 몸을 돌렸고 그의 시야로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나상준이 보였다.심나연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두 사람이 이렇게 또 한 공간에 있게 될 줄 몰랐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등장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다시 평온하게 고개를 돌렸다."오빠, 왔어? 성우 오빠는?"심나연은 오자마자 하성우부터 찾았다. 그러면서 나상준의 등 뒤까지 살펴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 "아직 데상타이에 있어.""음? 아직도 거기 있다고? 왜?"심나연의 얼굴이 순간 보기 싫게 구겨졌다. "지금 가야겠다, 오빠랑 언니 잘 가요!"심나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성우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차우미는 심나연이 쏜살같이 택시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하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비록 심나연이 성인이긴 하지만, 이렇게 늦은 밤 그녀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다.나상준은 그녀가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할 말은 전부 다 했고 더 말하면 의미가 없었다.게다가 기분에 따라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이미 계획까지 다 짰을 것이다.그가 행동에 옮긴 마당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더군다나 그녀가 말을 해도 나상준은 그것을 들어줄 리 없었다.나상준은 어젯밤처럼, 그녀를 안고 욕실로 가 그녀를 씻겼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옮긴 뒤,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 뒤에야 자기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향했다.차우미는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결정을 이렇게 후회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날이 평온하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뒤에는 나상준과 더는 엮이지 않을 생각이다.나상준은 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두어 번 털어내며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창문을 마주하고 누웠다. 이불을 덮은 채 눈을 감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깔고 있었다.잠이 든 건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그는 눈을 감은 차우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수건을 소파 위로 던지고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고요한 적막감이 방안에 깃들었고 방 안의 전등이 전부 꺼졌다. 바깥의 등불만이 희미하게 들어올 뿐이다.나상준은 눈을 감고 팔을 머리 뒤에 베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두운 밤, 도시 전체가 잠든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뜬 나상준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차우미는 잠이 들었다.며칠 간 많은 일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불면증에 들 정도까지는 아니다.그녀는 자기감정을 잘 통제했고 그만큼 자기를 아꼈다.지잉-순간, 그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나상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바로 끊었다,전화를 끊는 순간, 바깥의 빛이 창문을 통해 그녀의 얼굴에 비추었고 차우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감고 있던 눈은 뜨지 않았다.주위가 다시 고요해지자, 그녀의 구겨진 미간이 다시 펴졌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안심한 나상준은 휴대
진서원은 캐리어와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뚜껑을 닫았다. 그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세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진서원은 온이샘을 보다가 또 그의 뒤에 서 있는 차우미를 보고 그다음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보다가 차우미 옆으로 가서 손짓했다.“사모님, 차에 타세요.”차우미는 왠지 나상준이 무슨 안 좋은 일을 벌일 것 같아 불안했는데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또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상준이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일들을 겪었기에 그의 판단력 역시 현명하고 날카로울 것이다.예전에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오해했지만 분명 그후에 충분한 조사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처럼 침착할 수가 없다.나상준은 사람들에서 쉽게 휘둘리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일도 쉽게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한다.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바로 진짜 나상준이다.진서원의 말에 차우미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뿌리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그리고 온이샘을 봤는데 그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표정에서 차우미는 이해와 따뜻함을 느꼈다.“타.”온이샘은 마치 진서원이 조금 전에 차우미에 대한 호칭을 듣지 못한 척, 진서원이 차우미를 향해 뻗은 손도 보지 못한 척하며 차우미에게 말했다.온이샘은 꿋꿋하게 다른 것에는 모두 관심을 끄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만 했다.차우미는 정서적으로 너무 안정적인 온이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응.”온이샘은 몸을 비켜서더니 차우미가 뒷좌석에 올라타자, 차 문을 닫아주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진서원은 그의 행동을 보고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운전석으로 올라탔다.이어서 차가 출발했는데 호텔 내부에 있던 분수대를 한 바퀴 돌아 도로로 나갔다.비록 호텔 문앞에서 잠깐의 지체가 있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하자마자 차우미는 시간부터 확인했는데 그녀가 초반에 계획했던 대로 2시가 조금 넘었다.지금
