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쌍둥이가 CEO 아빠 유괴하기?의 모든 챕터: 챕터 1271 - 챕터 1280

2771 챕터

제1271화

한지욱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천광은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잖아. 네가 감정에 꽤나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비록 난 너랑 그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윤 회장님은 자기 딸을 꽤 걱정하고 있는 듯해 보이더라.”“구천광.”한지욱이 덤덤하게 미소 지었다.“나랑 윤티파니 사이의 일이야. 넌 신경 쓰지 마.”“나도 신경 쓰고 싶은 마음 없어.”구천광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냥 경고 하나만 할게. 적당히 멈추는 게 좋을 거야. 더 가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한지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천광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같은 시각, soul 주얼리.“윤 회장님께서 구천광 씨를 찾아가 한지욱을 설득해달라고 했다고?”강성연이 김아린을 바라봤다. 김아린은 소파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저께 직접 집에까지 찾아와 우리 남편한테 한지욱 좀 말려달라고 부탁하더라니까. 자기 딸 좀 놓아달라고.”그렇게 말한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고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휴, 도대체 한지욱은 왜 저렇게까지 윤티파니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애초에 결혼식장에서 자기 약혼녀를 버리고 상간녀와 함께 도망간 것도 한지욱이잖아. 그 일로 난처해진 건 윤티파니 씨인데, 왜 아직도 티파니 씨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강성연은 시선을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윤티파니의 비서한테서 한지욱이 그녀한테 ‘복수’하는 이유를 들었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단지 ‘복수’때문일까?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내가 윤티파니 씨랑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김아린이 멈칫했다.“방법이랄 게 있어? 그냥 집으로 찾아가면 되잖아.”강성연이 한숨을 쉬었다.“내가 직접 찾아가면 만나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그녀가 의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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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2화

윤티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지욱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걱정 마요. 절대 당신을 죽일 일은 없을 테니까.”그녀의 턱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실렸다.“아까워서 어떻게 그래요. 당신을 괴롭힐 방법은 충분히 많은데.”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갔다. 이제는 숨 쉬는 것마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한지욱이 그녀를 뿌리친 후 빠르게 운전하여 집으로 향했다.V 아파트에 도착하자 그가 그녀를 강제로 잡아끌어 욕실로 향했다. 한지욱이 욕조에 찬물을 한가득 받더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를 욕조에 밀어 넣었다.“풍덩—”그녀의 옷이 찬물에 흠뻑 젖었다. 뼛속까지 시린 찬물이 그녀의 몸을 감싸자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몸이 떨려났다. 그녀가 욕조에 빠지면서 그에게도 물이 잔뜩 튕겼었다. 한지욱은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다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꼭 나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어야겠어요?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그가 그녀의 머리를 물속에 처넣었다. 윤티파니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다. 그가 다시 그녀의 머리를 들어 올리자 그녀가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그녀의 사정 같은 건 전혀 봐주지도 않고 계속하여 그녀의 머리를 물에 처박았다.이번에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녀가 하얗게 얼어붙은 얼굴로 작게 숨을 달싹이는 모습을 확인한 그가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계속 그럴 거예요?”윤티파니는 이미 온몸이 얼어붙어 이빨까지 덜덜 떨려났다. 물에 젖어 핏발까지 선 그녀의 눈에 짙은 증오가 담겼다.“왜요? 계속해요.”한지욱이 무력하게 그녀를 놓아주었다. 심장 근처가 욱신거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온몸이 젖었지만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점차 이상을 되찾아갔다.한지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을 나갔다.욕조에 앉아있던 윤티파니는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무릎을 껴안았다. 지독히도 차가운 물에 몸이 얼어붙기라도 한 건지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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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3화

