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그룹으로 가는 길.“임 선생님, 경성 그룹을 진짜 지수 씨에게 전부 넘겨줄 생각입니까?”진운이 운전하면서 임지환에게 물었다.“진운 씨도 내가 틀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임지환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제가 어찌 감히 임 선생님의 결정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진운은 고개를 급히 저으며 부인했다. “전 단지 임 선생님이 넘겨준 이 귀중한 선물을 지수 씨의 성격상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돼서 그럽니다.”“지수가 이 회사를 망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망친다면 오히려 좋은 점도 있어요. 지수의 그 탐욕스러운 친척들이 더 이상 회사를 탐내지 못하게 되니까요. 경성 그룹이 망하더라도 내가 다른 회사를 직접 물색해서 지수에게 주면 아무런 문제도 없죠.”임지환은 기지개를 켜며 홀가분한 상태로 말했다.진운은 그 말을 듣자 말문이 턱 막혔다.수천억 원짜리 회사가 임지환의 눈에는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처럼 가벼운 존재여서 배지수에게 마음대로 줄 수 있다고 했다.심지어 연경 진씨 가문의 계승자인 진운 자신도 그런 배포와 시야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차가 경성 그룹에 도착하자 임지환은 진운과 오양산에게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홀로 계약서를 들고 올라갔다.하지만 뜻밖에도 배지수는 회사에 없었다.“근무 시간에 어디 간 거야?”임지환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바로 그때.“임지환, 여기서 두리번거리며 뭐 하는 거야?”정장 차림에 스타킹을 신은 한수경이 하이힐을 신고 복도를 걸어왔다.“지수를 찾으러 왔어요. 혹시 어디 갔는지 알아요?”임지환이 물었다.“그걸 왜 묻는 거야?”한수경은 임지환을 도둑처럼 경계하며 바라봤다.“중요한 계약이 있어서 직접 지수와 교류해야 해요.” 임지환이 해명했다.“쳇, 집에 거울도 없어? 거울이나 보고 좀 말해. 네가 뭐라고 감히 지수와 대면해? 넌 그냥 보잘것없는 경호원이야. 사업과 관련된 업무도 없고 고객도 없으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계약을 지수에게 보여주려 해?”한수경은 경멸의 눈길을 보내며 여
임지환이 휴대폰을 받자마자 전화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 대사,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한재석, 네놈이었구나.”임지환의 눈에 한 줄기 냉기가 번졌다.“네 덕분에 내가 폐인이 될 뻔했잖아. 그래서 이번에 널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지.”한재석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격앙되어 있었고 말투가 기괴망측했다.“할 말 있으면 바로 해.” 임지환이 차갑게 말했다.“배지수는 지금 내 손에 있어. 반 시간 안에 청산 별장으로 당장 와. 1분이라도 늦으면 네가 보게 될 건 시체뿐일 거야.”이후, 통화가 덜컥 끊겼다.임지환은 한수경이 묻기도 전에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정신을 차린 한수경은 복도 바닥에 임지환이 손으로 부숴버린 휴대폰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한수경이 분노에 차서 임지환이 사라진 쪽을 향해 소리쳤다. “임지환, 이 뻔뻔한 개자식아, 내 휴대폰 물어내!”...청산 별장.배지수의 가족은 전부 기절한 채로 밧줄로 결박되어 있었고 마치 도살될 양 떼 같았다.“물을 끼얹어 얼른 깨워!”한재석은 휠체어에 앉아 표정 변화도 없이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물통을 들고 그들 앞에 다가가 물통을 높이 들어 세차게 물을 뿌렸다.“흡...”순식간에 거실 전체에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사람 모두가 동시에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벌떡 깨어났다.“이제 완전히 정신이 들었겠지?”한재석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배지수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마치 지옥 끝에서 기어 나온 유령 같았다.한재석을 본 순간, 배지수의 가족은 모두 공포에 질려 할 말을 잃었다.특히 배준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가 부들부들 떨려 가까스로 입을 열어 애원했다.“한 도련님, 이건 도련님이 임지환 그 자식과의 갈등이지 우리 배씨 가문과는 상관없잖아요.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너희를 풀어달라고? 오늘 너희 가족을 여기 부른 이유는 같이 저승길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야. 가족은 죽을 때나 살 때나 항상 함