차 안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어서 시원하던 공기가 차 문이 열리면서 더운 공기가 들어가 얽혀서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았다.열린 차 문 앞에 서 있는 온이샘은 시원하고 더운 공기가 어울린 공기를 마시며 어느새 주변의 번잡한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안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차우미가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여전히 냉정한 모습 그대로였다.온이샘이 먼저 몸을 약간 숙이고 말했다.“상준 씨, 안녕하세요. 우미가 그러는 데 두 사람 오늘 6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안평으로 간다면서요. 저도 마침 청주에서의 일이 끝나서 똑같은 항공편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차로 같이 공항으로 이동해도 되죠?”온이샘은 마치 서로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담담한 말투로 나성준에게 물었다.나상준은 손가락으로 서류를 넘겨보고 있다가 온이샘의 예의를 갖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차 안의 기온이 급하강 되는 것 같았다.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는데 길거리의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나상준의 서류를 넘기던 손가락도 온이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멈추었다.그 순간 나상준과 온이샘이 존재하는 세계와 그 외의 세계로 나누어진 것 같았다.온이샘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줄곧 차 안에 있는 나상준을 바라봤기에 그의 변화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순간 나상준으로부터 몰려오는 압박감은 주변을 감히 꼼짝하지 못하게 침묵에 빠뜨렸다.하지만 온이샘은 전혀 영향받지 않고 평소와 똑같이 평온하게 나상준의 대답을 기다렸다.온이샘은 나상준이 동의하든, 안 하든 모두 받아들일 것이다.잠시 멈췄던 시간이 나상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회복되었다.나상준은 고개를 들어 차 밖에서 허리를 살짝 굽히고 자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온이샘을 보며 말했다.“그렇게 하세요.”온이샘도 대답했다.“고마워요.”차우미는 온이샘의 뒤에서 따라 나왔기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그 때문에 온이샘에게 하려던 말을 못 했다.
차우미가 직원에게 말했다.“잠깐만요.”“네.”차우미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온이샘은 캐리어를 잡고 옆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사실 차우미의 휴대폰이 울리자마자 온이샘의 시선은 그녀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것을 줄곧 주시했다.온이샘의 키가 크고 각도와 시력이 좋았기에 그는 차우미 휴대폰에 뜬 이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나상준이었다.그 이름을 보는 순간 온이샘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상대방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자신의 휴대폰을 보는 줄도 모르고 전화 온 사람이 나상준인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호텔 밖으로 나가서 받았다.“여보세요.”“어디야?”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간결하고 선명하게 차우미의 귀에 들렸다.차우미는 호텔 밖의 차들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차가 보이지 않자,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지금 호텔 로비에 있어. 체크아웃 수속을 금방 마쳤어.”“그럼, 나와.”“뭐라고?”뚜뚜...나상준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반대편에서 전화를 끊은 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번 밖에 있는 차들을 둘러봤는데 그때 검은 벤츠가 가까이 와서 호텔 문 앞에 주차했다.차우미의 눈에는 충격과 불확실이 가득했다.‘벌써 왔다고?’처음에 나상준이 그녀에게 일이 끝나면 전화하라고 했을 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를 데리러 올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 차 키가 그녀에게 있어서 그럴 것 같다고 추측은 했었지만, 그냥 추측일 뿐 나상준의 성격상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부정했었다.나상준은 원래도 바쁜 사람인데 주말 이틀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기에 오늘은 엄청나게 바쁠 거라고 생각했다.차우미가 연락했을 때는 비록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상준은 예전 습관대로 서두르지 않고 출발 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공항 도착할 것이다.조금 전에 나상준의 전화가 들어올 때 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물어볼 뿐이지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차우미는 안평으로 돌아간 다음 다시 얘기할 시간을 찾으려고 했다.오늘 밤 안평으로 가기 위해 나상준도 공항에 올 것이고 그날 밤 레스토랑에서처럼 온이샘이 나상준을 보면 온이샘도 마음속으로 더 신중하게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한번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어떤 일은 여러 번 반복해서 보게 되면 거기에 대해서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결론을 내릴 거라고 믿었다.그리고 나상준이 온이샘과 자기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차우미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이혼했기에 그녀의 삶은 당연히 결혼했을 때와 달라질 것이다.때문에 차우미는 나상준이 오해를 하든, 화를 내든 자기의 삶을 충실히 계속할 것이다.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차우미 방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차우미가 먼저 고개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온이샘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방금 차우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온이샘 역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각자 자기의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차우미의 방에 도착했고 온이샘이 방에 있는 캐리어를 보며 물었다.“캐리어가 하나야?”말하면서 그는 주동적으로 캐리어를 들었다.차우미는 회성의 특산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사전에 산 것들은 이미 택배로 보냈기에 올 때의 짐 그대로 돌아가면 되었다.다만 온이샘이 그녀에게 옷을 가져다준 적이 있었는데 그 가방이 하나 더 있었다.차우미는 옷장에서 작은 여행 가방을 꺼내고 누락된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둘러보며 말했다.“여기 여행용 작은 가방이 하나 더 있어.”온이샘은 캐리어를 들고 또 차우미 손에서 여행 가방까지 가져갔다.두 사람의 손가락이 무심코 마주치는 순간 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풀었고 온이샘은 여행 가방을 꽉 잡아서 캐리어 위에 올려놓았다.“내가 할게.”차우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선배, 괜찮아. 여행 가방은 내가 들게.”말을 마친 차우미가 가방을 잡으려고 하자 온이샘은 곧바로 캐리어와
