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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작가: 꽃길
“그럼 같이 먹어.”

강유형은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동의해 버렸다.

조나연이 앉으며 앞에 놓인 음식을 보더니 군침을 삼키는 표정을 지었다.

“생선구이네. 요즘 딱 먹고 싶던 참이었어.”

“그럼 거위 간도 하나 더 시켜줄까?”

강유형의 말투는 무척 자연스러웠다.

“디저트도 하나 추가해 줘.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에 딸기 소스 올린 거. 음료는 오렌지 주스로 할게,”

조나연이 말을 마치고 나를 보았다.

“지원 씨도 오렌지 주스 한잔하실래요?”

“괜찮아요. 저는 물만 마실게요.”

말을 마치고 나는 포크에 꽂힌 거위 간을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섬세한 맛에 은은한 우유 향까지...

“유형 씨, 전에 몇 번 사다 준 거위 간도 여기 거야?”

조나연의 말에 내 씹는 동작이 멈췄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표정이 약간 불편해 보였다.

“...응.”

그가 이곳의 거위 간 맛이 좋다는 걸 아는 이유가 밝혀졌다.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사다 줬던 거였고 나는 오늘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보상하는 차원에서.

순간 내 입 안의 거위 간 맛이 변했고 삼키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 근처를 지나가다 거위 간 냄새가 익숙하다고 느꼈나 봐.”

조나연이 웃으며 강유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 깊은 곳에 서려 있는 따스함이 마치 그물처럼 나를 감싸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녀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지원 씨, 유형 씨가 분명 자주 데리고 오셨겠어요. 그래서 이곳 거위 간 맛이 좋다는 걸 알고 저한테 사다 주신 거겠죠.”

가슴에 꽂힌 칼로 부족해 두 번 더 비트는 느낌이 이런 걸까. 지금 나는 그 맛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도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뇨, 오늘이 처음이에요. 저는 나연 씨만큼 복이 없나 봐요.”

조나연의 웃음이 잠시 굳더니 시선을 살짝 내리며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진 씨가 저랑... 아이를 버리고 갔는데 무슨 복이 있겠어요?”

말을 마치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당황했다.

한 마디에 어떻게 울어버릴 수가 있지?

“윤지원!”

강유형이 강한 어조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휴지를 꺼내 조나연에게 건네며 말했다.

“생각하지 마. 지금 울면 아이에게 좋지 않아.”

“석진 씨가 있었다면 이렇게 혼자 외롭게 밥 먹을 일도 없었을 텐데.”

조나연이 말하며 강유형이 건넨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미안해요. 임신해서 감정 기복이 심해요. 분위기 망쳐서 죄송해요. 그만 가볼게요...”

그녀가 일어서려 하자 강유형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네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래. 게다가 음식도 이미 주문했잖아. 이곳 생선구이 한번 먹어봐. 정말 맛있어.”

강유형이 그녀의 손을 놓고 생선 살을 집어 그녀의 접시에 올려주려 했다.

이를 본 내가 말했다.

“강유형, 왜 네 젓가락으로 나연 씨한테 음식을 집어줘? 공용 젓가락을 써야지.”

내 말에 강유형의 생선을 든 손이 공중에서 멈췄고 분위기가 순간 어색해졌다.

조나연이 강유형을 잠깐 쳐다보더니 배려심 있게 말했다.

“유형 씨,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먹을게.”

강유형은 생선을 자기 접시에 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내 접시를 가져와 생선 살을 집어 가시를 발라냈다.

예전에 나는 생선 가시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강유형이 있을 때면 항상 그가 내 생선 가시를 발라주곤 했다.

강유형은 항상 이랬다. 한 대 때리고 사탕 하나를 쥐여주는 식이었다.

“지원 씨, 유형 씨가 정말 잘해주네요.”

조나연이 감탄했다.

“나한테 잘 안 해주면 누구한테 잘해주겠어요.”

나는 생선 살을 집어 입에 넣고 한 입 먹은 뒤 계속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잘해준다면 그건 문제겠죠. 그렇죠, 나연 씨?”

조나연이 다시 강유형을 힐끗 보며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이 눈빛과 말투... 내가 눈이 멀지 않는 한 그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나연 씨, 아이는 몇 개월 됐어요?”

나는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강유형이 나를 불렀다.

