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의 모든 챕터: 챕터 661 - 챕터 670

2305 챕터

제661화

“뜻이 있는 자, 반드시 이룬다.”그는 이 한마디 좌우명을 갖고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한성의 설립 과정, 회사의 히스토리와 현재 상품의 특점과 판매 현황 등을 포함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그다음 해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그는 다시 입사 면접에 도전했고 일사천리로 면접을 통과했다. 마지막 면접은 바로 강한서와의 일대일 면접이었다. 민경하는 이제껏 그런 긴장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한 강한서는 바로 그를 통과시켰다. 강한서와 조금 편한 사이가 된 후 민경하는 강한서에게 그때의 일을 언급했다. 그는 감격스러운 말투로 만약 이력서 뒤에 써준 말이 아니었다면 그가 한성에 다시 도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한서에게 말했다. 강한서가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민경하의 말에 멈칫하던 강한서가 말했다. “그건 민 실장 능력이었죠.”나중에야 민경하는 매년 면접 후 마지막 라운드까지 진입한 사람의 이력서 뒷면에 글을 써주는 것이 강한서의 습관임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응원의 메시지였으나 한성이 워낙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였고, 면접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 역시 명문대 출신이었으니 면접에 떨어지면 불만들을 늘어놓을 뿐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강한서는 매년 이력서에 응원의 메시지를 써주었지만 민경하처럼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고 인사팀의 부장이 알려주었다. 강한서의 업무 스타일은 많은 사람에게 냉정하고 보수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가로 그의 방식은 사실 더 많은 구직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꽃 도착했어요?”강한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딴생각에 잠겼던 민경하가 그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음… 그리고 조금은 사랑꾼인 것 같아.’“오늘 받으셨어요.”민경하의 대답에 강한서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보낸 꽃을 전부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라고 하던가요?”민경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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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이준은 그런 유현진의 태도를 아주 만족했다. 연기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이준은 생각했다. 오디션 당일, 이준은 빈해시에 신인배우를 캐스팅하러 가야 했다. 때문에 유현진과 함께 오디션장이 갈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다른 동료에게 그녀를 데리고 오디션 장소에 가주기를 부탁했다. 원래 매니저였던 진희연은 그녀가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다른 배우를 케어하러 갔다. 비록 송민준은 유현진을 특별히 신경써줬지만 회사의 내부 규칙도 지켜야 했다. 지금 유현진 정도로는 아직 전담 매니저의 케어를 받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녀의 휴식기 동안 진희연이 다른 연예인의 일정을 함께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준은 그녀에게 동료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동료의 이름은 서영이었고 그녀는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가 킹 엔터에서 스카우트해 온 매니저였다. 예전엔 차미주와 같은 회사에 다녔다. 차미주의 말로는 서영도 굉장히 실력 있는 매니저라고 했다. 많은 유명 연예인을 데리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회사 대표와 사이가 틀어져 다른 매니저에게 일을 인계하고 퇴사했었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가 설립 후, 그녀는 킹 엔터를 그만두고 이쪽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녀는 회사 제일 먼저 계약한 매니저였다. 유현진은 일찍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지만 저녁 6시 40분이 되어도 서영의 전화가 없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영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을 울려서야 서영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냉담했다. 유현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서영 씨, 도착하셨어요?""아뇨, 길이 좀 막혀서요."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딥블루 클럽까지 가려면 차가 막하지 않아도 삼사십 분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영은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서영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출발한다면 시간을 맞춰 오디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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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유현진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신호가 없었다. 딥블루 클럽에는 수많은 연예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고객의 신상정보를 지키기 위해 클럽에서는 5층에 신호 차단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유현진은 전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현진은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 방에는 창문조차 없는 것을 발견했다. 왼쪽 상단에 있는 환풍구가 유일한 출로였다. 창문으로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제기랄!’‘내가 대체 서영에게 뭘 잘못했길래.’유현진을 가둔 후 서영은 오디션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녀를 본 송민영이 직접 물을 떠주며 물었다. “서영 언니, 어떻게 됐어?”“걱정 마요.”서영이 웃으며 송민영이 건네는 물을 받았았다. “오늘 이 오디션 현장에 절대 나타나지 못할 거예요.”차미주가 알아 온 신상정보에 착오가 있었다. 