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스위스로 사람을 보내 조유진을 잡아 배현수를 위협할까요?”재웅이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며 말했다.“스위스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중립국에서 그런 짓을 하면, 국제 적대자가 되려고?”“하지만 배현수가 해독제를 뺏어가고 스페인 기지를 파괴했습니다. 안 갚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재웅이 이를 갈며 섬뜩한 눈빛으로 말했다.“갚아야지, 당연히 갚아야지. 전에 극장이랑 공해에서 두 번 노력했는데, 모두 배현수 때문에 막혔지. 지금까지 경솔하게 일을 처리했으니까, 그 새끼가 조유진을 스위스로 보낸 거 아니야! 한국에서 또 손을 댈 수도 없고, 이 쓸모없는 것들!”재웅이 분노에 차 조수를 차버렸다.조수는 아픔을 억누르며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보스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어르신한테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그쪽은 네가 신경 쓸 거 없다. 어르신... 늙은 양반도 자리를 내놔야지.”조수가 말을 이었다.“강이찬은 주식을 보스에게 매도하기로 했습니다.”재웅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쓸모 있는 사람이네.”“방금 전해진 최신 소식에 따르면 719부대가 기지를 폭파하면서 그들도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철퇴할 때, 배현수도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재웅이 인색하게 담담히 칭찬을 내뱉었다.“죽지는 않을 거야. 그저 근육과 뼈 좀 다쳤을 뿐이겠지. 명이 길어.”“엄씨 가문에 심어둔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재웅은 손을 살짝 흔들며 살의를 드러냈다.“배현수가 어떻게 우리 스페인 기지를 알았다고 생각해?”“설마, 저희가 엄씨 가문에 심어둔 사람이 배신한 걸까요?”재웅의 말투가 무뚝뚝해졌다.“백소미 맞지?”“그 이름이 맞을 겁니다.”“흥, 그래도 똑똑하네. 근데 나는 똑똑한 걸로 착각하는 새끼들을 싫어해.”백소미는 지시대로 엄 어르신의 밥에 독을 타고, 배현수와 약혼도 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했다.하지만, 배현수가 시간차 공격으로 719부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향했다.잘 맞춰 협력했다
차량은 금세 성남의 고급 사립병원에 도착했다.VIP 병동에서 엄준이 병약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반달정도 혼수상태로 있은 그는 안색이 매우 창백해져 있었다.엄창민이 조유진과 선유를 데리고 도착했을 때, 엄준의 시선이 조유진에게로 향하며 반짝 빛났다.조유진도 뭔가를 느낀 듯이 입을 열었다.“어르신....”엄준은 힘겹게 손을 들어 그녀를 불렀다.조유진이 선유를 이끌고 그의 앞으로 와 몸을 숙였다. 엄준의 손을 잡으며 그녀가 말했다.“어르신,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거죠?”“환희야, 딸... 내 딸....”말을 마친 엄준이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흉곽의 기복이 심했다.엄창민은 얼른 침대를 위로 올리며 어르신을 부축해 그의 등을 두드렸다.엄준은 갑자기 한 덩이의 검붉은 피를 토해내 보는 사람마저 심장 떨리게 했다.선유가 놀라서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조유진이 벨을 눌렀다.병실 앞에서 의사를 부르고 있던 선유는 긴 다리에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우움...”선유는 이마를 쓰다듬으며 위로 올려다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아빠!”엄준을 걱정하고 있던 조유진은 선유의 목소리를 듣자, 몸이 굳어졌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익숙한 그림자를 보고는 넋이 나갔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섰다.배현수는 이미 선유의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그는 엄창민과 조유진에게 해명했다.“어르신은 방금 해독제를 먹었어. 지금 뱉은 건 독 기운이니 큰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체내에 여전히 여독이 남아있을 거니, 한동안 지나야 모두 배출이 될 거야.”엄창민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해독제는 어떻게 구한 거예요?”배현수의 시선이 계속하여 조유진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며 담담히 엄창민에게 답했다.“그건 알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입했어요.”엄창민이 앞으로 나서며 배현수의 멱살을 잡았다.“백소미와 약혼한 것도 해독제를 얻기 위함이었어요? 환희가 얼마나...”조유진이 나서서 말을 끊었다.“창
