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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참 바보 같아

누군가 테이블 가장자리에 기대 있었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살짝 풍기며 공기를 감쌌다. 인아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로 이 카페의 사장, 문서영이었다.

서영은 178cm의 큰 키에 짧은 머리, 검은 티셔츠와 캐주얼 바지를 입고 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종종 남자로 오해받곤 했다. 그녀의 차림새는 언제나 간결하면서도 당당했고, 그런 모습이 그녀를 더욱 특별하게 보이게 했다.

인아가 처음 이 카페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서영은 장난스럽게 인아의 볼을 꼬집었고, 인아는 당황해서 크게 놀랐었다.

그때 인아는 서영이 남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영이 미소를 지으며 ‘나는 여자야’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놀라움에 웃음이 터졌다.

인아는 걸레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수화로 말했다.

“이제 익숙해졌어요.”

서영은 인아의 수화하는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다,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힐끗 살펴보았다.

서영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익숙해졌다’라는 말이 서영에게는 너무 많은 슬픔과 억울함을 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서영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인아에게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인아 씨가 좋아하는 크림 밀크티야. 오늘은 모두에게 한 잔씩 돌렸어.”

인아는 감사의 수화를 보내고 크림 밀크티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크림이 입가에 묻자, 서영은 손가락으로 그 크림을 닦아주며 또다시 인아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참 바보 같아.”

서영의 말 속에는 약간의 아련함과 애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말은 마치 무언가 더 깊은 의미를 암시하는 듯했다.

인아의 볼은 약간 통통하고, 눈은 크고 속눈썹은 길었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로 사람을 응시할 때면 마치 작은 강아지처럼 순진해 보였다.

그런 모습이 서영에게는 안쓰럽고 동시에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영은 자주 인아의 볼을 꼬집곤 했다.

처음엔 인아가 조금 어색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익숙해졌다.

익숙함이란, 때로는 무서운 것이기도 했다.

서영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인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서영은 직접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상을 찾아보고 밤새 연습하며 이제는 대부분의 수화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능숙해졌다.

하지만 인아는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소독제로 닦아내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는 말이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영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갑자기 인아의 손목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2층에 가서 나 좀 도와줘.”

인아는 서둘러 밀크티를 내려놓고 서영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들어간 방은 형형색색의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영은 단순한 카페의 사장이 아니었다. 그녀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 물론 그 ‘유명’이라는 단어는 그녀 스스로 부여한 것이었다. 집안에서 그림 그리는 걸 반대했기 때문에, 서영은 카페를 핑계 삼아 몰래 그림을 그리곤 했다.

서영은 인아를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오늘 네 일은 내 모델이 되는 거야.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인아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영은 종종 인아를 모델로 삼아 초상화를 그렸고, 인아는 그녀의 그림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났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며 내리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방 안은 고요했고, 서영은 몰입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아래층에서는 점점 바빠지는 기색이 감돌았고, 그들의 핸드폰이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다.

서영은 붓을 내려놓고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나중에마저 그리자. 내려가서 무슨 일인지 봐야겠어.”

그들은 서둘러 2층을 내려왔다.

비가 내리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카페로 몰려들었고, 가게는 어느새 만석이었다.

커피를 주문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여직원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사장님, 배달 주문이 몇 개 들어왔는데 배달원이 아직 안 왔어요. 직접 배달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한 여직원이 주문서를 들고 서영에게 달려왔다.

서영은 주문서를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많이? 알겠어, 다 가지고 와.”

서영은 가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바쁘게 일하고 있는 인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가자, 배달 가야 해.”

인아는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서영을 따라 카운터로 갔다.

두 사람은 배달용 커피 잔들을 나눠 들었다. 일부는 가까운 거리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몇몇은 먼 거리로 가야 했기에 서영은 오토바이를 탈 준비를 했다.

“커피는 인아 씨가 들고 내 뒤에 타. 내가 운전할게.”

서영은 인아에게 헬멧을 씌우고는 강제로 그녀를 오토바이에 태웠다. 인아는 우산을 챙기려 했지만, 서영은 웃으며 말렸다.

“오토바이 타면서 우산 쓰는 게 소용 있겠어?”

비는 점점 거세졌고, 천둥과 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마치 저녁같이 어두웠다.

서영의 오토바이는 비를 뚫고 거리를 달렸다. 어느 한 빌딩 앞에 도착하자, 인아는 갑작스러운 기분의 변화를 느꼈다. 그 빌딩은 바로 희도의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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