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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꽃길
“지원 님, 강 대표님께서 찾으세요.”

나를 따라온 이소희가 전화기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강유형의 집요함을 과소평가했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 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매우 공식적인 어조로 말했다.

“지원아.”

강유형의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고 분명한 미안함이 묻어났다.

“오늘 왜 그렇게 일찍 나갔어? 집에 와보니 네가 없더라.”

그가 공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는 조금 멀리 걸어갔다.

“아침 먹으러 나왔어.”

“미안해. 나... 어젯밤에... 정말 돌아올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집에 못 갔어.”

이 말에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왜 돌아올 수 없었는데?”

“...”

나는 숨을 참으며 그에게 대화의 여지를 주었다.

“간병인을 못 구했어?”

“...맞아.”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강유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원아, 거기 일 언제 끝나? 내가 데리러 갈게. 점심 같이 먹자.”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어젯밤 조태혁의 말대로 그는 조나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갑자기 나와 함께 식사하자고 하는 건 어젯밤 중간에 멈춘 것에 대한 보상인지, 아니면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추측하느라 두뇌 세포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아 난 담담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점심시간에도... 끝나지 않을 수 있고. 너도 요즘 점심에 꽤 바쁘지 않았어?”

“지원아.”

강유형은 아마도 내 말에서 빈정거림을 감지했는지 무거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2초 정도 침묵한 후 말했다.

“오해하지 마.”

어젯밤 서로 끌어안고 있을 때도 다른 여자에게 갈 수 있었던 그에게 내가 무엇을 더 오해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근무 시간이라 그와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바빠. 할 말 없으면 끊을게.”

그가 말을 하지 않자 나는 전화를 끊었다.

오늘의 외근은 협력 업체와의 논의와 현장 조사를 포함했다. 오전 10시에 양측 논의가 끝나자 나는 이소희와 함께 현장으로 갔다.

이곳은 놀이공원 건설 프로젝트였다. 내가 모든 프로젝트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었고 현재 80% 정도 완공된 상태였다. 완공 상황이 설계 도면과 차이가 있는지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야 했다.

협력 업체가 도면대로 완전히 따랐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절차상 직접 한 번 둘러봐야 했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니 발이 부어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발가락까지 아팠다.

나는 쉴 곳을 찾아 앉았고 이소희는 내 상태가 좋지 않음을 눈치챘다.

“지원 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네, 발이 아프네요,”

나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외부가 아니었다면 신발을 벗고 발을 좀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

이소희가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지원 님, 혹시 발뿐만 아니라 몸도 안 좋으신 거예요?”

나는 약간 당황했고 이소희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원 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서요.”

어젯밤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화장을 잘해도 소용없었다.

“생리 전이라 그런가 봐요.”

나는 변명을 했고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는 척했다.

이소희는 수다스러운 타입이라 난 그녀가 더 물어볼까 봐 걱정되었다. 거짓말을 지어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갑자기 내 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소희인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발목이 따뜻해지자 그제야 익숙한 큰 손이 눈에 들어왔다.

강유형이 내 신발을 벗기고 내 발을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주물러주고 있었다. “신발이 안 맞나 봐?”

나는 목이 메어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화났어?”

“아니야.”

나는 말하며 발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강유형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주물러 주었다.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

오늘 강유형은 푸른 정장 차림이었고 안에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셔츠의 맞춤 커프스단추가 햇빛 아래서 눈 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강유형 본인처럼.

그는 내 왼발을 주물러 주고 나서 오른발도 주물러 주었으며 주변에 사람들이 오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몇몇 젊은 여성들이 부러운 눈빛을 보내며 속삭이고 있었다. 잘생기고 여자 친구를 아끼는 남자를 드디어 현실에서 봤다고.

나도 마음이 흔들렸음을 인정한다. 어젯밤의 그 약간의 서운함도 그가 내 발을 주무르는 동안 함께 풀어졌다.

“지원 님, 정말 행복해 보여요!”

이소희가 멀리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강유형이 이 정도까지 했는데 내가 아직도 어젯밤 일을 붙잡고 있다면 내가 소심해 보일 뿐만 아니라 마치 그 일을 정말 원했던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점심에 뭐 먹고 싶어?”

강유형이 물었다.

“아무거나.”

