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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꽃길
지금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순간 그가 전화를 받거나 나가버린다면 나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강유형의 목젖이 움직였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바로 끊어버리고는 다시 내 목과 쇄골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휴대폰이 곧바로 다시 울렸다.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우리 둘 다 평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받아.”

강유형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옆에 있던 이불을 끌어다 나를 덮어주고는 휴대폰을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가 발코니 문을 닫긴 했지만 그의 낮은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지금 안 돼. 간병인을 부르는 게 어때?”

“돌보지 않겠다고 한 적 없어... 내 잘못인 걸 알아... 알았어, 울지 마. 갈게, 지금 갈게...”

그 후로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다만 라이터 켜는 소리만 들렸다.

강유형이 담배를 피웠다.

처음으로 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약 10분 후 강유형이 돌아왔고 공기 중에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안함이 묻어났다.

“저기...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나연이가 병원에 있는데 돌볼 사람이 없어서...”

드물게도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불 속 내 몸이 차가워졌다.

“남자인 네가 나연 씨를 돌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

“난, 난 나연이한테 간병인을 구해주러 가는 거야.”

강유형은 말하면서 이미 내가 흐트러뜨린 그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난처함과 서운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코끝까지 올라왔다.

“강유형.”

“응?”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는데 그의 눈 밑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마도 내가 그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유명한 사업가인 강유형이 언제 이렇게 두려워했던가. 지금 내 앞에서 그는 긴장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내 목구멍에 걸린 말을 더 이상 꺼낼 수 없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말을 마치고 나는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강유형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고 그의 숨결이 다가오더니 이마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떨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상처를 주었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너무 너그러워서 한두 번 상처 주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강유형은 떠났지만 그가 불러일으킨 욕망은 여전히 내 몸 안에서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욕조에 몸을 던졌다.

안리영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정신이 완전히 맑아진 상태로 욕조에 누워 멍하니 있었다.

“강 대표가 우리 산부인과에 왜 왔어? 조나연이라는 여자는 강 대표랑 무슨 사이인데?”

나는 안리영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고 그녀에게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했다.

안리영은 순간 화를 냈다.

“강 대표가 과부를 돌보러 간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아니 왜 굳이 이 혼탁한 물에 발을 담그려고 해?”

안리영조차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니 난 내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고 말해버렸다.

“만약 강유형이 나랑 잘 때 떠났다고 말하면 넌 어떻게 생각할 거야?”

안리영은 잠시 멈칫했다.

“너희... 했어?”

“아니, 옷만 반쯤 벗었어.”

이 말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젠장!”

평소에 점잖고 우아해 보이는 의사 안리영이 욕을 내뱉었다.

“강유형 그 자식이 바지까지 벗고도 중간에 멈출 수 있다는 건 그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안리영은 뒷말을 삼켰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이해했다. 그녀는 강유형이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나를 버려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한밤중에 다른 여자를 돌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친구의 죽은 아내라 불쌍하긴 했다. 그러니 조금 더 신경 써주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보살핌이 선을 넘었으니 문제가 되었다.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빨리 헤어져. 다음 사람은 더 좋을 거야,” 안리영이 나를 설득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강유형을 포기하는 건 간단했지만 강씨 집안은 달랐다.

지금 강씨 집안은 내 집이고 가족이었다. 강유형의 부모님은 나를 친딸처럼 여겼고 이 몇 년간 그들이 나를 키워주셨다.

특히 김희연은 친엄마처럼 내가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고, 더러워진 내 옷을 직접 빨아주셨다.

안리영은 내 침묵에서 뭔가를 읽어냈는지 이렇게 말했다.

“지원아, 사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 생각해 봐. 강유형이 이 몇 년간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어디 가나 너를 자기 아내라고 소개했잖아. 지금 그 여자를 돌보는 건 아마 그저 죽은 친구 때문일 거야. 어쨌든 난 강 대표가 그 여자랑 뭔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 특히 그 여자 임신했잖아. 설마 강 대표가 아이 아빠 노릇을 하고 싶겠어?”

