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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꽃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08 11:19:36
지금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순간 그가 전화를 받거나 나가버린다면 나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강유형의 목젖이 움직였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바로 끊어버리고는 다시 내 목과 쇄골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휴대폰이 곧바로 다시 울렸다.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우리 둘 다 평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받아.”

강유형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옆에 있던 이불을 끌어다 나를 덮어주고는 휴대폰을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가 발코니 문을 닫긴 했지만 그의 낮은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지금 안 돼. 간병인을 부르는 게 어때?”

“돌보지 않겠다고 한 적 없어... 내 잘못인 걸 알아... 알았어, 울지 마. 갈게, 지금 갈게...”

그 후로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다만 라이터 켜는 소리만 들렸다.

강유형이 담배를 피웠다.

처음으로 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약 10분 후 강유형이 돌아왔고 공기 중에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안함이 묻어났다.

“저기...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나연이가 병원에 있는데 돌볼 사람이 없어서...”

드물게도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불 속 내 몸이 차가워졌다.

“남자인 네가 나연 씨를 돌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

“난, 난 나연이한테 간병인을 구해주러 가는 거야.”

강유형은 말하면서 이미 내가 흐트러뜨린 그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난처함과 서운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코끝까지 올라왔다.

“강유형.”

“응?”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는데 그의 눈 밑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마도 내가 그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유명한 사업가인 강유형이 언제 이렇게 두려워했던가. 지금 내 앞에서 그는 긴장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내 목구멍에 걸린 말을 더 이상 꺼낼 수 없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말을 마치고 나는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강유형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고 그의 숨결이 다가오더니 이마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떨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상처를 주었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너무 너그러워서 한두 번 상처 주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강유형은 떠났지만 그가 불러일으킨 욕망은 여전히 내 몸 안에서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욕조에 몸을 던졌다.

안리영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정신이 완전히 맑아진 상태로 욕조에 누워 멍하니 있었다.

“강 대표가 우리 산부인과에 왜 왔어? 조나연이라는 여자는 강 대표랑 무슨 사이인데?”

나는 안리영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고 그녀에게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했다.

안리영은 순간 화를 냈다.

“강 대표가 과부를 돌보러 간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아니 왜 굳이 이 혼탁한 물에 발을 담그려고 해?”

안리영조차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니 난 내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고 말해버렸다.

“만약 강유형이 나랑 잘 때 떠났다고 말하면 넌 어떻게 생각할 거야?”

안리영은 잠시 멈칫했다.

“너희... 했어?”

“아니, 옷만 반쯤 벗었어.”

이 말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젠장!”

평소에 점잖고 우아해 보이는 의사 안리영이 욕을 내뱉었다.

“강유형 그 자식이 바지까지 벗고도 중간에 멈출 수 있다는 건 그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안리영은 뒷말을 삼켰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이해했다. 그녀는 강유형이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나를 버려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한밤중에 다른 여자를 돌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친구의 죽은 아내라 불쌍하긴 했다. 그러니 조금 더 신경 써주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보살핌이 선을 넘었으니 문제가 되었다.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빨리 헤어져. 다음 사람은 더 좋을 거야,” 안리영이 나를 설득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강유형을 포기하는 건 간단했지만 강씨 집안은 달랐다.

지금 강씨 집안은 내 집이고 가족이었다. 강유형의 부모님은 나를 친딸처럼 여겼고 이 몇 년간 그들이 나를 키워주셨다.

특히 김희연은 친엄마처럼 내가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고, 더러워진 내 옷을 직접 빨아주셨다.

안리영은 내 침묵에서 뭔가를 읽어냈는지 이렇게 말했다.

“지원아, 사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 생각해 봐. 강유형이 이 몇 년간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어디 가나 너를 자기 아내라고 소개했잖아. 지금 그 여자를 돌보는 건 아마 그저 죽은 친구 때문일 거야. 어쨌든 난 강 대표가 그 여자랑 뭔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 특히 그 여자 임신했잖아. 설마 강 대표가 아이 아빠 노릇을 하고 싶겠어?”

