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 씨, 나보다 참을성 더 좋을 텐데?”나는 배인호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러고는 적극적으로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살살 문질렀다.“인호 씨 말로는 진명수가 의심이 깊다면서요? 당신한테도 경계심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 사람 약점 잡으려면 우리가 끝장까지 봤다고 믿게 해야 해요.”배인호는 손을 돌려 내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크면서도 따듯했고 쉽게 내 손을 감쌌다.그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입술을 거의 내 얼굴에 대다시피 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그래도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보상받아야겠어.”“이것도 보상해야 해요?”많이 놀란 건 사실이었다. 배인호는 요즘 점점 파렴치해졌다.“응, 해야 해.”배인호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정확하게 내 입술을 찾아 키스를 해왔고 혀끝은 익숙하게 공략해 왔다.요새 시도 때도 없이 들러붙는 건 좀 적응이 된 것 같다. 내 몸도 즐거운 일이니, 임신하지 않는 이상 손해 볼 건 없었다.나는 배인호에게 반응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가자, 그가 멈칫하더니 눈을 떴다. 까만 눈동자가 보였고 그 눈빛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나 빨리 우리 아기 가지고 싶어.”배인호가 부드럽게 키스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까지만 해도 들끓었던 성욕이 이 말로 완전히 사라졌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파졌다.더는 아이는 없을 거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배인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부드럽게 키스만 할 뿐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아픔을 숨긴 채 가까스로 키스에 응했다.오늘 밤도 역시 뜨겁게 엉켜서 보낸 밤이었지만 내 기분은 계속 다운되어 있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기선혜는 이미 아침 준비를 마쳤고 내가 밖에서 들어오자 멈칫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아침 드세요.”“그래요. 엄마랑 먼저 먹어요. 저는 옷 좀 갈아입고 내려올게요.”나는 기선혜의 눈을 피해 황급히 계단을 올라갔다.올라가서 샤워하고 나왔
“진 사장님.”나는 판에 박힌 웃음을 지으며 진명수의 을 잡았다.그는 정계에 몸을 담은 것 외에도 미도 그룹의 최고 관리자였다.진명수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우라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앉아요. 조금 있다가 친구가 한 명 더 올 거라.”진명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듣는 나는 차가움을 느꼈다.“그러죠.”나는 소파에 앉고는 가방을 옆에 놓았다.진명수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우 온화한 사람이었다.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고 나에게 손수 차를 따라주었다. 말은 조곤조곤 천천히 하는 편이었다.나는 이 사람이 아빠를 해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증오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해소할 곳이 없었다.진명수는 미도 그룹이 우리 회사와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밝히면서 좋은 점을 하나하나 다 말해주었다. 만약 배인호가 전에 나에게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나는 무조건 혹했을 것이다.둘이 대화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배인호였다.“이 의사, 왔어?”이우범을 본 진명수의 태도가 더 친근해졌다.이우범은 까만 스웨터에 브라운 칼라의 재킷을 입고 있었다. 시선이 잠깐 내게 머물더니 담담하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허 사장님, 이 의사 아버지와 관계가 괜찮은 편인데 요새 몸이 좀 안 좋아서 이 의사가 단독 회진을 해주고 있어요. 괜찮죠?”진명수의 말이 많아졌다. 얼굴에는 미소도 걸려 있었다.“네, 괜찮습니다.”내가 대답했다.이우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와 진명수 사이에 앉았다.나는 이 늦은 밤에 진명수가 왜 이우범을 레스토랑으로 불러 단독 회진을 보는 건지 이상하게 느껴졌다.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진명수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룸 안에는 나와 이우범만 남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분 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인호 또 서란이랑 같이 다니던데, 지영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아무 생각 없어요. 그냥 지금은 회사 일만 잘하고 싶어요.”나는 이우
나는 이우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대화 기능도 이미 상실했다.시간은 분명 2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배인호의 선택을 기다리는데 이우범이 갑자기 머리를 숙이더니 내 목을 물고는 힘껏 빨아 키스 마크를 남겼다. 그러고는 복잡하고 답답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문을 열러 갔다.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도 순간 느슨해지는 느낌이었고 의식도 더 이상 반항할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유하가든으로 돌아와 있었고 옷도 단정한 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기선혜가 내 옆에 와서 앉더니 내가 깬 걸 발견하고 다급하게 물었다.“아가씨, 깨셨어요? 혹시 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괜찮아요. 누가 날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예요?”나는 이 문제만 신경 쓰였다.“이우범 선생님이 데려다주셨어요.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기선혜가 불안해하며 물었다.이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문을 열지 않은 건가? 아니면 문을 열었는데 배인호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서 이우범이 나를 데려다준 건가?’배인호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면 참을성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니, 그를 탓할 자격은 없었다.“인호 씨 왔다 갔어요?”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장님 온 적 없어요.”기선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나는 침묵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내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배인호에게 그렇게 각박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뒤에 진명수, 서란, 하미선만 무너트려 주면 된다.그때가 되면 아빠 사건도 더 이상 압박을 넣을 사람이 없을 테니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기선우 사건도 말이다.배인호는 기선우의 죽음이 샤인 코스메틱의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해준 적