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상했던 일이야.”김아린이 직원을 불렀다.“예상했던 대로 한지욱 집에 있었어. 그런데 뭔가 한지욱한테 감금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그녀는 블루마운틴을 한잔 주문했다. 직원이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네 이름을 대니까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커피를 마시려던 강성연이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뭐라던데?”“너를 만나고 싶지 않대.”강성연의 표정이 점점 이그러지는 걸 확인한 김아린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장난이야.”강성연이 팔짱을 끼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가 웃으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만나기 싫다고 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언제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았어.”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완곡하게 거절한 거네.”김아린이 눈썹을 찡긋거리며 웃었다.“왜? 너 그 여자랑 원한이라도 풀고 싶은 거야?”“원한 같은 거 없어. 다 지난 일인데 원한은 무슨.”강성연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스푼을 들고 커피를 휘적거렸다.“그냥 조금 안타까워서 그래.”김아린은 진작부터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너 말이야. 사실 그 여자의 처지를 동정하고 있지? 그때 그 일이 네 잘못은 아니잖아. 그 여자가 너를 해치려고 하지만 않았으면 그런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만약 윤티파니가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너를 괴롭혔다면 네가 이렇게까지 했겠어? 오늘날 네가 그녀를 동정할 일도 절대 없었을 거야.”“지금 넌 그때 그 여자한테 복수한 방법이 지나쳤다고 생각하잖아.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그때 그 여자가 끝장나지 않았으면 끝장날 건 너였어. 만약 그때 그 여자가 일을 계획하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약해졌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겠지.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거야. 어떤 사람은 아무런 원인도 없이 그냥 네가 싫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실컷 미워하다가 그 마음이 점점 풀릴 수도 있어.”마치 자신이 수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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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4화

송아영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았다. 갓난아이가 조그마한 손으로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잡은 그 순간, 그녀는 몸에서 전율이 이는 것 같았다.“금방 태어난 아이는 원래 이렇게 작아요?”“그럼. 내가 육예찬 저놈을 낳을 때도 이만했어.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얼마나 못생겼던지.”연희정의 말에 육예찬은 말문이 막혔다.송아영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육예찬은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를 안아보았다. 그런데 그가 아이를 품에 안자마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그가 순간 어쩔 줄 몰라 했다.“왜 갑자기 우는 거야.”강성연이 다가갔다.“내가 안아볼게.”그녀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익숙한 동작으로 아이를 달랬다. 큰 소리로 울던 아이가 일분 만에 울음을 뚝 그쳤다. 연희정이 웃으며 다가왔다.“고모가 안으니까 바로 얌전해 지네.”간호사가 아이를 다시 신생아 실로 데리고 갔다. 강성연과 김아린도 송아영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병원에서 나왔다.*늦은 밤, 한지욱은 한참 동안이나 침실 앞에 우두커니 서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방안에서는 그녀의 기침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윤티파니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가뜩이나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더 아파 보였다. 한지욱은 침대 옆으로 걸어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또 열이 났다.그는 서랍을 열고 지난번 그녀가 먹다 남은 해열제를 꺼냈다. 그리고 따듯한 물 한 컵을 갖고 와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를 자신한테 기대게 한 채 약을 먹였다.윤티파니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 맡에 있던 스탠드 불빛이 눈이 부셨던지 눈살을 찌푸렸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그녀는 눈앞의 형체를 확인하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에 한지욱의 형상이 점점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그녀가 힘겹게 손을 들더니 갑자기 물컵을 바닥에 던져버렸다.물컵은 이미 오래전 깨져 버린 그녀의 마음처럼 산산조각 났다. 갑작스러운 소음이 있은 뒤 방안은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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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5화

‘이번 생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될 일은 절대 없을 거고요!’윤티파니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커다란 비수가 그녀의 심장을 꿰뚫은 것 같았다.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리더니 구슬 같은 눈물이 눈에서 뚝뚝 떨어져내렸다.“내가…한지욱이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한테 기대게 했다. 그때 윤티파니가 그의 어깨를 힘껏 물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놀린 그가 반사적으로 그녀를 밀쳤다.윤티파니가 깨진 유리 컵 위로 넘어졌다.“윤티파니!”한지욱이 얼른 다가가 그녀를 일으켰다. 서둘러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그의 몸이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윤티파니의 한쪽 볼에 유리 파편이 잔뜩 박힌 것이다. 유리 파편이 진득한 피에 섞인 채 그녀의 볼에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한지욱은 그녀를 안아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병원. 한지욱은 비상계단 입구에 서서 연거푸 담배만 피웠다. 그의 손과 옷깃은 온통 그녀의 피로 범벅 되어있었다.윤티파니의 얼굴에 남은 상처를 떠올린 한지욱은 고통스러운 듯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내렸다.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병실로 돌아와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가 오른쪽 볼에 거즈를 붙이고 누워있는 윤니파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음장 같은 손을 잡은 채 머리를 숙였다.“미안해요. 미안해요…”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상처 입힐 의도가 전혀 없었다.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한지욱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이튿날, 아침.잠에서 깬 한지욱은 순간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는 이불만 덩그러니 남겨져있었고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티파니!”한지욱이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다 병실 밖으로 뛰쳐나와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여기 있던 환자는요?”간호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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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6화

