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무슨 상황이야?] 남초윤이 메시지로 물었다. [그냥 네 불효자식이 바치는 효도금이라고 생각해.] [근데 이건 너 귀걸이 값으로 받은 거잖아?] [내 귀걸이는 잃어버린 적 없어. 그냥 편히 받아.] 남초윤은 놀라서 조유진에게 엄지를 올리며 말했다. [헐! 대박이야. 너 진짜 돈 세탁의 달인이구나!] 결과만 놓고 보면 남초윤이 육지율에게서 2억 원을 받은 셈이지만 과정에서 보면 육지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돈이었다. 조유진은 화장대 앞에 앉아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보석함에 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남초윤 때문에 당신 남편까지 속였어?” 그녀가 ‘여보’라고 부른 게 남초윤 때문이라는 생각에 배현수의 가슴속에 묘한 질투가 일었다. 조유진은 잠시 멍했다. 사실 속이려던 게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그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해졌다. 드래곤 파 사건 이후로 그녀는 배현수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가 예지은의 죽음에 대해 물어볼까 봐,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강한 최면을 받았었다. 특히 배현수와의 기억들에 관해. 조유진이 배현수를 계속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최면 중에도 끊임없이 그를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기 때문이다. 그 실험실에서 최면을 받던 날들을 어떻게 버텼는지 자신도 모르겠다. 최면사는 그녀와 배현수 사이의 행복했던 기억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고 나쁜 기억들을 깊이 각인시키려 했다. 최면이 끝날 때마다 조유진은 배현수가 아이보리 산에서 자신에게 청혼했던 장면을 하나씩 맞춰가며 기억하려 애썼다. 아마도 그 분홍빛 폭죽비가 그녀의 마음속 깊이 내려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기억들이 희미해져도 그 순간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사랑이 이렇게 강력할 줄이야. 심지어 최면을 받아도 그의 손가락 사이에 손을 끼워 넣으면서 함께 손을 맞잡았던 그 감각을 잊을 수 없었다.
다른 일에선 항상 조유진에게 순응하던 배현수는 유독 감정 문제에 있어서만은 조유진이 자신을 회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막 그녀의 옷을 벗기려던 찰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송지연. 아마도 조유진의 최면과 관련된 이야기일 터였다.배현수는 조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잠깐, 전화 하나 받고 올게. 금방 와서 같이 놀아줄게.” “???” 놀다니? 진주 속옷을 입은 그녀를 말인가? 조유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누가 그런 걸 하겠대?’배현수가 전화를 받으러 방을 나가자마자 조유진은 그 진주 속옷을 서랍 구석에 대충 처박아 넣었다.배현수는 송지연과 꽤 오랫동안 통화하며 조유진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조유진은 이미 잠이 들었다.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던 배현수의 눈빛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쳤다.송지연은 이렇게 말했다. 조유진은 깊은 최면을 받은 상태였고, 그녀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다시 짜 맞추는 과정이 없었다면, 조유진은 이미 레비아단의 손에 넘어가 배현수를 해칠 도구로 전락했을 거라고. 조유진이 레비아단에게 잡혀 있을 때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그 어두운 진실들을 마주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배현수에게 그 모든 걸 고백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유진이 완전히 기억을 되찾고 예지은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한편, 남초윤과 육지율은 어르신의 생신 잔치를 마치고 소정 별장으로 돌아왔다. 남초윤의 머릿속엔 내내 육성일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너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두 달의 시간 중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남초윤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문명희였다.남초윤은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문을 닫고, 물을 틀어둔 뒤 전화를 받았다.
남초윤은 욕실에서 꽤 오랫동안 망설였다. 샤워를 끝내고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입은 채 거울을 보니 코피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옷, 생각보다 너무 자극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입은 것보다 더 자극적인 느낌이랄까.남초윤은 황급히 흰색 가운을 잡아챈 후 몸에 감싸고 적어도 욕실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다. 세면대에 있는 향수도 꺼내어 손목과 귀 뒤에 뿌렸다. 향기는 신선하고 독특한 복숭아 향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러고도 육지율이 눈치 못 챈다면 아마 그 부위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그 시각, 육지율은 법무법인의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며 대규모 인수 사건 몇 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남초윤은 한쪽 다리를 침대에 살짝 올리고 앉아 ‘과장된 동작’으로 바디 로션을 바르고 있었다.남초윤은 그가 다가오자 약한 버드나무처럼 그의 품에 기대며 몸을 맡겼다. 육지율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며 말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러는 거예요?” “...” 남초윤은 입꼬리를 살짝 떨며 눈을 굴리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마치 유설영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말했다. “지율 씨, 등은 내가 혼자 못 바르니까 도와줄래요?” 육지율은 천천히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듯이 바라봤다.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 씨라고... 그렇게 부르면 안 돼요?” 유설영도 늘 그런 말투로 그를 불렀는데 왜 자신은 안 된다는 거지? 솔직히 방금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하긴 했다.육지율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부를 수는 있는데 익숙하진 않네요.” 사실, 남초윤 자신도 너무 어색해서 곧 토할 것만 같았다. 육지율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말투 좀 똑바로 해요. 여우처럼 굴지 말고.” 남초윤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유설영도 그렇게 여우처럼 굴면서 맨날 ‘지율아~’ 라고 하던데, 그땐 꽤 좋아 보이던데요?”
