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원이 언제 귀국했는지 알아봐.”정유준이 화를 억누르며 싸늘한 말투로 분부하자 허시원이 깜짝 놀랐다.‘큰 도련님이 돌아왔다고? 큰일이네, 정 어르신이 이번엔 정말 대표님의 역린을 건드렸구나.’큰 도련님은 안주인의 아들이자 정 노인이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다. 만약 당시 그 엄청난 스캔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정씨 집안의 유일한 상속인이 되었을 것이다.큰 도련님은 비록 대표님과 친형제지만 상대방의 존재는 대표님에게 손톱 밑의 가시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대표님의 밀착 비서로서 대표님이 얼마나 큰도련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허시원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큰 도련님이 계속 해외에 숨어 계셨다면 대표님께서 목숨만은 살려뒀을 것이다.아크로빌.강세희는 노트북만 두드리는 오빠를 보며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오빠는 뭐가 그렇게 바빠서 나랑 놀아주지도 않는 거야?”강세준은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세희를 바라보며 웃었다.“세희야, 오빠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강세희는 궁금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무슨 일인데? 나도 알고 싶어!”강세준은 고개를 저으며 강세희의 말랑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안 돼. 우리 세희는 이런 더러운 일을 알 필요 없어.”“더러워?”더욱 궁금해진 강세희의 눈빛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얘기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오빠가 해커라고 고자질할 거야!”“…….”‘내가 졌다.’강세준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설명하기 시작했다.“어떤 여자가 엄마를 괴롭혔는데, 내가 알아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 이 여자가 모레 생일 파티를 하는데, 파티에 선물을 하나 줄 거야.”“혹시 양다인이야?”강세희는 조그만 얼굴을 부풀렸다.“맞아! 엄마의 복수뿐만 아니라 희민이 복수도 하려는 거야!”강세준이 우아하게 턱을 괴고 물었다.“오빠 생각이 어때?”“아주 좋아! 나도 오빠를 도울게!”강세희가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강세준은 어
“역시 소씨 집안의 영애답게 기품이 넘친다니까.”다들 웃으며 아부하기 시작했다.“당연하지. 우리 다인이는 상냥하고 착할 뿐만 아니라 학력마저 높잖아…….”많은 사람의 칭찬을 들으며 양다인은 우쭐한 기색을 참으며 웃었다.‘역시 이 모든 건 나만 누려야 돼!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떠받드는 사람은 나뿐이야!’높은 구두를 신은 양다인은 친구들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아한 발걸음으로 한창 양다인의 사진이 방영되고 있는 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같은 시각, 아크로빌.강세준은 노트북 앞에 앉아 양다인의 파티 행사를 지켜보는 동시에 이어폰으로 정희민과 음성통화를 했다.“말은 참 잘하네.”짜증이 섞인 강세준의 말투에 정희민은 여리여리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매우 자랑스러운 거야.”그 말에 강세준은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남김없이 드러났다.“우쭐대는 건 이게 마지막일 거야. 그러게 누가 우리 엄마를 괴롭히래?”말이 끝나자마자 양다인의 연설도 뚝 그쳤고, 강세준은 눈을 반짝였다.“희민아! 바로 지금이야!”정희민이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연회장의 화려한 조명들이 “팍-”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어둠에 휩싸였고, 유독 대형 스크린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양다인이 치마를 들고 퇴장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어두워졌어?”“양다인 씨가 뭘 준비한 게 아닐까요?”그때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양다인 씨! 혹시 서프라이즈가 있나요?”양다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굴리다가 재빨리 마이크 앞으로 걸어갔다.“죄송합니다, 여러분.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분위기를 조정하느라 작은 소동일 뿐입니다.”“역시 양다인 씨 생일은 남다르고 기발하다니까요.”사람들이 웃으며 얘기하자 양다인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러분이 기쁘게
강하영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애들 방으로 향했다.문을 여는 순간 강세준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황급히 노트북을 닫았고, 강하영은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세준아, 방금 뭘 보고 있었어?”강세준은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웃었다.“애니메이션 보고 있었어요, 엄마.”“애니메이션을 보는데 왜 그렇게 당황하며 노트북을 껐어?”강하영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강세준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엄마가 진취적이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그랬어요.”강하영은 억지로 강세준의 비밀을 엿보고 싶지는 않았다. 줄곧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그 안에 들어있는 화면은 어른이 봐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인데, 몸도 마음도 아직 어린아이들은 어떻겠는가?강세준이 인정하려 하지 않자 강하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강세준 옆으로 다가가 앉아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세준아, 엄마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해.”강세준도 점차 고개를 숙이더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엄마, 죄송해요. 확실히 애니메이션을 본 건 아니지만 저도 나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강세준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설명했고, 그런 세준의 모습에 강하영은 더욱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세준아, 만약 네가 엄마 일에 관여했다면, 네가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우리 귀염둥이들이 지금부터 벌써 인간의 어두운 면을 아는 것보다 밝고 좋은 것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 똑똑한 아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지?”강세준은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속상한 듯 작은 손으로 하영에게 팔짱을 꼈다.“엄마, 저는 엄마가 억울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나도 알아. 다만 어른들끼리 일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해. 만약 내가 너희들까지 끌어들인다면 그건 엄마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네가 엄마를 지켜줘서 아주 기뻐