한지욱은 급히 차를 몰고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과 멀지 않은 등대 밑에 사람이 서있는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곧장 차에서 내린 그가 미처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등대로 달려갔다. 휴대폰이 몇 번이나 울렸지만 전화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티파니!”한지욱은 등대 밑에 서있는 형체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안돼—”윤티파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성난 파도가 가차 없이 그녀를 집어삼켰다.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물이 모든 소리를 차단한 채 그녀의 몸을 감싸고 더 깊은 바닷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불쑥 튀어나온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한지욱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껴안고 위로 헤엄쳤다.해안에 올라온 그는 그녀의 가슴 위에 두 손을 겹친 채 심폐소생술을 한 후 인공호흡을 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지만 그는 조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티파니, 제발 부탁이야—”한지욱은 이미 팔이 마비될 것 같았지만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제발 깨어나줘!”그때 차량 몇 대가 한지욱이 세운 차 뒤에 멈춰 섰다. 구천광이 사람을 데리고 도착한 것이다. 보디가드가 등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쪽입니다!”그들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상황을 확인한 구천광이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한 대표님, 저희가 하겠습니다.”보디가드가 그를 대신하려 했지만 그가 뿌리치며 말했다.“꺼져!”보디가드가 난처한 표정으로 구천광을 바라보았다. 구천광은 손을 저으며 그들한테 물러서라는 뜻을 전했다. 잠시 후 윤티파니가 콜록거리며 물을 토해냈다. 한지욱이 그녀를 안았다. 그가 그녀의 볼에 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기뻐했다.“윤티파니!”윤티파니가 추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입술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가 추워하는 듯하자 보디가드가 외투를 벗어 한지욱한테 건넸다. 한지욱이 외투로 그녀의 몸을 감싼 후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다. 자신의 체온으로 조금이라도 그녀를 따듯하게 해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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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7화

윤진이 간호사 실로 찾아와 물었다.“왜 내 딸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죠?”간호사가 차트를 확인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끔 이런 환자분들이 계세요. 일단 저희는 심리적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감정 변화가 크거나,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던 환자분들이 구조된 후 자기방어를 위해 깨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환자분이 의식은 있는데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족분들이 곁에서 많이 다독여주시는 게 중요해요. 자주 말을 걸면서 환자분의 정신을 깨우는 겁니다. 그러면 깨는데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로 돌아갔다. 강현숙이 침대 옆에 앉아 딸을 보며 묵묵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윤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외투를 그녀의 몸에 걸쳐주었다.“잠깐 집에 가서 쉬어.”강현숙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이 가요.”윤진이 그녀를 설득했다.“우리 딸 아직 살아있어. 당신이 이렇게 몸을 혹사하면 나중에 티파니가 깨어나서 당신 모습을 보고 얼마나 속상하겠어?”강현숙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편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일주일 후.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에 도시가 젖어들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비 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흐렸다. 한지욱은 우산을 들고 유혜선의 묘비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그의 손에 들린 노란색 장미꽃이 비에 젖고 있었다. 맑은 빗방울이 노오란 꽃잎에 맺히더니 툭하고 떨어져내렸다.“혜선아.”한지욱이 마치 그녀와 마주 보고 대화라도 하는 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나를 원망하고 있지? 사실 죽어야 할 사람은 난데 말이야.”휘몰아치는 비바람만이 그의 질문에 답할 뿐이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마 네 말이 맞을 거야. 변한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말. 내가 우리 두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야. 다 내 탓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거야. 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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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8화

