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때부터 10년 동안 강유형을 사랑했지만 돌아온 건 ‘관심 없어’라는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다른 여자와 밤낮으로 함께 지냈다... 10년 동안 이어온 죽마고우의 사랑은 꽃을 피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세컨드가 되길 거부했고, 그 후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밤 강유형이 내 침실 문을 두드렸다. “지원아...” “무슨 일인데?” 내가 입을 열자마자 침실에서 남자의 섹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내 속옷 어디 뒀어?” 강유형은 비틀거리더니 내 앞에서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얼마 뒤 나는 강유형의 SNS 게시물을 보게 됐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들은 놓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사랑한다고 해서 영원히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 사랑할 때 소중히 여기라.’
Lihat lebih banyak이런 깊은 밤, 바에서 진소영을 마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요즘 나도 일이 너무 많아 그녀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진소영은 먹색이 감도는 짙은 녹색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도 아니었고 그저 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바의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나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대체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건지 지켜보고 싶었다.그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더니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방향을 꺾어 방으로 들어갔다.그곳은 조나연의 사무실이었다.‘조나연이 그녀를 찾은 건가?’순간 가슴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방문 앞에 섰다. 마침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대화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조 매니저님, 저 다음 주부터 개강이라 여기 더 이상 못 나와요. 이번 공연비 정산 좀 부탁드려요.”진소영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그녀가 여기서 돈을 벌고 있었다니, 게다가 말투를 보니 꽤 오래 이 일을 해온 것 같았다.“서울대로 가는 거야?”조나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진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울대요.”“좋은 학교지. 우리 남편도 그 학교 나왔어.”그녀는 태연하게 임석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어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밤중에 그의 영혼이 그녀를 찾아와 복수를 해도 모자랄 텐데 말이다.“아, 그렇군요.”진소영은 짧게 대꾸했을 뿐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조나연도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는지 화제를 돌렸다.“어떤 전공을 선택했어?”“의학이요.”진소영은 묻는 말에 곧바로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조나연은 가느다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이렇게 예쁜 애가 왜 하필 의대를 가려는 거야?”“그냥 좋아서요.”진소영은 의대를 선택한 진짜 이유를 굳이 밝히지 않았다.“그렇지만 너무...”
“응.”긁히면서 상처가 날 때는 아프지 않았는데 약을 바르려니 오히려 더 따끔하고 아팠다.구안석은 손을 멈췄다.“그럼 좀 더 살살 할게.”“아니, 안 발라도 아파. 세기 문제는 아니야.”안리영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다.구안석은 그녀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리영아, 미안해. 널 지켜주지 못했고 제때 찾아내지도 못했어.”사실 누구한테 질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구안석 자신이 가장 자책하고 있었다.어떻게 자기 여자조차 지키지 못하는 남자 친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선배 탓하는 거 아니야.”안리영은 진심이었다.그녀는 정말 구안석을 원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건 그녀의 직업이 안고 가야 할 위험이었다.“하지만 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구안석은 안리영의 상처를 바라보며 깊이 자책했다.“그럼 그 원망을 보살핌으로 바꿔 봐. 나 다쳤으니까 남자 친구가 잘 챙겨줘야지.”안리영이 귀염스레 애교를 부렸다.이런 순간에 구안석이 거절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그래.”그는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그러자 안리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그럼 일은 안 하려고?”구안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일보다 여자 친구가 더 중요하지.”“농담이야. 당연히 일이 더 중요하지. 볼일 봐.”안리영은 구안석이 이번에 돌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괜찮아. 상대방이랑 얘기해 볼게. 며칠 동안은 네 곁에 있을 거야.”하지만 구안석은 단호했다.그의 마음이 그런 거라면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구안석은 약을 다 바르고 말했다.“가자, 집으로.”입원이 필요한 부상은 아니었기에 병원에 남을 이유는 없었다.안리영도 밤새 정신없이 지내느라 한숨도 못 잤다.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구안석과 함께 가려는데 그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안아줄게.”“괜찮아.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 이 정도 상처로는 아무 문제없...”거절하려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구안석이 끊어버렸다.“올 때도 안겨서 왔잖아.”그 말에 안리영은 순간
