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시는데?”강유진이 물었다.“몰라요, 할머니가 자세한 얘기는 안 했어요. 하여튼 나보고 누나에게 전화해 빨리 집에 오라고만 했어요.”강성호가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알겠어, 바로 갈게.”강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마자 강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임주란이 무슨 일로 자신을 찾는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그들은 강씨 저택으로 향했다. 드넓은 강씨 저택에 사람 한 명 없었고 심지어 지나가는 하인도 보이지 않았다.강유진은 얼굴을 찡그렸고 안 좋은 예감은 더욱 짙어졌다.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그들은 곧장 임주란이 평소에 자주 있는 곳까지 왔다. 이곳은 강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거실이기도 했다.문을 여는 순간 강유진은 깜짝 놀랐다. 거실에는 사람들이 족히 30명은 넘게 있었기 때문이다.직계가족도 있고 먼 친척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강씨 집안의 어른들과 능력이 뛰어난 몇몇 젊은이들이었다.임주란은 가운데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고 잠이 든 듯했다.강유진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진도하의 손을 잡고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이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강유진과 진도하 두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 그룹의 대표와 남진의 장군으로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거실 가운데까지 걸어갔다.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할 때 임주란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다.“유진아, 왔니?”강유진은 앉으려다 말고 다시 일어서며 대답했다.“네, 왔어요.”임주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강유진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릎 꿇어.”강유진이 자리에 굳은 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본 임주란은 다시 한번 소리 높여 외쳤다.“무릎 꿇어!”강유진은 임주란이 왜 자신더러 무릎 꿇으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
“그런데? 할 말이 있는데, 3개월 후에 그 사람들이 우리 강씨 저택에 와서 혼담 얘기를 꺼낼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이곳에 가만히 있어. 밖으로 나갈 생각하지 말고.”강유진은 깜짝 놀랐다.강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임주란을 바라보았다.“할머니, 저 시집 안 가요! 저는 제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그 사람 얼굴도 못 봤고 심지어 성이 뭐고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그 말에 임주란이 크게 화를 냈다.“시집을 안 가? 설마 강씨 가문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너와 상관없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직접 하신 결정을 설마 어기려는 거야?”임주란의 이 한마디 한마디는 강유진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강유진은 입술을 꼭 깨물며 말했다.“할머니가 말하는 강씨 가문의 미래 때문에 내 행복을 희생할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강씨 가문에 좋은 미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들의 말에 따라야 하는 거예요?”임주란이 화가 난 얼굴로 되물었다.“그렇지 않으면?”“하지만… 저는 싫어요.”강유진은 단호한 눈빛으로 임주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주란은 여전히 화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강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서 반드시 강씨 집안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해.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야! 만약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이 너처럼 이기적이면 강씨 가문에게 어떻게 미래가 있겠니?”강유진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임주란이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결혼은 이미 결정이 난 거야. 내키지 않으면 너의 아빠에게 한 번 여쭤봐. 너의 아빠가 강씨 가문의 이익 앞에서 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강유진은 그 말에 여전히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아빠는 아빠이고 저는 저예요. 아버지는 모든 것을 희생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저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제 행복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 대단하고 고상한 사
진도하는 사실 강유진의 집안일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임주란이 자신과 말할 때 나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절대 강유진이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진도하는 곧바로 강유진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고 임주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누가 제가 한 달 안에 죽는다고 그래요? 그리고 또 누가 제가 유진 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 말을 하는 진도하의 패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강유진은 그 말을 듣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얼굴부터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러나 임주란의 귀에는 진도하가 그저 자신에게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말들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다.임주란은 그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날카롭게 진도하의 말을 받아쳤다.“비록 자네가 무술 성자라고 한들 방천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똑똑히 알고 있거든. 방천후는 이미 십 년 전에 무술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고 지금은 그 중급 단계에 머물러 있단 걸 말일세.”말을 마친 임주란은 진도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자네는 기껏해야 이제 막 무술 성자의 경지를 돌파했을 뿐이야. 