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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1-22 19:00:00
“난 안 믿어! 그리고 형이 현수 오빠한테 약혼할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현수 오빠가 오늘 밤 서주에서 조유진을 보살피고 있으면 약혼할 여자는 괜찮대?”

“현수는 송인아한테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할 뿐이야. 너 현수 어떤 앤지 몰라? 걔가 뭐 하기 전에 다른 사람한테 먼저 설명할 애니?”

강이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오빠, 나 졸려서 먼저 끊을게.”

“일찍 자. 내가 내일 대 제주시에 돌아가면 현수랑 애들 불러서 네 환영식 해줄게.”

“좋아!”

...

전화를 끊은 후 강이진은 불을 껐지만 잠이 안 와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강이진은 배현수가 약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송인아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싫어도 조유진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조유진 그 여자는 너무 나쁜 사람이다.

다른 누구든지 배현수와 결혼해도 되지만 조유진만은 안 된다.

조유진은 현수 오빠를 교도소에 보낸 사람이기도 하고 하마터면 그를 죽게 만들 뻔했다. 조유진이 바로 모든 일의 화근이다!

강이진은 송인아의 연락처를 찾고 전화를 걸었다.

“송인아 씨 맞나요? 저는 강이찬의 동생 강이진이예요.”

“이진 씨군요. 무슨 일 있나요?”

“송인아 씨가 뒤늦게 알고 기분 나빠할까 봐 알려주는 건데 현수 오빠 지금 서주에 있어요. 지금 호텔에서 조유진을 돌보고 있는데, 혹시 조유진이 누군지 알아요?”

또 조유진 그 여자다!

송인아는 이를 악물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진 씨 알려줘서 고마워요. 호텔 주소를 보내줄 수 있어요?”

강이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예상대로 되고 있다.

...

서주시에서 하루 내내 큰 비가 내렸다.

도시 전체가 빗물에 씻겨 깨끗해지고 맑아졌다. 햇빛 한줄기가 로열 스위트룸에 새어 들어와 침대를 비추었다.

조유진이 몸을 뒤척이자 온몸의 뼈가 부러진 듯 아팠다.

그녀는 손을 들어 눈 부신 빛을 가리고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깼어?”

송인아는 침대 머리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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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화

    배현수는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나 배현수가 썼던 물건은 낡아빠졌더라도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거 용납 못 해.”“쯧, 배 대표도 마음이 진짜 넓네! 조유진이 그렇게 배신했는데도...”배현수의 눈가에 살기가 가득했지만 내뱉은 말은 예의 있는 척 포장했다.“조유진이 유씨 집안의 사람이 되면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겠어?”“하하하... 배 대표가 그렇게 말했으니 나도 돌려 말하지 않을게. 얼마 전에 SY그룹에서 대 제주시 남부의 황무지를 사서 고급 주택을 지으려고 한다고 들었어. 대 제주시 남부는 지금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어 만약 잘 개척하면 돈이 될 것 같은데, 우리 유씨 가문에서는 서주시를 꽉 잡고 있지만 그래도 서주시는 대 제주시에서 작은 구역밖에 차지하지 않잖아. 우리 유씨 가문도 대 제주시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싶거든. 그래서 말인데, 배 대표 혹시 남부 쪽 땅을 착한 가격에 나한테 팔 생각 없어?”사실 유승태는 그 땅을 그냥 줄 수는 없냐고 묻고 싶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SY 그룹에서 대 제주시 남쪽 땅을 경매에서 6천억 원에 산 것인데 조유진 그여자는... 절대 6천억 원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베현수가 바보도 아니고!“그럼 반값에, 유 대표 혹시...”배현수는 말을 채 다 하지 못했다.유승태는 큰 거래를 성사한 것처럼 즉시 동의했다.“그럼 그렇게 하지! 좋아!”3천억 원에 남부 땅을 차지하게 되면 업계의 모든 경쟁자들이 부러워할 것이다!무려 3천억 원이다.조유진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녀는 남이 가지고 놀다 버린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승태는 그런 여자를 다시 찾기란 아주 쉬울 것이다!배현수 이 사람... 돈이 너무 많다고 막 나오는 거 아니야!...조유진은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그 한정판 검은색 마이바흐를 봤다.서정호는 차 밖에 서서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 주었다.“조유진 씨, 타시죠.”조유진은 영문도 모른 채 차에 올라탔다.차 안의 담배 냄새는 채 빠지지 않아서 그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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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7화