그가 서둘러 병실 밖으로 나가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들어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숙과 윤진도 병실에 도착했다.“티파니야!”강현숙은 침대에 앉아있는 딸을 확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곁에 있는 한지욱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내 딸, 드디어 깨어났구나.”“깨서 다행이야. 깼으니 됐어.”윤진도 큰 시름을 던 것처럼 한숨을 돌렸다. 돌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그제야 쑥 내려간 것 같았다.윤티파니의 표정이 어딘가 멍해 보였다. 그녀는 깨어나긴 했지만 지금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강현숙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흐트러진 딸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물었다.“티파니?”윤티파니가 퍼석퍼석해진 입술을 달싹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누구… 세요?”강현숙과 윤진이 그대로 얼어붙었다.두 사람이 동시에 한지욱을 바라보았다. 한지욱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으로 서있었다.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윤티파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끔씩 머리를 들고 윤진과 강현숙, 그리고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증오가 서려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한테서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모든 걸 잊어버린 것이다.강현숙이 빨개진 눈으로 의사의 팔에 매달렸다.“선생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제 딸이 우리 모두를 잊어버린 거죠?”의사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설명했다.“지금 상황으로 볼 때, 단기기억상실증인 것 같습니다. 머리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걸로 보아 심리적 원인으로 기억 장애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강현숙이 물었다.“그럼 언제 다시 기억할 수 있나요?”“단기기억상실증이라면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회복하는 시간이 결정됩니다.”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강현숙이 몸을 휘청거리자 윤진이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 속으로 자신을 자책하던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한지욱은 입술을 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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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9화

윤티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자의 사연이 궁금했다.한지욱이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녀와 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정략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그때 저는 단지 집안 강요 때문에 결혼을 하겠다고 했었어요. 그녀를 좋아하진 않았죠…”그가 윤티파니를 처음 본 건 한 씨 집안과 윤 씨 집안끼리 이루어진 식사 자리에서였다. 사실 그는 그전에 티몬 그룹의 윤티파니를 본 적도 있었고 소문으로도 익히 들었었다. 오만방자한 철부지 아가씨가 뭇사람들의 비난의 상대로 전락한 건 몇 년 전 그 파티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였다.당시 한성연이 친 사고로 한 씨 집안은 꽤 큰 타격을 받았었다. HS 그룹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미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여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그는 그 상황이 우습기만 했었다.어떤 의미에서 그날이 그가 윤티파니를 제대로 보게 된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교만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그는 예전 그 일이 있은 후 윤티파니가 3년 동안 사라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통 여자였다면 그런 일을 겪고 절대 그저 지독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 평생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달랐다.그녀는 그 악몽에서 벗어난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뼛속 깊은 곳까지 박힌 부잣집 아가씨의 오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예전보다 조금 더 유순해졌을 뿐이었다.그때 그는 신세를 망친 여자가 도도한척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와 결혼을 하더라도 절대 그녀를 자신의 와이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기껏해야 한 씨 집안에 시집온 여자 정도로 생각할 작정이었다.그날 밤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다. 두 사람 사이에도 크게 교류가 오가지 않았다. 유일한 교류는 그의 아버지가 그더러 윤티파니를 집에까지 바래다줘라고 한 것뿐이었다.차에 올라탄 그녀가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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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0화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녀가 자신한테 보여줬던 이해와 배려는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그는 생각이 복잡해졌다.그가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한테 연민을 느끼고 보상해 주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그의 연민을 필요치 않았다.혹시 그한테 마음이 없는 걸까?그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와 유혜선이 알콩달콩 하게 지낼 때,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방해한 적 없었다. 그녀의 열등감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열등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냉정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었다.그는 점점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가 그녀한테 조금만 잘해줘도 즐거워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 후로 그는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제부턴가는 잘 웃지도 않았다. 그가 먼저 그녀와 밥을 먹자고 해도 그녀는 각종 이유를 대며 회피하기 급급했다.그녀가 그를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녀의 순종에 습관이라도 되었던 걸까? 자신한테 고분고분하기만 하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자 그는 그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이제 유혜선이 돌아왔으니 두 사람의 약혼을 깨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분명했다.하지만 어쩐지 그는 이 혼담을 깨기 싫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 혼담을 깨기 싫어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그가 그녀를 좋아하기라도 하게 된 건가?그럴 리가 없었다.그가 그런 불결한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혜선은 완벽한 여자였다. 유혜선은 그에게 잊지 못할 옛 정인이었고 그가 열렬히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자신의 곁에 있는데. 윤티파니는 그녀와 전혀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윤티파니라니, 가당치도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와 유혜선의 낯 뜨거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놀란 그녀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날 그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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