조나연이 강유형을 바라보던 눈빛이 떠올랐다.

“만약 한쪽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뭐라고?”

안리영이 잠시 놀랐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네 남편 강유형은 수많은 여자들의 이상형이잖아. 과부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럴 때일수록 강 대표가 그 여자랑 거리를 두어야 해. 여자가 힘든 순간에는 작은 따뜻함조차도 구명줄이 되어 놓지 않으려고 할 거야.”

안리영이 말하다 잠시 멈추었다.

“내가 오늘 밤 좀 지켜볼게. 큰일은 없을 거야.”

그제야 안리영이 야간 근무를 하러 갔다는 걸 기억해 냈다.

“괜찮아, 네 일 끝나면 쉬어. 이런 건 한두 번은 볼 수 있어도 계속 볼 순 없잖아. 정말 뭔가 있다면 아마도...”

나는 말을 멈추고 최근 강유형의 이상한 행동들을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미 무언가 있었을지도 몰라.”

안리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원아, 너무 고민하지 마. 만약 강유형이 정말 너한테 미안한 짓을 한다면 헤어지면 돼. 앞으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거지. 어차피 두 사람 아직 자지 않았으니까 아무 일 없었던 거로 쳐도 돼. 얼마든지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풉.”

나는 웃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 몇 년간 강유형과 선을 지키며 지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나는 일부러 하품을 하고는 안리영과의 통화를 끝냈다.

이런 밤에는 당연히 잠들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강유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나는 외근이 있어서 강유형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나갔다. 이렇게 일찍 나가는 건 사실 그들이 물어볼까 봐 두려워서였다.

강유형의 방을 수리하는 건 사실이지만 김희연의 진짜 목적은 나와 강유형이 빨리 잠자리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한 여자가 남자의 옷을 벗기지 못한다는 건 때로는 매우 실패한 일이다.