서영은 송민영을 영입하려고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영입에 실패했지만 그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송민영이 먼저 서영에게 자기 매니저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제일 핫한 연예인의 매니저가 될 수 있는데,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살의”의 오디션은 사실 송민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영향력과 팬을 고려해 제작사에서는 그녀가 영화의 흥행을 책임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는 주인공 역할에 두 명의 배우를 추천했다. 한 명은 송민영이었고, 다른 한 명은 유현진이었다. 서영은 처음부터 인지도가 없는 연예인을 견제 상대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전날 송민영이 찾아와 유현진과 송민준이 특별한 사이이고 그 때문에 자신이 오디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바람에 생각이 바뀌었다. 서영은 송민준과 유현진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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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강한서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연락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민경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휴대폰 신호가 잡히질 않습니다. 지금쯤 이미 딥블루 클럽에 도착하셔서 신호 차단 구역에 계신 것 같은데, 오디션 현장에는 사모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방금 클럽의 경리에게 연락해서 지금 CCTV를 확인하고 있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잠시 머뭇거리던 민경하가 말을 이었다. “사모님께서 아마 당하신 것 같아요.”강한서는 연예계에 대해 잘 몰랐지만 민경하는 아니었다. 유현진은 “법역”이라는 단편 법률 드라마로 하나로 일주일 사이에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은 정황하에서 팬이 수백만으로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 하나로 실검에도 여러 번 올랐으니, 이런 경쟁 상대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연예계에서 유현진처럼 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외모마저 갖춘 사람은 일단 뜨기만 하면 쉽게 탑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연기에 누구보다 진심인 유현진이 이 시간까지 오디션 현장에 나타나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현진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녀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강한서가 몸을 일으켜 아무런 말 없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렵게 강한서를 데려온 양 대표는 그가 가려고 하자 얼른 따라가 그의 앞을 막아서려고 했다. 민경하가 손을 들어 양 대표를 저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 대표님, 대표님께서 오늘 급한 일정이 있으셔서요. 다음 주 수요일 한성 그룹 창립 기념일이 있는데, 양 대표님께서도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대장은 제가 나중에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양 대표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한성 그룹 창립 기념일에 초대되는 손님은 극히 드물었다. 이제껏 초대된 손님들은 한성 그룹의 주요 협력업체거나 우호 관계의 브랜드였다. 양 대표는 한성 그룹과 협력한 지 불과 2년 정도였기에 한성 그룹 창립 기념일에 초대되는 일은 상상도 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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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강한서가 유현진을 곁에 두고 싶어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가두어 두려던 적은 없었다. 다만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지내온 유현진이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치 사슬에 묶인 어린 코끼리처럼. 충분히 사슬을 끊을 능력이 있음에도, 그럴 용기가 없어 가만히 있기만 했던 코끼리처럼 말이다. 지금의 유현진은 이제 그 사슬에서 벗어났다. 유현진이 스스로 돌아오지 않는 한, 절대 그의 손으로 다시 그녀를 묶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민경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오디션이 한창 진행 중인 방을 지나친지 얼마 되지 않는 곳에서 강한서가 발걸음을 멈췄다. 발밑 카펫의 촉감이 이상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밑은 어쩐지 축축해져 있었고 카펫의 다른 곳은 밝은 빨간색이었지만 강한서의 발이 닿은 곳은 어둡고 짙은 빨간색이었다. 그 물에 젖은 자국은 그의 발밑에서부터 몇 미터 떨어진 아주 좁은 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민경하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물이 샌 것 같네요. 아닌데, 이거 술 냄새 아니에요?”힐끗 쳐다본 강한서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문틈에서 많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웨이터 한 명이 달려 나오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과했다. “손님, 이쪽으로 걸으시죠. 창고에서 술이 새서 지금 바로 치우라고 하겠습니다.”술이 샜다기에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수준에 더 가까웠다. 술이 새어 나오는 문을 훑어보던 강한서가 갑자기 말했다. “문 열어요.”흠칫 놀란 웨이터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여긴 직원들 탈의실입니다. 직원 개인 물품도 많고, 사생활 보호...”“열어!”강한서가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강한서가 화를 내자 숨기고 있던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그에 웨이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포식자가 가진 위압감은 대단했다. 9시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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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문이 열리자 짙은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유현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술병을 들고 문틈으로 술을 붓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강한서는 가슴이 저렸다. 