“지원아, 네 거위 간 식어가. 식으면 맛 없어져.”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내가 조나연에게 이 질문을 하는 걸 막으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는 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내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을까?

만약 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는 이 여자에게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의 약혼녀는 나였다.

“지금은 맛이 별로야.”

그가 조나연에게 거위 간을 사다 줬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나는 한 입도 먹고 싶지 않았다.

강유형은 내 말투가 좋지 않음을 알아채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말없이 그렇게 대치하고 있었다.

방금 전 식당에 들어섰을 때의 따뜻하고 행복했던 분위기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역시 두 사람의 세계에는 제삼자가 끼어들 수 없나 보다.

마침 그때 조나연이 주문한 거위 간과 디저트 그리고 음료가 나왔다. 종업원이 음식을 놓고 정중하게 물었다.

“거위 간을 잘라드릴까요?”

“괜찮아요.”

조나연이 거절하고 강유형을 보며 말했다.

“유형 씨가 잘라줘. 전에도 항상 유형 씨가 잘라줬잖아. 크기도 딱 좋게.”

“나연 씨.”

나는 다시 말을 꺼냈다.

“식당에서 음식 자르는 서비스를 해주니까 유형이한테 부탁하지 마세요. 어차피 제 생선 가시도 발라야 하고 바쁠 테니까요.”

조나연은 순간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미안해요 지원 씨.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제가 직접 자르면 돼요.”

“윤지원!”

강유형이 또다시 강한 어조로 나를 불렀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나연이는 다른 사람 손을 거친 음식을 안심해서 먹지 못해. 지금 아이를 임신 중이라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 해.”

“허.”

나는 즉시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연 씨 앞에 있는 음식 중에 다른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게 뭐가 있어?”

강유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조나연은 곧바로 억울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유형 씨, 지원 씨한테 화내지 마. 이러면 내가 그만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녀가 다시 일어서려 하자 강유형이 또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신경 쓰지 마. 지원이가 생리 기간이라 기분이 안 좋은 거야. 평소에도 말투가 이래.”

강유형은 정말 대단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아래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정말 생리가 시작됐어. 그런데 생리대를 안 가져왔네. 가서 하나 사다 줄래?”

강유형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며칠이 생리 기간인 거 알면서 가방에 안 챙겼어?”

“내 생리 주기까지 기억하는 약혼자가 있으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은 눈에 닿지 않았다.

강유형은 화가 난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일어섰다.

“두 사람 먼저 먹어. 나 금방 다녀올게.”

식탁에는 나와 조나연 둘만 남았지만 우리 둘 다 음식을 먹지 않고 그저 침묵 속에 있었다.

몇 초 후 조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원 씨, 지금 저를 싫어하시죠?”

‘제법 눈치가 있네.’

나도 꾸밈없이 말했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당신이 정말 불편해요.”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유형은 제 약혼자예요. 우리는 곧 혼인신고를 할 거고요. 당신이 자꾸 강유형을 찾고 심지어 한밤중에 불러내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요?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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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씨, 오해하지 마세요.”조나연의 말에 나는 웃고 싶었다.방금 그녀가 침구를 고를 때 한 말을 생각하니, 그녀가 묵인한 남자친구가 강유형이었다.“강유형에게 사주시는 거예요?”그녀가 선택한 침구는 블루 그레이 색으로 확실히 강유형이 좋아할 만한 색상이었다.그러나 그건 예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나에게 동화되어 그가 좋아하는 색이 많이 밝아졌다.조나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몇 초를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제 남동생에게 사주는 거예요.”나는 이런 수작을 한 그녀와 실랑이하기 귀찮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강유형은 나연 씨와 같이 살겠대요?” 조나연의 아이가 사고가 나면 안 된다고 했으니 24시간 지키는 것이 가장 적합하겠지.“지원 씨,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조나연은 감정이 격해졌다.“강유형에게 침구까지 샀는데, 왜 그런 말을 못 하죠?”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반문하였다.“지원 씨는 너무 질투심이 많네요. 유형 씨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조나연의 말에 나는 웃었다.“왜 웃어요?그녀는 억울하면서도 경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말했다.“강유형은 아무리 저를 좋아한다고 해도 남의 유혹에 잘 넘어가더라고요.”“지원 씨의 말이 듣기가 거북하네요.”조아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제 말이 틀렸어요? 나연 씨는 어제 저에게 해명한다고 회사에 찾아왔지만, 사실은 강유형을 만나고 싶은 거죠?”어젯밤에 나는 꿀잠을 잤지만 아침에 일어난 후 문득 깨달았다.조나연이 어제 회사에 나타나서 일부러 남의 차에 치여 넘어진 것이다. 이로써 강유형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걱정하게 하고 끌어안게 한 것이다.조나연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어떻게 저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세요?”이에 나는 반문을 하였다.“그럼 강유형이 어제 왜 커피숍에 나타났는지 변명해 보세요.”조나연은 순간 입을 다물고 눈에는 나에게 들킨 난감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화