한재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목숨을 구걸하는 배준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이런 발바리 같은 녀석은 한재석이 가장 경멸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준영아... 남자로서의 존엄을 좀 지키면 안 되겠니?”광기에 사로잡혀 머리를 조아리는 아들을 보며 유옥진은 철이 들지 않은 못난 철부지가 한심해 깊은 한숨을 쉬었다.그러고는 이내 참지 못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빌어먹을 임지환, 재앙 덩어리 같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우리 집 문턱을 넘기지 못하게 했을 거야!”“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제는 임지환밖에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고.”배전무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번 납치 사건은 임지환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그 임지환이 올 수 있다면 배씨 가문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임지환이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워 오지 않는다면 배씨 가문은 오늘부로 일가가 전멸하게 된다.“아버지, 제정신이세요? 임지환 같은 쫄부에 기대느니 차라리 한 도련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게 훨씬 낫죠. 한 도련님이 기분이 좋아지면 어쩌면 우리를 살려줄지도 몰라요.”배준영은 말을 마치고 비굴하게 한재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 도련님, 우리 가족을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는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절대 서쪽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너 같은 인간쓰레기는 내 반려견이 될 자격도 부족해!”한재석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배준영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나는...”“한 도련님, 찾으라고 하신 사람들이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한쪽 팔을 잃은 노인이 빠르게 다가와 보고했다.한재석은 그 말을 듣고 즉시 기분이 좋아져 웃으며 말했다. “정 어르신, 빨리 그 사람들을 여기 데려오세요.”정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 나갔다.“이 여자는 남겨두고 나머지 셋은 지하실로 끌고 가!”한재석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호원들은 배전무과 유옥진 모자의 울부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거칠게 끌고 지하실로 내려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 속에서 정천곤은 천천히 술기운을 뿜어냈다.화락!”그 순간, 한재석은 날카로운 한기가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술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마치 절세의 보검이 칼집에서 나와 천하를 베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단 한 번 술기운만 뿜었는데 대리석 바닥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버렸다.“이게 바로 대사 강자의 힘인가?”“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정 어르신은 정말 신선과 같은 존재구나.”“방금 그 기운이 내 목을 베었다면 난 바로 목이 날아갔을 거야.”“기운을 뿜어 칼을 만들어내다니... 이 정 대부가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면 우리가 힘을 합쳐도 전멸할 수밖에 없을 거야.”방금전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하던 내공 무사들은 정천곤의 실력을 목격한 후 완전히 굴복해 버렸다.무사들은 하나같이 메추리처럼 움츠러들었고 정천곤을 바라보는 눈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하하, 정 어르신은 역시 우리 한씨 가문의 으뜸가는 대부입니다. 어르신만 계신다면 임지환 같은 놈이야... 열 명이 와도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겠죠.”정천곤의 기운을 뿜어 칼을 만드는 신기한 술법을 보고 한재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한재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마음이 든든했다.정천곤은 말없이 술을 마시며 때때로 문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한재석은 시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약속한 시간까지 3분밖에 안 남았는데 임지환 이 자식이 죽을까 봐 두려워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 여자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한재석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의자에 묶여 있는 배지수를 힐끗 보며 생각에 잠겼다.“재석 씨, 제발 절 살려주세요!”가련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배지수는 밀려오는 절망감을 피할 수 없었다.약속한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임지환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렇게 보면 임지환이 자기를 포기한 것이 틀림없었다.3년간의 부부관계도 생사의
