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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 유은빈, 어쩜 이렇게 잘생겼지?’

로희의 피부는 하얗고 매끈해,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물이 배어나올 듯했다. 입술은 핑크빛으로 도톰해, 본능적으로 보호해 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민우는 어느새 시선이 고정된 채, 마치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익숙한 달콤한 향기가 민우의 코끝을 스치자, 그날 밤의 거칠고 파편 같은 장면들, 그녀가 흥분하며 내뱉던 매혹적인 목소리, 잊히지 않는 향기가 갑작스레 그의 온 감각을 사로잡았다.

그는 온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팽팽한 긴장감이 온 신경을 휘감았다.

이에 로희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도, 도, 도민우가... 정말로 남자를 좋아한다고?’

‘어쩐지 여자들에게 그토록 관심이 없더니, 그날 밤 자신이 여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그렇게 분노했던 것도...’

로희는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 깜짝 놀라 민우의 품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죄, 죄송해요. 도 대표님!”

로희는 죽을 만큼 두려웠다.

“저, 저,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 내가 도민우의 비밀을 알아버렸으니, 설마 나를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간 로희를 느낀 순간, 민우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다시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터무니없는 행동을 깨닫고, 눈에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무슨 향수 썼어요?”

“향수라뇨?”

로희는 당황한 듯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저 같은 남자가 무슨 향수를 쓰겠어요?”

민우의 어두운 눈빛은 마치 심연처럼 깊고 위험했다. 눈앞에 있는 ‘유은빈'은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그저 잘생긴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목소리 또한 부드럽고 온화한, 마치 귀족 도련님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공격적이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남성다운 목소리. 그 속에 조금의 여성스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확실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남자가 언제 이렇게 다른 여자의 향기를 온몸에 묻힐 수 있단 말인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끊임없이 함께 있고, 매우 친밀한 사이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젯밤 나와 함께 있던 여자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

민우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지며 무서워졌다. 강철 같은 손아귀가 점점 세게 로희를 조여오자, 로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도, 도 대표님.”

로희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민우의 시선이 자기를 불태워 버릴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고통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도, 대표님. 너무 아픕니다.”

로희의 손목은 가늘었고, 그 어느 여자보다도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하얀 피부 위에 남은 푸른 멍 자국은 묘하게 자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말에 민우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갑자기 로희의 손을 놓아버렸고, 얼굴은 무서워질 정도로 어두워졌다.

‘젠장! 스파이일지도 모르는 겁쟁이 남자인데, 대체 왜 내가 이 사람을 불쌍하고 사랑스럽게 느낀 걸까??’

로희는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민우의 얼굴이 너무도 험악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 도 대표님, 괜찮으세요?”

“빨리 나가요.”

민우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고, 눈은 혐오와 냉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 나가라고요!”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돌변하는 거지?’

로희는 더 이상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재빨리 사무실을 나와 책상에 앉았을 때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안, 안 되겠다.’

로희는 더 이상 HSH그룹에 머물 수 없다고 확신했다. 민우는 그룹 내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이었고, 로희는 그의 능력과 지능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날 밤의 일이 언젠가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로희는 절대로 감옥에 갈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민우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결심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사직서'라는 단어를 막 적어 내려가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로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받았다.

[로희야. 은빈아.]

유재성은 흥분을 억누르며 전화를 걸어왔고 감격하며 말했다.

[네 엄마가 오늘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저녁을 준비하려고 했어.]

그 말에 로희는 순간 멈칫하며, 기쁨에 차서 말했다.

“엄마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애한테 그런 이야기 왜 해?]

이영애는 웃으며 말했다.

[은빈아, 회사 일은 잘 돼 가니? 힘들지는 않니?]

로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영애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 이웃 계숙 아주머니가 네가 HSH그룹에서 일한다고 하니 부러워 죽겠다더라.]

[우리 은빈이가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네가 HSH에서 일하는 걸 알게 되니, 엄마는 정말 기쁘단다.]

기쁨이 이영애의 목소리에서 넘쳐흘렀다. 로희는 전화기를 꽉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줬다. 그리고 이제 막 제목만 쓴 사직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없었다.

[네가 HSH 그룹에 입사한 후, 네 엄마의 상태가 정말 좋아졌어.]

유재성은 기뻐하며 말했다.

[요즘 발작도 전혀 없었고, 오늘은 계숙 아주머니와 자진해서 이야기를 나눴어.]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네 엄마가 회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더라.]

유재성은 거의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은빈아.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아빠가 너에게 미안하다.]

한 여자아이가 자신들과 함께 살기 위해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 입양아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차게 했다.

“아빠, 그런 말씀 마세요.”

로희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아빠와 엄마가 아니었으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저는 전혀 힘들지 않아요.”

며칠 후 집에 가서 식사하기로 약속한 후, 로희는 조용히 사직서를 삭제했다. 유재성과 이영애는 로희에게 은인이자 가족이었다.

그들은 로희에게 부족함 없이 잘 대해주었고, 이제서야 이영애가 겨우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기에, 로희는 자신이 사직하면 이영애가 받을 충격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막 생겨난 퇴사할 결심은 이내 접어두기로 했다.

설령 HSH그룹에서 걷는 것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울지라도, 퇴사할 수 없었다.

...

개인 비서의 높은 급여는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로희는 일찍 회사에 도착해 바쁘게 움직였다.

민우는 결벽증이 있고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민우의 코는 새 공조 시스템 필터에서 나는 미세한 냄새까지도 감지할 정도로 예민했다. 그러나 시스템을 끄면 먼지로 인해 비염이 유발될 수 있었다.

