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693 챕터

제311화 그가 보낸 선물일 줄이야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머리까지 뜨거워졌고 몸도 화끈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내가 어떻게 책임져요…”“음, 나랑 있을 때 자꾸 엇나가지만 않으면 돼. 그럴 때마다 난 내가… 강간범 같아.”배인호는 퍽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다.“몇 번은 그래도 받아주지 않았나요?”배인호에게 잘 보여 도움을 바랄 때는 몇 번 반항도 별로 없이 맞춰주려고 했었다. 전혀 느끼지 못한 건가?배인호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너는 네가 적극적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오늘은 네가 적극적으로 하든지.”“근데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나는 웅얼거리며 말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알 만큼 아는 여자지만 이런 일에서는 경험이 부족했다.“해보면 알게 되겠지?”배인호는 조금 기대하는 눈치였다.“착하지.”나는 얼굴이 더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배인호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배인호의 구겨졌던 미간이 그제야 풀렸다. 그는 내 허리를 감싸더니 손쉽게 나를 그의 다리 위로 안아 올렸다. 나는 머리를 숙여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심호흡 한번 하고는 먼저 키스했다.내가 먼저 적극적인 결과는 배인호의 더욱 저돌적인 갈취였다. 거실 소파가 난장판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안방으로 돌아가 쉬었다.나는 너무 졸렸지만 그래도 졸음을 가까스로 밀어내며 회사 일을 물었다.“미도는 진명수를 배후에 두고 있어. 진명수가 너를 찾은 것도 아마 하미선이 시켜서였을 거야. 너를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물러나지 않을걸.”배인호가 눈을 감고는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목소리는 만족을 느낀 듯 나른하게 잠겨있었다.“그럼 협력하는 거 동의해야 할까요?”나는 배인호의 팔을 베고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배인호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응, 해도 괜찮을 것 같아. 협력해야만 그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서 상황을 역전할 수 있어.”망설이던 부분이었지만 배인호가 이렇게 말하니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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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모함

“왜 말이 없어? 마음에 안 들어?”내가 계속 침묵을 지키자, 배인호가 다시 물었다.나는 물에서 꽃잎을 몇 개 건져내 손바닥에 놓고 자세히 관찰했다. 예쁘긴 했다. 전혀 시든 흔적이 없었고 약간은 벨벳 촉감이었다.“마음에 들어요. 너무 예뻐요.”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한번 보여줘 봐.”배인호는 이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고 영상통화를 다시 걸어왔다.나는 알람을 보며 받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얼떨결에 받기 버튼을 눌렀다.배인호 쪽 배경은 청담동 서재 같았다.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점잖은 양아치 느낌이었다. 그는 평소에 안경을 잘 끼지 않았지만, 낄 때마다 나는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뭐야? 반신욕하고 있어?”배인호는 내가 욕실에 있는 걸 발견하고는 물었다.“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당신이 준 장미랑 같이요.”배인호가 약간 멈칫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나는 아예 카메라를 돌려 욕조를 비췄다. 욕조에 가득 담긴 빨간 장미꽃 꽃잎이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이 장면을 본 배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나한테 꽃을 보냈다. 결혼식 부케마저도 배인호 어머니가 골라준 것이었다.“당신이 아무 얘기 안 한 것도 있고 카드에 메모도 해놓지 않아서 누가 보낸 건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반신욕이나 할까 가져온 거예요.”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나 빼고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 있어?”배인호도 약간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내가 보냈다고는 아예 생각도 못 한 거야?”나는 몇 초 정도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솔직히 진짜 생각 못 했어요.”나는 배인호가 액세서리나 가방, 차나 집은 줘도 꽃은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배인호의 표정이 굳더니 심호흡했다.“이건 나를 탓하면 안 돼요. 전에 길가에 난 들꽃이라도 좋으니 꽃 좀 선물로 달라고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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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자기의 발등을 찍다