8시가 조금 넘어 내가 협력 업체에 도착했을 때 강유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며 나는 몇 초간 망설였으나 결국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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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님, 강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나를 따라온 이소희가 전화기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강유형의 집요함을 과소평가했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 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매우 공식적인 어조로 말했다.“지원아.” 강유형의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고 분명한 미안함이 묻어났다. “오늘 왜 그렇게 일찍 나갔어? 집에 와보니 네가 없더라.”그가 공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는 조금 멀리 걸어갔다.“아침 먹으러 나왔어.”“미안해. 나... 어젯밤에... 정말 돌아올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집에 못 갔어.”이 말에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왜 돌아올 수 없었는데?”“...”나는 숨을 참으며 그에게 대화의 여지를 주었다. “간병인을 못 구했어?”“...맞아.”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강유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원아, 거기 일 언제 끝나? 내가 데리러 갈게. 점심 같이 먹자.”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어젯밤 조태혁의 말대로 그는 조나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오늘 갑자기 나와 함께 식사하자고 하는 건 어젯밤 중간에 멈춘 것에 대한 보상인지, 아니면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건지 알 수 없었다.그걸 추측하느라 두뇌 세포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아 난 담담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점심시간에도... 끝나지 않을 수 있고. 너도 요즘 점심에 꽤 바쁘지 않았어?”“지원아.” 강유형은 아마도 내 말에서 빈정거림을 감지했는지 무거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2초 정도 침묵한 후 말했다. “오해하지 마.”어젯밤 서로 끌어안고 있을 때도 다른 여자에게 갈 수 있었던 그에게 내가 무엇을 더 오해할 수 있을까?지금은 근무 시간이라 그와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바빠. 할 말 없으면 끊을게.”그가 말을 하지 않자 나는 전화를 끊었다.오늘의 외근은 협력 업체와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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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같이 먹어.”강유형은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동의해 버렸다.조나연이 앉으며 앞에 놓인 음식을 보더니 군침을 삼키는 표정을 지었다. “생선구이네. 요즘 딱 먹고 싶던 참이었어.”“그럼 거위 간도 하나 더 시켜줄까?” 강유형의 말투는 무척 자연스러웠다.“디저트도 하나 추가해 줘.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에 딸기 소스 올린 거. 음료는 오렌지 주스로 할게,” 조나연이 말을 마치고 나를 보았다. “지원 씨도 오렌지 주스 한잔하실래요?”“괜찮아요. 저는 물만 마실게요.” 말을 마치고 나는 포크에 꽂힌 거위 간을 입에 넣었다.부드럽고 섬세한 맛에 은은한 우유 향까지...“유형 씨, 전에 몇 번 사다 준 거위 간도 여기 거야?” 조나연의 말에 내 씹는 동작이 멈췄다.나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표정이 약간 불편해 보였다. “...응.”그가 이곳의 거위 간 맛이 좋다는 걸 아는 이유가 밝혀졌다.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사다 줬던 거였고 나는 오늘 처음이었다.그것도 그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보상하는 차원에서.순간 내 입 안의 거위 간 맛이 변했고 삼키기조차 힘들어졌다.“그래서 이 근처를 지나가다 거위 간 냄새가 익숙하다고 느꼈나 봐.” 조나연이 웃으며 강유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 깊은 곳에 서려 있는 따스함이 마치 그물처럼 나를 감싸 숨이 막히는 듯했다.그녀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지원 씨, 유형 씨가 분명 자주 데리고 오셨겠어요. 그래서 이곳 거위 간 맛이 좋다는 걸 알고 저한테 사다 주신 거겠죠.”가슴에 꽂힌 칼로 부족해 두 번 더 비트는 느낌이 이런 걸까. 지금 나는 그 맛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나도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뇨, 오늘이 처음이에요. 저는 나연 씨만큼 복이 없나 봐요.”조나연의 웃음이 잠시 굳더니 시선을 살짝 내리며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진 씨가 저랑... 아이를 버리고 갔는데 무슨 복이 있겠어요?”말을 마치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나는 당황했다. 한 마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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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돌리자 강유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가 이내 짜증 섞인 분노로 바뀌었다.“윤지원, 네 고집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나연이는...”“난 네 약혼녀야.”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나 초라하게 들렸다.예전에 TV에서 이런 장면을 볼 때면 여주인공이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저런 남자를 위해 말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지. 하지만 지금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나연이가 임신했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강유형이 말하며 뒷걸음질 쳤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난 그는 휙 돌아서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결국 그는 나와 조나연 사이에서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그 자리에 앉아 나는 그가 조나연을 쫓아가는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가 조나연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조나연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의 품에 안기는 모습까지...고개를 숙이자 더 이상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오늘 그의 선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 마음에 답이 생겼다.결국 이 식사에서 나는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50만 원의 식사값을 치렀다.나는 강씨 집안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안리영의 집으로 향했다.“정말 헤어지기로 한 거야?”산부인과 의사인 안리영이 내 혈 자리를 눌러주며 물었다. 덕분에 생리통의 고통은 덜했지만 마음의 통증은 어쩔 수 없었다.“응.” 나는 그녀의 침대에 엎드린 채 대답했다. 그녀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내 눈꼬리가 붉어져 있었다.“그렇게 쉽게 끊을 순 없을 거야.” 안리영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넌 아직 강유형의 비서잖아.”“사직할 거야!”이 문제는 오는 길에 이미 생각해 두었다.안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사직하고 강유형과 일하지 않는다 쳐. 하지만 강씨 집안은 어쩔 건데? 강씨 집안에서 널 이만큼 키워줬는데 강유형과 헤어진다고 강씨 집안과의 관계를 끊을 순 없잖아? 강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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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젯밤 그 상황에서는 나연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랬어. 너도 알다시피 석진이는 부모님의 외아들이었잖아. 지금 나연이 뱃속 아이는 임씨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야. 만약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니까 앞으로 나연 씨랑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그 여자를 우선시하겠다는 거야?” 내가 차갑게 묻자 강유형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괜찮아질 거야.”나는 웃음을 지었다.고개를 돌리는 순간 막 떠오른 태양이 눈을 찔렀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유형, 아이가 태어나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거야. 아플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지. 네가 이 아이를 핑계 삼는 한, 넌 조나연 씨랑 영원히 얽히게 될 거고 난 항상 너한테 버려지는 사람이 될 뿐이야.”강유형은 내 말에 침묵했다.나는 내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유형,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난 내 남편이 사흘에 한 번씩 다른 여자를 돌보는 걸 원치 않아.”“지원아, 시간을 좀 줘. 잘 처리할게,” 강유형의 눈빛에 갈등이 스쳤다.“뭘 처리해? 조나연 씨는 다른 사람의 아내야. 돌봐야 한대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임석진한테는 너 말고도 다른 친구가 있잖아. 신지태랑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왜 하필 너만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강유형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난 석진이가 사고 났을 때 유일하게 곁에 있었던 사람이야.”그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고통을 듣고 임석진의 죽음에 대한 그의 죄책감과 자책을 떠올리며 나는 물었다. “강유형, 혹시 임석진에게 미안한 일이라도 했어?”“윤지원.” 강유형이 차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꼭 이 일을 꼬집어야겠어?”“어, 이미 나한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강유형,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괜찮은데 친구의 아내까지 돌보고 싶다면 우리 헤어지자. 그러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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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놀이공원이 거의 완공 단계에 있었기에 난 이 시점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점심 무렵, 내가 업무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이소희가 신비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지원 님, 어젯밤에 생리 시작했어요?”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물어요?”“별거 아니에요.” 이소희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강 대표님이 오늘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으신지 알겠어요. 욕구불만이었나 봐요.”잠시 멍했다가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나는 펜으로 그녀의 머리를 톡 쳤다. “근무 시간에 일에 집중해야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요.”이소희는 킥킥 웃으며 어제 우리가 함께 본 현장 보고서를 건넸다. “제가 멋대로 상상한 게 아니에요. 정말로 다들 강 대표님한테 혼나서 무서워하고 있어요. 오늘 대표님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중에 웃으면서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내 눈앞에 오늘 아침 강유형이 화가 나서 장미꽃을 버리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 기분이 안 좋은 이유가 내가 평소처럼 쉽게 달래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헤어지자고 한 것 때문인지 궁금했다.“지원 님, 혹시 대표님이랑 싸웠어요?”이소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일이나 열심히 해요. 안 그러면 다음에 울 사람은 소희 씨일 지도 몰라요.”이소희를 보내고 나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 일을 정리하고 이소희의 보고서를 검토해 수정한 뒤 강유형에게 보냈다.그는 답장이 없었고 나도 묻지 않았다.오후 3시, 나는 휴게실에 물을 받으러 갔다가 강유형과 마주쳤다.이소희의 말대로 그의 얼굴은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았고 나를 보자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그래도 나는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제가 보낸 보고서 확인해 주세요. 문제없으시면 협력 업체에 답변을 드려야 해서요.”하지만 그는 나를 무시한 채 그냥 지나쳐 갔다.나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는데 낯선 번호였다. “여보세요?”“지원 씨,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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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고 그 가련한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유형 씨, 결국 내가 귀찮아진 거지?” 조나연의 말과 함께 눈물이 뚝 떨어졌다.강유형은 말없이 서 있었고 주변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석진 씨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면 나도 유형 씨를 귀찮게 하지 않았을 거야...” 조나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네가 나를 귀찮게 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지원이를 귀찮게 하지 마.” 두 사람이 싸우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지, 아니면 떠나야 할지 망설였다.“알겠어. 앞으로 유형 씨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 두 사람을 방해하지도 않을 거야.”조나연이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이번에는 강유형이 쫓아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유형이 바로 뒤따라왔다. 우리가 카페를 나서자마자 끼익하는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나와 강유형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보니 조나연이 주차장에서 나오던 차에 치여 넘어진 모습이 보였다.“조나연!” 강유형이 낮게 외치며 달려갔다.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따라갔다.“유형 씨, 아이가...” 조나연은 창백한 얼굴로 한 손으로는 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유형의 팔을 꽉 잡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그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잡은 듯한 모습이었다.배우를 하지 않은 게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차를 몬 사람도 놀라서 연신 설명했다. “대표님, 저 여자가 갑자기 뛰어들었어요.”우연히도 운전한 사람은 우리 회사 직원이었다.“꺼져!” 강유형이 화를 내며 조나연을 안아 들고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마침 퇴근 시간이라 직원들이 오가고 있었고 모두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이미 몇몇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대표님이 저 여자를 무척 걱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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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5화

