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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얘는 누구예요?

서영은 인아의 헬멧을 벗겨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이미 비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인아가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커피는 기적처럼 멀쩡했다.

“이 사람들 정말 미쳤나 봐. 이렇게 큰 회사에 커피머신 하나도 없다니, 믿을 수가 없네.”

서영은 투덜거리면서도, 인아의 손에서 커피를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

“인아 씨, 여기서 잠깐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서영은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인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남았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고, 찬 공기는 곧 겨울이 올 것임을 알리는 듯했다.

인아는 빗방울이 퍼붓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처음 유정석과 함께 유씨 가문에 들어갔던 날에도 비가 이렇게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 겁에 질린 인아는 유정석의 뒤에 꼭 붙어 숨어 있었고, 아홉 살의 희도는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때 희도는 유정석에게 이렇게 물었다.

“얘는 누구예요?”

유정석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네 신부야. 마음에 들어?”

그때 아홉 살의 희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원숭이 같은 애는 신부로 안 삼아요.”

그 시절의 인아는 말랐고,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해서 정말로 원숭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 희도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좀 더 먹어. 그렇게 말라서 어떻게 내 신부가 되겠어?”

그 말이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린 인아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인아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 출근하기 싫어지네. 나 먼저 갈게.”

연서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회사 문을 나서고 있었다. 비에 젖은 인아를 발견한 그녀는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도 인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강인아?”

연서의 말이 통화 너머로 희도에게도 들리는 듯했다. 연서는 인아를 한 번 훑어본 뒤,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희도 찾으러 온 거예요?”

인아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희도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배달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연서는 인아를 비웃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투를 깎아내리듯 이어갔다.

“희도는 인아 씨가 순수하다고 했는데, 전혀 순수해 보이지 않네요. 이렇게 젖은 채로 찾아오다니.”

연서는 인아의 젖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후, 툭 쳐내며 자기만족에 찬 미소를 지었다.

“참 안쓰러워 보여요.”

그 말의 끝에 가시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희도에게 인아 씨는 그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일 뿐이잖아요. 인아 씨는 강아지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죠?”

인아는 무겁게 입술을 깨물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씨 탓인지, 그녀의 입술은 이미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사실, 인아는 연서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희도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가 기르던 애완동물을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희도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무척 아꼈다. 출근할 때 밥을 주는 것을 깜빡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에게 밥을 줄 정도로 신경을 썼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사랑은 엄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바로 그때, 서영이 커피 배달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연서의 말을 듣고,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뒤 인아 앞으로 다가와 인아를 보호하듯 서서 연서를 쏘아보았다.

“어디 개가 짖고 있나? 왜 이렇게 시끄럽지?”

서영의 말에 연서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당신이 끼어들 상황이 아니거든요?”

연서는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서영은 코웃음을 치며 조롱하듯 대꾸했다.

“남의 인생에 끼어들면서도 이렇게 당당한 사람은 정말 처음 보네. 자랑스럽나 봐요?”

연서는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고, 서영에게 손을 뻗어 뺨을 때리려 했다. 그러나 서영이 더 빨랐다.

서영은 연서의 손을 단호하게 막았고, 연서는 균형을 잃고 하이힐을 신은 채로 비틀거리다 바닥에 넘어졌다. 연서는 발목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서영은 그런 연서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내게 손찌검을 하겠다고? 집에 가서 운동이나 더 하고 와. 그런 말라빠진 몸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인아는 놀라움에 몸이 굳었고, 연서는 서영을 증오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서영은 인아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인아 씨. 여기에 있을 필요 없잖아.”

인아는 뒤를 자꾸 돌아보았다. 그녀는 희도가 연서를 일으켜 세워주는 모습을 보았다. 희도의 눈빛에는 연서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희도는 비에 젖어 서 있는 인아에게는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서영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고, 인아는 헬멧을 쓰고 서영의 뒤에 탔다. 그들은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

소낙비가 내리치는 거리는 온통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높이 솟은 빌딩들도 빗속에 잠겨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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