그는 얼른 유현진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민경하의 얼굴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렇게 좁고 꽉 막힌 방에 유일한 통풍구도 막혀있어 거의 밀폐된 공간과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전기도 끊겨있었다. 공기마저 탁했다. 누구든 이런 곳에 30분 이상 갇혀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강한서?”유현진은 그의 품에 안겨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한서는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입술을 꽉 깨물고 대답했다. “응.”유현진은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창가나 베란다로 데려다줘. 바람 좀 쐬고 싶어...”강한서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병원에 데려다줄게.”“베란다로 먼저 가 줘.”유현진이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좀 쉬면 괜찮아. 오디션 봐야 해. 그 사람들 뜻대로 되게 놔둘 수 없어.”긴장으로 굳은 강한서의 얼굴을 유현진이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데려다줘. 부탁해...”부탁...그렇게 해달라고 할 때는 죽어도 입을 열지 않더니, 제발 하지 말아줬으면 싶을 때면 꼭 이렇게 그 말을 내뱉었다. 강한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꼭 껴안고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확 트인 시야와 신선한 공기가 한 번에 밀려왔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가쁘던 숨이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강한서는 말 없이 옆에 앉아 유현진의 등을 토닥였다. 유현진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민경하가 따듯한 물 한 잔을 떠오더니 말했다. “사모님, 물 좀 마시세요.”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물 잔을 받은 유현진은 몇 모금 마시더니 다시 민경하에서 컵을 돌려주었다. “이제 오디션 보러 가야 해요.”몸을 일으킨 유현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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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누구...”“저는 오늘 오디션을 보기로 했던 유현진이라고 합니다.”유현진은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봄의 연인”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그때 한 배우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차이현이 그녀를 써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운이 따라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안창수 감독에 대해 아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문예 영화든 상업 영화든 가리지 않고 찍는 감독이었고 상을 받은 영화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감독들은 보통 오디션에 늦는 배우를 싫어했다. 유현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서영과 송민영이 나왔다. 서영이 유현진을 보자마자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인제 와서 무슨 소란이죠? 시간관념도 없이! 감독님께서는 이미 민영이를 윤여령 역으로 캐스팅하기로 하셨어요.”이때 안창수가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물었다. “이 배우는 누구지?”이미 유현진의 자료를 찾은 비서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 계약한 연예인입니다. 신인이라 아직 작품은 없고, 얼마 전 사극 촬영을 마쳤고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습니다. 단편 극에 출연하여 이름을 조금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비서가 말을 이었다. “송민영급의 배우도 감독님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해서 오디션 준비를 하는데, 시간관념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런 두 사람을 같은 급으로 취급하다니 조금 웃기네요.”그가 보기에 유현진은 송민영에게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 듯 했다. 인기, 이미지, 출연한 작품. 어느 방면에서 보아도 송민영이 유현진보다 나았다. 서영이 계속 밀치자 화가 난 유현진이 오히려 서영의 손을 잡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늦었는지는, 서영 씨가 제일 잘 아실 텐데요!”서영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시간관념이 없는걸, 왜 다른 사람 탓이죠?”서영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유현진은 서영의 손을 뿌리치고 안창수와 그의 스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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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유현진이 송민영의 말에 멈칫 걸음을 멈추고 송민영을 훑어보았다. “누구 연기력이 더 뛰어난지는 촬영장에서 밝혀지겠죠. 하지만 남자 문제는... 제가 가졌던 남자를 송민영 씨는 가져보지도 못했잖아요.”그러더니 유현진은 송민영의 배로 쓱 시선을 옮겼다. “아기는 아직인가 봐요?”송민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유현진은 그녀를 유유히 지나쳐 오디션을 보던 방으로 들어갔다. 안창수의 비서가 건넨 대사는 한 페이지가 전부였다. 학교 연습실 장면이었다. 이사라는 성수시 청년 무용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연습실에서는 한창 그 일에 관해 토론 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번 대회에 분명 문제가 있다며 윤여령을 대신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연습실 문밖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전부 다 듣고 있던 이사라가 연습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윤여령과 말다툼 끝에 대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라가 안무 실수를 했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유현진은 빠른 속도로 대사를 숙지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안창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시작해도 될까요?”고개를 끄덕이던 안창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송민영을 불렀다. “민영 씨, 와서 대사 좀 맞춰줘. 몇 마디 없어.”