    안리영은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묻지 않고 말했다. “알았어. 소식을 들으면 알려줄게. 그나저나 오늘 어디 갈 거야? 강씨 집안에 돌아가기 싫으면 우리 집에 와.”오늘 안리영은 야간 근무였기에 그녀의 집에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나는 정말 강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강유형과 한방에서 자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하지만 계속 안리영의 집에 머무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다고 해도 누구나 자신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그래.”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살 곳을 찾을 때까지는 호텔보다 그녀의 집이 나을 것 같았다.밤에 잘 곳은 정해졌지만 나는 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고 차를 몰아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이곳은 이미 구도심이 되었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임차인들이었는데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었다.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이 내 집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 셋은 모두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이곳이 구도심이 아니었고 경제와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번영했었다.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은 더 이상 예전의 번화함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의 대부분의 집들도 임대로 나갔지만 우리 집만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의 옷과 신발도 그대로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다.부모님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이곳에 와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은 자주 오지 못했다.결국 그들은 내 기억과 삶 속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었다.30분 정도 운전해서 도착한 나는 차 안의 수납함에서 열쇠를 꺼내 집으로 올라갔다.문을 열자마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생긴 먼지 냄새가 났고 가구들도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전기도 끊겨 있었다.다행히 전기요금 번호가 있어서 바로 요금을 충전했고 곧 전기가 들어왔다.불을 켜고 나는 각 방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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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9화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멈칫했다.우리 뒤를 따르던 자전거들 위로 어느새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고 그 위에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아직 그 문구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자전거들이 갑자기 속도를 높였고 진정우는 우리가 탄 자전거의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내가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자전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플래카드 위의 글씨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지원아, 나랑 결혼해 줘.]그 문구를 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즉시 진정우를 바라보았다.그는 전혀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건 분명 그의 계획이었다.“진정우, 이거... 나한테 청혼하려는 거야?” 나는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응. 널 집으로 데려가야 아무도 널 탐내지 못할 테니까.”그는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강진혁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내가 그의 말을 곱씹는 동안, 누군가 뒤에서 외쳤다.“오빠, 빨리 프러포즈를 해야지.”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진소영이 자전거에 앉아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진정우는 자전거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마술을 부리듯 손에서 반지를 꺼낸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나랑 결혼해 줄래? 남은 삶 동안 내가 네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어.”나는 자전거에 앉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성껏 준비된 자전거들과 그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니,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결혼해!”“결혼해!”“언니! 빨리 대답해 주세요!”사람들과 진소영이 외쳐댔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진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만약 거절한다면... 실망할 거야?”조금 전까지 흥겨웠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진소영도 놀란 얼굴로 나를 불렀다.“아니. 지금 당장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내가 너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이겠지.”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일어서려 했다. 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8화