방천후의 투영을 이겼다고 해서 그와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하나 본데, 내가 똑바로 알려줄게. 자네는 아직 너무 젊어. 절대 방천후의 상대가 될 수 없어.”진도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그래요?”임주란은 마치 진도하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자네가 살고 싶다면 하루 빨리 기주를 떠나는 걸 권유하네. 한 달 뒤 서미호 지역에는 얼씬도 하지 말게. 아니면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야.”진도하는 웃으며 말했다.“만약 제가 한 달 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유진 씨를 데려가도 될까요?”임주란은 마치 씨알머리 없는 농담을 들은 것 같았다.“허허... 자네 설마 진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말을 마친 임주란은 웃음을 싹 거두었다.“사실대로 알려줄게. 난 자네의 생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임주란은 진도하를 흘끗 보며 말했다.“자네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주게. 우리는 자네를 환영하지 않는다네.”임주란이 떠난 뒤 모두가 강유진 주변에 모여들어 왁자지껄 떠들었고, 대부분 강유진더러 할머니의 말을 따르라는 충고였다.“유진 씨, 당신 할머니도 힘들 거예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 혼자서 강씨 가문을 지탱하고 계시잖아요.”“비록 당신의 친할머니가 아니지만 당신을 푸대접하지는 않으셨잖아요? 무엇보다 그분은 우리 강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시잖아요. 더 이상 그분을 화나게 하지 마세요. 그분은 원래 몸이 성치 않으시잖아요.”강유진은 이러한 말들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마음은 몹시 무거워졌다....어떤 사람들은 강유진이 할머니 뜻에 따라야 한다고 하고 반대로 그녀의 뜻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강유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의 여자들이었다.그녀들은 강유진 주변에 모여 재잘재잘 떠들었다.“유진 언니, 제가 봤을 때 도하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게다가 젊은 나이에 무성경이라니 앞날이 창창하잖아요. 두 분이 함께라면 앞으로 행복이 가득할 거예요.”“맞아요. 제가 만약 유진 씨라면 저도 진 선생을 선택할 거예요! 진 선생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고 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 신비한 세가의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이름도 모르잖아요. 저라면 생각조차 안 할 거예요.”“그리고 유진 언니가 이 결혼을 거절해도 저희는 언니를 탓하지 않아요. 만약 반대로 저희라도 스스로 자기 행복을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이 젊은 여자들은 한데 모여 쉴 새 없이 떠들었고 고작 몇 마디 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강유진 대표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말은 어르신들을 노하게 했다. 어르신들은 젊은 여자들을 향해 소리쳤다.“너희가 뭘 안다고 시끄럽게 떠들어. 다들 썩 물러나!”그 젊은 여자들은 그제야 웃으며 비켜났다.강유진의 마음에는 따스한 온기가
강재용은 휴대폰 너머의 말을 듣고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바로 그의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강유진은 그 질문은 뒤로하고 다시 물었다.“아빠, 아빠마저 내 행복을 버려야 강씨 가문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강재용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고 강유진이 계속해서 물었다.“아빠의 마음속에는 강씨 가문의 미래가 그렇게 중요해요?”이 세 가지 질문을 뒤로 강유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조용히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강재용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유진아, 어떤 일들은 아빠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그 말을 마치고 강재용은 잠시 멈춰있다가 이어서 말했다.“하지만 아빠가 너에게 이것만은 약속해. 절대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 않아.”강유진은 이 말을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그럼, 왜 나더러 기주의 강 씨 본가에 머물러 있으라고 한 거예요?”강재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건 나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야. 만약 네가 기주에 있는 걸 원하지 않으면 당장 돌아와도 돼.”강유진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 마침내 말했다.“아빠 뜻대로 기주에 있을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행복을 버려가며 강씨 가문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겠단 말은 아니야!”말을 마친 강유진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재용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짓고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전화하는 내내 강재용 옆에 앉아있던 백 선생도 그들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강재용이 전화를 끊자마자 백 선생이 노심초사하며 물었다.“회장님, 진짜 작은 아가씨를 강 씨네 본가에 내버려 두고 삼 개월 뒤에 그 신비한 세가의 사람과 결혼시키려는 겁니까?”강재용은 고개를 절제절레 저으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지 이 사람아. 내가 어찌 내 딸의 행복을 강씨 가문의 미래와 바꾼단 말인가?”“그럼, 왜 아가씨를 기주의 본가에 내버려 두시는 겁니까?”백 선생이 의아한 듯 물었다.그는 명의상으로는 강