    그런데 배현수의 말은 무슨 뜻일까?배현수의 곁에 있기에는 조유진은 그의 약혼녀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그러면 혹시...조유진은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했다.“혹시 대표님은 제가 대표님의 연인이 되길 원하시나요?”“아니면? 6년 전처럼 여자친구가 되려고? 조유진, 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조유진은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침을 삼키고 물었다.“제가 유승태의 약혼녀도 하기 싫고, 대표님 연인도 하기 싫다면요?”배현수는 시선을 돌렸다. 그 깊은 눈동자에는 미소가 살짝 깃들어 있었지만, 그는 마치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내듯이 말했다.“그럼 돈을 내놔. 3천억. 조유진, 너 갚을 수 있겠어?”“...”조유진은 유승태가 그녀를 놓아주길 원했으니 배현수가 무조건 거액을 썼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큰돈일 줄은 몰랐다.조유진은 스스로를 비웃듯이 말했다.“제가 그렇게 비싼 사람이군요.”3천억 원이면 그녀는 절대 갚을 수가 없다.“내가 3천억을 써서 너를 유승태한테서 구해줬다고 생각하지 마. 너를 내 곁에 두는 이유는 조범을 상대하기 위해서야. 조범은 수년간 서주시 시장 자리에 있었으니 넌 조범이 만났던 사람들, 손잡았던 파트너들을 많이 알고 있지?”배현수가 교도소에 들어갈 때 조범은 조유진을 총받이로 사용했다.조범은 배후에서 선동하던 장본인이었고, 조유진은 배현수의 심장을 겨누는 총구였다.아무도 도망칠 수 없다.“조범이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사람일지라도 저의 아버지인데, 배 대표님은 왜 제가 대표님을 도와서 저의 아버지를 상대할 거라 생각하신 거죠?”배현수는 마치 장난 같은 말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너는 지금 내가 돈 주고 산 사람이야. 너한테 선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제가 만약 배 대표님을 도와 조범을 망쳐 놓으면 6년 전의 원한을 털어버릴 수 있겠어요?”조유진은 오직 빨리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버리고 어머니와 선유를 데리고 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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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판다”는 단어는 듣기 거북했다.조유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차 안의 분위기는 확 싸늘해졌다.강이찬의 분위기를 풀려고 애를 썼다.“그럼 다음에 보자! 네가 시간 될 때.”하지만 그가 아무리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해도 조유진과 배현수 사이에는 마치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일정한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조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발신인은 남초윤이었다.전화를 받자 남초윤이 말했다.“선유 괜찮아졌어. 우린 이미 대제주시로 돌아왔어. 넌 왔어? 유승태가 너한테 무슨 짓 한 건 아니지?”어제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조유진은 한두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돌아가서 얘기할게.”이때 전화기를 통해서 선유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빨리 와서 나랑 놀아요!”선유의 말에 조유진은 깜짝 놀라 옆에 있는 배현수가 들을까 봐 두려워 재빨리 손으로 휴대전화의 스피커를 가렸다. 다행히 이 휴대전화는 사용한 지 오래되어서 많이 낡은 상태라 스피커를 켜지 않으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배현수는 아마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조유진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나도 보고 싶어.”전화를 끊은 후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쳐다보며 마음이 놓여 미소를 지었다.다행히 그녀에게는 아직 선유가 있다.조유진은 머리를 들자마자 배현수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었다.배현수의 눈빛은 아주 날카로웠다.조유진은 마음에 찔려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배현수는 오만하게 시선을 돌리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잊지 마. 넌 지금 내 사람이야. 정당하지 않은 관계는 빨리 끊어버려.”정당하지 않은 관계?조유진은 몇 초간 멈칫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배현수는 조금 전 그녀와 통화를 한 사람이 신준우라고 생각한 것이다.조유진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배 대표님과 저도 정당한 관계 같지는 않은데, 그럼 끊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배현수는 입술을 앙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조유진은 드디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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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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