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강유형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고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내 안색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 아파?”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말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목구멍에 맺힌 쓴맛을 삼키며 말했다.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릴게.”

강유형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는 내가 그와 신지태의 대화를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난 목이 메어 말을 잇기 힘들었다.

“난 내가 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존재가 될 줄은 몰랐어, 강유형...”

“모든 사람들 눈에는 우린 이미 부부야.”

강유형이 내 말을 끊었다.

‘그래서 뭐? 그 사람들 때문에 나랑 결혼하려는 건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가 나를 사랑해서, 나와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결혼하는 거였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강유형의 손에 든 펜이 닫혔고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든 혼인 신고서에 머물렀다.

“다음 주 수요일에 혼인신고 하러 가자.”

이 말은 내가 듣고 싶었 거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그것도 아주...

난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강유형,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나도 그럴 필요 없고.”

“윤지원!”

그가 날카롭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움찔했고 고개를 들어 그의 짜증 난 듯한 눈과 마주쳤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혼인 신고서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턱이 굳어졌다.

“이리 줘.”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분위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몇 초 후, 그가 일어나 내게로 왔고 내 앞에 서더니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지태랑 한 얘기는 그냥 농담이었어. 넌 왜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정말 농담이었을까?

“너도 알잖아. 남자들에게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 거.”

그의 손이 내 팔을 잡더니 천천히 내려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혼인 신고서를 빼앗아 갔다.

“앞으로는 남의 말 함부로 믿지 마.”

그가 돌아서서 혼인 신고서를 서랍에 넣고 옆에 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난 잠깐 나갔다 올게.”

요즘 그는 자주 이렇게 나갔고 한번 나가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강유형.”

내가 그를 불러 세웠다.

“넌 날 좋아해?”

강유형이 마침 내 옆을 지나가다 멈춰 섰고 그의 깊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잠시 후 그가 웃자 왼쪽 뺨에 보조개가 살짝 드러났다.

강유형의 웃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따뜻한 미소였으니까.

처음 강씨 집안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그가 웃으며 다가와 나를 ‘꼬마’라고 불렀었지.

아마도 그 웃음이 날 따뜻하게 했고 그때부터 나는 그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난 그의 웃음이 좋았다.

내 머리 위로 무게가 느껴지면서 그의 큰 손이 내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당연히 좋아하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반 도시를 돌아다니며 네가 좋아하는 구운 배를 사다 주고, 생일마다 네가 좋아하는 장미꽃을 선물하고, 너랑 별똥별도 보러 가겠어? 게다가... 너랑 결혼하려고 했잖아.”

매번 내가 흔들릴 때마다 강유형의 이런 미소 한 번, 달콤한 말 몇 마디면 나는 항복해 버리곤 했다.

나는 마치 연처럼, 실의 한쪽 끝을 그가 단단히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내 감정을 조종했다.

하지만 아까 들은 말들이 결국 나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고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마음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내 머리를 쓰다듬던 큰 손이 멈추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큰 손이 내 머리에서 내려와 볼을 감싸 쥐었고 그는 부드럽게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퇴근하고 같이 집에 가자. 너 생선 좋아하잖아? 신선한 연어를 보내달라고 했어. 저녁에 해줄게.”

이렇게 말하고 강유형은 떠났다. 이전의 수많은 때와 마찬가지로 내 질문을 피해 가면서.

내 코끝에는 여전히 그의 핸드크림 향이 남아있었고 볼에는 그의 손바닥 온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느 때보다 차가웠다.

그는 나에게 잘해줬고, 나를 아끼고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좋아함은 가족 간의 애정 같았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

반면에 내 마음속엔 오직 그뿐이었고 10년 동안 그를 사랑해 왔다.

‘그래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강유형과 결혼하고 몇십 년간 함께 한 부부처럼 잠자리조차 흥미 없는 결혼생활을 할까?

아니면 그가 진정한 사랑을 찾도록... 떠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