나는 정말 식욕이 없었다. 지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생선구이 먹으러 가자. 거기 구운 거위 간도 있는데 맛이 아주 좋아.”

강유형이 나를 차에 태웠고 내가 안전벨트를 매려고 할 때 그가 몸을 기울여왔다. 비누 향기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 이상한 반응을 느꼈는지 그가 웃으며 나를 위해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그리고 몸을 바로 하면서 내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지원아, 네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어렸을 때랑 똑같아.”

“...”

이 키스는 비록 짧았지만 내 기분을 완전히 좋게 만들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의지가 약했다.

그가 조금만 잘 해주면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니까.

순간 조나연이 생각나서 난 그에게 물어봤다.

“나연 씨는 지금 어때?”

“...괜찮아. 퇴원했어.”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잠시 후 강유형이 나를 보며 물었다.

“왜 말을 안 해?”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그가 말했던 ‘너무 익숙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졌다. 서로의 일까지 다 알 정도로, 이제는 할 말도 없을 만큼 익숙해졌다.

강유형이 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종업원이 우리를 창가 쪽 자리로 안내했는데 테이블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흰 장미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그가 미리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는 걸 알았다.

생선구이와 거위 간이 나왔고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도 함께 나왔다.

이 식사에서 그의 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맛있는 음식, 꽃, 그리고 강유형의 마디가 길고 아름다운 손까지 그 사진에 잘 담겼다.

회사 동료들이 모두 바로 ‘좋아요’를 눌렀고 이소희는 삐친 표정을 보내며 ‘저도 데려가요’ 라고 덧붙였다.

아까 우리가 올 때 강유형이 그녀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고 나중에 영수증을 가져오면 경비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안리영은 본 후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정도 성의면 잘못을 인정한 거 같아. 그래도 나쁘지 않네. 그리고 어젯밤 당직 간호사한테 물어봤는데 그냥 병실에 있었대. 아무 일도 없었어.]

“...”

“휴대폰 그만 보고 먼저 먹어.”

강유형이 나를 주의시키며 거위 간을 잘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포크를 들어 한 조각을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익숙한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조나연도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지원 씨.”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형 씨도 여기 있어?”

이 말은 마치... 내 약혼자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연 씨도 여기 오셨네요, 우연이네요?”

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석진 씨 묘지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마침 이 근처를 지나다가 이곳의 거위 간 냄새를 맡고 먹고 싶어져서요.”

조나연의 얼굴은 하얗고 부드러웠으며 목소리도 부드럽고 달콤했다.

“혼자 왔어?”

강유형이 물었다.

“응, 그래서 괜찮다면 나도 같이 먹어도 돼?”

조나연은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강유형 옆 의자에 걸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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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리영은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묻지 않고 말했다. “알았어. 소식을 들으면 알려줄게. 그나저나 오늘 어디 갈 거야? 강씨 집안에 돌아가기 싫으면 우리 집에 와.”오늘 안리영은 야간 근무였기에 그녀의 집에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나는 정말 강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강유형과 한방에서 자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하지만 계속 안리영의 집에 머무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다고 해도 누구나 자신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그래.”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살 곳을 찾을 때까지는 호텔보다 그녀의 집이 나을 것 같았다.밤에 잘 곳은 정해졌지만 나는 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고 차를 몰아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이곳은 이미 구도심이 되었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임차인들이었는데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었다.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이 내 집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 셋은 모두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이곳이 구도심이 아니었고 경제와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번영했었다.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은 더 이상 예전의 번화함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의 대부분의 집들도 임대로 나갔지만 우리 집만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의 옷과 신발도 그대로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다.부모님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이곳에 와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은 자주 오지 못했다.결국 그들은 내 기억과 삶 속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었다.30분 정도 운전해서 도착한 나는 차 안의 수납함에서 열쇠를 꺼내 집으로 올라갔다.문을 열자마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생긴 먼지 냄새가 났고 가구들도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전기도 끊겨 있었다.다행히 전기요금 번호가 있어서 바로 요금을 충전했고 곧 전기가 들어왔다.불을 켜고 나는 각 방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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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씨, 오해하지 마세요.”조나연의 말에 나는 웃고 싶었다.방금 그녀가 침구를 고를 때 한 말을 생각하니, 그녀가 묵인한 남자친구가 강유형이었다.“강유형에게 사주시는 거예요?”그녀가 선택한 침구는 블루 그레이 색으로 확실히 강유형이 좋아할 만한 색상이었다.그러나 그건 예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나에게 동화되어 그가 좋아하는 색이 많이 밝아졌다.조나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몇 초를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제 남동생에게 사주는 거예요.”나는 이런 수작을 한 그녀와 실랑이하기 귀찮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강유형은 나연 씨와 같이 살겠대요?” 조나연의 아이가 사고가 나면 안 된다고 했으니 24시간 지키는 것이 가장 적합하겠지.“지원 씨,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조나연은 감정이 격해졌다.“강유형에게 침구까지 샀는데, 왜 그런 말을 못 하죠?”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반문하였다.“지원 씨는 너무 질투심이 많네요. 유형 씨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조나연의 말에 나는 웃었다.“왜 웃어요?그녀는 억울하면서도 경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말했다.“강유형은 아무리 저를 좋아한다고 해도 남의 유혹에 잘 넘어가더라고요.”“지원 씨의 말이 듣기가 거북하네요.”조아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제 말이 틀렸어요? 나연 씨는 어제 저에게 해명한다고 회사에 찾아왔지만, 사실은 강유형을 만나고 싶은 거죠?”어젯밤에 나는 꿀잠을 잤지만 아침에 일어난 후 문득 깨달았다.조나연이 어제 회사에 나타나서 일부러 남의 차에 치여 넘어진 것이다. 이로써 강유형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걱정하게 하고 끌어안게 한 것이다.조나연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어떻게 저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세요?”이에 나는 반문을 하였다.“그럼 강유형이 어제 왜 커피숍에 나타났는지 변명해 보세요.”조나연은 순간 입을 다물고 눈에는 나에게 들킨 난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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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94화