조나연이 강유형을 바라보던 눈빛이 떠올랐다.

“만약 한쪽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뭐라고?”

안리영이 잠시 놀랐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네 남편 강유형은 수많은 여자들의 이상형이잖아. 과부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럴 때일수록 강 대표가 그 여자랑 거리를 두어야 해. 여자가 힘든 순간에는 작은 따뜻함조차도 구명줄이 되어 놓지 않으려고 할 거야.”

안리영이 말하다 잠시 멈추었다.

“내가 오늘 밤 좀 지켜볼게. 큰일은 없을 거야.”

그제야 안리영이 야간 근무를 하러 갔다는 걸 기억해 냈다.

“괜찮아, 네 일 끝나면 쉬어. 이런 건 한두 번은 볼 수 있어도 계속 볼 순 없잖아. 정말 뭔가 있다면 아마도...”

나는 말을 멈추고 최근 강유형의 이상한 행동들을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미 무언가 있었을지도 몰라.”

안리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원아, 너무 고민하지 마. 만약 강유형이 정말 너한테 미안한 짓을 한다면 헤어지면 돼. 앞으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거지. 어차피 두 사람 아직 자지 않았으니까 아무 일 없었던 거로 쳐도 돼. 얼마든지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풉.”

나는 웃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 몇 년간 강유형과 선을 지키며 지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나는 일부러 하품을 하고는 안리영과의 통화를 끝냈다.

이런 밤에는 당연히 잠들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강유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나는 외근이 있어서 강유형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나갔다. 이렇게 일찍 나가는 건 사실 그들이 물어볼까 봐 두려워서였다.

강유형의 방을 수리하는 건 사실이지만 김희연의 진짜 목적은 나와 강유형이 빨리 잠자리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한 여자가 남자의 옷을 벗기지 못한다는 건 때로는 매우 실패한 일이다.

8시가 조금 넘어 내가 협력 업체에 도착했을 때 강유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며 나는 몇 초간 망설였으나 결국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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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고 그 가련한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유형 씨, 결국 내가 귀찮아진 거지?” 조나연의 말과 함께 눈물이 뚝 떨어졌다.강유형은 말없이 서 있었고 주변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석진 씨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면 나도 유형 씨를 귀찮게 하지 않았을 거야...” 조나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네가 나를 귀찮게 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지원이를 귀찮게 하지 마.” 두 사람이 싸우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지, 아니면 떠나야 할지 망설였다.“알겠어. 앞으로 유형 씨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 두 사람을 방해하지도 않을 거야.”조나연이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이번에는 강유형이 쫓아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유형이 바로 뒤따라왔다. 우리가 카페를 나서자마자 끼익하는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나와 강유형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보니 조나연이 주차장에서 나오던 차에 치여 넘어진 모습이 보였다.“조나연!” 강유형이 낮게 외치며 달려갔다.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따라갔다.“유형 씨, 아이가...” 조나연은 창백한 얼굴로 한 손으로는 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유형의 팔을 꽉 잡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그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잡은 듯한 모습이었다.배우를 하지 않은 게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차를 몬 사람도 놀라서 연신 설명했다. “대표님, 저 여자가 갑자기 뛰어들었어요.”우연히도 운전한 사람은 우리 회사 직원이었다.“꺼져!” 강유형이 화를 내며 조나연을 안아 들고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마침 퇴근 시간이라 직원들이 오가고 있었고 모두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이미 몇몇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대표님이 저 여자를 무척 걱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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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리영은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묻지 않고 말했다. “알았어. 소식을 들으면 알려줄게. 그나저나 오늘 어디 갈 거야? 강씨 집안에 돌아가기 싫으면 우리 집에 와.”오늘 안리영은 야간 근무였기에 그녀의 집에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나는 정말 강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강유형과 한방에서 자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하지만 계속 안리영의 집에 머무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다고 해도 누구나 자신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그래.”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살 곳을 찾을 때까지는 호텔보다 그녀의 집이 나을 것 같았다.밤에 잘 곳은 정해졌지만 나는 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고 차를 몰아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이곳은 이미 구도심이 되었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임차인들이었는데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었다.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이 내 집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 셋은 모두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이곳이 구도심이 아니었고 경제와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번영했었다.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은 더 이상 예전의 번화함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의 대부분의 집들도 임대로 나갔지만 우리 집만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의 옷과 신발도 그대로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다.부모님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이곳에 와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은 자주 오지 못했다.결국 그들은 내 기억과 삶 속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었다.30분 정도 운전해서 도착한 나는 차 안의 수납함에서 열쇠를 꺼내 집으로 올라갔다.문을 열자마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생긴 먼지 냄새가 났고 가구들도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전기도 끊겨 있었다.다행히 전기요금 번호가 있어서 바로 요금을 충전했고 곧 전기가 들어왔다.불을 켜고 나는 각 방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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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50화