    물건 사러 갔다가 조나연 같은 여자 때문에 기분이 잡쳤지만 내가 밥 먹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곱창국수 한 그릇을 먹은 후, 회사에 갔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강우형의 어머니인 김희연의 전화를 받았다.내가 이틀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아서 전화하는 것은 정상이었다.“아줌마.”“지원아, 네 친구 집에만 있지 말고 오늘 집에 들어와. 아줌마가 김치만두를 만들었어.” 김희연의 말에 나는 웃고 싶었다. 강유형은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는 핑계를 대신 찾아준 듯하다.나는 이미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했기에 강씨 저택에 가서 짐도 정리해야 했다. “아줌마, 오늘 저녁에 돌아갈게요.”곧 퇴근할 때 이소희가 다가왔다.“지원 님, 괜찮으세요?”“왜요?”나는 어리둥절했다.“회사에서 늘 가십거리나 헛소문이 많잖아요. 그런 거 듣지 마세요. 강 대표님이 지원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 눈을 봤잖아요.”이소희의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내밀었다.무슨 의미인지 안 그녀는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리 줘요.”나의 압박하에 이소희는 핸드폰을 주면서 그녀들의 비밀 채팅방을 오픈했다. 내용은 어제 직원들이 논의한 것과 비슷했으나 조나연과 강유형의 과거 정보까지 캐냈다.강유형, 조나연, 그리고 조나연의 돌아가신 남편 임석진은 대학 동창일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에 삼각관계라고 하였다.내가 처음 들은 정보였다. 가십거리이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핸드폰을 이소희에게 돌려주고 나는 운전해서 떠났지만 강씨 저택에 돌아가지 않고 신지태를 찾아갔다.그는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도착할 때 그는 마침 당구를 치고 있어서 나를 보자 같이 치자고 하였다.“두 판 할래?”예전에 강유형과 온 적이 있었는데 당구도 강유형이 가르쳐준 것이다.나는 겉옷을 벗고 큐대를 잡고 신지태와 같이 당구를 쳤다.“잘하네. 역시 훌륭한 스승 밑에서 잘 배웠어.”그는 강유형을 칭찬한 것이다.“지태야, 대학교 때 강유형과 같이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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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50화

    ‘내가 골탕을 먹였다고?’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음표를 보냈다.[안석 선배가 왔어!]안리영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곧장 호텔 사건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답장을 보냈다.[내가 만들어 준 둘만의 시간을 잘 즐겨.][즐길 시간이 어딨어, 나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해!]‘아, 진짜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하지만 안리영은 일부러 일을 피하는 게 아니었고 정말로 수술이 있었다.사실 다른 의사에게 맡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구안석이 몇 달 동안 연락도 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했는데 이제 와서 그가 돌아왔다고 해서 그녀가 바로 일정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술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수술을 마친 안리영은 제일 먼저 휴대전화를 확인했지만 메시지 창은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구안석과의 대화방을 열어 보았지만 대화는 그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에서 멈춰 있었다.‘몇 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없었다고? 설마... 진짜로 화난 거야?’안리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평소처럼 휴게실로 향했다.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휴게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 불빛 아래 POLO 셔츠에 슬랙스를 입은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구안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수술은 잘 끝났어?”안리영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며 힘없이 대답했다.“응, 잘 끝났어. 그런데... 여기서 뭐 해?”“너 기다리고 있었어.”그의 짧은 대답에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나도 원래 이따 찾아가려고 했는데...”“정말... 올 생각이 있었어?”그 말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안리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치며 애써 피식 웃었다.“나, 먼저 씻고 옷 갈아입을게.”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리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구안석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9화