“물어봐.”조유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저를 스위스로 보낸 이유가 어르신의 해독제를 가져다드리기 위해서였어요? 제가 알기로는 현수 씨와 어르신 사이에 인연이 없는 걸로 아는데, 왜 이렇게까지...?”배현수의 손에 서류 파일이 들려있었다.그는 서류를 그녀에게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열어 봐.”조유진은 건네받고 파일을 열었다. 안에서는 친자 확인서가 나왔다.엄준과 그녀의 친자 확인서였다.결과란을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는 정처 없이 떨렸다.의학을 배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친자 확률이 99.99% 이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엄 어르신이 그녀의 친부...?조유진은 갑자기 몰아치는 거대한 정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친자 확인서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의문이 차올랐다.엄준이 조유진의 친부가 맞는다면, 안정희는 왜 지금까지 그녀의 출신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모든 의문이 머릿속에 펼쳐졌다.그녀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던 배현수는 앞으로 나서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참았다.“엄준 어르신의 친딸은 등 뒤에 연청색 반점이 있는데, 당신한테도 있어. 어르신의 아래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페 기종도 심했어. 당신과 모두 일치하는 상황이지. 게다가 이 친자 확인서까지 있으니, 유진아 네 신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조범의 딸이 아니라, 엄준의 딸?조유진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다 친자 확인서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마치 운명이 그녀에게 장난을 친 기분이었다.왜 이제야 신분을 알게 된 것일까?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또 제가 모르는 사실이 있나요?”그녀의 웃음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모든 것이 오해였으나, 유산한 사실은 되돌릴 수 없었다. 배현수가 매번 진실을 감추며 그녀를 밀어낸 것 또한 사실이었다.조유진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며 뭐가 진실인지 구분이 잘 안되기 시작했다.그녀의 질문에 배현수가 멈칫했다.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 해도, 배현수는 이미 그녀에게 너무도
“유진아...”조유진은 손에 쥐어진 친자확인서를 움켜쥐었다. 얇은 종이였지만 너무 묵직하게 느껴졌다.눈은 시뻘겠지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선물 고마워요. 해독제도 감사하고요. 사실 깜짝 놀라게 해줄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그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아이가 없어졌는데 이제 알려줘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괴로워할 사람이 한 명 더 느는 것뿐이다. 배현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송하진이었다.대충 짐작한 듯 전화를 끊고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드래곤 파가 SY 빌딩의 일부 인프라 시설을 폭파하려고 해. 당장 대제주시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룹 일이 중요하죠. 그리고 최근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우리 두 사람의 관계도 확실히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가 억지를 부렸어요. 공해에서 돌아온 후 줄곧 현수 씨에게만 매달렸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유진아, 나에게 매달리는 것을 한 번도 귀찮다고 생각한 적 없어.”조유진은 입술을 달싹였다.“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에게만 나를 맡기는 게 너무 무서워요. 현수 씨를 믿지 않지만 또 너무 많이 믿어서... 너무 믿어서 항상 현수 씨의 말을 듣고 선유를 데리고 스위스로 갔어요. 그런데 현수 씨는... 그 믿음을 이용해서 나를 완전히 속였어요. 나를 위해서 한 번 또 한 번 나를 밀어냈죠...”배현수 앞에 서 있는 조유진은 그렇게 차가울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였다.배현수는 심장이 아팠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내가 잘못했어...”“그래도 고마워요. 해독제와 친자확인서를 줘서... 해독제를 얻기 위해 SY 빌딩의 인프라가 폭파되었어요. 이제 엄 어르신이 깨어나셨으니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할 거예요.”“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의사 팀이 그들 옆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조유진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대제주시로 돌아가 볼일