사무실 온도는 항상 26도로 유지해야 하고, 습도는 50%를 맞춰야 했다. 하지만 가습기가 뿜어내는 물안개를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래서 민우의 개인 비서는 민우가 도착하기 전에 공조 시스템을 점검하고, 온도와 습도를 미리 조절하며, 출근하기 전에 가습기를 꺼야 했다.

민우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업무에 몰두했고, 서류를 들여다보며 손을 오른쪽으로 60도쯤 옮겼다.

미리 준비된 커피가 그곳에 놓여 있었기에 정확하게 손잡이를 잡았다. 아주 자연스레 커피를 입에 대는 순간 잠시 멈췄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커피의 온도는 50도로, 농도와 맛 모두 자신의 기호에 완벽하게 맞았다.

그제야 민우는 자신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공기, 습도, 심지어 서류 배치까지 모든 것이 자기를 매우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자신의 곁에서 반년 넘게 일했던 류하늘조차도 이 정도로 완벽하게 맞춰주지 못했다.

마침 로희는 아무 소리 없이 새로 배달된 서류를 민우의 왼쪽 35cm 지점에 놓고 있었다. 로희의 동작은 가볍고 조용했다. 민우의 눈에 잠시 만족의 빛이 스쳤고, 그의 차가운 눈매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유 비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잠시 후 열릴 회의, 유 비서가 준비해요.”

HSH그룹의 총수로서 민우는 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중시했다. 로희의 능력이 뛰어나니,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설령 로희가 스파이일지라도, 민우는 과감하게 중용하는 데 겁이 없었다. 그것이 민우의 자신감이었다.

옆에 있던 백기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 유은빈, 왜 하필 스파이어야만 하는 걸까?’

로희는 그 속의 긴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민우가 전에 없이 온화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민우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 도 대표님.”

오후의 회의가 정시에 시작되었다. 회의 중에 로희는 민우의 능력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평온한 얼굴로 고위층들의 보고를 들었다.

HSH그룹이 강한 기업인 만큼, 민우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방대하고 복잡했다. 그러나 민우는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며, 단 몇 마디로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외부에서 풍채가 당당한 고위 임원들도 민우의 앞에서는 잔뜩 긴장하며, 로희는 많은 사람이 몰래 땀을 닦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기준 역시 매우 놀랐다. 로희와 민우의 호흡이 너무도 잘 맞았다. 그들은 말로 소통할 필요가 없었다. 민우가 미세한 눈짓만 줘도, 로희는 어떤 서류를 준비해 민우의 손이 닿는 곳에 놓아야 할지 알고 있었다.

한 명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조하며, 다른 한 명은 전체를 관리하며, 마치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것처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었다.

회의에 참석한 고위 임원들의 압박감은 더욱 커졌고, 작은 실수라도 지적당할까 봐 모두 바짝 긴장하며 행동했다. 민우는 여태껏 이토록 기분 좋게 회의를 마친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번잡하고 복잡한 부분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니, 민우는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요약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그 덕에 일은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졌다.

민우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했고, 능력 있고 본분을 지키는 똑똑한 사람을 더욱 좋아했다. 은빈이 너무 지나치지만 않으면,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마음이 있었다.

“잘했어요.”

깊은 눈빛을 담아 민우가 말했다.

“이번 달 인센티브로 10% 더 지급하도록 하죠.”

늘 민우의 독설에 익숙했던 로희는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아, 감,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날 밤만 아니었다면, 민우는 참 좋은 상사였을 것이다. 그는 요구가 많고 일이 많지만, 상과 벌이 명확하고 능력도 뛰어나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너무 겁이 많고, 지나치게 주눅이 든 로희의 모습에 민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기준이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도 대표님, 그 여자에 대한 소식이 있습니다.”

민우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고, 얼굴에는 옅은 살기가 서렸다.

“사무실에서 말하지.”

민우는 긴 다리로 걸음을 옮기며 떠나기 전, 잠시 로희를 바라보았다.

로희는 창백한 얼굴로 불안에 떨며 입술을 꼭 깨문 채, 민우의 살피는 듯한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들킨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지금 나는 유은빈이고, 아무도 나를 그날 밤의 여자와 연결할 수 없을 거야.’

‘괜찮아, 분명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지만, 로희의 심장은 불안에 휩싸여 요동치고 있었다.

...

낡은 주택가의 입구에 고급스러운 검은색 차량이 조용히 주차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긴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키가 크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선글라스 밖으로 드러난 민우의 얼굴선은 냉정하고 완벽했다. 그랬기에 주변 환경과 완전히 어울리지 않았다.

“저쪽 CCTV에, 그 여자가 아침에 4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백기준은 길가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사를 해본 결과, 401호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또한 401호의 세입자는 젊은 남자입니다.”

‘하룻밤?’

주변 공기에는 음식 냄새가 떠돌고 있었고, 낡은 아파트에서 흔히 나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에 민우의 이미 어두웠던 얼굴은 점점 더 검게 변해갔다.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도 불분명한 관계를 맺었단 말인가?’

민우는 내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민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감정에 불성실한 사람들, 바람을 피우는 자들이었다.

“가죠.”

이에 민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

401호 실내, 작은 서재의 벽에는 방음재가 붙어 있었고, 로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남자로 가장하며 변성기 동안 목소리를 바꾸다가, 성우로서의 재능을 발견했고, 이제는 성우로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지금 로희가 듣고 있는 것은 자신의 방금 녹음한 성우 작업물로, 문제없으면 바로 의뢰인에게 제출할 계획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알림등이 깜박이자 서재 문을 열었다. 정말로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로희는 배달이 온 줄 알고 문을 빠르게 열었으나, 문 밖의 인물을 확인하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도, 도 대표님...?”

로희의 심장은 거의 멎을 뻔했다.

‘도민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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