    ‘내가 골탕을 먹였다고?’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음표를 보냈다.[안석 선배가 왔어!]안리영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곧장 호텔 사건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답장을 보냈다.[내가 만들어 준 둘만의 시간을 잘 즐겨.][즐길 시간이 어딨어, 나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해!]‘아, 진짜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하지만 안리영은 일부러 일을 피하는 게 아니었고 정말로 수술이 있었다.사실 다른 의사에게 맡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구안석이 몇 달 동안 연락도 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했는데 이제 와서 그가 돌아왔다고 해서 그녀가 바로 일정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술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수술을 마친 안리영은 제일 먼저 휴대전화를 확인했지만 메시지 창은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구안석과의 대화방을 열어 보았지만 대화는 그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에서 멈춰 있었다.‘몇 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없었다고? 설마... 진짜로 화난 거야?’안리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평소처럼 휴게실로 향했다.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휴게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 불빛 아래 POLO 셔츠에 슬랙스를 입은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구안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수술은 잘 끝났어?”안리영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며 힘없이 대답했다.“응, 잘 끝났어. 그런데... 여기서 뭐 해?”“너 기다리고 있었어.”그의 짧은 대답에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나도 원래 이따 찾아가려고 했는데...”“정말... 올 생각이 있었어?”그 말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안리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치며 애써 피식 웃었다.“나, 먼저 씻고 옷 갈아입을게.”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리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구안석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9화