    강진혁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더니 더 이상 표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나를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이제 너도 나를 무시하고 싫어하게 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예전에 강유형과 오빠 사이에서 내가 강유형을 선택했던 건, 단지 그가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오빠를 무시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오빠의 행동은... 정말 실망스러워요.”그의 눈빛은 더욱 그윽해졌다.“근데 넌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고나 있어?” 그는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빠, 4년 전 떠날 땐 그렇게 똑똑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이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거예요?”4년 전, 내가 강유형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강진혁과 나는 오직 남매 같은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내가 강유형과 헤어지더라도 강진혁과의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지원아, 너는 10년 동안 유형이를 사랑했지. 근데 나도 똑같았어.” 그의 말에 가슴이 잠시 먹먹해졌지만 그건 감동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과거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고통스럽고 짝사랑은 더더욱 그렇다.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유형이를 10년 동안 사랑했던 건, 그와 함께할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오빠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알면서도 걸어가고 있잖아요. 그건 오빠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한 거라고요.”내는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지금 강진혁은 강유형의 모든 걸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까지도 숨기고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했다.그런 강진혁의 모습에 정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어리석다...” 강진혁은 비웃듯 내 말을 되뇌었다. “그래, 어리석어.”그는 스스로를 비웃었지만 그 안엔 나를 향한 조롱도 섞여 있었다. 내가 강유형을 10년 동안 사랑했던 것도 똑같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7화