말을 마친 진도하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이번에는 제가 남진 장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강유진은 진도하의 위로에 두 팔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진도하를 쳐다보며 말했다.“저도 알아요. 누구도 저를 강요하지 못한다는 걸. 제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진도하는 의아한 듯 물었다.“그게 아니면 뭔데요?”강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제가 지금 걱정되는 건 한 달 뒤 도하씨가 방천후와 서미호 지역에서 겨룬다는 거예요.”진도하는 미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순간 조금 감동을 받은 진도하였다.강유진이 자기 앞에 닥친 혼란스러운 일들을 제쳐두고 글쎄 자기를 걱정하고 있었다니.그는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대결은 방천후의 패배가 확실해요.”“그래도... 걱정된단 말이에요.”강유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록 그녀도 진도하의 실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야 있지만 방천후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고 그는 이미 20년 전에 기주에서 제일가는 고수였고 지금은 20년이 지났으니 그의 실력은 더 무서워졌으리라.오늘 무술 고수대회에서 그들이 마주한 건 단지 방천후의 투영이었고 그것마저 엄청난 공포의 위력을 보여줬는데 만약 방천후 본인이 직접 나선다면 어떨까?진도하는 강유진의 걱정이 점점 더 쌓여 가는 것을 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옆에 앉아있던 강유진이 말했다.“아니면 도하 씨도 이 한 달의 시간을 이용해 경지를 더 끌어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진도하는 웃으며 말했다.“유진 씨 경지가 말처럼 쉽게 끌어올려지는 줄 알아요?”강유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요? 진짜 아무것도 안 해볼 거예요?”강유진의 걱정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진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유진 씨, 그만 걱정을 내려놔요. 방천후가 비록 무술 성자라지만 성자 사이의 실력도 천차만별이에요.”강유진의 눈에서 빛이 나더니 진도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도하 씨의 뜻은 당
휴대폰 너머의 한준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의 흐느낌 소리는 더욱 빨라진 듯했다. 이로 인해 진도하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진도하는 참다못해 목청껏 소리쳤다.“한준우, 도대체 뭔데 울지만 말고 빨리 말하라고!”그는 한준우가 몹시 걱정되었다. 그의 기억 속에 이번이 두 번째로 한준우의 울음을 마주한 것이었다. 저번에 한 번은 바로 얼마 전 그가 한준우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그 외에는 언제 한 번이라도 한준우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너무 말썽을 부려 부모님께 호되게 맞았을 때에도 한준우는 절대 울지 않았었다.그는 지금 한준우가 왜 울고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한준우가 여전히 말이 없자 진도하는 급하게 다그쳤다.“너 진짜 말 안 해? 안 하면 끊는다?”진도하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제야 한준우는 울음을 그치고 입을 열었다.“나... 나 실연당했어.”이 말을 들은 진도하는 그제야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다.그는 한준우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당한 줄 알았더니 고작 실연당해서라니...그러나 진도하의 마음속에 실연은 작은 일 일지라도 한준우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일이었다.한준우는 흐느끼며 말했다.“내가 희정이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글쎄 걔가 다른 놈을 사랑한대.”이 말을 들은 진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이 바보 같은 친구를 안타까워했다.자기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면서도 욕하기는커녕 다른 놈을 사랑해 버렸다니.사실 진도하는 이 일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준우에게 말할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었다. 예상 밖으로 그가 아직 기주에서 떠나기도 전에 한준우가 이미 저절로 알아 버렸다.진도하가 물었다.“어떻게 알았는데?”한준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며칠 전부터 희정이가 기주에 가서 무술 고수대회를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 그래서 내가 이번에 휴가를 내고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걔가 글쎄 내가 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지 말라고 하는 거야. 지금까지 사귀며 한 번도 희정이
강유진도 같이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같이 갈래요.”진도하는 강유진을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만약 자신이 그녀더러 따라오지 말라고 한다면 그녀는 분명 기분 나빠하리라는 것을 알았다.게다가 진도하는 강유진에게 한준우를 도와줄 적절한 방법과 기회를 찾아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두 사람은 나란히 저택을 나와 차를 타고 한준우가 있는 곳으로 갔다....기주도 호텔에 도착한 후, 진도하는 주차를 하고 강유진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호텔 문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길가에 앉아 자기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한준우를 보았다.“한준우?”진도하가 불렀다.한준우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진도하를 향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왔어?”“그래.” 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준우 옆에 앉아서 물었다.“밥은 먹었어?”그리고 한준우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말했다. “아직 안 먹었겠지? 우리도 아직 안 먹었으니까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한준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둘이 가서 먹어. 난 지금 밥 먹을 기분이 아니야. 그냥 희정이가 빨리 나와서 나에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진도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 생각엔 들을 가치도 없어. 유희정이 널 두고 이미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는 건 결국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잖아.”강유진도 위로했다.“맞아요. 준우 씨, 현실은 원래 가혹한 법이에요. 때로는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죠.”한준우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저도 알아요. 하지만 희정이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단 말이에요. 나한테 대체 왜 그랬는지.”진도하는 짜증스럽게 말했다.“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유희정이 다른 자식을 선택했다면 아마 그 자식이 너 보다 돈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이 말을 할 때 진도하는 얼마 전에 한준우네 집 밑에서 본 유희정의 낯짝이 떠올라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한준우는 유희정을 감싸며 말했다.“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