    그들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계좌번호를 보여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1억 2,000만 원을 이체했다.“빚 문서 내놔.”내가 손을 내밀자 그들은 약속대로 빚 문서를 건네며 비웃듯 말했다.“와, 생각보다 돈이 많네.”나는 문서를 확인한 후, 차갑게 경고했다.“난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다시는 소희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마. 만약 또 한 번 찾아오면 그땐 죽을 줄 알아.”내 단호한 태도에 그들은 더 이상 헛웃음을 짓지 않았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지자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가던 길에 한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돈 많은 친구가 있는데 대체 왜 사채를 빌린 거야?”“꺼져.”나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이소희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온몸을 떨고 있었다.“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나는 그녀를 조용히 끌어안았고 그제야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흑... 으아아아아...”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며 그저 울게 놔두었다.이소희가 실컷 울고 난 후, 나는 그녀를 조용히 그녀의 원룸 안으로 데려갔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곰팡이가 핀 벽지, 낡고 좁은 침대, 허름한 책상 위에 놓인 남은 음식들.한때 당당하고 씩씩했던 그녀가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거칠었고 피부는 갈라져 있었으며 곳곳에는 작은 상처도 남아 있었다.그녀는 돈을 갚기 위해 거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나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그녀에게 샤워를 시키고 새 옷을 입힌 뒤, 함께 침대에 누웠다.그제야 이소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용씨 가문이야.”“뭐?”“그놈들, 다 해동 용씨 가문의 사람들이라고.”순간, 내 머릿속에 용진표의 얼굴이 떠올랐다.그 집안의 돈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8화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나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문을 두드리던 세 명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하나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와, 임도에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다른 남자는 비웃으며 말을 던졌다.“아가씨, 여기 방 빌리러 왔어? 아니면 저 안에 있는 그 여자랑 아는 사이야?”나는 차갑게 시선을 던지며 냉정하게 말했다.“내가 먼저 물었잖아?”그러자 문을 두드리던 남자가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우리는 예쁜 여자를 찾으러 왔지. 딱 당신 같은 사람을 말이야.”그는 말하며 내 턱을 건드리려 손을 뻗었다.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피했다. 그러자 그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성격 있는 여자네. 난 이런 여자가 더 좋더라.”그는 곧바로 옆에 있는 남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오늘, 헛걸음한 건 아니겠어.”그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놔둬! 건드리지 마!”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이소희가 있었다. 그녀는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면서 주저 없이 남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이 미친놈들아, 당장 꺼져!”그러나 남자들은 오히려 비웃었다.“하필이면 네가 알아서 나와 주네? 우리가 널 찾고 있었는데.”그들은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나는 바닥에 있는 벽돌을 주워 들고 그대로 남자들에게 던졌다.“아, X발!”한 명이 벽돌에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어쩌면 진정우가 떠난 후, 난 두려울 게 없어진 걸지도 모른다.한 남자가 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하며 그에게 강하게 발차기를 날렸다.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정확히 급소를 가격당했고 두 손으로 급소를 감싸며 뒹굴었다.남은 두 명이 이소희를 잡으려 하자, 나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외쳤다.“돈 필요하면 움직이지 마.”내 말에 그들은 멈칫하더니 눈을 번뜩이며 나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7화

    이런 부류의 남자는 언제나 돈 많고 외모가 뛰어난 여자에게만 관심을 두는 법이다.윤시안이 나를 알아본다는 건, 분명 나에 대해 미리 조사했거나,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왜 당신을 찾아온 것 같아요?”윤시안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이소희 때문이겠죠?”역시, 나와 이소희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고 있었다.“맞아요. 소희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경찰에게 진술한 것 외에도 더 숨기고 있는 것이 있지 않나요?”하지만 윤시안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제가 꼭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이 상황에서도 거래하겠다는 건가.’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조건이 뭔데요?”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2억이요? 혹시라도 협박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돈을 어디에 쓰시려고요? 지금 교도소에 계시면서 그 돈을 사용할 곳이라도 있어요?”그러자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한테 주실 필요 없어요. 부모님께 주시면 됩니다.”‘이 인간은 쓰레기지만 효심은 있네...’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런데 부모님께서 그 돈을 받을 것 같아요? 제가 돈을 건네려 하면 두려워서 도망치시지 않을까요?”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윤시안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한참 후, 힘없이 입을 열었다.“저는 소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돈을 빌린 것뿐이에요.”“그렇다면 왜 소희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고 했을까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정말 효심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걸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한 일 때문에 부모님까지 손가락질받으며 사시는 건 알고 계시죠?”그 순간, 윤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부모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6화