    그들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계좌번호를 보여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1억 2,000만 원을 이체했다.“빚 문서 내놔.”내가 손을 내밀자 그들은 약속대로 빚 문서를 건네며 비웃듯 말했다.“와, 생각보다 돈이 많네.”나는 문서를 확인한 후, 차갑게 경고했다.“난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다시는 소희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마. 만약 또 한 번 찾아오면 그땐 죽을 줄 알아.”내 단호한 태도에 그들은 더 이상 헛웃음을 짓지 않았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지자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가던 길에 한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돈 많은 친구가 있는데 대체 왜 사채를 빌린 거야?”“꺼져.”나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이소희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온몸을 떨고 있었다.“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나는 그녀를 조용히 끌어안았고 그제야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흑... 으아아아아...”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며 그저 울게 놔두었다.이소희가 실컷 울고 난 후, 나는 그녀를 조용히 그녀의 원룸 안으로 데려갔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곰팡이가 핀 벽지, 낡고 좁은 침대, 허름한 책상 위에 놓인 남은 음식들.한때 당당하고 씩씩했던 그녀가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거칠었고 피부는 갈라져 있었으며 곳곳에는 작은 상처도 남아 있었다.그녀는 돈을 갚기 위해 거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나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그녀에게 샤워를 시키고 새 옷을 입힌 뒤, 함께 침대에 누웠다.그제야 이소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용씨 가문이야.”“뭐?”“그놈들, 다 해동 용씨 가문의 사람들이라고.”순간, 내 머릿속에 용진표의 얼굴이 떠올랐다.그 집안의 돈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8화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나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문을 두드리던 세 명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하나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와, 임도에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다른 남자는 비웃으며 말을 던졌다.“아가씨, 여기 방 빌리러 왔어? 아니면 저 안에 있는 그 여자랑 아는 사이야?”나는 차갑게 시선을 던지며 냉정하게 말했다.“내가 먼저 물었잖아?”그러자 문을 두드리던 남자가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우리는 예쁜 여자를 찾으러 왔지. 딱 당신 같은 사람을 말이야.”그는 말하며 내 턱을 건드리려 손을 뻗었다.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피했다. 그러자 그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성격 있는 여자네. 난 이런 여자가 더 좋더라.”그는 곧바로 옆에 있는 남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오늘, 헛걸음한 건 아니겠어.”그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놔둬! 건드리지 마!”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이소희가 있었다. 그녀는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면서 주저 없이 남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이 미친놈들아, 당장 꺼져!”그러나 남자들은 오히려 비웃었다.“하필이면 네가 알아서 나와 주네? 우리가 널 찾고 있었는데.”그들은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나는 바닥에 있는 벽돌을 주워 들고 그대로 남자들에게 던졌다.“아, X발!”한 명이 벽돌에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어쩌면 진정우가 떠난 후, 난 두려울 게 없어진 걸지도 모른다.한 남자가 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하며 그에게 강하게 발차기를 날렸다.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정확히 급소를 가격당했고 두 손으로 급소를 감싸며 뒹굴었다.남은 두 명이 이소희를 잡으려 하자, 나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외쳤다.“돈 필요하면 움직이지 마.”내 말에 그들은 멈칫하더니 눈을 번뜩이며 나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7화

    이런 부류의 남자는 언제나 돈 많고 외모가 뛰어난 여자에게만 관심을 두는 법이다.윤시안이 나를 알아본다는 건, 분명 나에 대해 미리 조사했거나,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왜 당신을 찾아온 것 같아요?”윤시안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이소희 때문이겠죠?”역시, 나와 이소희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고 있었다.“맞아요. 소희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경찰에게 진술한 것 외에도 더 숨기고 있는 것이 있지 않나요?”하지만 윤시안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제가 꼭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이 상황에서도 거래하겠다는 건가.’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조건이 뭔데요?”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2억이요? 혹시라도 협박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돈을 어디에 쓰시려고요? 지금 교도소에 계시면서 그 돈을 사용할 곳이라도 있어요?”그러자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한테 주실 필요 없어요. 부모님께 주시면 됩니다.”‘이 인간은 쓰레기지만 효심은 있네...’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런데 부모님께서 그 돈을 받을 것 같아요? 제가 돈을 건네려 하면 두려워서 도망치시지 않을까요?”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윤시안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한참 후, 힘없이 입을 열었다.“저는 소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돈을 빌린 것뿐이에요.”“그렇다면 왜 소희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고 했을까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정말 효심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걸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한 일 때문에 부모님까지 손가락질받으며 사시는 건 알고 계시죠?”그 순간, 윤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부모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6화