병원 로비에서 나는 조시언과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연고가 든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리영이는요?”나는 머뭇거리다 물었다.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됐다. 조시언 씨라고 하자니 너무 딱딱했고 삼촌이라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어차피 우리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위에서 검사 중이에요.”조시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목시계를 흘깃 보았다.“아마 지금쯤이면 곧 끝날 거예요.”“그럼 전 올라가 볼게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잠깐만요.”그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다.“리영이 손목이랑 발목에 상처랑 멍이 좀 있어요. 연고를 발라줘야 할 것 같아서요.”나는 조용히 봉투를 받아 들었다.“그쪽은 안 올라가세요?”“네. 전 차에 있으려고요. 이따 누나랑 매형이 볼일 끝나시면 데리고 나오실 수 있으세요? 부탁드릴게요.”조시언의 말은 영 이상했다. 하지만 그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니 굳이 더 캐묻진 않았다. 그래도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리영이를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찾으려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죠. 어렵지 않아요.”그의 답변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하지만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랑 구안석도 필사적으로 안리영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실패했으니 말이다.“리영이한테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건 역시 시언 씨뿐이네요.”나는 장난스럽게 한마디 던졌다.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돌아서서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키의 단정한 실루엣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병실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안리영과 구안석을 만났다. 그리고 그 순간 조시언이 굳이 올라오려 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지원아! 나 안아줘!”안리영은 나를 보자마자 애교를 부리며 달려들었다.나는 그녀를 꼭 안아 주며 웃었
그녀는 그의 허벅지를 움켜잡은 걸로도 모자라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그의 민감한 부위로 들이대게 되었다.순간적으로 엄습한 당혹감에 안리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예전에 욕실에서 알몸인 상태로 서로를 마주쳤을 때보다도 훨씬 더 난감한 상황이었다.마치 감전된 듯 손을 황급히 떼려는 순간, 그녀의 몸이 단숨에 들어 올려졌다.조시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품에 안고 성큼성큼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병원에 도착하자 안리영은 부모님과 구안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리영아,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시언아, 리영이는 안 다쳤지?”부모님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겠어요.”조시언의 제안에 부모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구안석이 입을 열었다.“리영아, 정말 괜찮아? 안 다쳤어?”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순간 안리영은 코끝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다리는 괜찮아?”구안석은 모두가 놓친 부분을 예리하게 짚었다.그제야 안리영은 자신이 아직 조시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니, 괜찮아. 그냥 다리가 조금 저려서 그래.”그녀는 몸을 비틀며 내려오려 했지만 조시언은 더욱 단단하게 그녀를 고쳐 안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은 채 검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안석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는 곧 조시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안석 씨, 리영이는 저한테 맡기시죠.”하지만 조시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안리영을 품에 안은 채 그대로 검사실에 들어갔다.“리영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구안석은 다시 한번 조시언에게 말을 건넸다.“고맙다는 말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죠?”조시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그 말의 뜻을 구안석은 알고 있었다. 주시언은 안리영이 도움이 필요할 때 그녀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구안석을 원망하고 있었다.그 점은 구안석 자신도 자책하고 있었다.더는 할 말이
경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그가 온 것이었다.하지만 누가 됐든 간에 구해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리영의 공포는 한결 가라앉았다.그녀도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 방금까지 유창하게 떠들며 납치범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혹여라도 한 마디라도 잘못 내뱉어 납치범이 화를 내기라도 하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아래로 던져버릴 것 같았으니까.“헛소리 집어치워.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이 여자랑 같이 뛰어내린다.”연시훈이 조시언을 향해 위협적으로 소리쳤다.조시언은 목이 졸려 있는 안리영을 힐끗 바라보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납치범을 응시했다.“지금 뛰어내리면 넌 아무것도 얻지 못해. 하지만 리영이를 놓아주면 병원에서 네가 받아야 할 보상금을 내가 직접 챙겨주지. 거기에 더해 내 개인 돈으로 2억을 얹어 줄게.”그는 말뿐이 아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던지자 지퍼도 잠그지 않은 채 가방에서 새 지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연시훈의 발치에 떨어졌다.잠시 정신이 멍해진 연시훈은 이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네 돈 따위 필요 없어! 난 내 와이프랑 아이를 원한다고!”그의 말과 오늘 저지른 일은 마치 절절한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했다.그러나 조시언은 비웃음을 흘렸다.“연시훈, 맞지? 나한테 그런 가식적인 연기 따위는 통하지 않아. 내가 돈을 들고 왔다는 건 이미 네가 어떤 놈인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야.”안리영은 연시훈의 몸이 순간 굳어지는 걸 느끼자 조시언이 제대로 짚어낸 걸 알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죽은 와이프랑 아이에 대한 사랑 운운하더니 결국 다 헛소리였던 거야? 그냥 감성 코스프레였던 거라고?’그런데 지금까지 연시훈은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만약 조시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돈을 요구할 생각이었던 걸까?’그때 연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 말을 믿을 수 없어! 날 속이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혼자 왔을 리도 없어. 경찰을 데리고 왔을 거잖