정유준이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양다인 곁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있다면 이 사실은 누가 알아냈을까? 다시 말해 내가 높은 연봉으로 채용한 사람들은 모두 쓸모없는 놈들이란 말이야?”“IP를 추적할 길도 없고, 이번 연회장에서 사진을 뿌린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내가 그런 말이 듣고 싶은 줄 알아? 기술팀 사람들에게 당장 얘기해! 3일 안에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내지 못하면 당장 꺼지라고!”정유준이 노발대발하기 시작하자 허시원도 그저 연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네, 대표님…….”“잠깐!”허시원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정유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희민이 DNA를 검사해 봐.”정유준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실눈을 뜨고 생각에 잠기자 허시원이 이상하게 생각했다.“대표님, 작은 도련님의 DNA는 태어나자마자 대조해 봤는데 확실히 대표님 아들입니다…….”반쯤 얘기하던 허시원이 갑자기 생각이 번쩍 들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바로 병원에 가서 양다인 씨와 작은 도련님의 혈연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소 씨 저택.양다인은 집으로 끌려오자마자 소 노인에게 연속으로 뺨을 맞았다.“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수치스러운 짓을 하다니!”소 노인이 가슴을 치며 호통을 쳤다.“내 딸이 어떻게 너 같은 짐승을 낳은 건지!”“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예전에 철이 없어서 저지른 일이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울부짖는 양다인을 보며 소 노인은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내가 용서한다고 끝나는 일이야? 내가 정씨를 볼 면목이 없구나! 나중에 조상을 뵈러 갈 면목이 없다!”양다인은 끊임없이 온몸을 떨었다. 양다인도 이런 일이 하필이면 생일 파티에 밝혀질 줄은 몰랐다.그렇게 많은 명문가 자제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심지어 헤드라인 뉴스에까지 올라 모든 사람이 양다인을 천한 년이라고 손가락질했다.소씨 집안은 더욱 양다인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어 주가마저 하한가로 떨어졌고,
정희민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어젯밤 양다인한테 한 일을 강하영에게 이실직고하자 강하영은 제자리에 멈춘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아들 하나가 천재적인 해킹 기술을 가진 줄 알았는데 두 명 다 천재라고?’심지어 희민의 능력이 강세준보다 한 수 위였다.“엄마?”전화기 너머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정희민은 겁에 질렸는지 조심스레 엄마 이름을 부르자 강하영이 제정신을 차렸다.“그래, 희민아…… 너랑 세준이가 엄마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정말 기쁘게 생각해. 다만 이건 어른들 사이의 원한이니까 엄마는 너희 둘이 이 일에 끼어들거나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아. 그저 너희가 즐겁고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알겠어요. 그리고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어요…….”“뭔데?”강하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물었다.“엄마는 아빠가 우리 사이를 알게 되는 것을 막았으면 좋겠어요?”“아빠가 뭘 하겠다고 하셨어?”“저랑 양다인의 혈연관계를 알아보라고 하셨어요.”그 말을 들은 강하영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정유준의 성격에 양다인의 배신을 알게 되면 분명 희민의 신분을 알아볼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다만 양다인과 희민이가 아니라 정유준과 희민의 관계를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정유준이 뭔가를 알아차렸단 말일까?강하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희민아,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이니까 이 일은 상관할 필요 없어. 발견하더라도 우리 사이를 추측만 할 뿐이지 직접 찾아와 막무가내로 나와 너를 데리고 유전자 검사를 하지는 못할 거야.”하영은 결코 이 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반대로 정유준이 알게 되면 희민과 만나는 횟수도 많아질 텐데 왜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전화기 너머의 정희민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알았어요.”전화를 끊고 강하영은 1층으로 내려갔다.두 아이가 카펫에 앉아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갔다.“얘들아, 엄마가 일이 있어 나갔다 올게.”강세희는 얼른 몸을 일으키고 강하영의 옷을 잡아
정희민이 담담한 말투로 되물었다.“아빠,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세요?”정유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무슨 말을 어디서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만약 희민이에게 섣불리 양다인이 친엄마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희민이가 어떤 반응일지 알 수 없었다.“아빠.”정유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희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엄마가 싫어요. 세준이 엄마가 더 좋아요. 친절하고 저를 많이 관심해 줬어요. 엄마처럼 계속 때리고 욕하지도 않거든요. 심지어 양다인이 저의 친엄마가 아니길 바랄 때가 많았어요. 그 여자한테서는 엄마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거든요.”그 말을 들은 정유준은 멍해지고 말았다.‘5살짜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그러나 생각해 보면 자신의 아들이 해킹 기술 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고 있었으니 기타 면에서도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적 성숙할지도 모른다.기왕 이렇게 된 바에 정유준도 마음이 놓였다.“희민아, 앞으로 세준이네 집에 놀러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다 놀면 아빠가 데리러 갈게. 