    “생각나는 사람 있어요?”강진혁은 집요하게 내 반응을 살폈다.나는 짧게 웃으며 허진호에게 집중하듯 말했다.“전 허 대표님이 빨리 회복해서 출근하셨으면 좋겠어요. 출근 도장 찍는 모습 못 보니 너무 심심하네요.”그렇게 나는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전화를 끊었다.강진혁은 이미 내 자리까지 들어와 있었고 가져온 꽃을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오랜만에 그렇게 밝게 웃는 거 본 것 같은데.” 나는 자연스럽게 이유를 만들어냈다.“허 대표님이 여자 친구한테 얼굴 할퀴었다고 투덜대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요.”강진혁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혹시 유흥업소 간 거 때문에 그런 거야?”그 말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강진혁이 허진호를 봤고 허진호가 본 사람이 정말 이소희라면 강진혁도 그녀를 봤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리고 이소희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사람이 바로 강진혁이었다는 내 의심이 맞다면...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그의 말을 받아쳤다.“역시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네요. 그런 곳은 꼭 가봐야 속이 시원해요?”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난 일 때문에 갔어.”“허 팀장님도 똑같이 말하던데요. 근데 여자 친구가 안 믿고 난리를 쳤대요.”나는 꽃을 들어 올려 코끝에 가져가 향을 맡으며 시선을 피했다.향은 좋았지만 지금 내 기분과는 정반대였다.그러다 그가 갑자기 말을 돌렸다.“어제 드래곤킹에서 좀 난처한 일 겪었다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그 말을 듣자마자 등골이 싸늘해졌다.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묻는 걸까?그가 배후에 숨어져 있던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면 정말 그의 걱정 어린 태도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주범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가 연기를 한다면 나도 맞춰줘야 했다.아직은 그를 자극할 때가 아니니까.그래서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직접 해결했어요. 굳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나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93화