    이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건, 내가 화장실에서 얼굴에 잔뜩 묻은 물을 닦고 있을 때였다.“언니...”그녀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아는 이소희라면 평소엔 마치 작은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내던 아이였는데.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때의 자살 시도가 지금의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너 계속 전화 안 받으면 내가 직접 찾아갈 거야.”“언니, 오지 마. 난 괜찮아.”그녀는 다급하게 나를 말렸다.나는 손에 들고 있던 휴지를 버리고 세면대에 기대어 말했다.“괜찮으면 내가 왜 너한테 수십 통씩 전화를 걸었겠어. 이제 좀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소희는 한참 후에야 힘없이 입을 열었다.“언니, 나 지금 완전히 빈털터리야. 그리고... 빚이 거의 2억 가까이 돼.”나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강진혁에게 들었는데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속아 모든 걸 잃었다.“...그래서 자살을 생각한 거야? 네 목숨이 2억보다 못해?”“언니... 그 2억 중에는 인터넷 대출도 있고 신용카드도 있고 게다가... 사채도 있어.”그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어졌다.“그 사람들이 매일 협박 전화를 하고 온라인에 내 신상을 퍼뜨렸어.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찾아갔어.”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 있었다.“그렇게 힘들었으면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지.”그녀에게 빌려주는 돈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 돈을 줬다면 그녀가 죽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 그때 내 휴대전화가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혹시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못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후회를 해도 소용없어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차분히 물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임도에 있는 이유가 돈을 갚기 위해서야?”“응...”낯선 도시에 와서, 변변한 학력도 없는 그녀가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겠는가.월급이 200만 원이라 해도, 2억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5화

    문득, 나도 저런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임석진의 집을 떠난 후, 나는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소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강진혁이 준 정보가 틀릴 리 없었다. 이소희가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아마도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서겠지.나는 곧장 문자를 보냈다.[소희야,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내 전화 좀 받아줘.]하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읽지 않았다.이제 남은 방법은 직접 찾아가는 것 하나뿐이었다.나는 출근 중이었지만 어차피 회사에서는 나를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별 고민 없이 임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그런데 막 표를 결제한 순간 허진호가 등장했다.“윤 부장, 요즘 참 한가하신가 보네요?”물잔을 들고 내 맞은편에 앉은 허진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분명 실시간 검색어를 본 게 틀림없었다.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혹시 제 업무량을 늘리실 생각인가요?”“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그는 천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너무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쓸데없는 사고가 터질 수도 있잖아요. 괜히 사고 치셨다가, 혹시라도 정우 씨가 무덤에서 튀어나와 저한테 따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허진호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그럴 일 없을 겁니다.”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놀이공원의 조명 문제를 수없이 곱씹어 봤고 나는 진정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하지만 내 확신과는 별개로, 허진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어쨌든, 더는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규칙대로 근무하세요. 회사 규정 어기시면 처벌이 있을 겁니다.”그가 드디어 대표다운 태도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물었다.“처벌이라면... 벌금인가요?”벌금? 그거야말로 나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중 하나였다.안리영이 늘 말했다.“너는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삼무인간이야. 그 많은 돈 다 쓰지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4화

    임석진의 부모님은 내 질문에 순간 당황한 듯 얼어붙었다.그들은 조심스럽게 나를 훑어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누구세요?”분명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아마 나이가 많아 기억이 흐려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석진 오빠 친구예요. 오빠에게 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한번 찾아왔어요.”내가 정체를 밝히면 아예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려 할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돌렸다.그들의 표정에는 의심과 불안이 가득했다.“우린 당신을 본 적도 없고 석진이도 당신 같은 친구에 대해 말한 적 없어요.”요즘 같은 세상에 사기꾼이 많으니, 이렇게 신중한 건 당연한 일이겠지.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내밀었다.“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괜찮아요, 그냥 뵙고 싶었을 뿐이에요. 별다른 의도는 없어요.”하지만 그들은 선물을 받기는커녕 손사래를 쳤다.“우린 당신을 모릅니다. 받을 이유도 없어요.”말을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나는 그들을 멀어지는 시선을 가만히 바라봤고 굳이 따라가서 말 붙일 생각은 없었다.이 시점에서 내가 더 접근하면 오히려 더 불안해할 게 분명했다.그렇다면... 아이는 어디 있는 걸까? 집에 있고 보모가 돌보고 있는 걸까?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서 나는 곧장 단지 내 관리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가져온 선물들을 맡기며 아이에 대한 정보를 슬쩍 떠봤다.그러자 관리소 직원이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그 집 아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매일 어르신 두 분이 데리고 나와 놀아주던데요. 저기 보이세요? 저쪽 놀이터에서요.”직원이 손가락으로 놀이터를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한 중년 여성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최근에는 가끔만 나오더라고요. 요즘은 가정 의사를 불러서 돌보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3화