차우미는 온이샘과 같이 삼륜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서 곧바로 차에 타고 도로로 나왔다.그때 차에서 차우미가 나상준에게 자기의 상황을 메시지로 보냈다.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을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출발하여 아직 2시가 되지 않았다.호텔에 도착하면 2시가 될 거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하고 차 키까지 맡기면 아마 2시가 넘어서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3시 넘어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다.차우미는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고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했다.온이샘은 운전하면서 가끔 그녀를 살펴봤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심각하지는 않고 무언가 계획하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자기도 함께 안평으로 가는 데 있어서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온이샘은 나상준 때문에 차우미가 자기도 안평으로 함께 가려는 것을 거절할까 봐 걱정했었다.온이샘은 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기가 없는 상황에서 나상준만 차우미 옆에 있는 것이 두려웠다.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계속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온이샘은 방해하지 않았다.온이샘은 앞을 바라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며 이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이번에 청주로 오면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기에 잘 생각해야 했다.두 사람은 호텔로 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아 차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1시가 넘어서 교통 체증이 조금 있었지만, 아침 정도는 아니어서 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시 47분으로 차우미가 예상했던 시간과 비슷했다.차우미가 가방을 들고 온이샘에게 말했다.“선배, 나의 짐은 준비를 다 했으니 이제 방에 돌아가서 한 번 살펴보고 공항으로 출발할 거야. 그러니 선배도 이제 돌아가서 정리하고 우리 공항에서 만나.”온이샘이 그녀와 같은 항공편을 예약했기에 그냥 돌아설 수 없어 자기의 상황을 얘기했다.어차피 같은 비행기로, 함께 안평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실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이 고양이는 특별히 귀한 품종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고양이다.이혜정은 식사하고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하루 박영자와 이혜정은 함께 산책하다가 숲에서 아주 약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이혜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숲속을 바라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고양이가 이혜정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는 이혜정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 걸 알고 있다는 듯 이혜정의 발 옆에 와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혜정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습관이 없는데 어릴 때 가문이 망했을 때도 그녀의 생활은 여전히 평범하지 않았고 아가씨로 불리고 집에 가정부도 있었다.하지만 아주 어릴 때 누군가 아주 진귀한 페르시아고양이를 선물했었는데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하다가 죽었다. 그때 이혜정는 오랫동안 슬퍼했고 그 뒤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이혜정은 더 이상 이별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게다가 그때 가문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페르시아고양이가 죽은 다음 가문이 더욱 힘들게 되면서 심지어 자기를 진심으로 대해줄 사람과 결혼할 수도 없게 되었다.그리하여 이혜정은 결국 그때 보따리 장사를 하던 나동석과 결혼하게 되었다.그렇다고 무작위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나동석의 근면 성실하고 착하고 노력하는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다.결혼 후 두 사람은 많은 풍파를 함께 겪으면서 인생의 굴곡을 모두 체험했다.그런 상황에서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조건도, 여유도 없었다.때문에 어린 고양이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라 이혜정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지금까지 키우게 되었다.그런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혜정은 힘들 때 나씨 가문을 도와주었던 차우미의 할아버지를 찾게 되었다.그 이후에는 나상준과 차우미의 결혼으로 서로 사돈을 맺게 되었다.고양이는 재미있게 놀다가 힘들었는지 그 자리에 엎드려 꼬리를 흔들며 물고기들이 헤엄치