“임지환, 드디어 왔구나!”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나자 한재석의 입가에 본능적으로 냉소가 번졌다.하지만 배지수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임지환이 나타나 자기와 가족의 목숨을 구해주길 바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임지환이 괜히 자기를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한재석, 모순이 있다고 해도 부인과 자식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하는 건... 너무 비열한 짓이야, 안 그래?”바로 그때, 진운도 임지환을 따라 들어왔다.한재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너도 같이 죽여버릴 테니까.”“진 도련님, 절 구하러 오셨나요?”배지수의 기다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둡고 절망에 휩싸인 눈빛 속에 다시 희망의 빛이 피어올랐다.진운은 연경 진씨 가문의 둘째 아들로, 신분과 지위로 따지면 한재석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사람이 직접 나서니 자기와 가족의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될 것 같았다.임지환이 주저 없이 온 것도 아마 진운이 뒤를 봐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한재석, 어서 사람들을 풀어줘라!”진운은 밧줄로 꽁꽁 묶여있는 배지수를 한번 훑어보고는 배지수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네 그 말은 오늘 네가 임지환을 돕겠다는 거냐?”한재석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쌀쌀한 미소를 지었다.“오늘 네 결정이 단지 네 개인 생각인지 진씨 가문을 대표하는 건지 말해봐.”“내 생각이 곧 진씨 가문을 대표한다.”진운이 차갑게 대답했다.“오호라?”한재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진운이 강제로 이번 일에 개입한다면 상황이 좀 복잡해질 것이다.“도련님, 가주께서 이미 명하셨습니다. 우리 길을 막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라고요. 연경 진씨 가문이라고 해도... 진무한이 내 앞에 있다고 해도 난 거침없이 죽여버릴 겁니다.”정천곤은 오만하게 웃으며 눈앞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불구가 된 아들
“저 녀석은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야. 정 어르신, 이따가 저 녀석을 죽일 때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하지 말고 꼭 죽도록 고문해 줘요.”한재석은 교양 있어 보이는 겉모습을 단숨에 벗어던지고 잔인하고 교활하게 웃었다.“도련님의 말은 당연히 들어야죠.”정천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맞장구를 치며 마치 임지환이 도마 위에 놓여 누구나 쉽게 손질할 수 있는 물고기인 것처럼 깔보며 킥킥댔다.“너 같은 형편없는 놈도 검신이라고? 그 말 자체가 모욕이야!”임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검신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구나.”“건방진 새끼가 헛소리를 치고 자빠졌네. 내가 네놈을 칼에 곱게 베어주마!”정천곤은 냉정하게 말하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정 어르신, 서두르지 마세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저 녀석은 어르신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어요.”한재석은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 중 누가 이 두 놈을 죽이면 우리 한씨 가문은 40억을 보상으로 주겠어.”“40억이라고? 저 진 도련님의 목숨이 이렇게 가치가 있네.”“바보야, 저 사람의 뒤에는 연경 진씨 가문이 있어. 저 사람을 죽여도 살아서 그 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데 두려울 게 뭐야? 해외로 도망가 몇 년 동안 숨어 있으면 되잖아. 진씨 가문의 세력이 그렇게까지 뻗어나가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아.”“우리는 원래 사람을 죽이러 온 거잖아. 누구를 죽여도 마찬가지야!”“...”천문학적인 보상이 나오자 모든 무사들이 웅성대며 현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다들 진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기습 공격을 들이댈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모두의 눈에 진운은 살아서 움직이는 돈나무와도 같았다.무사들은 전부 한재석의 보상이 진운을 겨냥한 것이라고 여겼고 아무도 임지환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침묵을 지키고 있는 임지환을 보며 한재석은 신나서 일부러 도발했다. “