‘내가 사라진 걸 누군가 눈치채긴 했을까? 누군가 날 구하러 올까?’하지만 이제 남을 기대할 수는 없었고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당신 말대로 제가 당신 와이프와 아이를 대신해 목숨을 내놔야 한다면 거부할 수도 없겠죠.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 말 몇 마디만 들어줄 수 있을까요? 제 부모님이 저를 찾으러 오면 꼭 전해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요.”이 남자가 와이프와 아이를 위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 보면 그만큼 그녀들을 사랑했고 깊은 정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안리영은 더 이상 서론을 늘어놓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제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아요. 저를 낳을 때부터 병을 얻으셨죠. 만약 제가 잘못되면 절대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 주세요. 엄마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요. 그리고 아빠는...”“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여리고 섬세한 분이에요. 또 엄청 눈물도 많으시죠. 제가 사라졌다는 걸 아시면 틀림없이 우시겠죠.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꼭 전해주세요. 다음 생에도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다시 함께할 거라고 해줘요. 그리고 지난주에 아빠가 고향에서 나는 채소를 드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직접 캐러 가지 못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보내드렸어요.”“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셔서 제가 없다는 사실을 도저히 감당 못 하실 거예요. 그러니 절대 말씀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저를 찾으시면 제가 병원에서 수술하느라 바쁘다고 하거나 해외 연수를 갔다고 해 주세요.”“그리고 제 남자친구도 있어요. 그는 너무 바빠요. 바빠서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도 없죠. 그러니 다음번에 여자친구를 사귀면 이렇게 바쁘게 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어느 여자가 손도 못 잡아보는 연애를 좋아하겠어요?”“이런 남자친구를 계속 만나고 있었어?”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그러나 안리영은 속으로 기뻤다. 그의 반응을 보니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다는 뜻이었다.가족을 사랑하
17층 옥상의 루프탑, 밤바람이 쌩쌩 불어와 안리영의 얼굴을 할퀴듯 스쳐 갔다.눈은 가려졌고 손발까지 묶여 있어 아무것도 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고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여기가 어디지?”그녀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힘겹게 물었다.몸이 축 처지는 걸 보니 분명 약을 먹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누가 한 짓인지, 여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다만 바람의 세기를 보아 꽤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대답은 없었다.‘설마 여기 아무도 없는 건가?’다시 입을 떼려던 순간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맥주 캔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와 그녀가 깜짝 놀랐다.그녀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애썼다.“누구, 누구세요?”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대신 느릿느릿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걸음걸이가 일정치 않고 휘청이는 듯했다.안리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거기서 더 움직이면 떨어질 거야.”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그녀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안리영은 묶인 손을 더듬어 앉아 있는 곳을 살폈다. 손끝에 걸린 것은 창턱과 비슷한 감촉,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옥상에 있는 거야?’무심코 몸을 움직이려다 멈췄다. 지금 자신이 정확히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녀는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눈앞에 서 있을 남자에게 물었다.“당신 누구예요? 왜 날 여기에 데려온 거예요?”“왜냐고? 네가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남자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되받았다.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그 목소리에 안리영은 눈살을 찌푸렸다.기억을 더듬던 순간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너희가 내 와이프와 아이를 죽였어. 그게 이유야.”그 말에 안리영의 머릿속이 번쩍했다.며칠 전 그 산모의 가족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긴 했지만 이미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더 이상 병원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진 않았다. 그래서 이젠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슬픔