    나는 준비실에서 차를 따르다가 무심코 동료들에게 물었다.“허 대표님은 오늘 안 나오셨나요?”내 말에 몇몇이 입을 꾹 다물고 킥킥거리며 웃었다.나는 그 반응이 이상해서 눈썹을 살짝 올리며 되물었다.“뭐예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그러자 한 명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얼굴이 엉망이 됐다네요!”“아무래도 여자 친구한테 할퀸 모양이에요.”“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허 대표님 여자 친구가 그렇게 사나운 줄은...”“근데 솔직히 허 대표님이 유흥업소라도 갔다면 나 같아도 가만 안 뒀을걸요.”순식간에 사무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고 다들 각자 한마디씩 보태며 떠들어댔다.그제야 나는 허진호가 오늘 회사에 안 나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얼굴이 엉망이 돼서 창피해서 못 나온 거겠지.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때리는 건 그렇다 쳐도 얼굴은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솔직히 나는 그냥 궁금했다.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허진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지원 씨, 회사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다 헛소문입니다. 그런 일 없었어요.”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고 나는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되물었다.“네? 무슨 일인데요? 제가 뭘 들었다는 거죠?”허진호는 순간 말을 멈추더니, 헛기침을 한 번 했다.“회사 갔다면서요? 아무도 얘기 안 해줬어요?”나는 일부러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아침부터 바빠서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그제야 허진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아, 됐습니다. 별일 아니에요.”하지만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모든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그리고 내가 들은 내용은 사무실 사람들이 떠들던 소문과 거의 똑같았다.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제가 지금 제일 후회하는 건 도대체 왜 여자한테 빠졌냐는 겁니다.”나는 순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의 한탄이 어이없기도 했고 뭔가 귀엽기도 했다.그래서 나는 장난스럽게 받아쳤다.“그럼 이제 남자를 좋아해 보시려고요?”그러자 허진호도 장단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92화

    나는 놀란 채로 그를 바라봤다.“강유형, 너...”그는 천천히 입가를 닦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나는 순간 따라가야 하나 망설였지만 끝내 발을 떼지 않았다.그냥... 이대로 두는 게 맞을 것 같았다.그래야 그도 이제 완전히 포기할 테니까.“저를 원망하진 않겠죠?”강유형이 떠난 후 뒤에서 배성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천천히 돌아봤다.배성재는 문가에 서 있었고 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강유형이 토한 피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얼룩져 있었다.“저 사람이 계속 지원 씨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었어요.”나는 짧게 대꾸하며 손에 들고 있던 옷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옷 갈아입고 이제 가세요.”배성재는 말없이 옷을 받았다.그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손에 작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그 안에는 그가 입었던 더러워진 옷이 담겨 있었다.그는 그대로 나가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더니 현관 앞 바닥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마침내 문이 닫히고 그가 떠났고 나는 그제야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결국 지쳐서 그대로 소파에 누워버렸고 나는 그렇게 밤을 보냈다.그런데 꿈속에서도 나는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봤다.강유형이 내 앞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그 붉은 피가 마치 내 가슴 한복판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그 꿈에 시달리며 나는 밤새 뒤척였다.그리고 다음 날 내가 눈을 뜨자마자 창문으로 쏟아지는 강한 햇살이 눈을 찔렀다.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면대로 향했다.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그리고 옷 위에 묻어 있는 이미 말라붙은 핏자국...나는 조용히 물티슈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하나하나 천천히 핏자국을 닦아내기 시작했다.마치 그것이 내 삶에서 강유형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내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용준호에게서 전화가 왔다.“들었어. 어제 우리 쪽에서 사고 났다며?”내가 찾기도 전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91화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강유형, 네가 어떻게 내가 사고 난 걸 알았지?”그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문기둥에 기대섰다.“당연히 알지. 왜냐하면...”그는 말하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내가 사람을 붙여서 널 지켜주게 했거든.”지켜준다고? 이건 지켜주는 게 아니라 감시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그의 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자 나는 이유 모를 불쾌감이 몰려왔다.그래서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비꼬듯 말했다.“네가 붙인 사람이 그렇게 실력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는 어디 있었던 거야?”“그 부분은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놈은 잘랐어.”강유형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는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덧붙였다.“그리고 지금 누가 널 해치려 했는지 조사 중이야.”“잘됐네.”나는 짧게 대꾸하며 팔짱을 꼈다.“그럼 네가 그걸 알아내면 나한테도 알려줘.”강유형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피곤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였다.하지만 나는 그와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더군다나 지금 내 집 안에는 또 다른 손님이 있었으니까 말이다.“강유형, 늦었어. 인제 그만 돌아가.”나는 단호하게 말했으나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집에 가고 싶지 않아.”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는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원아, 네가 떠난 이후로... 난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어졌어.”그의 입가에 맺힌 쓴웃음은 가슴 한구석을 묘하게 찌르는 기분이었다.“네가 있을 때는 몰랐어. 네가 없는 집이 이렇게 공허한 곳일 줄은... 집에 들어가면 온통 적막하고 부모님도 서로 말이 없고 예전처럼 따뜻한 느낌이 하나도 안 남았어.”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그렇게 만든 게 누구 때문인데?“사실, 예전엔 이런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몰랐어.”그는 허탈하게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90화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고 얼굴이 뜨거워졌다.조금 전까지 내가 그를 떠보려 했는데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그는 겉으로 보기엔 진지하고 무심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은근슬쩍 던지는 말은 전혀 초보자가 아니었다.이 남자, 예상보다 훨씬 노련한데?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태연한 척 입꼬리를 올렸다.“착각하지 마세요.”나는 천천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TV가 켜진 거실로 향했다.그는 여유롭게 식탁을 정리한 뒤 내가 뿜어낸 죽이 튄 옷을 간단히 닦고 설거지를 시작했다.그러고 부엌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야 내 쪽으로 걸어왔다.“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그의 정중한 태도에 나는 무심하게 손짓했다.“맘대로 쓰세요.”그런데, 바로 이어진 말이 내 손을 멈추게 했다.“샤워도 좀 해야겠네요.”나는 즉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고 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었다.마치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한다면 그건 내 문제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아직도 죽이 튀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그제야 나는 생각을 바꿨다.‘아... 샤우할만 하네.’그래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갈아입을 옷 있나요?”나는 그제야 그가 처음부터 이걸 의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순간적으로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덧붙인 말이 내 결정을 흔들어 놓았다.“헌 옷이라도 괜찮아요.”그는 진정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분명했다.내 집에 남자의 옷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진정우의 것일 테니까.나는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이건 완벽한 연기였다.그러니까 내가 괜한 의미를 부여하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었다.나는 내심 한숨을 쉬며 억지로 무덤덤한 척 대답했다.“찾아볼게요.”나는 옷장을 열어 진정우의 옷을 손에 들었다.그 순간 나는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이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89화