“...” 그는 결국 다시 물었다. “가운 위에 바를까?” “...” 남초윤은 가운 끈을 풀려다가 문득 가운 속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손이 멈췄다. 그녀가 가운을 벗지 않자 육지율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워요?” 남초윤은 침대 가장자리로 기어가더니, ‘탁’ 소리와 함께 천장에 있는 등을 껐다. 순간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육지율은 의아한 듯 말했다. “?” 남초윤은 목소리가 살짝 떨리며 말했다. “어차피 바디로션만 바를 거니까 대충, 대충 바르면 돼요. 꼭, 꼭 안 봐도 돼요.” 그녀는 등을 돌린 채 가운 끈을 풀고 가운을 내려 몸을 노출시켰다. 남초윤의 하얀 등이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녀는 몸매가 아주 좋았고 특히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잘 잡혀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 아래에는 살짝 풍만한 엉덩이가 이어졌다. 비록 방 안은 어두웠지만 커튼을 치지 않아 바깥의 희미한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육지율의 시력이 워낙 좋아서 남초윤이 입고 있는 레이스 끈까지 다 보였다. 특히 허리 아래로 검은색 레이스가 살짝 끼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육지율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말했다. “이 밤에 티백을 입었어요?” 남초윤은 마치 몸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녀는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드러난 피부가 공기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초윤은 물었다. “지, 지율 씨 이거 안 좋아해요? 아니면... 안, 안 어울리나?” 육지율은 손바닥에 바디로션을 덜어 그녀의 등에 발랐다. 바디로션은 차가웠고 그 순간 남초윤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그의 손은 천천히 그녀의 등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허리 부분에 닿았을 때 남초윤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가볍게 손을 움직여 그녀를 자신
“그래서 싫어요?”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더 짙어지며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닥. 불 켜고 보면 더 좋아할지도 모르죠.” 이 죽일 놈! “...” 남초윤은 부끄러워서 땅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육지율은 계속 물었다. “불 켤 거예요, 말 거예요?” “...”‘대체 뭐라고 대답하라는 거야!’육지율은 그녀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고 손을 침대 머리맡으로 뻗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다. 순간 방 안은 환하게 밝아졌다. 남초윤은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육지율은 그녀의 전신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눈을 가린 손목을 갑자기 잡아내리며 부드러운 베개 위에 눌렀다. 그리고 다시 그녀 위로 몸을 덮었다. 남초윤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육지율을 올려다보며 어찌 된 일인지,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혹은 복잡한 감정 탓인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요. 완전 초짜네.” 순간 질투심이 몰려오자 그녀는 이렇게 묻고 말았다. “나랑 유설영 씨 누가 더 예뻐요?” “침대에서 다른 여자를 언급하는 건 좀 별로지 않나?” 남초윤은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고집을 부렸다. “육지율 씨, 대답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인지, 육지율은 잠시 멈추었다. 그는 한 팔로 그녀 위에 몸을 지탱하며 다른 손으로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시선에는 드물게 따스함이 담겨 있었고 목소리는 더 낮고 부드러워졌다. “유설영이 그렇게 거슬려요?” “지금 내가 결혼한 사람은 남초윤이라는 사람이에요. 이혼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당신 남편일 거고요.”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들은 이혼할 것이다. 육지율의 미래는 그녀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세계는 본래 다르다. 지금의 교차점은 그저 운명이 그녀를 장난처럼 휘둘렀을 뿐이다.