유정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그토록 멍청한 것이 마음이 아팠다.“지영 언니, 그냥 정이한테 사과하고 이 일은 이렇게 넘겨요. 그럼, 앞으로도 친구 할 수 있어요.”서란은 계속 싸움을 말리는 좋은 사람인 척 쇼하며 진지하게 말했다.유정이 그렇게 심한 일을 당했는데 내가 한 짓이 맞는다고 해도 사과만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자기가 당한 일이 아니라고 참 쉽게 얘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물며 누가 유정을 해쳤는지 서란은 모를 리 없었다.우지훈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전혀 켕기는 게 없어 보였다.이 남자도 진짜 마음이 독했다. 자신의 여자 친구한테 이런 짓까지 한 게 결국은 헤어지기 위해서라니, 모든 잘못을 유정한테 넘긴 것도 더는 매달릴 핑계가 없게 만들려는 것이었다.하지만 사랑에 빠진 유정은 우지훈은 좋은 사람이고 잘못은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서란아, 진심이야?”나는 태연하게 머리와 옷을 정리하고는 담담하게 물었다.“지영 언니, 지금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사람은 언니예요.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서란은 내가 무슨 의미로 묻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유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정이는 나와 제일 친한 친구예요. 이렇게 당하는 건 싫다고요.”유정은 서란의 말을 듣고 감동한 표정으로 서란을 한번 쳐다봤다.이때 서란의 눈빛이 멀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눈이 반짝거렸고 아주 신이 나 보였다.“인호 씨, 여기요!”배인호도 오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아까까지 영상통화를 했는데 말이다.오늘은 밸런타인데이, 서란이 배인호를 불러내는 것도 정상이었다.배인호는 인파를 뚫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시선이 몇 초간 내 몸에 머물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서란은 이런 면에서 매우 민감한 편이었다. 서란은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배인호의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배인호의 팔에 살포시 기댔다. 마치 주도권을 과시하는 듯해 보였다.배인호는 자기도 모르게 팔을 빼려고 했지만 내가 바로 눈치를 보냈다. 그는 눈살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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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남자의 소심함

이모건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이미 테이블에 쓰러진 세희를 보더니 눈빛이 바로 부드러워졌고 죄책감으로 마음 아파했다.이모건은 “응”하고 대답하더니 바로 세희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불러세웠다.“이모건 씨 잠깐만요. 혹시 이 두 사람 본 적 있어요?”나는 서란과 우지훈을 가리키며 물었다.이모건은 이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두 인간쓰레기잖아요.”이모건의 말에 우지훈과 서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정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이모건을 보며 말했다.“무슨 뜻이에요?”우지훈이 유정의 손을 잡더니 다시 옆으로 끌어내려 했다.“둘이 얘기하자.”이모건의 입꼬리에 차가운 웃음이 걸리더니 말했다.“자기 여자 친구에게 약을 탄게 고작 헤어지기 위해서라니, 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뭐라고요?”유정의 얼굴이 하얘지더니 눈도 휘둥그레졌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이모건이 유정을 힐끔 보더니 더 말하기 귀찮은 듯 세희를 찾으러 갔다.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미 다 해준지라 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표정은 참으로 재밌었다. 특히 서란은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입은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정은 몸에 힘이 빠진 듯 입술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이런 일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배인호가 실눈을 뜨고 우지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소꿉친구이기도 하고 연초에 금방 우지훈을 배 씨 그룹 본사에 들였기 때문이었다.근데 남자가 돼서 이렇게 비겁하기 그지없는 일을 저지르다니, 배인호의 기분도 복잡했다.“라니야, 이 일 너도 알고 있었어?”유정은 서란을 잊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란에게 물었다.“난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서란은 몹시 켕기는 듯한 표정으로 두 걸음 물러서기까지 하면서 배인호 뒤에 숨었다.“정아, 난 진짜 아무것도 몰라.”이젠 유정도 서란을 백 퍼센트 믿지는 못했다. 이모건의 말을 들어보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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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만날 때가 된 것 같아

“인호 씨, 나보다 참을성 더 좋을 텐데?”나는 배인호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러고는 적극적으로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살살 문질렀다.“인호 씨 말로는 진명수가 의심이 깊다면서요? 당신한테도 경계심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 사람 약점 잡으려면 우리가 끝장까지 봤다고 믿게 해야 해요.”배인호는 손을 돌려 내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크면서도 따듯했고 쉽게 내 손을 감쌌다.그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입술을 거의 내 얼굴에 대다시피 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그래도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보상받아야겠어.”“이것도 보상해야 해요?”많이 놀란 건 사실이었다. 배인호는 요즘 점점 파렴치해졌다.“응, 해야 해.”배인호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정확하게 내 입술을 찾아 키스를 해왔고 혀끝은 익숙하게 공략해 왔다.요새 시도 때도 없이 들러붙는 건 좀 적응이 된 것 같다. 내 몸도 즐거운 일이니, 임신하지 않는 이상 손해 볼 건 없었다.나는 배인호에게 반응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가자, 그가 멈칫하더니 눈을 떴다. 까만 눈동자가 보였고 그 눈빛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나 빨리 우리 아기 가지고 싶어.”배인호가 부드럽게 키스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까지만 해도 들끓었던 성욕이 이 말로 완전히 사라졌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파졌다.더는 아이는 없을 거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배인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부드럽게 키스만 할 뿐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아픔을 숨긴 채 가까스로 키스에 응했다.오늘 밤도 역시 뜨겁게 엉켜서 보낸 밤이었지만 내 기분은 계속 다운되어 있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기선혜는 이미 아침 준비를 마쳤고 내가 밖에서 들어오자 멈칫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아침 드세요.”“그래요. 엄마랑 먼저 먹어요. 저는 옷 좀 갈아입고 내려올게요.”나는 기선혜의 눈을 피해 황급히 계단을 올라갔다.올라가서 샤워하고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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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난 당신을 증오해요

