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더니 주민국과 조하영은 정우희와 한참이나 더 얘기를 나누었다.정우희가 가고 주민국은 엄숙한 얼굴로 주태오를 불렀다.“태오야. 우희 아가씨한테 잘해야 해. 마음이 없는 거면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아. 괜히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말고.”주민국은 주태오가 정우희의 도움을 그렇게나 많이 받았는데 잘 대해주지 않으면 너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주민국은 아무것도 모른다. 주태오가 굳이 정우희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정우희는 주태오와 관계 유지를 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말이다.그리고 주태오는 지금 정우희에게 다른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일편단심으로 이소이를 찾고 싶었다.주태오가 설명했다.“아빠, 저는 우희 씨한테 다른 생각 없어요. 그냥 소이만 찾고 싶어요.”주태오가 솔직하게 말하자 주민국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구를 좋아하든 아빠는 너를 응원할 거야. 근데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건 안 된다. 알겠지?”“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우희 씨한테 잘 설명할게요.”주태오가 말했다.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또 있다. 정우희는 주태오가 누굴 좋아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정우희는 주태오처럼 대단한 사람이 애인을 여럿 두는 것쯤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그냥 그녀도 좋아해 주면 되지 명분은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만약 정우희의 이런 마인드를 주민국이 알게 된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문해시 약왕의 손녀가 주태오의 세컨드가 되겠다니, 장난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이 얘기를 끝내고 조하영은 고민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아들아, 미안하다. 아빠, 엄마가 신중하지 못한 탓에 진철에게 사기를 당할 뻔했네. 근데 저 설비들은 어떡하지?”“설비 건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주태오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하지만 강씨 가문과 장비 업체가 한통속이라 어떤 장비도 우리한테 안 팔려고 하잖아. 그게 아니면 우리도 진철을 찾아가진 않았을 거야.”주민국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씨 가문은 그들이 크게 성장할까 봐
하지만 이경모가 전화를 끊자마자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많은 사람이 싸우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어떻게 된 거야? 왜 싸워?”이경모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호통쳤다.이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전체 층이 흔들렸다.문이 벌컥 열리자 벽은 아예 구멍이 크게 뚫렸다. 박아놓은 타일은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졌고 철근과 벽돌이 드러났다.이경모가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니 복도에 어느새 보디가드 몇 명이 널브러져 있었고 생사를 알 수 없었다.휙 하는 소리와 함께 맞아서 군데군데 멍이 든 보디가드가 날아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이내 피를 토해냈다.갑자기 일어난 광경에 차를 우리던 한복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도망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어떻게 된 거야?”이경모가 소리를 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벽에 뚫린 구멍을 바라봤다.“대, 대표님, 누군가 쳐들어왔습니다. 저희가 막아내기엔 역부족입니다.”그중 한 보디가드가 피를 토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아예 기절해 버렸다.이 말을 들은 이경모가 펄쩍 뛰었다. 퍼런 대낮에 감히 이성 그룹을 쳐들어오다니, 간땡이가 부은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경모가 큰 소리로 말했다.“누구야!”“누가 감히 우리 이성 그룹을 건드려!”“장영식은 어딨어?”이경모가 말하는 장영식은 태진국의 보디가드 원탑이었고 지급 후기의 고수였다. 유도, 합기도 등 최상급 무술에 능했고 평소에는 그룹의 수천 명의 보디가드를 거느리고 이경모의 신변을 지켰다.최근 몇 년간 이경모를 도와 몇 차례의 암살과 공격을 막아내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장영식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다. 하여 이경모는 지금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혹시 이 사람 말하는 건가?”자욱이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조롱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펑!거대한 무언가가 죽은 강아지처럼 던져졌다. 그러더니 핏자국을 남기며 바닥에서 한참을 미끄러졌고 결국 이경모의 발아래 멈췄다.“뭐, 뭐야!”이경모는 너
