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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혼해요

인아는 입술을 꼭 다문 채로 오랫동안 희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 그의 옷자락을 천천히 놓아주고, 거실의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탁자 아래 서랍을 열었다.

희도는 뒤따라가 인아가 서랍에서 꺼낸 이혼 서류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서류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희도는 그 서랍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그 서류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희도는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인아는 희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응시하며 수화로 말했다.

“이혼해요.”

희도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나랑 장난치는 거야?”

그러나 인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흔들어 수화를 이어갔다.

“장난이 아니에요. 이혼 서류는 오래전부터 주려고 했어요.”

사실, 인아는 이혼 서류를 오래전부터 건네주고 싶었지만, 늘 용기가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 무언가가 달라졌다.

혹시 친구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고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일까?

서류를 꺼내 들었을 때, 인아는 오히려 마음의 짐이 덜어진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가슴 속에 박혀 있던 가시가 드디어 뽑힌 듯했다.

희도는 인아를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확인하듯 묻기 시작했다.

“문서영 때문이야? 그래서 나랑 이혼하겠다는 거야?”

인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수화로 답했다.

“아니에요. 서영 씨 때문이 아니에요. 내가 이혼하고 싶어서예요.”

인아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확고했고, 그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희도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소파에 털썩 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 대신 빈손으로 나가. 그동안 너한테 쓴 돈 다 갚으면 이혼해줄게.”

인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결심한 듯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희도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마치 상황이 자신의 통제 안에 있다는 듯 긴장이 풀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아가 다시 내려와 카드 한 장을 내밀었을 때, 희도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희도는 눈에 분노가 서렸고, 차분하지만 화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야?”

인아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수화로 천천히 말했다.

“그동안 준 돈은 여기 다 있어요.”

희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네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가 말한 건 용돈이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너에게 쓴 모든 돈을 갚으란 말이야.”

희도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인아는 차분하게 수화를 이어갔다.

“천천히 갚을게요.”

희도는 비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네가 이 집을 나가면 혼자 살 수나 있을 것 같아? 뭘로 갚겠다는 거야?”

인아는 이혼 서류를 다시 꺼내 그의 앞에 놓으며, 전보다 더 단호한 눈빛으로 수화를 계속했다.

“우리가 이혼하면, 당신은 하연서 씨와 결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인아는 잠시 멈추며 수화를 멈췄다. 그녀는 마치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꺼내는 듯, 조심스럽게 마지막 문장을 이어갔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겠죠.”

그 순간, 희도는 폭발했다.

“그만해!”

희도는 이혼 서류를 집어 던졌고, 서류는 인아의 몸에 부딪힌 후 바닥에 흩어졌다.

희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돈을 다 갚고 나면, 그때 이혼 얘기를 해.”

그렇게 말한 후, 희도는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탄 그는 담배를 꺼내 깊게 들이마셨다. 그제서야 마음속에 가득했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벙어리가 이제 반항도 하네. 감히 먼저 이혼을 요구하다니...’

희도는 한 번도 인아에게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 스스로도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

집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차가 떠나는 소리가 희미해지자, 인아는 천천히 몸을 숙여 바닥에 흩어진 이혼 서류를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내가 놓아주기로 결심했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인아는 답답한 마음에 해열제를 다시 한번 삼켰다. 잠이 오지 않았다.

넓은 집 안에 남은 것은 인아뿐이었다.

인아는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가 넘어갈 즈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희도의 친구 방용국이었다.

용국은 인아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자마자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형수님, 빨리 큐브로 와주세요. 희도 형이 미쳤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는 끊겼고, 통화 너머로 소란스러운 배경 속에서 서영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인아는 용국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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