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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여기서 뭐해?

희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분하게 말했다.

“희연아, 물건은 여기 두고 우린 이만 가야겠어.”

희연은 순간 당황한 듯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왜 이렇게 서둘러? 아직 안 온 사람도 많고, 식사라도 하고 가야지.”

“아니야, 회사에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

희도는 인아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냉정했고, 그 모습에 희연은 화가 치밀었다.

희연은 희도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인아를 감싸는 모습이 이해가 됐지만, 결혼 후 희도는 그녀를 괴롭히지도, 그렇다고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 집을 떠난 이후 그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아이를 지웠을 때조차 희도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연서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희도는 여전히 인아를 보호하는 듯 보였고, 이혼을 하려는 의지도 전혀 없었다. 그 모순된 태도가 희연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차에 오른 희도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그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연기가 차 안에 서서히 퍼졌다. 인아는 그의 옆에서 조용히 앉아 담배가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 담배 연기가 옅어질 무렵, 희도는 인아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인아는 여전히 순종적인 모습이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처럼 보였다.

희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이 더 답답해졌다. 인아는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걸까? 왜 여전히 이렇게 순종적인 걸까?

“아까 희연이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희도는 담담하게 물었다. 인아는 수화로 대답했다.

“무슨 말이요?”

희도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를 가지는 것 말이야.”

희도는 인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입가를 당기며 겨우 다시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그 미소는 차갑게 굳어갔다.

인아는 수화로 조용히 이어갔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아는 어릴 때부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결국 잃게 된다는 것. 기대가 클수록 무너질 때의 고통도 더 클 뿐이었다.

어렸을 적, 인아는 생일 케이크를 간절히 원했다. 유정석이 케이크를 사다 주었을 때, 그녀는 소원을 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희연은 인아의 머리를 케이크에 처박아버렸다.

얼굴이 케이크로 덮인 채, 인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주위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들에게 케이크는 단지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희도가 아이를 가지자고 말하는 것도, 마치 그때처럼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어젯밤에 피임은 안 했지?”

희도가 묻자, 인아는 수화로 대답했다.

“피임약을 먹었어요.”

희도는 잠시 인아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인아의 손가락은 수화를 자주 하다 보니 가늘고 길었다. 그녀가 수화를 할 때 그 손가락들은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잠시 인아를 바라보던 희도는 시선을 돌리고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그럼 됐어.”

인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희도가 여전히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장희정처럼 희도도 벙어리 아이가 태어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아는 자신이 일찌감치 기대를 억누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도가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따랐지만, 그가 손을 내밀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사랑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때때로 인아는 생각했다. 차라리 희도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괴롭혔더라면 몸만 아프고 마음은 덜 아팠을 텐데.

희도는 인아를 카페 앞에 데려다주었다. 차가 멈추자, 그곳에 서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연서였다.

언제나처럼, 연서는 희도를 쉽게 찾아냈다. 연서는 키가 크고 다리도 길었으며, 우아한 웨이브가 진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멀리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연서는 희도와 인아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의 눈빛은 금세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연서가 희도의 아내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녀는 당당해 보였다.

“여기서 뭐해?”

연서가 차갑게 물었다.

희도는 연서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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