나는 직접 기선혜의 부모님을 데리러 올 필요는 없었다. 그냥 기선우가 나고 자란 곳을 돌아보고 싶었다.저녁이 되었고 나는 기선우의 침대를 쓰게 되었다. 깔끔하고 심플한 방에 기선우의 학창 시절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 밤 나는 꿈에서 기선우를 보았다. 기선우는 바에서 바텐더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선우야, 요즘 잘 지내고 있어?”기선우는 나를 향해 쾌활하면서 눈부시게 웃어 보이더니 여전히 상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누나, 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일어났을 땐 이미 베개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이때 밖에서 기선혜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 일어나서 아침 먹을래요?”“네!”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계획대로라면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하는 건데 가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 기선혜의 아버지를 찾으러 왔고 토지와 관련된 얘기를 했다. 나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 옆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기다리다 보니 하루가 꼬박 지났고 서울로 돌아가는 계획을 하루 미룰 수밖에 없었다.예상치 못한 사고는 이날 밤 벌어졌다.고민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통 잠이 오지 않았다. 배인호가 전화를 걸어왔고 나도 거절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지영아, 어디야? 왜 혼자서 그렇게 멀리까지 갔니?”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건 배인호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많이 조급해 보였지만 목소리에서 약간의 기쁨이 느껴졌다.“그래도 인호 전화를 받으니 좋구나.”“아주머니, 저 괜찮아요. 그냥 선혜 언니 부모님 데리러 온 거예요.”겨우 짜낸 졸음도 한꺼번에 사라졌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배인호 어머니가 왜 배인호 전화로 전화를 걸었는지 의문이었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배인호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지영아, 나는 인호와 서란이 사귀는 거 결사반대야. 아까도 한 소리 했어. 만약 진짜 서란과 사귀겠다고 한다면 모자의 연을 끊겠다고 했어.”배인호
“지영아, 어디 있어?”배인호 어머니의 목소리도 같이 들려왔다.‘아주머니도 같이 왔다고? 그럼, 아까 전화 받을 때 이미 우리 쪽으로 거의 넘어올 때였나?’“콜록콜록”나는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바깥이 점점 시끄러워지는 걸 봐서는 사람들이 불을 끄러 온 듯싶었다.이 기사님이 젖은 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사장님, 이걸로 코와 입을 막으세요. 사람들이 왔으니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기선혜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둘은 많이 놀란 듯했다.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런 일을 당했으니 두 사람까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진짜 기씨 집안의 죄인이나 다름없었다.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파박!”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천정에서 들려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원래도 낡은 처마가 불길에 의해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다.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머리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밖에서는 소방차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만 더 버티면 살 희망이 컸다.하지만 기씨 일가의 집은 오래된 집이라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처마가 완전히 내려앉는 순간 나는 기선혜 부모님의 놀란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제일 민첩한 속도로 기선혜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마음에 품은 죄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선혜 부모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나는 등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 아팠고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물이 내 몸 위에 뿌려지는 게 느껴졌고 배인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의 목소리였다.“허지영! 대답해!”나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너무 아파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아까 매캐한 연기를 흡인하는 바람에 목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나는 무언가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내가 통증으로 정신을 잃을