    “와서 밥 먹어요.”배성재가 나를 부르자 나는 그대로 서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며 다시 말했다.“와서 맛 좀 봐요.”주방 조명 아래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진정우와 닮아 있었다.특히 조금 전 죽을 저을 때의 습관까지 똑같았다.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에 밴 습관은 쉽게 숨길 수 없는 법이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배성재, 당신이 바로 진정우 맞지?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지만 그는 나를 밀어내지는 않고 대신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밥 먹어요.”나는 그의 등을 꼭 끌어안은 채 낮게 속삭였다.“당신... 진정우 맞죠?”그는 침묵했고 나는 그의 몸을 돌려세워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여긴 우리 둘뿐이에요. 나한테만은 솔직해져요. 당신이 진정우라는 거... 인정해 줄 수 없어요?”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그의 한 마디는 내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아닙니다.”나는 멍해진 채 그를 바라봤고 그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내 이름은 배성재입니다.”그 순간 내 손이 저절로 힘을 잃고 그의 소매를 놓아버렸다.나는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해요. 당신이 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 똑같았어요. 심지어 죽을 저을 때도 똑같이 왼손으로 세 번 저었어요.”그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우연의 일치겠죠.”“그러게요. 참 신기하죠. 너무 우연이 겹치니까... 저도 모르게 또 헷갈렸어요.”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식탁에 앉았다.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그가 만든 음식을 한 입 넣었다.그런데...나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눈치를 챘는지 곧바로 물었다.“맛이 없나요? 아니면 간이 안 맞아요?”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맛이 없어서가 아니고 간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이건 분명히 그 사람의 맛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88화

    나는 배성재에게 가까이 다가가 일부러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흔히들 남자는 유혹에 약하다고 하지만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당신 집에서 하죠.”그는 아무런 변화 없는 얼굴로 대답하더니 곧바로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그런 그의 태도를 보자, 문득 진정우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도 그는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지금의 배성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고 그는 곧바로 부엌으로 가 요리를 시작했다.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그는 예전에 진정우가 자주 두르던 앞치마를 묶고 한결같은 동작으로 채소를 씻고 손질했다.그 순간, 마치 진정우가 돌아온 것 같았다.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 사람이 정말 진정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됐다.하지만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그는 진정우가 아니다. 나는 수없이 부정하고 또다시 인정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언니 아직 안 잤지?”전화기 너머에서 진소영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아니. 지금 밥 먹으려던 참이야.”나는 여전히 부엌에 있는 배성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이 시간에? 집에서 직접 해 먹어? 아니면 배달시킨 거야?”진소영의 물음에 나는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누웠다.“해 먹지.”“오빠가 있었으면 절대 언니가 직접 요리하게 두지 않았을 텐데.”진소영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혹시 요즘 오빠랑 연락했어? 여전히 전화가 안 돼서 마음이 불안해.”나는 배성재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응, 연락했어.”그 순간, 배성재가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죽을 저었다.그런데 그는 죽을 세 번 저었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진정우도 죽을 끓일 때마다 항상 정확히 세 번 저었고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만의 방식이었다.이것도 우연일까?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했다. 진소영이 계속해서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나는 멍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87화

