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네.”강하영은 양다인을 상대하기도 귀찮아 유치원으로 향했다.“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지? 좋아, 내가 인정하도록 만들어 줄게!”강하영의 머릿속에 악몽을 꿨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강하영은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양다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하게 웃기 시작했다.“왜? 내가 애들이라도 데려갔을까 봐 두려워?”강하영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그럴 능력도 없으면서.”“그건 내가 판단해. 강하영, 내가 한 번을 이겼으면 두 번째도 내가 이겨!”음산하게 웃는 양다인을 향해 반박하려던 순간 커다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하영은 침착한 모습으로 웃으며 물었다.“양다인, 또 어떤 수법으로 나를 상대할 생각이야? 또 살인 현장이라도 꾸며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내가 똑같은 수법을 두 번이나 사용할 것 같아?”양다인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당연히 네 약점을 잡아야지! 정희민을 모르는 건 아니지? 지금 내가 정희민 엄마야! 내가 정희민을 납치하면 올 거야? 안 온다면 정희민한테 손을 쓸 수밖에 없고, 네가 온다면 평생 감옥에서 썩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양다인의 마지막 두 마디는 정확하게 양다인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남자의 귀에 들어갔다.“희민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남자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고,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양다인 귀에 들리는 순간 양다인은 고개를 홱 돌렸다.정유준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양다인은 빠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미처 생각 없이 말을 툭 내뱉었다.“유준 씨, 다 들었어?”정우준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어두워졌다.“희민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묻잖아!”정유준의 고함에 양다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유준 씨, 나는 그냥 강하영에게 겁을 주려고 한 얘기였어! 유준 씨도 강하영이 돌아온 걸 알고 있었어? 살인자 주제에 유치원까지 찾아온 건, 분명 희민이한테 무슨 짓 하려는 게 틀림
저녁.강하영은 약속 장소인 라운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캐리가 강하영을 발견하고는 신사적인 태도로 강하영에게 의자를 빼주며 웃었다.“우리 사랑하는 G,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강하영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봤다.“캐리, 안 하던 짓 좀 하지 마. 습관이 안 되니까.”하영의 말에 캐리는 헤헤 웃었다.“어때? 방금 내 표현 괜찮았지?”‘표현?’강하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보았다.“무슨 표현?”캐리가 입술을 내밀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저기 봐봐. 네가 그렇게 미워하고 사랑하는 남자 맞지?”강하영은 깜짝 놀라며 캐리가 가르킨 방향을 바라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배현욱과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정유준이 한눈에 들어왔다.방금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강하영은 입술을 실룩거렸다. 정유준이 있는 줄 알았다면 죽어도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강하영은 억지로 시선을 거두고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캐리를 보았다.“내가 미워하고 사랑하는 남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캐리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거렸다.“네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기어이 나한테 사진까지 보여주며 얘기해 줬잖아.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역시 술이 문제야!’캐리가 갑자기 강하영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였다.“내가 계속 애인인 척 연기해 줄까? 나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벽한 커플이라고 믿게 해줄게, 아마 다시는 너한테 집적…… 어…….”캐리는 말을 반쯤 하다 말고 말을 멈췄고, 강하영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대충 대답했다.“됐어. 어차피 의심병이 많은 사람이라 믿지 않을 테니까, 괜히 일 만들지 마.”“허, 내가 의심병이 있는 줄은 몰랐네?”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차가운 말투에 강하영은 흠칫 놀랐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자 정유준이 강하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정 대표님, 몰래 엿듣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닌 것 같네요!”“대놓고 들은 건데?”정
정유준의 물음에 캐리는 순간 흥분하며 입을 열었다.“강하영은 나한테 신 같은 존재죠!”배현욱은 옆에서 더욱 부추기기 시작했다.“뭔데요? 얘기해 봐요.”캐리가 한숨을 내쉬었다.“하영은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하영을 금방 알았을 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했어요. 애들한테는 제일 좋은 것만 먹이고 자신은 마른 빵만 먹으며 지냈어요. 하영이와는 패션 디자인 경기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하영이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었죠. 내가 당신을 도와 이 경기에서 이기게 해주면 1,500만 달러만 줄 수 있냐고. 그 경기는 제가 10년 동안 노력해서 얻은 명예가 달린 경기였기 때문에 1,500만 달러가 아니라 만달라를 요구해도 줄 수 있었죠! 나중에 하영이가 저의 디자인 원고와 샘플 옷에 몇 군데만 손을 봐줘서 제 작품을 표절한 사람을 이길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하영은 저의 신이 되었죠!”