하지만 이경모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우리 이성그룹은 청룡그룹의 보호를 받고 투자하는 거야. 감히 나를 건드려? 청룡그룹의 보복이 두렵지 않아?”이건 이경모의 마지막 동아줄이였다.청룡그룹의 보호를 받는데 의지했다.하지만 주태오는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은담아, 문해시 이성그룹에 대한 일체 투자를 취소해.”그러고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이경모는 멈칫하더니 멍해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확인해 보니 청룡그룹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순간 이경모의 안색이 변했다.“이경모 씨, 우리 청룡그룹은 지금부터 이성그룹에 대한 모든 서포트와 투자를 취소합니다. 그리고 위약금 4,000억도 준비해 주세요. 3일 이내에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부도 준비하세요.”뚜뚜뚜.전화가 끊겼다.이경오는 그대로 넋을 잃었다. 핸드폰은 툭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주태오의 전화 한 통에 청룡그룹이 투자를 취소했다니, 맙소사, 너무나도 무서운 배경과 수단이었다.이경모는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고 반항할 마음이 말끔하게 사라졌다.참으로 우스웠다. 이런 존재는 이경모 따위가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이렇게 무서운 광경에 이경모는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자리에 꿇어앉아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태오 형님, 제발 살려주세요. 팔겠습니다. 있는 거 전부 팔겠습니다. 원하는 게 뭐든 다 제공하겠습니다. 그것도 다 공짜로요.”지금 이경모는 속으로 강여훈을 수백 번이고 원망했다.강여훈의 말만 듣지 않았어도 이런 거물을 건드릴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흥, 하루 줄게. 모든 설비 준비하고 구용 단지로 실어와.”“그리고 오늘 내가 여기 온 건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하거든? 만약 새 나가면 이성그룹을 내가 종이 쪼가리로 만들어 버린다.”주태오는 뒷짐을 지고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이경모를 쓱 훑어보았다.그러더니 이내 발로 이경모를 걷어찼
주민국은 강나리를 보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강나리,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제가 뭘요? 그냥 제가 알려드릴게요. 우리가 있는 한 그 별 볼 일 없는 회사는 영원히 개업할 생각하지 마세요.”강나리가 차갑게 웃었다.“너!!”조하영은 치밀어 오르는 화에 얼굴이 빨개졌고 강나리를 손가락질하며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조하영은 이렇게 악독한 여자는 처음 봤다.“너 뭐요?”강나리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거들먹거리며 비웃었다.“눈 크게 뜨고 잘 보세요. 지금 문해시는 또 제약 거물이 생겼어요. 내가 그 거물과 관계만 잘 트면 손잡고 당신들 회사가 아무것도 못 하게 할 수 있다니까요. 기도 못 펴고 그냥 사라지게 만들어 드릴게요.”주민국과 조하영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주서윤도 주먹을 불끈 쥐고 강나리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저는 여러분들이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하하하하!”용수호는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요 며칠 받은 수모를 전부 씻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나한테 개겨?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주지.’하지만 주태오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구용 단지의 거물과 관계를 틀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해? 내가 말해줄까? 아마 문도 못 들어갈걸?”“하, 진짜 웃겨 죽겠네. 네가 뭔데? 넌 진짜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내 눈에 넌 그저 병신일 뿐이야.”강나리가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주태오를 바라봤다.주태오가 시비라도 걸까 봐 그러는지 강나리는 액셀을 밟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더니 구용 단지 제약 회사 입구로 향해 용수호와 같이 거들먹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정말 너무 화나네.”주민국이 벽을 힘껏 내리쳤다.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이 정말 너무 불쌍해 보였다.“어떡하면 좋지? 강나리가 정말 구용 단지의 거물과 관계라도 트면 우리 처지는 점점 더 어려워질 거 아니야.”조하영이 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아빠