    이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건, 내가 화장실에서 얼굴에 잔뜩 묻은 물을 닦고 있을 때였다.“언니...”그녀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아는 이소희라면 평소엔 마치 작은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내던 아이였는데.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때의 자살 시도가 지금의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너 계속 전화 안 받으면 내가 직접 찾아갈 거야.”“언니, 오지 마. 난 괜찮아.”그녀는 다급하게 나를 말렸다.나는 손에 들고 있던 휴지를 버리고 세면대에 기대어 말했다.“괜찮으면 내가 왜 너한테 수십 통씩 전화를 걸었겠어. 이제 좀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소희는 한참 후에야 힘없이 입을 열었다.“언니, 나 지금 완전히 빈털터리야. 그리고... 빚이 거의 2억 가까이 돼.”나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강진혁에게 들었는데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속아 모든 걸 잃었다.“...그래서 자살을 생각한 거야? 네 목숨이 2억보다 못해?”“언니... 그 2억 중에는 인터넷 대출도 있고 신용카드도 있고 게다가... 사채도 있어.”그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어졌다.“그 사람들이 매일 협박 전화를 하고 온라인에 내 신상을 퍼뜨렸어.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찾아갔어.”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 있었다.“그렇게 힘들었으면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지.”그녀에게 빌려주는 돈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 돈을 줬다면 그녀가 죽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 그때 내 휴대전화가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혹시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못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후회를 해도 소용없어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차분히 물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임도에 있는 이유가 돈을 갚기 위해서야?”“응...”낯선 도시에 와서, 변변한 학력도 없는 그녀가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겠는가.월급이 200만 원이라 해도, 2억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5화

    문득, 나도 저런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임석진의 집을 떠난 후, 나는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소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강진혁이 준 정보가 틀릴 리 없었다. 이소희가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아마도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서겠지.나는 곧장 문자를 보냈다.[소희야,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내 전화 좀 받아줘.]하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읽지 않았다.이제 남은 방법은 직접 찾아가는 것 하나뿐이었다.나는 출근 중이었지만 어차피 회사에서는 나를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별 고민 없이 임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그런데 막 표를 결제한 순간 허진호가 등장했다.“윤 부장, 요즘 참 한가하신가 보네요?”물잔을 들고 내 맞은편에 앉은 허진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분명 실시간 검색어를 본 게 틀림없었다.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혹시 제 업무량을 늘리실 생각인가요?”“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그는 천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너무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쓸데없는 사고가 터질 수도 있잖아요. 괜히 사고 치셨다가, 혹시라도 정우 씨가 무덤에서 튀어나와 저한테 따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허진호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그럴 일 없을 겁니다.”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놀이공원의 조명 문제를 수없이 곱씹어 봤고 나는 진정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하지만 내 확신과는 별개로, 허진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어쨌든, 더는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규칙대로 근무하세요. 회사 규정 어기시면 처벌이 있을 겁니다.”그가 드디어 대표다운 태도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물었다.“처벌이라면... 벌금인가요?”벌금? 그거야말로 나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중 하나였다.안리영이 늘 말했다.“너는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삼무인간이야. 그 많은 돈 다 쓰지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4화