조유진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잘 지내요.”배현수는 긴 복도에 서서 한발 한발 멀어져가는 가녀리고 차가운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다.줄곧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했다.스위스에 가라고 강요한 것도 그녀에게 모든 것을 숨긴 것도...하지만 조유진의 말을 통해 알았다. 그녀를 위한다는 명분이 사실은 그녀를 많이 무너뜨리게 했음을...전화가 또 울렸다.외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무표정한 얼굴로 받았다.송하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유진 쪽은 다 해결했나요? 끝나면 빨리 기지로 돌아와요! 죽고 싶어요?”“그만 짖어요. 금방 갈 테니.”“빨리요! 당장!”...조유진은 마음을 추스르고 병실로 들어갔다.지금 이 순간 엄 어르신을 다시 만난 것은 평소의 감정과 매우 달랐다.병실 입구에 서서 침대 끝에 기대앉은 엄준을 바라봤다. 그는 한창 선유와 게임을 하며 장난치고 있었다. 순간 자리에 얼어붙었다.일찍 여러 번 욕심 날 정도로 바란 적이 있다. 엄준이 친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그런데 실제로 이루어지다니...엄준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SY 산하의 환우 부동산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그녀의 첫 번째 큰 고객이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졌다.나중에 엄준이 그녀를 구해줬다. 그녀에게는 더없는 큰 은혜였다.조유진은 마음속에서 이미 그를 친아버지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엄준과 선유가 그녀를 바라봤다. “엄마, 아빠는?”조유진이 대답했다.“아빠는 일해야 해서 대제주시로 돌아갔어. 당분간은 우리 성남에 머물며 할아버지와 곁에 있자.”‘할아버지’라는 호칭에 엄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그녀의 손에 봉투가 들려 있는 것을 본 엄준은 입술을 벌렸지만 감격하여 말을 하지 못했다.눈에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환희야, 너... 설마 배현수가 다 알려줬어?”서프라이즈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조유진은 이 모든 것이 꿈처럼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앞으로 걸어가서 엄준의 병상 옆에 섰다. 침을
719 의료 기지 내.배현수의 상체에는 각종 신체 기능을 점검하는 정밀 기기의 침이 빼곡히 붙어 있다.송하진은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를 보며 열심히 분석했다.한참 후, 송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해독제를 그래도 제때 구해서 전체 약재 성분과 비율을 찾는데 시간을 벌었어요. 이틀만 더 버텨봐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검사를 마친 배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팔을 쭉 뻗어 셔츠를 걸쳐 입었다.단추를 다 채운 후, 병상 옆에 앉아 있다가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백소미에게 준 그 해독제는 성분을 검사해 보았어요?”스페인에서 총 두 개의 해독제를 가지고 왔다.그중 한 알은 약속대로 백소미에게 주었다.다른 한 알은 엄 어르신께 드렸다.송하진은 어리둥절해 했다.“엄준에게 준 그 해독제만 분석해 봤어요. 그때 시간이 그렇게 촉박한데 해독제 두 개나 분석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엄준에게 준 해독제는 성분에 문제가 없었어요. 왜요, 다른 한 알이 가짜일까 봐 그래요?”배현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가짜라면 상관없는데 혹시라도 독약일까 봐 그래요.”“이씨! 만약 정말 그렇다면 드래곤 파 그 무리들은 정말 악랄하네요. 그중 한 알이 정말 독약이었다면 배현수 씨거나 엄준, 두 사람 중 한 명이 먹었겠네요...”송하진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백소미는 해독제를 받은 뒤 성남 엄씨 사택에서 자취를 감췄다.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그녀가 손에 넣은 약이 독약이라면... 지금 약을 먹은 사람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스페인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천 평이 넘는 부지의 기지 위를 맴돌고 있다.기내에 있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참혹한 현장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조수 전갈이 분개하며 말했다.“보스, 그 사람들은 우리의 인프라 시설들을 많이 파괴했어요. 이곳에는 값비싼 장비와 희귀 장비들이 아주 많아요. 배현수의 인프라 시설보다 훨씬 더!”재력과 물질적 손실을 놓고 보면 드래곤 파가 더 큰 손해를 입었다.재웅은 코웃