캐리의 말에 정유준과 배현욱은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배현욱은 그제야 강하영이 오후에 했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이렇게 보면 정유준의 고통은 강하영이 처참하게 살아온 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정유준은 끝없는 자책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기 시작했다.강하영은 방금 속을 비우고 세면대를 짚고 양치질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하영의 뒤로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거울 속으로 정유준이 눈시울을 붉힌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강하영은 깜짝 놀라 술이 깨는 기분이 들며 몸을 돌렸다.“무슨 일이죠?”“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약간 잠긴 듯한 정유준의 말투에 강하영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무슨 말이요?”“그렇게 힘들게 살았다고 왜 얘기하지 않았어?”“별로 얘기할 것도 없어요.”정유준은 마음이 아픈 듯 목소리마저 떨려왔지만 강하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하영,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항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정유준이 잘못을 인정하자 강하영의 가슴이 덜
정희민은 휴식 시간을 틈타 강세준에게 자신이 찾은 자료를 보여줬는데, 강세준이 한참 훑어보더니 세준의 밝고 검은 눈동자에는 분노가 넘치기 시작했다.“이게 바로 엄마와 양다인 사이에 있었던 일이야?”“빠뜨린 건 없는지 모르겠네.”정희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세준은 분노했다.“양다인은 정말 괘씸한 여자네! 엄마 대신 나쁜 아빠 생명의 은인인 척하고, 심지어 엄마를 사칭하여 외삼촌 동생이라고 거짓말까지 해?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건 바로 너를 데려간 거야!”정희민은 비록 언어 전달 능력이 부족했지만 그의 얼굴에도 싸늘함이 스쳤다.“그것뿐이 아니야.”정희민이 노트북 화면을 전환하자 갑자기 CCTV 영상이 나타났다.5년 전에 카페에 들어간 강하영이 30분도 안 돼서 이상한 사람들한테 끌려 나와 카페 뒷문에 주차된 검은색 차에 올랐다.정희민은 검은색 차의 도로 주행 CCTV 화면도 찾았는데, 차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유림아파트였다.두 남자는 재빨리 강하영을 끌고 아파트에 들어갔고, 그 뒤로 양다인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5분도 안 되어 짧은 머리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따라 들어갔는데, 정희민이 손을 들어 그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남자가 바로 살해된 임해진이라는 사람이야.”강세준은 인상을 찌푸리고 CCTV를 뚫어지게 주시했는데, 약 한 시간 뒤에 피투성이가 된 양다인이 상처를 움켜쥐고 뛰쳐나왔고, 곧이어 형사들이 강하영을 연행하는 장면이 나왔다.정희민이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원래 삭제된 CCTV 화면들인데 복구하기까지 꽤 시간이 들더라고.”“엄마는 이 자식들 때문에 누명을 쓴 거야! 전부 나한테 보내줘!”정희민은 모든 자료를 강세준에게 보내준 뒤 물었다.“어떻게 할 계획이야?”“모든 걸 잃게 만들 거야!”강세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경찰서.양다인이 갇힌 뒤 며칠이 지나서야 소 노인이 달려와 관계를 통해 얼굴이 창백해지 양다인을 데리고 나왔다.차에 오른 소 노인은 분노에찬 말투로 양다인에게 말했다.“왜 또
정유준은 식탁 위에 놓인 물티슈로 느릿느릿 손을 닦았다.“양다인이 희민이를 학대해서 자폐 증상을 보이거든요.”“양다인이 희민이를 학대했다고? 아니 희민이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학대한단 말이냐?”정유준은 충격에 빠져 긴장한 표정의 정 노인을 힐끗 쳐다보았다.“때리고 욕했어요.”정 노인은 정유준의 말에 식탁을 내리치며 화를 냈다.“내가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애초에 그런 여자는 우리 정씨 집안 며느리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이야!”정유준의 미간에 짜증이 밀려왔다.“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네가 예전에 데리고 다니던 애인이 아직 죽지 않았어?”“아버지랑 무슨 상관인데요?”“살인자와 어울려 다닐 생각하지 마라! 괜히 우리 집안 명예를 실추시키니까! 하천명과의 계약도 그 여자 때문에 뒷전으로 하고 김제로 돌아온 거지?”정 노인이 음성을 높이자 정유준이 막 얘기를 하려 할 때 문밖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한 중년 남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정유준의 눈빛엔 음산한 빛이 감돌았다.중년 남자도 정유준을 힐끗 쳐다보고 공손한 말투로 정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아버지, 저 왔습니다.”정 노인의 얼굴이 바로 활짝 피며 웃음기가 떠올랐다.“주원아, 일어났어? 어서 내 곁에 와서 앉아.”정주원. 정 노인이 가장 중시하는 큰아들이자 정유준과는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로 올해 49세이다.정주원은 공손한 태도로 머리를 끄덕이며 정 노인 곁으로 가서 앉았다.정주원을 바라보는 정유준의 표정에서 싸늘하고 사나운 눈빛을 숨길 수 없었고,정주원도 마찬가지로 싸늘한 눈빛으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그런 눈빛으로 볼 필요 없어.”“그럼 어떤 눈빛으로 봐야 하는데?”정유준의 말투에는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만약 정 노인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진작에 총이라도 꺼내 정주원을 향해 쐈을 것이다!만약 정주원이 아니었다면 정유준의 어머니도 미치지 않았을 테고, 정 노인이 해외에 있는 정신 병원에 보내 20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이 지내지 않