비열해!진짜 너무 비열해!원래 오늘은 한재석이 임지환을 겨냥해 꾸민 함정이었고 이 함정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었다.임지환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곳에 들어오면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임지환이 예상외로 상식을 깨고 그들에게 먼저 기습을 가한 것이다.“난 사람을 구하러 왔지 무술 대회를 하러 온 게 아니야. 너희와 하나씩 천천히 교전한다면 그보다 더 멍청한 짓은 없겠지.”임지환은 뒷짐을 지고 무식한 바보를 보는 듯이 정천곤을 바라봤다.“흥, 네 총은 일반 무사에게나 통할 뿐이야. 내가 널 죽이는 건 닭 잡는 것처럼 쉬워.”정천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눈빛은 마치 예리한 칼처럼 살기가 번졌다.쾅!정천곤이 천천히 한 발짝만 내디뎠는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바닥이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렸다.탕!백 미터 밖에서 마치 죽음의 유령처럼 총알 한 발이 정천곤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하지만 총알이 발사되자마자 정천곤은 이미 예견한 듯이 살짝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단지 그 미세한 움직임으로 정천곤은 총알을 가볍게 피했다.탕!총알이 정천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 홀 안의 플라즈마 TV를 산산조각 냈다.“이 노인의 감지 능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할 줄이야. 총알까지 이렇게 쉽게 피할 줄 몰랐네.”백 미터 밖 고목 꼭대기에 숨어 있던 유란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유란은 이 세상에 총알보다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탕!하지만 정천곤은 마치 마당에서 산책하듯 유유히 구궁보법을 밟으며 다시 한번 총알을 피했다.정천곤의 총알을 피하는 움직임은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경지였다.“이... 이건 신령님이나 보일 수 있는 기적이야. 무술 대가도 이 정도는 할 수 없어.”“설마 정 어르신은 이미 대종사 경지에 이르렀나?”“대종사가 아니더라도 이 둘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거야. 아무리 봐도 오늘 우리는 그냥 들러리에 불과할 거야.”그 자리에 있는 무술가들은 전부
말을 마치자마자 정천곤은 모든 내공을 손바닥에 집중시켰다.콰직...정천곤은 오양산이 오랜 공을 들여 어렵게 제련한 장홍검을 이렇게 맨손으로 부러뜨렸다.“커흑!”장홍검이 부러지는 순간, 멀지 않은 산 위에 숨어있던 오양산은 가슴이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거대한 충격을 받아 와락 피를 토해냈다.오양산은 청산 별장을 바라보며 허약하고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랜만에 진짜 강적을 만났군, 임 진인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않았다면 내가 전투에 개입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거야.”그러고 나서 임지환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에서 이내 솟아올랐다.오양산은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고수 앞에서 임지환이 이번에도 무사히 곤경에서 벗어나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오늘 여기 오길 참 잘했어.” “정 대부가 20년 동안 자취를 감췄지만 실력이 20년 전보다 더욱 놀라운 수준으로 진화되었을 줄이야.”“진운과 임지환은 오늘 죽음을 피할 수 없겠군.”“딴 건 모르겠고 이렇게 꽃같이 예쁜 여자도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한 도련님, 이 여자를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세모꼴 눈에 키가 작고 뚱뚱한 무사가 군침을 삼키고 변태처럼 두 손을 문지르며 배지수를 바라봤다.“너희가 저 임지환을 죽이기만 하면 이 여자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아.”한재석은 호탕하게 웃으며 무사들과 약속했다.“다들 계속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무사들의 도의나 양심은 개나 줘 버려.”“간 큰 놈은 배불러 죽고 간 작은 놈은 굶어 죽는댔어. 현상금 40억을 위해서라면 난 목숨도 걸겠어!”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무사들은 일제히 소란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임지환과 진운은 바로 모든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갑시다!”임지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진운을 데리고 빠르게 홀을 떠났다.“뭐야? 설마 도망치려는 거야?”정천곤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몸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여 공중에 수많은 잔상을 남겼다.“우리도 따라가 보자, 어쩌면 운 좋게 큰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