혁진은 마지막 숨을 겨우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미야, 그 사람들에게 속았어. 이것은 해독제가 아니라 독약이야.”“뭐라고?백소미는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굴빛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혁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더 이상 나 상관하지 마. 너도 이미 드래곤 파에서 빠져나왔잖아. 항상 평범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잖아. 내가 죽으면 복수하지 마, 너 혼자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어... 바보같이 죽으러 가지 마. 한국의 아무 작은 도시나 찾아서 숨고 살아. 약속해줘, 이름과 신분을 다 바꾸겠다고... 다시는 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겠다고...”그를 꼭 껴안은 백소미의 두 눈은 이미 새빨개졌다. “혁진아, 조금만 더 버텨. 이 약은 배현수가 내게 준 거야. 해독제를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 모르니까 가서 한 번 물어볼게. 기다려! 만약 안 주면 조유진을 죽여버릴 거야! 기다려, 혁진아...”자리에서 막 일어나 전화를 걸려고 할 때 혁진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소미야, 헛수고하지 마... 이것은 드래곤 파에서 비밀리에 만든 독약이야. 만약 내가 전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지 몰라도 독약을 연속 두 번 복용했으니 지금 해독제를 가지고 와도 소용없어...”백소미는 억척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혁진을 꽉 껴안고 말했다.“약속했잖아... 해독제를 먹고 건강해지면 드래곤 파가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은둔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며 백년해로하자고... 혁진아, 가지 마.”혁진은 그녀의 품에 기대어 담담한 웃음을 보였다.“소미야, 미안해, 약속 못 지킬 것 같아.”백소미는 울먹이며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눈물이 혁진의 얼굴에 떨어졌다.그녀는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혁진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또박또박 말했다. “소미야, 복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혼자 드래곤 파와 대결을 벌이게 되면 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죽음이다.백소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
엄창민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낸 말은 거두어들일 수 없다.엄준은 굳은 얼굴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환희야, 대체 무슨 일이야? 배현수가 너를 괴롭힌 거야? 만약 그런 거라면 아빠가 퇴원하고 나서...”조유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사람과 상관없어요.”“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유산할 수 있어? 배현수, 그놈도 그래. 아무런 명분도 없이 임신까지 시키고, 이 개자식!”엄준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조유진은 엄준의 유일한 친딸이다.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같은 개자식하고 혼전 임신을 두 번이나 했다. 그리고 유산까지 두 번째이다.부모로서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조유진은 손을 꼭 움켜쥐며 말했다.“아빠, 이번엔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예요. 현수 씨도 아빠에게 해독제를 갖다 드리기 위해서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거고요.”“그게 두 번이나 혼전임신을 시킨 이유가 될 수 없어!”조유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준은 조유진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 이상 혼내지 못했다.“창민아, 네가 운전해서 환희를 데려다줘. 일단 푹 쉬고 나서 구 한의사를 집으로 오라고 해서 환희의 맥을 짚어달라고 해. 한약을 먹을 필요가 있는지도 물어봐.”조유진은 이런 그의 사람과 관심에 어리둥절했다. 조범은 그녀에게 이렇게 잘해준 적이 없다...엄준의 배려심 있고 마음 아픈 자애로운 눈빛과 마주친 조유진은 상냥하게 한마디 했다.“아빠, 나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바보야, 이렇게 큰일을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네가 유산한 것을 알았다면 여기에 남아 밤낮없이 나를 지키게 못 했을 거야. 빨리 돌아가서 푹 쉬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다 낫고 병원에 와도 늦지 않아.”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그럼 아빠도 푹 쉬세요. 내일 다시 올게요.”엄준은 손사래를 쳤다.“내일도 오지 마! 창민아,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