봄이 지나고 여름이 한창이기에 산과 나무들은 무성하고 푸르다.숲속에서는 매미가 울고 나뭇가지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나뭇잎들은 바람에 사르륵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은 여름날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었고 여름날의 풍경을 그대로 표현했다.별장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을 중심으로 숲 아래에 있는데 봄이 가면서 추위가 사라지고 그윽하고 고요한 여름을 맞이했다.검은색 벤츠가 별장 문 앞에 있었는데 나상준이 거실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차는 곧바로 별장을 떠났고 박영자는 청석으로 포장된 바닥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뒷마당의 연못 옆에 있는 정자로 갔다.박영자는 돌 벤치에 앉아 대나무로 엮은 공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를 앉고 있는 노인의 옆에 가서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은 출발하셨어요.”이혜정은 주먹만큼 크기의 공은 한 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술 장식들이 있었고 공이 움직일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술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노란 고양이가 몸을 일으키며 잡으려고 했고 잡지 못하면 다급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이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했는데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연구하는 듯 귀를 잡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이혜정은 평소 잘 웃지 않았는데 후손들을 만나거나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볼 때만 주름을 자랑하며 미소를 보여주었다.박영자의 말을 듣고 이혜정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혜정의 대답을 들은 박영자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혜정의 뒤에서 부채질했다.이혜정은 공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고양이를 놀리다가 가끔은 고양이가 잡을 수 있게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그녀가 공을 멈추고 높이를 낮추면 고양이는 누워서 뒹굴며 놀았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녀는 또 공을 뺏었는데 그때마다 혼란스러워하는 고양이의 표정을 보고 이혜정은 크게 웃었다.박영자는 이혜정의 웃음소리와 표정을 보다가 또 멍해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따라서 웃었다.이혜정은 고생을 많이 했는
“이샘이는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유독 여자애들과는 언제나 거리를 두었어. 다른 남자애들은 사춘기 때 짝사랑도 하고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이샘이는 공부 외에 아무 데도 관심이 없고 항상 품행과 학업이 모두 뛰어났어. 그래서 그때 우리 반의 여학생들은 거의 모두 이샘이를 짝사랑 했었거든.”유리의 말을 듣고 화동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당신도 좋아했어?”유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당연하지. 그때 짝사랑 안 해본 사람이 없을걸. 게다가 그렇게 우수한 사람을 누군들 싫어하겠어. 그 나이 때는 누구나 짝사랑하는 거야. 사춘기의 소녀가 같은 반에 공부도 잘하고 가문도 좋고 잘생긴 남자가 있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화동은 유리가 흥이 나서 그때 일을 얘기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며 미소를 아끼지 않았다.유리는 화동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왜 웃어? 질투 안 해?”화동은 그녀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안 해.”유리는 화동의 웃고 있는 얼굴을 꼬집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어렸을 때니까 당연히 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지만 크면서 달라지는 거야.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인연이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예전에 친구들이 농담으로 이샘이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지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끝내 알았어. 만약 이샘이와 우미 씨가 정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애들한테 자랑해야겠어.”말하면서 유리는 휴대폰을 꺼내서 갤러리를 클릭해서 오전에 길거리를 구경하면서 찍었던 온이샘과 차우미의 사진을 화동에게 보여주었다.“이거 봐. 두 사람 잘 어울리지.”화동도 사진을 보았다.차우미와 온이샘이 무후문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무후문 위에 있는 깃발을 올려다보고 온이샘은 옆에서 차우미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었다.화창한 햇빛 아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거리의 풍경도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생활 중의 여러 가지 색으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하지만 온이샘에게는 아
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놀리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가 아직은 연인이 아니고 또 차우미가 많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온이샘이 차우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너무 무례하지 않았다.유리가 먼저 침묵을 깨자, 화동이가 이어서 말했다.“우미 씨, 이샘 씨, 저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세요.”화동의 겸손한 한마디에 온이샘이 서둘러 말했다.“아니에요. 화동 씨 요리 너무 맛있어요. 청주와 노주 그리고 안평 요리까지 모두 너무 맛있어요. 저 지금 엄청 많이 먹고 있어요.”말하면서 온이샘은 젓가락을 들고 요리와 함께 밥그릇의 맨 위에 놓인 차우미한테서 가져온 밥을 먹었다.차우미는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온이샘이 아무렇지 않게 자기의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먹었다.그렇게 분위기는 금방 돌아왔고 모두 즐겁게 식사했다.오후 1시가 거의 될 때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지나서 화동과 주관규가 일어나서 식탁을 정리하자, 차우미와 온이샘도 일어나서 도와주었다.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여러 명이 움직이자, 식탁은 금방 정리되었다.설겆이까지 다 끝나고 온이샘이 시계를 보았는데 1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우리 오늘 안평으로 가야 해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다시 모이자.”유리는 두 사람이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너 일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바쁜 사람인 거 알아. 우미 씨도 바쁜 것 같으니 잡지 않을게. 우리 서로 연락 방법을 남겨서 나중에 또 연락하자.”“그래. 교통도 편리하니 모두 시간이 될 때 또 만나자.”유리는 역시 소탈하고 통쾌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러자.”이어서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데 차우미도 유리의 전화번호와 카톡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