“정주원이 언제 귀국했는지 알아봐.”정유준이 화를 억누르며 싸늘한 말투로 분부하자 허시원이 깜짝 놀랐다.‘큰 도련님이 돌아왔다고? 큰일이네, 정 어르신이 이번엔 정말 대표님의 역린을 건드렸구나.’큰 도련님은 안주인의 아들이자 정 노인이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다. 만약 당시 그 엄청난 스캔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정씨 집안의 유일한 상속인이 되었을 것이다.큰 도련님은 비록 대표님과 친형제지만 상대방의 존재는 대표님에게 손톱 밑의 가시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대표님의 밀착 비서로서 대표님이 얼마나 큰도련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허시원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큰 도련님이 계속 해외에 숨어 계셨다면 대표님께서 목숨만은 살려뒀을 것이다.아크로빌.강세희는 노트북만 두드리는 오빠를 보며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오빠는 뭐가 그렇게 바빠서 나랑 놀아주지도 않는 거야?”강세준은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세희를 바라보며 웃었다.“세희야, 오빠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강세희는 궁금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무슨 일인데? 나도 알고 싶어!”강세준은 고개를 저으며 강세희의 말랑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안 돼. 우리 세희는 이런 더러운 일을 알 필요 없어.”“더러워?”더욱 궁금해진 강세희의 눈빛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얘기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오빠가 해커라고 고자질할 거야!”“…….”‘내가 졌다.’강세준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설명하기 시작했다.“어떤 여자가 엄마를 괴롭혔는데, 내가 알아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 이 여자가 모레 생일 파티를 하는데, 파티에 선물을 하나 줄 거야.”“혹시 양다인이야?”강세희는 조그만 얼굴을 부풀렸다.“맞아! 엄마의 복수뿐만 아니라 희민이 복수도 하려는 거야!”강세준이 우아하게 턱을 괴고 물었다.“오빠 생각이 어때?”“아주 좋아! 나도 오빠를 도울게!”강세희가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강세준은 어
“역시 소씨 집안의 영애답게 기품이 넘친다니까.”다들 웃으며 아부하기 시작했다.“당연하지. 우리 다인이는 상냥하고 착할 뿐만 아니라 학력마저 높잖아…….”많은 사람의 칭찬을 들으며 양다인은 우쭐한 기색을 참으며 웃었다.‘역시 이 모든 건 나만 누려야 돼!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떠받드는 사람은 나뿐이야!’높은 구두를 신은 양다인은 친구들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아한 발걸음으로 한창 양다인의 사진이 방영되고 있는 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같은 시각, 아크로빌.강세준은 노트북 앞에 앉아 양다인의 파티 행사를 지켜보는 동시에 이어폰으로 정희민과 음성통화를 했다.“말은 참 잘하네.”짜증이 섞인 강세준의 말투에 정희민은 여리여리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매우 자랑스러운 거야.”그 말에 강세준은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남김없이 드러났다.“우쭐대는 건 이게 마지막일 거야. 그러게 누가 우리 엄마를 괴롭히래?”말이 끝나자마자 양다인의 연설도 뚝 그쳤고, 강세준은 눈을 반짝였다.“희민아! 바로 지금이야!”정희민이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연회장의 화려한 조명들이 “팍-”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어둠에 휩싸였고, 유독 대형 스크린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양다인이 치마를 들고 퇴장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어두워졌어?”“양다인 씨가 뭘 준비한 게 아닐까요?”그때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양다인 씨! 혹시 서프라이즈가 있나요?”양다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굴리다가 재빨리 마이크 앞으로 걸어갔다.“죄송합니다, 여러분.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분위기를 조정하느라 작은 소동일 뿐입니다.”“역시 양다인 씨 생일은 남다르고 기발하다니까요.”사람들이 웃으며 얘기하자 양다인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러분이 기쁘게
강하영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애들 방으로 향했다.문을 여는 순간 강세준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황급히 노트북을 닫았고, 강하영은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세준아, 방금 뭘 보고 있었어?”강세준은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웃었다.“애니메이션 보고 있었어요, 엄마.”“애니메이션을 보는데 왜 그렇게 당황하며 노트북을 껐어?”강하영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강세준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엄마가 진취적이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그랬어요.”강하영은 억지로 강세준의 비밀을 엿보고 싶지는 않았다. 줄곧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그 안에 들어있는 화면은 어른이 봐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인데, 몸도 마음도 아직 어린아이들은 어떻겠는가?강세준이 인정하려 하지 않자 강하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강세준 옆으로 다가가 앉아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세준아, 엄마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해.”강세준도 점차 고개를 숙이더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엄마, 죄송해요. 확실히 애니메이션을 본 건 아니지만 저도 나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강세준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설명했고, 그런 세준의 모습에 강하영은 더욱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세준아, 만약 네가 엄마 일에 관여했다면, 네가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우리 귀염둥이들이 지금부터 벌써 인간의 어두운 면을 아는 것보다 밝고 좋은 것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 똑똑한 아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지?”강세준은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속상한 듯 작은 손으로 하영에게 팔짱을 꼈다.“엄마, 저는 엄마가 억울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나도 알아. 다만 어른들끼리 일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해. 만약 내가 너희들까지 끌어들인다면 그건 엄마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네가 엄마를 지켜줘서 아주 기뻐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