    “당신은 남편이 아내와 절친한 친구와의 배신을 견디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운전할 것을 알았겠죠. 그래서 동생에게 특정 시간에 차로 접근해 놀라게 하라고 말했죠. 그로 인해 남편의 차량이 통제력을 잃도록 꾸민 거잖아요.”내 말이 끝나자 조나연의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놀이공원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날 모함하는 거잖아요!”그녀 옆에 서 있던 강유형은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목을 세차게 잡아 흔들었다.“정말 그런 거야? 조나연, 똑바로 말해!”“아니야! 절대 아니야!” 조나연은 울며 소리쳤다.“강유형, 처음부터 네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내가 원한 적 없다고! 네가 먼저 다가온 거라고!”그녀의 울부짖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강유형으로 향했다. 군중들 사이에서는 욕설이 터져 나왔고 한 여자가 화를 내더니 강유형을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쓰레기! 살인자! 양심도 없는 놈!”그때 한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그만하세요!”목소리의 주인공은 진정우였다. 그는 군중을 헤치고 나와 조나연과 강유형 앞에 섰고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화면을 터치하더니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그때 맞춰 차로 갑자기 튀어 나가기만 하면 돼... 사고가 나도 너한테 책임은 없어. 네가 그 사람을 친 것도 아니고 건드린 것도 아니니까.”“이건 다 우리 누나가 짠 계획이야. 일이 잘되면 나는 강유형의 매제가 되는 거야. 그럼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어.”녹음된 음성은 조나연의 동생인 조태혁의 목소리였다.순간 조나연의 얼굴은 완전히 창백해졌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야! 이건 사실이 아니야!”진정우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당신 동생 조태현은 이미 경찰서에 있어요. 이 모든 건 경찰이 판단할 일이죠.”그의 말이 끝나자 군중들은 조나연에게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진정우는 다시 경고했다.“누군가 그녀를 폭행하면 그것 또한 범죄입니다.”그 말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6화

    조나연은 임신한 배를 내밀며 군중 속에 서 있었다. 얼굴엔 약간의 자신감과 도전적인 미소가 얹혀 있었다.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강유형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은 채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강유형은 한층 더 분노한 얼굴로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조나연은 자신에게 시간을 벌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짧은 틈에 다시 입을 열었다.“강 회장님, 이 아이는 제가 낳겠다고 약속드린 아이잖아요. 강 회장님께서도 이 아이가 평생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죠.”“그만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해.”강유형의 어머니가 손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네가 가진 아이가 우리 강씨 집안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네 아비를 찾아가든지 남편을 찾아가든지 해!”“그만해!”강유형의 아버지가 강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강유형은 이미 몇 걸음 만에 조나연 옆에 도착했다.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고 눈빛은 차갑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조나연은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여전히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유형아, 너랑 결혼 못 한다는 거, 나 이미 받아들였어. 너희 집에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했어. 그런데 왜 내가 받을 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거야?”그러고는 내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혹시 지원 씨, 또 저랑 경쟁하려고 그러는 거예요?”그녀의 뻔뻔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이런 말이 떠올랐다.‘사람이 뻔뻔하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더니.’조나연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제는 모든 자존심을 버린 상태였다.“조나연, 입 다물어.”강유형이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오늘처럼 대중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려 했다.그녀의 행동을 보니 분명 이 상황을 이용해 누군가가 영상을 찍어 온라인에 퍼트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강씨 집안이 의심받게 될 테니 말이다.조나연은 이런 방식으로 강씨 집안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5화