    손끝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본능적으로 손을 움켜쥐려 했지만 배성재가 단단히 붙잡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납니다.”그의 목소리는 전에 듣던 차가운 톤과 달리 부드러웠다.‘이 사람, 기분이 바뀌는 속도가 한여름 날씨보다 더 변덕스럽네.’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내 손끝에 박힌 유리 조각을 제거했다. 그녀는 조각을 핀셋으로 집어 들어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보세요. 이렇게 크잖아요. 그대로 두면 계속 찌르고 아팠을 거예요.”나는 언제 유리가 박혔는지도 몰랐다. 아마 아까 재떨이를 던질 때 튀어서 박힌 듯했다.간호사는 조심스럽게 소독한 뒤, 작은 반창고를 붙여주었다.“다 됐습니다.”그러자 배성재가 짧게 말했다.“고맙습니다.”그는 간호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서야 내 손을 놓았다.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움츠리며 반창고가 붙은 손끝을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성재 씨는요?”“뭐가요?”“다치신 곳 없어요?”“없습니다.”방금 나를 구해주면서 몇 번이나 뒹굴었는데 하나도 다친 데가 하나도 없다니. 배성재는 보기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었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며 나는 문득 생각났다.“이제 말해보세요. 당신,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죠? 나한테 복수하려는 건가요? 아니면 또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거예요?”그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아니 당신 나 엄청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방금 전까지 내 손까지 잡아가며 치료해 줬잖아요. 그게 무슨 의미냐고요.”“당신이 다친 건 저 때문이잖아요. 병원에 데려온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그의 태도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그렇다면 우리 이제 퉁친 거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제가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정말 많이 닮았나요?”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점점 다른 사람이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86화

    “그냥 빚을 갚은 겁니다.”배성재의 대답은 단순했고 동시에 그가 나를 오해했던 일도 떠올랐다.“그럼 왜 그렇게 딱 맞춰 제가 위험할 때 나타난 거죠? 저도 이제 당신이 일부러 판 함정 아닐까 의심해야 하는 건가요?”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한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미안합니다. 제가 당신을 오해했군요.”그의 뜻밖의 빠른 인정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방금 전에 그 남자가 전화하는 걸 들었어요. 오늘 일은 강유형의 짓이 아니라, 강진혁이 주도한 거더군요.”그의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뭐라고? 방금 그 남자는 분명 강유형이라고 했는데?’그러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증거가 있습니다. 녹음해 뒀어요.”그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대표님, 일 처리 끝났습니다. 지원 씨가 강유형 님이 한 짓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나는 휴대폰을 쥔 손을 살짝 떨었다.나는 지금까지 강유형이 움직였다고 확신했었지만 이 녹음이 사실이라면 강진혁은 내가 강유형을 의심하도록 유도한 셈이고 최근 강유형이 나한테 신경 쓰는 게 불편했던 거였다.나는 불현듯, 진정우가 사고를 당했던 날이 떠올랐다.그때도 강진혁은 진정우, 강유형, 그리고 신지태까지 한 번에 제거하려 했었다.그는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가족이고 뭐고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만약 그가 나를 차지할 수 없다면 나 역시도 제거 대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평소 온화하고 친절했던 그의 모습과, 지금 그의 행동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강진혁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나? 아니면 처음부터 연기였던 걸까?”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병원에 도착했고 차가 멈춰 선 순간 배성재가 내게 물었다.“조금 전에 당신을 치려던 차, 누가 보낸 거라고 생각해요?”나는 순간 당황하며 그를 바라봤다.사실, 지금까지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그 차는 분명 나를 겨냥한 것이었다.그리고 만약 배성재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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