흔쾌히 대답한 송민영은 유현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안창수가 건네는 대본을 받았다. 학생들은 전부 윤여령의 안무 표현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이사라는 대회 중 티가 나는 실수가 있었음에도 대상을 받았다. 이사라의 아버지는 성수시의 부시장이었고 할아버지도 유명 인사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번 대상 선정에 분명 누군가 손을 써 심사위원들이 이사라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대상은 공명정대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윤여령을 위해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았다. 윤여령은 집안이 어려웠고 지방에서 올라온 특기생이었다. 등록금도 마을 사람들이 보태준 것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 무려 60만 원의 상금을 줬다. 90년대의 60만 원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 금액은 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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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못할 거 없잖아. 여령아, 진짜 ‘열반’이 어떤 건지 보여줘!”윤여령은 등 떠밀려 이사라 곁에 섰다. “열반”은 말 그대로 봉황을 연상시키는 무용이었다. 음악이 울려 퍼지자 두 사람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몸을 약간 구부리고 두 팔을 교차하여 가슴을 안았다. 이 안무는 잔뜩 움츠러든 채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갓 부화한 어린 새를 표현한 것이었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이사라는 점차 두 팔을 벌렸다. 그녀는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 같았다. 슉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날개가 끊어진 새처럼 추락했고 곧 온몸이 활활 타오르더니 다시 태어났다. 그야말로 불과 함께 다시 태어난 봉황이었다. “펑—”허리를 올리는 동작을 할 때, 힘 조절 실패로 등 전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현장의 모든 사람이 유현진의 실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유현진은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고는 빨개진 눈으로 옆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사라는 어떻게든 꼭 윤여령을 이기고 싶었다. 과도한 승부욕은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이어졌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라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고 그녀의 눈빛은 분노와 시기로 가득했다. 오디션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잠시 멍해진 안창수는 몇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컷—”유현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풀린 유현진은 이미지를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바닥에 풀썩 앉았다.방금까지 오랜 시간을 방에 갇혀 있었던 터라 이런 춤을 추는 장면을 연기하는 것은 꽤 힘들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연기에 충격을 받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송민영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현진의 연기는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몇 마디의 대사만으로 송민영도 유현진의 연기에 사로잡힐 뻔했다. 여주인공은 분명 송민영 자신이었다. 하지만 방금 유현진과 대사를 맞추었을 때, 송민영의 대사에서는 가난한 주인공 특유의 그런 끈기가 전혀 느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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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옆 방에선 강한서가 모니터를 통해 현장 라이브를 보고 있었다. 그는 입을 앙다물고 말이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유현진이 이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 그녀는 가끔 집에서도 춤을 추었다. 유현진에게는 지금껏 유지해 온 좋은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매일 시간이 날때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무용의 기본기를 연습한 것이었다. 가끔은 기분에 따라 춤을 추고는 했었는데 대체로는 웃기는 춤이었다. 예를 들어 외계인이 추는 춤, 개구리가 추는 춤, 자이언트 판다가 추는 춤 같은 것들이었다. 매번 이런 춤을 흉내 낼 때면 그녀는 꼭 강한서를 불러 원본 동영상을 틀어놓고 자신은 모니터를 보며 TV 를 보며 이상한 안무를 따라 했다. 강한서는 알고리즘에 뜨는 동영상을 보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 그런 것들을 보았을 때,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유현진은 TV속 인물의 동작을 거의 동시에 따라 하며 춤을 흉내 냈다. 그때 강한서는 처음으로 사람의 반응속도가 이토록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현진이 노란 옷을 입고 추는 외계인 춤은 아직도 그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그가 참석했던 비지니스 파티 현장에서 누군가 이 춤을 춘 적이 있었다. 그때 무용가 출신의 사모님이 이런 춤은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기본기가 좋아야하기에 몇 번 만에 따라 출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라고 했다. 때문에 유현진이 안창수에게 실력이 별로라고 한 것은 그야말로 겸손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겸손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음, 아니면 그녀는 겸손이 아니라 반전을 위해 고의로 그렇게 말한 걸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유현진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 바로 그런 식의 자랑을 하는 것이니까. 동기들 그룹 채팅에서처럼 말이다.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자랑하는 동기들이 유현진에게 그녀의 남편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었다. 유현진은 우리 남편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작은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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