한편, 주민국과 조하영은 강나리와 용수호가 떨떠름한 모습으로 돌아가자 시름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오자 의학 천재 정성해가 갑자기 주태오의 부모님을 보러 왔다.주민국과 조하영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의학 천재가 직접 자기들을 보러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제일 놀란 건 정성해였다. 다시 한번 주태오의 의술에 놀란 것이다.주민국과 조하영의 병세가 거의 회복되었기 때문이다.정성해가 직접 치료했다면 이렇게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집에서 나와 정성해는 주태오에게 말했다.“주 선생, 정말 나를 제자로 들일 생각 없어요? 정말 주 선생 의술을 배우고 싶은데.”정성해가 다시 진지하게 요구했다.주태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성해 씨는 연세가 많아서 학습한 의술이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어요. 지금 나랑 배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주태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의술은 아무렇게나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정성해는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한편, 집 안.주민국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의학 천재 정성해 씨가 우리 태오를 제자로 받아들이려 그러나?”하지만 주민국이 잘못 들었다. 정성해가 주태오를 제자로 받아들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순간 너무 기뻐했다.의학 천재의 인맥과 자원이 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주태오를 제자로 삼는다면 그 사람들은 주씨가문과 친해지려고 애쓸 것이다.그 누구도 자기가 어떤 병에 걸리게 될지 모른다. 의학 천재의 제자와 잘 지내면 살길을 하나 더 만드는 거나 다름없다.그러면 주태오도 기생오라비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무슨 일이든 자기 손으로 해내는 게 제일 좋으니 말이다.···한편, 주태오는 정성해를 거절하고 비밀스럽게 정성해에게 9장의 고방을 주며 말했다.“이 고방을 가져가세요. 일주일 이내로 이 고방에 적힌 제품들을 다 생산해야 합니다. 만약 누가 묻는다면 이 고방은 성해 씨가 찾아낸 거라고 하면 됩니다.”주씨 집안에서 한 가지 약품으로 강씨 집안을 무너트리는 건 조금 불가능해
주태오는 멈칫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비룡당 당주 신소훈은 얼른 3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말했다.저번에 말하길 이소이가 가족들과 관계를 끊은 후 이소이의 부모님은 용성에서 온 사람들이 몰래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했다.그리고 이소이의 부모님은 떠나기 전 조상님의 빈소에 들렀다고 했고 거기에 있는 한 늙은이에게 무언가 남겨두고 간 것 같다고 했다.“그래? 잘했어.”주태오는 이를 듣더니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신소훈은 주태오의 칭찬을 듣고 흥분하며 말했다.“선생님을 위해 일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렇게 과찬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그는 그래도 주태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주태오는 신소훈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웃었다.“먼저 일어나.”신소훈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주태오는 손을 내밀어 기운 몇 개를 내보냈다.쾅! 쾅! 쾅! 쾅!신소훈은 온몸이 아팠고 이내 몸을 가뒀던 무형의 족쇄들이 풀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지급 후기의 경지에 입성한 것이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신소훈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삼고구배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반평생을 수련하면서 지급 후기에 입성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도기준이 지급 후기에 입성하고나서 퍽하면 자랑하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지금 소원을 이루었으니 행복한 기분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다른 사람도 숨을 들이마셨다.“됐어. 이제 일어나. 빈소에 있다는 그 관리인 찾으러 가자.”주태오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약품을 생산하려면 아직 일주일이 더 필요했다.이 시간에 조사하면 제약회사 일도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네, 차는 밖에 있습니다. 얼른 가시죠.”신소훈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주태오는 밖에 세워진 고급 승용차에 앉아 문해시 한적한 구석에 있는 모처로 향했다.여기는 문해시의 공원묘지였다.성격이 괴팍한 한 공원묘지 관리인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선생님,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 늙은이