물론 거기서 지내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없어.”“아빠는 처음에 세준이네 엄마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희민의 말에 정유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내가 그런 말을 했어? 어린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 돼.”“…….”정유준이 정희민의 방을 나서려 할 때 갑자기 뒤에서 다급하게“삐삐”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소린지 궁금해 고개를 돌리니 정희민이 작은 몸으로 재빨리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진지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올라가 컴퓨터를 켰다.두 개의 작고 하얀 손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스크린에는 여러 개의 코드가 빠르게 튀어나왔고, 마지막 위치 화면에는 눈에 띄게 “GOG”라는 영어 자모가 나타났다.정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이야? 누가 도움을 요청한 거야?”얼굴이 하얗게 질린 정희민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아빠! 세준이를 구해줄 수 있어요?”“강세준?”정유준이 미간을 더
두 사람이 복도에서 3시간을 애타게 기다렸을 때, 수술실 불이 꺼지고 부진석이 걸어 나왔다.부진석은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가 있는 강하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열었다.“강하영…….”강하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수술실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임 씨 아주머니는 어떻게 됐어?”부진석이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아주머니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쇼크 상태였어. 수술은 성공적이지만 아직 위험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으니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강하영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하며 온몸에 한기가 감돌았다.“그게 무슨 뜻이야?”“그러니까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야.”부진석이 어두운 표정으로 얘기했고, 그 말을 들은 강하영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기 몸을 가늠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넘어졌다.그 모습에 소예준이 얼른 하영을 부축하며 놀라 소리쳤다.“하영아!”의식을 되찾은 강하영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무거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소예준도 마음이 아팠다.“하영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강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기 시작했다.“내가 오로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서 애들이랑 아주머니 생각을 하지 못 했어.”“하영아, 지금 자책해도 소용없다는 거 잘 알잖아.”소예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애들의 행방을 아직 모르고 있으니 벌써 쓰러지면 안 돼.”“벌써 3시간이나 지났어!”강하영은 멘탈이 무너졌는지 그저 눈물만 쏟았다.“상대방은 아이를 데려가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어! 경찰서에서 아직 소식도 없고, 아주머니도 위험한 고비에 처했는데 나 이제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띵-”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하영의 휴대폰에 문자음이 울리자, 강하영은 움찔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니 낯선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30분 줄게. 헤드라인 뉴스를 내리고 외부에 네가 일부러 양다인을 모함했다고 알려. 그렇지 않으면 네 애들도 살아남지
그 시각 정유준은 아파트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묶여 있는 강세준과 강하영이 있었고 두 아이의 입에는 미처 찢지 못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강하영의 전화에 정유준은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며 눈가에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정유준 씨, 당신이 내 아이들을 구해줘!”“음? 애들이 왜?”정유준이 흥미진진하게 묻자 강하영은 오늘 있었던 일을 정유준에게 설명해 줬다.“정유준 씨, 어떤 요구를 해도 괜찮으니 제발 애들이 안전할 수 있게 구해줘!”정유준의 목소리가 더욱 낮게 깔렸다.“내가 꼭 구해야하는 이유를 얘기해 봐.”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5년 전에 내가 출산한 아이들의 상황을 얘기해 줄게요.”“강하영, 지금 나랑 흥정하자는 거야?”정유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강세준은 한눈에 보기에도 나를 똑 닮았는데 대체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지?’“아니! 정유준 씨,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때때가 아니에요. 제발 부탁 좀 할게요.”정유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 다시 잘 생각하고 나한테 전화하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정유준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정유준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참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두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잠시 후 정유준이 턱짓으로 허시원에게 아이들의 얼굴에 있는 테이프를 벗겨주라고 지시했다.허시원이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뜯어냈는데, 강세희 얼굴에 붙은 테이프를 떼자마자 강세희는 울부짖기 시작했다.“엄마한테 데려다줘요! 아저씨 나빠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왜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아요?”강세희는 화가 나면서도 억울했지만 몸이 묶여 있던 터라 사람을 때릴 수도 없었다.핑크빛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정유준이 미간을 찌푸렸고, 눈치가 빠른 허시원이 바로 앞으로 달려가 즉시 테이프를 다시 붙였다.강세희가 똘망똘망한 눈을 부릅뜨고 읍읍 거리며 뭔가를 계속해서 뭔가를 얘기하려 애썼고, 정유준은 강세준을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