“진 사장님.”나는 판에 박힌 웃음을 지으며 진명수의 을 잡았다.그는 정계에 몸을 담은 것 외에도 미도 그룹의 최고 관리자였다.진명수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우라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앉아요. 조금 있다가 친구가 한 명 더 올 거라.”진명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듣는 나는 차가움을 느꼈다.“그러죠.”나는 소파에 앉고는 가방을 옆에 놓았다.진명수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우 온화한 사람이었다.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고 나에게 손수 차를 따라주었다. 말은 조곤조곤 천천히 하는 편이었다.나는 이 사람이 아빠를 해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증오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해소할 곳이 없었다.진명수는 미도 그룹이 우리 회사와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밝히면서 좋은 점을 하나하나 다 말해주었다. 만약 배인호가 전에 나에게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나는 무조건 혹했을 것이다.둘이 대화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배인호였다.“이 의사, 왔어?”이우범을 본 진명수의 태도가 더 친근해졌다.이우범은 까만 스웨터에 브라운 칼라의 재킷을 입고 있었다. 시선이 잠깐 내게 머물더니 담담하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허 사장님, 이 의사 아버지와 관계가 괜찮은 편인데 요새 몸이 좀 안 좋아서 이 의사가 단독 회진을 해주고 있어요. 괜찮죠?”진명수의 말이 많아졌다. 얼굴에는 미소도 걸려 있었다.“네, 괜찮습니다.”내가 대답했다.이우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와 진명수 사이에 앉았다.나는 이 늦은 밤에 진명수가 왜 이우범을 레스토랑으로 불러 단독 회진을 보는 건지 이상하게 느껴졌다.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진명수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룸 안에는 나와 이우범만 남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분 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인호 또 서란이랑 같이 다니던데, 지영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아무 생각 없어요. 그냥 지금은 회사 일만 잘하고 싶어요.”나는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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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돌아오면 혼내줄게

나는 이우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대화 기능도 이미 상실했다.시간은 분명 2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배인호의 선택을 기다리는데 이우범이 갑자기 머리를 숙이더니 내 목을 물고는 힘껏 빨아 키스 마크를 남겼다. 그러고는 복잡하고 답답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문을 열러 갔다.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도 순간 느슨해지는 느낌이었고 의식도 더 이상 반항할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유하가든으로 돌아와 있었고 옷도 단정한 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기선혜가 내 옆에 와서 앉더니 내가 깬 걸 발견하고 다급하게 물었다.“아가씨, 깨셨어요? 혹시 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괜찮아요. 누가 날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예요?”나는 이 문제만 신경 쓰였다.“이우범 선생님이 데려다주셨어요.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기선혜가 불안해하며 물었다.이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문을 열지 않은 건가? 아니면 문을 열었는데 배인호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서 이우범이 나를 데려다준 건가?’배인호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면 참을성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니, 그를 탓할 자격은 없었다.“인호 씨 왔다 갔어요?”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장님 온 적 없어요.”기선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나는 침묵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내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배인호에게 그렇게 각박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뒤에 진명수, 서란, 하미선만 무너트려 주면 된다.그때가 되면 아빠 사건도 더 이상 압박을 넣을 사람이 없을 테니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기선우 사건도 말이다.배인호는 기선우의 죽음이 샤인 코스메틱의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해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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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불이 나다