“이놈이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네. 하하하! 네가 뭔데 육지성을 문책해?”주태오의 말에 늙은이가 웃음을 터트렸다.육지성이 어떤 인물인데 주태오가 문책할 수 있을까, 너무 장난 같았다.늙은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사실 내 보상금은 덜떨어진 내 손녀가 다 탕진해 버렸네.”“당신을 내쫓으려고 한 것도 그 별 볼 일 없는 손녀가 이씨 부부가 나한테 무언가 남겨두고 갔다는 걸 알고 허구한 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물건을 훔쳐서 팔려고 하거든.”“그래서 조심할 수밖에 없었네.”늙은이는 한 상자를 꺼내더니 먼지를 쓸어내렸다.주태오는 상자를 건네받았다. 안에는 펜던트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크리스털처럼 보였고 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나?”자세히 들여다보니 펜던트에 새겨진 글자는 ‘나’였다.이에 주태오의 머리가 지끈거렸다.나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단서라고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단서가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이 단서를 토대로 더 깊이 조사하면 된다.주태오는 펜던트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할아버님, 이씨 부부가 이 펜던트를 맡길 때 다른 당부는 없었나요?”늙은이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이호섭 부부는 이게 이소이 전 남자 친구에게 남겨주는 선물이라고 하더군. 이호섭 씨가 그러더군. 만약 자네가 진짜 마음이 있다면 찾아와서 이 펜던트를 찾으러 올 거라고 말이네.”주태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펜던트를 손에 꼭 쥐었다.“아참, 이호섭 부부가 그러는데 절대 이소이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하더군. 그냥 이 펜던트를 추억으로 남기라고 하면서 말이네. 그들이 딸을 찾으러 가는 것도 순탄치 않을 거라면서 그러더군.”늙은이의 말에 주태오의 표정이 변했다.“순탄치 않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주태오가 펜던트를 바라봤다.한참을 바라봐도 다른 유용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그래도 주태오는 늙은이에게 말했다.“할아버님, 감사합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같이 식사라도 하시지요.”늙은이가 망설이
“그래? 그럼 말해 봐. 얼마면 되는데?”주태오가 덤덤하게 말했다.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더는 진원영과 입씨름하기 싫었다.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과는 별로 엮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동시에 진중구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손녀가 이런 사람 이니 손녀 말만 나오면 이를 부득부득 갈았던 것이다.주태오가 이렇게 나오자 진원영은 주태오가 쫄기라도 한 줄 알고 콧방귀를 끼며 주태오를 아래위로 훑더니 말했다.“그냥 몇천만 원이면 돼.”주태오가 그만한 돈이 있는 사람 같지 않은데 이렇게 많이 뜯어내는 건 현실적이지 않았다.“진원영, 내가 혈압으로 쓰러져야 정신 차릴래?”진중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렇게 부끄러 수가 없었다. 이런 손녀를 둔 게 정말 가문의 불행이었다.“그래, 근데 지금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오진 않았거든. 갖고 싶으면 은행으로 따라와.”주태오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흔쾌히 수락했다.한도가 없는 블랙카드가 있는데 고작 몇천만 원은 새발의 피나 다름없었다.이에 진원영과 진중구가 깜짝 놀랐다.“태오야, 정말 어리석구나. 난 원래 무상으로 이씨 부부를 위해 이 물건을 맡아줄 생각이었어.”진중구가 얼른 막아섰다.하지만 진원영은 그런 진중구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소리를 질렀다.“정말 노망난 게 틀림없어요. 제발 좀 가만히 계세요.”진원영은 지금 후회막심했다.사실 그녀가 이렇게 많이 부른 건 주태오가 값을 깎기를 원해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주태오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진원영은 순간 주태오가 그때 강씨 집안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고 튀었기에 이렇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몇천만 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여 마음속으로 어떻게 주태오의 돈을 뜯어낼지 고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주태오가 진중구에게 말했다.“할아버님, 일단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돈 찾아서 올게요.”그러더니 밖으로 향했다.진원영은 진중구를 힐끔 노려보더니 진중구더러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눈짓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