강유형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데려다줄게.”나는 다시 거절하려 했지만 강유형이 한 마디 덧붙였다.“이렇게 늦은 밤에 네가 혼자 가는 건 위험해.”‘여기가 절인데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속으로 투덜거리던 찰나 그가 이어서 말했다.“벌레나 뱀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그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그런 거 진짜 무섭단 말이야!’10년을 함께했으니 그가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그의 말을 듣고 문득 안리영이 뱀이 들어있는 택배를 받은 게 생각나 누가 보냈는지 그에게 말해주었다.강유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미친놈들이네.”정말 그랬다. 그래서 더더욱 안리영이 걱정되는 거다.강유형은 낮게 읊조렸다.“그 자식은 너한테 손을 대지 못하니까 네 주변 사람들을 노리는 거야.”그가 말하는 ‘그 자식’이 누군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강진혁의 그 온화하고 점잖아 보이는 얼굴이 떠올라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게 딱 맞아. 설마 그가 그런 길을 선택할 줄이야.”강유형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설마 그가 나 때문에 그렇게 그런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것도 이유 중 하나야.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 자식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나에 대한 질투지.”그는 시선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코를 가렸다.“왜 그래?”내가 본능적으로 묻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야. 재채기 나올 것 같아서.”그런데 그의 손가락 사이로 새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재채기하다가 코피가 난다고?”나는 그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게다가 그가 너무 마른 것 같았다.“강유형, 대체 너 왜 이래?”그는 다른 손으로 재빨리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막고는 고개를 젖히고 이마를 툭툭 쳤다.“아무 일도 아냐. 요즘 너무 건조해서
“안리영 같은 소리 하네.”용준호는 여전히 입이 험했다. 늘 가벼운 놈이었지만 적어도 안리영에 대해선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럼 도대체 누구지?’‘강진혁인가?’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 의심할 사람은 둘 중 하나뿐이다. “용준호 씨,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제 사람 건드리지 마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겁니다.”나는 진정우를 지킬 때처럼 단호하게 경고했다. 용준호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윤지원, 내가 널 너무 봐줬나 보네?”나도 가볍게 비웃으며 받아쳤다. “당신이 됐든 당신 부하가 됐든 당장 연락해서 안리영을 무사히 돌려보내요.”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전화를 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내 말이 용준호에게 먹힐 거란 확신은 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런데 지금 나 대신 안리영을 찾아줄 사람이 없다. 예전엔 진정우가 있었고 신지태를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한 사람은 멀리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발을 뺐다. 방 안에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서 김지영의 방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 일이 용준호의 짓이라면 그녀에게 가서 해결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용준호가 분명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김지영을 건드릴 수 없다. 그녀는 내가 가진 마지막 카드니까. 김지영을 이용해서 안리영을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용준호가 아니라고 했으니 아직 그녀를 움직이게 할 때가 아니었다. 가슴이 조여왔고 불안과 초조함이 정신을 마비시켰다. 심지어 진정우를 잃었을 때조차 이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았다. 안리영은 나에게 그 이상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코앞에 있는 사람. 노크 소리에 강유형이 마치 잠들지 않았던 것처럼 곧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그는 어깨에 걸친 옷을 여미며 자다 깬 척했다. “미안해, 늦은 시간에.”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무슨
“솔직히 말해봐, 너 윤지원이랑 해봤어?”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와 막 들어가려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문틈 사이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지원이가 먼저 다가왔지만 난 관심 없었어.”“강유형, 그렇게 사람 깎아내리지 마. 윤지원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미인이야. 꽤 많은 사람들이 윤지원을 노리고 있다고.”말하는 사람은 강유형의 친구 신지태였다. 그는 나와 강유형의 10년 감정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너무 익숙해서 그래.” 강유형이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14살 때 강씨 집안으로 보내졌고 그때 처음으로 강유형을 만났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앞으로 강유형과 결혼할 거라고.그 후로 우리는 함께 살았고 어느새 10년이 흘렀다.“그렇지. 너희 둘은 낮에는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얼굴 보고 밤에는 집에 와서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아마 상대방이 하루에 몇 번 화장실 가는지까지 다 알겠어.”신지태가 농담을 던지고는 혀를 찼다. “지금은 오래 보면 정든다는 시대가 아니야. 남녀 사이엔 그래도 신선함이 있어야 하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래야 감정이 생기고 자극적인 법이야.”강유형은 침묵했고 신지태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듯했다.“그래서 너 윤지원과 결혼할 거야?” 신지태의 질문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강유형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혼인신고를 하라고 하셨다. 그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러니 신지태가 나 대신 물어본 셈이다.강유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신지태가 웃었다. “결혼하기 싫어?”“...그건 아니야.”“그럼 결혼은 하고 싶은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거지?” 신지태와 강유형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지태야, 이런 말 들어봤어?” 강유형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뭔데?”“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강유형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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