나는 직접 기선혜의 부모님을 데리러 올 필요는 없었다. 그냥 기선우가 나고 자란 곳을 돌아보고 싶었다.저녁이 되었고 나는 기선우의 침대를 쓰게 되었다. 깔끔하고 심플한 방에 기선우의 학창 시절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 밤 나는 꿈에서 기선우를 보았다. 기선우는 바에서 바텐더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선우야, 요즘 잘 지내고 있어?”기선우는 나를 향해 쾌활하면서 눈부시게 웃어 보이더니 여전히 상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누나, 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일어났을 땐 이미 베개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이때 밖에서 기선혜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 일어나서 아침 먹을래요?”“네!”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계획대로라면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하는 건데 가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 기선혜의 아버지를 찾으러 왔고 토지와 관련된 얘기를 했다. 나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 옆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기다리다 보니 하루가 꼬박 지났고 서울로 돌아가는 계획을 하루 미룰 수밖에 없었다.예상치 못한 사고는 이날 밤 벌어졌다.고민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통 잠이 오지 않았다. 배인호가 전화를 걸어왔고 나도 거절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지영아, 어디야? 왜 혼자서 그렇게 멀리까지 갔니?”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건 배인호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많이 조급해 보였지만 목소리에서 약간의 기쁨이 느껴졌다.“그래도 인호 전화를 받으니 좋구나.”“아주머니, 저 괜찮아요. 그냥 선혜 언니 부모님 데리러 온 거예요.”겨우 짜낸 졸음도 한꺼번에 사라졌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배인호 어머니가 왜 배인호 전화로 전화를 걸었는지 의문이었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배인호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지영아, 나는 인호와 서란이 사귀는 거 결사반대야. 아까도 한 소리 했어. 만약 진짜 서란과 사귀겠다고 한다면 모자의 연을 끊겠다고 했어.”배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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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배인호 어머니의 관심

“지영아, 어디 있어?”배인호 어머니의 목소리도 같이 들려왔다.‘아주머니도 같이 왔다고? 그럼, 아까 전화 받을 때 이미 우리 쪽으로 거의 넘어올 때였나?’“콜록콜록”나는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바깥이 점점 시끄러워지는 걸 봐서는 사람들이 불을 끄러 온 듯싶었다.이 기사님이 젖은 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사장님, 이걸로 코와 입을 막으세요. 사람들이 왔으니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기선혜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둘은 많이 놀란 듯했다.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런 일을 당했으니 두 사람까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진짜 기씨 집안의 죄인이나 다름없었다.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파박!”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천정에서 들려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원래도 낡은 처마가 불길에 의해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다.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머리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밖에서는 소방차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만 더 버티면 살 희망이 컸다.하지만 기씨 일가의 집은 오래된 집이라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처마가 완전히 내려앉는 순간 나는 기선혜 부모님의 놀란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제일 민첩한 속도로 기선혜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마음에 품은 죄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선혜 부모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나는 등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 아팠고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물이 내 몸 위에 뿌려지는 게 느껴졌고 배인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의 목소리였다.“허지영! 대답해!”나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너무 아파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아까 매캐한 연기를 흡인하는 바람에 목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나는 무언가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내가 통증으로 정신을 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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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가식을 떨다

‘서란이 왜 여기 있는 거지?’내 마음속엔 의심으로 가득 차올랐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덤덤한척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배인호 어머니는 지금 서란에게 좋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란을 대할 때는 교양이며 소양이며 다 버린 것 같았다.서란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꽃을 내 머리맡에 올려놓고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아주머니, 저도 어젯밤에 출발해서 달려온 거예요. 친구가 선우네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선우 부모님 안전도 염려되고 해서 와본 건데, 지영 언니도 마침 선우네 집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다쳤다고 해서 그래서 특별히 와본 거예요.”배인호 어머니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그래? 이런 우연이 다 있어? 기씨 일가에 불 지른 것도 네가 한 짓 아니야?”이 말을 들은 서란의 얼굴이 하얘졌다. 마치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배인호 어머니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서란의 성격대로라면 진짜 이런 짓을 할 법도 했다. 그렇다면 서란은 어떻게 내가 여기 온 걸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주머니, 오해에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선우랑 사귀었던 사이고 저한테 엄청나게 잘해줬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데 제가 어떻게 선우 부모님까지 해칠 생각을 하겠어요.”서란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배인호 어머니에게 보여줬다.“선우가 떠나고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만약 애초에 선우랑 헤어지지 않았으면 결과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죄책감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선우 부모님께 계속 돈을 조금씩 보냈어요. 제가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까지 하겠어요?”배인호 어머니는 서란의 말을 듣고 또 핸드폰을 힐끔 봤다. 이체 기록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서란은 눈치는 빨랐다. 배인호 어머니의 태도가 살짝 좋아지자 바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저한테 편견 있는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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