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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래도 화가 나지 않는 거야?

연서는 옆에 서 있던 인아를 힐끗 바라보다가, 인아의 목덜미에 남아 있는 희미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

연서는 속으로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여기 오지 않으면, 널 어떻게 찾겠어?”

희도는 인아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일해.”

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서를 지나쳐 카페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이곳은 인아가 간신히 찾은 일자리였다. 많은 곳에서 그녀를 거절했지만, 이 카페만이 인아를 받아주었다.

인아가 사라지자, 연서는 희도의 팔짱을 끼며 살짝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화났어?”

희도는 차에 타서 이야기하자며 차갑게 반응했다. 그의 말투는 딱딱했지만, 연서가 자신의 팔을 끼고 있어도 떼어내지 않았다.

차에 타기 전, 연서는 가방에서 작은 소독제를 꺼내 들었다. 조수석에 몇 번 뿌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소독 좀 해야지.”

그 자리는 방금 인아가 앉았던 자리였다. 연서는 그 자리가 불길하게 느껴져 내심 불쾌했지만, 겉으로는 그저 장난처럼 보였다.

희도는 연서의 행동을 무심히 바라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연서의 행동을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인아는 차가운 눈빛을 감추며 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희도가 연서를 얼마나 아끼는지, 그들의 모든 관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인아에게 매번 상처를 남겼다.

사랑받는 사람은 언제나 당당할 수 있다. 희도는 연서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해도 그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아내를 모욕하는 순간조차도.

소독이 끝난 연서는 만족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희도의 손을 다시 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됐어. 이제 화 풀어, 응? 앞으로는 이혼 얘기 안 할게.”

희도는 연서를 무척 아꼈지만, 그녀가 이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표정은 굳어졌다. 희도는 언제나 인아와의 결혼이 사랑이 아닌 책임 때문이라며, 유정석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연서는 속이 타들어 갔다.

연서는 자신만이 독점적인 사랑을 받길 원했다. 주위 사람들은 희도가 연서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있다며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연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면, 자신이 이런 비난을 받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약속?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유정석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왜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희도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 약속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희도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깊게 연기를 들이마신 그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차 안을 연기로 채웠다. 차 안에 고요가 감돌자, 희도는 차분히 말했다.

“연서야, 내가 너에게 평생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결혼하지 않더라도,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 거야.”

희도는 연서의 눈을 마주치며 덧붙였다.

“이건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이야.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약속도 지킬 거야.”

유정석은 돌아가기 직전, 희도에게 인아를 평생 책임지겠다고 맹세하라고 했다. 비록 인아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희도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희도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약속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유정석에게, 그리고 또 하나는 연서에게.

‘약속! 또 그 망할 약속이라니!’

연서는 그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속에서 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래, 너는 약속을 지킬 거라는 거 알아.”

연서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였잖아.”

희도는 마지막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으며,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연서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연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페라리는 이제 질렸어. 마세라티로 바꾸고 싶어.”

희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꿔.”

“그리고 한 달 동안 그 벙어리한테 가지 마.”

희도는 짧게 대답했다.

“좋아.”

연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출근하러 가자.”

멀어져가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던 인아는 이내 돌아서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손에 쥐여 있던 걸레는 이미 구겨져 있었다. 인아는 테이블 위에 걸레를 펴면서, 마치 구겨진 자신의 마음을 달래듯 조심스레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래도 화가 나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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