요 며칠 동안 남초윤은 임신에 대한 불안에 빠져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를 여러 번 사용했지만 두 줄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산 임신 테스트기가 불량이거나, 아니면... 그녀와 육지율 둘 중 하나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자에게 문제가 생길 일은 거의 없지 않나? 게다가 그녀는 별다른 부인과 질환도 없었다. 설마 육지율의 그 부위에 문제가 있는 걸까? 남초윤은 잡지사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조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랑 배현수는 처음에 바로 아기가 생겼어?] 조유진은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질문이지? 그래도 조유진은 진지하고 과학적으로 답장을 보냈다. [...그런 셈이야. 아마 성적 이끌림 때문에 임신이 쉽게 됐을 수도 있어.] [그게 아니라 배 대표가 너무 대단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남초윤은 학구열이 넘쳤는지 계속 물었다. [너네 무슨 자세로 했길래 한 방에 성공한 거야?][사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야. 첫 번째는 일반적인 자세였고 두 번째는 후배위였어.]하지만 그날 밤 조유진은 처음이었다.두 번하고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배현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알겠어. 나도 후배위 한번 시도해 볼게.] [너 지율 씨랑 이제 아이 가질 계획이야?] [한 달째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안 됐어. 내가 유전자 거부 반응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조유진은 생각에 잠긴 후 한마디 던졌다. [설마 정자 약화 증후군?] [... 기절할 일이네.] 육지율은 공작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문제가 없으면 상관없지만 정말 문제가 있다면 남성 병원에 가서 체면을 구길 사람이 아니었다. 남초윤은 이따가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가서 자신부터 검사받아 보기로 결심했다. 만약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면 육지율을
배현수는 물을 한 잔 따라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말했다. “너 아직도 우리가 처음에 어떤 자세로 했는지 기억하고 있네. 보아하니, 기억이 꽤 잘 돌아온 것 같은데?” 조유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 언제부터 내 뒤에 있었던 거예요?” “네가 초윤 씨한테 우리가 처음에 어떤 자세로 했는지 대답할 때부터.” 배현수는 평온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조유진의 귀끝이 서서히 빨개졌다. 배현수는 몸을 살짝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두 팔로 그녀를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유진아, 네가 우리 처음을 이렇게 자주 되새기는 걸 보니 꽤 즐기는 것 같은데, 여기서 되새길 바엔 나한테 직접 오지 그래?” 조유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배현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반박하지 않았다. “좋아, 넌 그런 거 아니지. 그런데 송지연이 그러더라, 신체 접촉이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 번 시도해 볼래?” 버지니아주에서 돌아온 후, 둘은 키스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배현수는 많은 것을 참아내며 몇 번이나 한밤중에 찬물로 샤워를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얇은 유리막이 하나 있는 듯했고 조유진은 그걸 깨고 싶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시 그가 예지은에 대해 물어볼까 봐 배현수를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조유진은 말을 돌리며 대답했다. “우린 늘 신체 접촉을 하고 있잖아요.” 지금처럼, 그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신체 접촉이 아닌가? 그녀는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현수는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 “송지연이 말한 건 ‘제로 거리’ 접촉이야.” 조유진은 의심스러웠다. 송 박사가 그런 조언까지 해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송지연의 조언이든 아니든, 배현수가 뭘 원하는지는 충분히 알아챘다. 성숙한 남녀 사이에 이런 일들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배현수는 평소에 업
의사는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걱정된다면 남편분과 함께 오셔서 전반적인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사전 검진이 중요하거든요.” 남초윤이 다소 초조해 보이자 의사는 다시 한 번 위로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임신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군달 로펌 육지율은 막 중요한 의뢰인 두 명을 만나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회의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는데 배현수가 보낸 거였다. 화면을 확인한 그는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너 무력 정자증이라며?] [대체 누구한테 들은 거냐?][??] 물음표가 연속으로 올라왔는데 육지율은 당황했다. [진정해, 이거 큰 병도 아니고 잘 치료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어.] 이 말에 육지율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거칠게 소리쳤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그 인간을 끝까지 법정에 세울 거라고!” 전화기 너머로 그의 고함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배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휴대폰을 조금 멀리 둔 채 웃으며 물었다. “정말 네 명예를 훼손하는 말일까? 사실일지도 모르잖아?” “미친... 나는 강하면 강했지 무력할 리가 없다고! 내가 약해 보이냐?” 이 말은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민감한 주제였고 육지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현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겉으로는 알 수 없지. 내가 너랑 잔 것도 아니니 알 길이 없잖아.” “...야, 배현수! 그게 무슨 소리냐? 네 친구가 이런 모함에 시달리는데 너는 오히려 날 찔러대다니! 우리 절교야!” 이건 절교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배현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좋아, 절교하자. 그런데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못 알게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