    임석진의 부모님은 내 질문에 순간 당황한 듯 얼어붙었다.그들은 조심스럽게 나를 훑어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누구세요?”분명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아마 나이가 많아 기억이 흐려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석진 오빠 친구예요. 오빠에게 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한번 찾아왔어요.”내가 정체를 밝히면 아예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려 할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돌렸다.그들의 표정에는 의심과 불안이 가득했다.“우린 당신을 본 적도 없고 석진이도 당신 같은 친구에 대해 말한 적 없어요.”요즘 같은 세상에 사기꾼이 많으니, 이렇게 신중한 건 당연한 일이겠지.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내밀었다.“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괜찮아요, 그냥 뵙고 싶었을 뿐이에요. 별다른 의도는 없어요.”하지만 그들은 선물을 받기는커녕 손사래를 쳤다.“우린 당신을 모릅니다. 받을 이유도 없어요.”말을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나는 그들을 멀어지는 시선을 가만히 바라봤고 굳이 따라가서 말 붙일 생각은 없었다.이 시점에서 내가 더 접근하면 오히려 더 불안해할 게 분명했다.그렇다면... 아이는 어디 있는 걸까? 집에 있고 보모가 돌보고 있는 걸까?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서 나는 곧장 단지 내 관리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가져온 선물들을 맡기며 아이에 대한 정보를 슬쩍 떠봤다.그러자 관리소 직원이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그 집 아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매일 어르신 두 분이 데리고 나와 놀아주던데요. 저기 보이세요? 저쪽 놀이터에서요.”직원이 손가락으로 놀이터를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한 중년 여성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최근에는 가끔만 나오더라고요. 요즘은 가정 의사를 불러서 돌보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3화

    “네가 직접 화장하는 걸 봤잖아. 그냥 우연일 수도 있어.”강진혁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여전히 관람차 위에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관광객들이 하나둘 떠나고 화려하게 빛나던 조명도 점차 밤과 함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모든 것이 다시 원래의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자, 나도 천천히 관람차에서 내려왔다.강진혁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나를 부축했고 시선은 내 얼굴을 깊이 탐색하고 있었다.아마도 내 감정을 읽어내려 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관람차 위에서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이제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늦었어. 이제 가자.”그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놀이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떠올라 물었다.“오빠, 소희에 대한 소식... 알려주신다면서요.”강진혁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내게 문자를 보냈다.“소희는 지금 임도에 있어. 다른 정보는 직접 연락해서 알아봐.”곧바로 핸드폰 알림이 울렸고 새로운 전화번호와 주소가 전송되어 있었다.“고마워요, 오빠.”나는 감사 인사를 건네고 곧장 몸을 돌렸다.“지원아.”강진혁이 나를 부르면서 그윽하게 쳐다봤다.“...잘 쉬어.”하지만 나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놀이공원이 유명한 핫플레이스인 만큼, 이번 사고는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하지만 정작 내 이름이 거론된 이유는 놀이공원 때문이 아니었다.[윤지원, 바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호텔 투숙?]기사에는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고 마치 몰래 찍은 듯한 각도로 화면이 잡혀 있었고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촬영된 것이었다.날 망가뜨리려고 한 짓이라는 게 너무 뻔했다.솔직히 나는 상관없었다.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고 어제 안리영에게도 "차라리 내가 먼저 폭로하고 말지." 라고 했으니까.하지만 내가 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나를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42화

    나는‘해동 아이’라 불리는 대형 관람차 앞까지 내달렸다.놀이공원이 개장한 이후, 이곳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소 중 하나였고 매일 긴 줄이 늘어섰다.“태워줘.”나는 이곳의 주인이었다. 내가 원하면 관람차는 나를 위해 멈출 수도, 움직일 수도, 최고점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다.천천히 상승하는 관람차 아래에서 강진혁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날 따라오는 듯한 시선을 느끼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놀이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높은 곳에서 놀이공원을 내려다본 건, 진정우가 직접 조명을 조정했던 날이었다.그때 나는 그와 함께 있었고 우린 단순히 조명만 감상한 것이 아니었다.그날 밤, 우리는 찬란한 불빛 아래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감정이 깊어지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고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했다.‘하지만 이제는... 아니! 진정우는 아직 살아 있어.’방금 전의 조명은 분명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관람차가 최고점에 다다르자, 놀이공원뿐만 아니라 해동시 전체가 내려다보였다.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그런 거창한 풍경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진정우! 나랑 결혼하고 싶다면... 돌아와!”나는 손을 높이 들어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반지를 흔들었다.“네가 직접 주문한 우리 커플링이야. 난 한 번도 빼지 않았어. 네가 준 팔찌도 그대로야. 이제 너만 돌아오면 돼.”내 목소리는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마치 나의 외침에 반응하듯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였다.아래에서는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비명 같기도 했고 놀람 섞인 감탄 같기도 했다오늘 밤의 조명은 예상치 못한 최고의 공연이 되었다.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열광하며 아예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삶이란 뜻밖의 일들로 가득 차 있으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기는 편이 낫다. 놀이공원 측으로 환불을 요구하던 고객들도 모두 취소했다는 연락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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