    그는 늘 믿음직스럽고 정직한 얼굴이었다. 거짓말을 해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진솔해 보였고 지금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런 그를 보고 나는 더 이상 그가 농담하는지조차 추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그건 애들 장난이지. 그런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진정우, 정말 왜 이래?”그는 채소를 자르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짧게 말했다.“너니까.”정말이지, 이 남자. 달콤한 말을 할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다.“언니, 나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든요.”진소영이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 데려가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강유형에게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강유형은 내가 진정우를 데려가고 싶다고 오해했을 뿐이었다.진정우는 내가 데려갈 필요도 없이 놀이공원에 갈 것이었다. 놀이공원 후반 작업, 특히 조명 설계는 그의 손을 거친 결과물이니까.개장 광고는 엄청난 효과를 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마케팅팀은 사전 예측을 통해 시간대를 나눠 티켓을 판매하고 입장을 조절했다. 덕분에 혼란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진정우와 나는 진소영을 데리고 전용 통로를 통해 입장했다. 진정우는 내가 특별 손님인 걸 알고 있었기에 진소영을 데리고 놀러 가고 나는 개막식 참석자용 대기실로 향했다.“지원아! 어서 와! 너희 삼촌이랑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한껏 멋을 낸 강유형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나는 강유형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삼촌, 몸은 좀 어떠세요?”“아주 좋아.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잠도 푹 자.”그는 농담처럼 말했다.강유형과 강진혁도 정장을 입고 나왔다. 두 사람 모두 훤칠해 눈길을 끌었다. 강유형의 어머니는 그런 두 아들을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근데 너 혼자야?” 강유형이 물었다.“정우가 동생 데리고 놀러 갔어.”“점심에 연회가 열릴 거야. 그때 둘 다 같이 오라고 해.”강유형의 아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4화

    “갈 거야.”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가야 했다.그곳은 내게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2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 무수한 밤의 땀방울, 내 기대와 후회, 그리고 나의 새로운 시작까지.초대장을 손에 쥔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한 사람 더 데려가도 돼?”나는 강유형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진정우야?”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가볍게 웃었다.“네가 오기만 하면 누구를 데려오든 상관없어.”이건 그의 양보였다. 예전의 그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고마워.”짧게 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강유형이 다시 나를 불렀다.“지원아, 내일 부모님도 오실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릴 거야.”그는 분명히 내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알겠어.”나의 대답을 듣고도 그는 여전히 전화를 끊지 않았다.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그의 침묵 속에서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모든 영상 플랫폼과 지역 전광판에 모두 놀이공원 개장 광고가 떴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그만큼 확실히 알리고 싶다는 의미였다.천하의 강유형답게 그의 사업적 감각은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우리가 이렇게 멀어진 지금도 그의 능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언니, 이 놀이공원이 언니랑 오빠가 연애 시작한 장소 아니에요?”진소영이 TV 속 광고를 가리키며 물었다.그 질문에 나는 잠시 멈칫했고 진정우를 바라봤다.“맞아요?”“아니.”그는 단호하게 부정했다.“그럼 어디예요?”진소영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진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묻는 소영에게 내가 대신 말했다.“청평. 전에 얘기했던 그 작은 마을.”진정우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 미묘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정우가 주방으로 간 뒤, 나는 그를 따라갔다.“내가 뭔가 잘못 말했어?”“응.”그는 짧게 답했다.“뭔데?”나는 의아해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3화