    “네가 직접 화장하는 걸 봤잖아. 그냥 우연일 수도 있어.”강진혁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여전히 관람차 위에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관광객들이 하나둘 떠나고 화려하게 빛나던 조명도 점차 밤과 함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모든 것이 다시 원래의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자, 나도 천천히 관람차에서 내려왔다.강진혁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나를 부축했고 시선은 내 얼굴을 깊이 탐색하고 있었다.아마도 내 감정을 읽어내려 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관람차 위에서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이제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늦었어. 이제 가자.”그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놀이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떠올라 물었다.“오빠, 소희에 대한 소식... 알려주신다면서요.”강진혁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내게 문자를 보냈다.“소희는 지금 임도에 있어. 다른 정보는 직접 연락해서 알아봐.”곧바로 핸드폰 알림이 울렸고 새로운 전화번호와 주소가 전송되어 있었다.“고마워요, 오빠.”나는 감사 인사를 건네고 곧장 몸을 돌렸다.“지원아.”강진혁이 나를 부르면서 그윽하게 쳐다봤다.“...잘 쉬어.”하지만 나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놀이공원이 유명한 핫플레이스인 만큼, 이번 사고는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하지만 정작 내 이름이 거론된 이유는 놀이공원 때문이 아니었다.[윤지원, 바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호텔 투숙?]기사에는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고 마치 몰래 찍은 듯한 각도로 화면이 잡혀 있었고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촬영된 것이었다.날 망가뜨리려고 한 짓이라는 게 너무 뻔했다.솔직히 나는 상관없었다.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고 어제 안리영에게도 "차라리 내가 먼저 폭로하고 말지." 라고 했으니까.하지만 내가 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나를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2화

    나는‘해동 아이’라 불리는 대형 관람차 앞까지 내달렸다.놀이공원이 개장한 이후, 이곳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소 중 하나였고 매일 긴 줄이 늘어섰다.“태워줘.”나는 이곳의 주인이었다. 내가 원하면 관람차는 나를 위해 멈출 수도, 움직일 수도, 최고점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다.천천히 상승하는 관람차 아래에서 강진혁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날 따라오는 듯한 시선을 느끼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놀이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높은 곳에서 놀이공원을 내려다본 건, 진정우가 직접 조명을 조정했던 날이었다.그때 나는 그와 함께 있었고 우린 단순히 조명만 감상한 것이 아니었다.그날 밤, 우리는 찬란한 불빛 아래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감정이 깊어지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고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했다.‘하지만 이제는... 아니! 진정우는 아직 살아 있어.’방금 전의 조명은 분명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관람차가 최고점에 다다르자, 놀이공원뿐만 아니라 해동시 전체가 내려다보였다.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그런 거창한 풍경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진정우! 나랑 결혼하고 싶다면... 돌아와!”나는 손을 높이 들어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반지를 흔들었다.“네가 직접 주문한 우리 커플링이야. 난 한 번도 빼지 않았어. 네가 준 팔찌도 그대로야. 이제 너만 돌아오면 돼.”내 목소리는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마치 나의 외침에 반응하듯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였다.아래에서는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비명 같기도 했고 놀람 섞인 감탄 같기도 했다오늘 밤의 조명은 예상치 못한 최고의 공연이 되었다.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열광하며 아예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삶이란 뜻밖의 일들로 가득 차 있으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기는 편이 낫다. 놀이공원 측으로 환불을 요구하던 고객들도 모두 취소했다는 연락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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