‘서란이 왜 여기 있는 거지?’내 마음속엔 의심으로 가득 차올랐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덤덤한척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배인호 어머니는 지금 서란에게 좋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란을 대할 때는 교양이며 소양이며 다 버린 것 같았다.서란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꽃을 내 머리맡에 올려놓고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아주머니, 저도 어젯밤에 출발해서 달려온 거예요. 친구가 선우네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선우 부모님 안전도 염려되고 해서 와본 건데, 지영 언니도 마침 선우네 집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다쳤다고 해서 그래서 특별히 와본 거예요.”배인호 어머니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그래? 이런 우연이 다 있어? 기씨 일가에 불 지른 것도 네가 한 짓 아니야?”이 말을 들은 서란의 얼굴이 하얘졌다. 마치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배인호 어머니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서란의 성격대로라면 진짜 이런 짓을 할 법도 했다. 그렇다면 서란은 어떻게 내가 여기 온 걸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주머니, 오해에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선우랑 사귀었던 사이고 저한테 엄청나게 잘해줬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데 제가 어떻게 선우 부모님까지 해칠 생각을 하겠어요.”서란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배인호 어머니에게 보여줬다.“선우가 떠나고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만약 애초에 선우랑 헤어지지 않았으면 결과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죄책감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선우 부모님께 계속 돈을 조금씩 보냈어요. 제가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까지 하겠어요?”배인호 어머니는 서란의 말을 듣고 또 핸드폰을 힐끔 봤다. 이체 기록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서란은 눈치는 빨랐다. 배인호 어머니의 태도가 살짝 좋아지자 바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저한테 편견 있는 거 알아
“간호사, 이 남자분 데리고 나가 주세요. 저는 이 남자분 몰라요!”지금까지 많은 위험한 상황을 겪어 본지라, 내 현재 상태는 무척 날카로워졌다.간호사는 그 남성을 힐끗 보더니, 경계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환자분 휴식 방해하지 마시고 나가주세요. 아니면 경비 부를 거예요!”해당 남성은 무섭게 나를 한번 흘겨봤다. 나는 그를 처음 보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그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보는 듯했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의료진들도 옆에 있는지라 그 남성은 더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굳이 설명까지 덧붙였다.“죄송합니다. 병실을 잘못 찾아왔어요.”말을 마친 뒤 그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해당 남성이 떠난 뒤에도 나는 무척 불안했다. 게다가 여기는 길도 잘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있기에는 안전하지 않았다.한참의 고민을 거친 후, 나는 통화기록을 뒤졌고,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지영이 좀 잘 챙겨줘! 너 다시 그 서란 이라는 애 찾아가기만 해봐, 그날부로 우리 모자 관계도 끝인 줄 알아!”전화번호를 눌러 전화가 통하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병실 문이 열렸고, 배인호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이어서 배인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는 발신자 번호를 한번 보더니 나를 힐끗 쳐다봤다.나는 빠르게 전화를 끊었지만, 배인호 어머니가 그걸 눈치챈 듯 나에게 물었다.“지영아, 네가 인호에게 전화한 거니? 왜? 얘가 또 서란 이라도 찾아갈까 봐?”그녀는 기쁨과 위안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배인호가 그녀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저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예요.”“전 조금 전에 선혜 언니에게 전화했어요. 여기 상황에 관해 이야기도 좀 하고요.”나도 조금 전 상황을 부인했다.그 말에 배인호 어머니의 표정은 금세 실망이 가득했지만, 곧바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래, 난 일단 가서 밥 좀 먹고 와야겠다. 인호가 너랑 같이 있어야
“아파요!”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등 뒤에 화상 면적은 크지 않을 것이지만 다친 부분과 화상을 당한 곳은 너무 아파 참을 수가 없다.배인호는 얼른 내 어깨를 잡으며 옆으로 누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아파서 어떡해. 조금만 참아.”“저 아무래도 그냥 엎드려 자는 게 나을 것 같아요.”나는 아직도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냥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이었다.그러자 배인호가 의문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엎드려 잔다고? 괜찮겠어?”그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물은 거겠지만 나는 그의 말뜻을 알아챘고, 얼굴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배인호도 그제야 눈치챈 듯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듣기 좋았고, 웃을 때는 더 매혹적이었다.“근데 네 몸매면 엎드려 자도 괜찮겠다.”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내 몸매로 농담이 나오나?나는 담담하게 답했다.“그러게요. 확실히 인호 씨 핸드 스킬이 별로 인가 봐요.”그 말에 배인호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졌고,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내 스킬이 별로라고?”“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지금까지도 제가 이렇게 밋밋할 수 있겠어요? ”나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배인호와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그 말을 들은 배인호는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아니면 지금 한번 느껴볼래?”나는 순식간에 경계심으로 가득 찼다. 다행히 지금은 엎드려 있는 상태라, 배인호가 손을 대려고 해도 뭘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배인호도 이 문제점을 눈치채고,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너 두고 봐. 이제 가서 다시 보자고.”“인호 씨, 가서 저 퇴원하는 거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안 돼요? 이 기사님도 부르고요.”나는 대화 화제를 돌리며 배인호에게 당부했다.배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리 엄마보고 너랑 같이 있어 주라고 할게. 그러면 그나마 안전할 거야.”곧, 외출하셨던 배인호 어머니가 돌아왔고, 내일 내가 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