    혹시 조나연이 단순히 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걸까?그럴 리 없다. 조나연이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데는 반드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내가 반격하려는 순간, 진정우와 허진호가 나타났다. 진정우는 내 옆으로 걸어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애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조나연은 그의 강렬한 기세에 몸을 떨며, 더더욱 약한 척하며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만약 윤지원 씨가 강유형에게 가지 않았다면 당연히 상관없었겠죠.”진정우는 차갑게 비웃으며 대꾸했다.“두 사람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 서로 연락하면 어때서요?”그의 반격은 나조차도 조금 놀랐다. 조나연은 그의 태도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아마도 그녀는 진정우가 나를 이렇게까지 옹호할 줄 몰랐을 것이다.그 순간, 그녀가 왜 이런 소란을 피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조나연은 내 연인 관계를 흔들어 놓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강유형에게 돌아간다면? 그녀는 그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하지만 저 여자가 계속 강유형과 내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잖아요.”조나연은 다시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정우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만약 당신과 강유형의 관계가 정말로 탄탄하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지금 지원 씨가 나쁜 여자라고 나더러 믿으라고 이러는 거잖아요.”역시 진정우다. 그는 조나연의 얕은 속셈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조나연이 입을 열려 하자, 진정우는 내 손을 잡으며 그녀에게 한 방을 더 날렸다.“조나연 씨, 당신이 지원 씨의 남자 친구를 빼앗은 건 알겠는데 감히 여기까지 와서 지원 씨를 괴롭히다니요. 대체 무슨 배짱으로요?”그 순간, 주변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참 뻔뻔하네!”그 말을 듣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나연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 꼭 뺨이라도 맞은 듯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를 더 몰아붙일 수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2화

    조나연이 나를 찾아온 건 전혀 놀랍지 않았다. 다만 우리 회사로 직접 찾아왔다는 점이 의외였다. 차라리 아파트 앞이나 집 근처에서 기다릴 줄 알았다.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당연히 강유형과 관련된 일이겠지만 이제는 그녀와 말다툼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래서 리셉션 직원에게 간단히 말했다.“그냥 제가 없다고 전하세요.”그런데 퇴근 시간이 되어도 그녀는 여전히 회사를 떠나지 않고 건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윤 부장님, 그분이 반나절 동안 계속 기다리고 계세요. 드린 물도 손도 안 대셨고요. 임신한 몸이신데 혹시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할 것 같아요.” 리셉션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조나연은 동정심을 유발하며 나를 압박하려는 속셈이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그녀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다음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를 괴롭힐 게 분명했다.“일이 생기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어요. 기다리고 싶으면 기다리라 하세요.” 나는 단호하게 말한 뒤 건물을 나섰다.“지원 씨!”갑자기 조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그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었다. 뒤돌아보니 그녀가 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하얀 실크 소재의 임산부 드레스를 입고 약간 부른 배를 내보이며, 얼굴에는 약간 홍조가 감돌았다. 아마 방금 큰 소리를 낸 탓일 것이다.“왜 저를 피하는 거예요?” 그녀는 원망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피하는 게 아니라, 만나기 싫어서 안 만나는 겁니다.” 나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내 특유의 약한 척하는 모습으로 힘없이 말했다.“찔리니까 그런 거죠.”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강유형에게 저에 대해 고자질한 거예요? 왜 헤어졌으면서도 여전히 그와 얽혀 있는 거죠?”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며 쏘아붙였다.그녀가 크게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제 우리 둘 주변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두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화제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11화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니, 내가 굳이 거절의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진정우는 검은 반팔 티셔츠에 작업복 스타일의 팬츠를 입고, 검은 오토바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강렬하고도 매력적인 모습에 시선이 저절로 끌렸다.이런 모습의 진정우는 처음이었다.하지만 이런 남자를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예전에 강유형도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자신감 넘쳤던 때가 있었다.그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지금도 생생하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타 그의 허리를 감싸고, 밤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그 짜릿한 순간들이.“아직도 오토바이를 좋아하나 봐?”잠시 넋이 나간 사이, 강유형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의도를 눈치챘지만, 나는 가볍게 미소만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정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진정우는 내가 다가가자마자 천천히 걸음을 맞춰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를 막아섰다.진수로!우리 회사의 대표님이자, 진정우와 나의 현재 상사였다.그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빳빳한 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단단한 배와 진정우의 날렵한 체격은 대비가 극명했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마치 진정우가 진수로에게 지시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진수로가 나를 흘끗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진정우는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그가 강유형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로지 나만 향하고 있었고, 걸음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그의 발걸음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오래 기다렸어?”나는 계단 위, 그는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덕분에 우리 눈높이가 나란히 맞았다.“아니.”진정우의 눈빛은 깊고 진지했다.그의 눈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고, 그의 말처럼 그의 마음도 정직하고 솔직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가자.”그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그때 진수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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