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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말에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걸 인지하니 곳곳에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에 대한 인내심은 전혀 없다는 증거가 눈에 보였다.

나는 그를 꿰뚫어 보려고 잠시 그의 눈을 응시했다가 더 알아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이젠 기대도 안 한다.

곽서준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내 손목을 잡아 끌었고 그가 나를 데리고 가는 곳이 드레스 룸이라는 걸 알고 거부감이 들었다.

아침에 그가 거기서 그 짓거리를 했다고 생각하니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곽서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차갑게 말했다.

“안예린, 이 꼴로 내가 널 어떻게 집에 데려가?”

고개를 숙여 몸을 살피자 조금 전까지 다림질해서 입었던 옷은 그가 한 짓 때문에 구겨져서 더 이상 입을 수가 없었다.

나와 곽서준 사이의 일은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며 타협했다.

“가서 아무거나 골라줘.”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그가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되물었고 나는 덤덤하게 받아 쳤다.

“나한테 옷도 못 골라줘?”

그가 나를 챙겨준 적은 없었다. 결혼한 후에도 내가 그를 보살폈다. 이제 갈라서는 마당에 그럴듯한 보상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어느새 흰색 드레스가 내 머리를 덮었고 매정한 그의 말은 무시했다.

“다음부턴 없어. 다른 사모님은 이런 대우 못 받아.”

다른 아내들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신윤아는 받는다.

의붓동생을 살피는 건 극진하면서 나에겐 커다란 자비를 베푸는 게 된다.

다른 집 남편들은 아내 발까지 씻겨주는데 옷 하나 골라주는 게 뭐 대수라고.

나는 머리 위에 덮인 드레스를 끌어내린 뒤 안방으로 갔고 곽서준은 따라오지 않았다. 드레스 룸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실크 천으로 된 드레스엔 달과 꽃이 그려져 있었고 몸에 걸치니 꽃밭을 누비는 듯 가볍게 하늘거렸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의 곡선을 감탄했다. 마르고 애 같은 신윤아와 다르게 26살 나는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계에 있었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극대화한 이런 드레스는 나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나는 간단히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같은 계열의 가방을 챙긴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곽서준은 무심한 표정으로 정장 차림을 한 채 소파에 앉아 있다가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이목구비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반듯했고 한데 어우러지자 타고난 고고함을 자랑하며 가만히 서 있어도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와는 다르게 그의 눈에는 나에 대한 놀라움이 없었다. 그는 손에 찬 염주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주얼리 하나 안 했네. 엄마가 보면 곽씨 가문이 파산한 줄 알겠어.”

말을 마친 그는 나를 남겨둔 채 마당으로 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곽서준의 부모님은 둘 다 나에게 굉장히 잘해 주셨는데 곽서준이 이런 일로 당할 걸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사실 난 단지 드레스 룸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조용히 따라가서 차 문을 여는데 그가 제지했다.

“뒤에 앉아.”

“왜?”

“먼저 병원으로 가. 윤아 몸이 안 좋아서 앞에 앉으라고 해.”

차 문고리를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얼굴에 머금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짧은 몇 초 사이 거대한 지진이 덮쳐온 듯 내 세상이 흔들렸다. 나는 산산조각이 난 채 뒷좌석에 몸을 욱여 넣었다.

누군가는 잔해에 깔려 죽었고 누군가는 폐허가 된 돌과 파편을 밟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신윤아는 조금 이상하게 걷는 것만 빼고는 잘 회복했다.

곽서준이 내내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나는 눈을 감고 잠든 척을 했지만 신윤아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나와 곽서준을 끌어당기며 계속 말을 걸었다.

“오빠랑 예린 언니가 데리러 와줘서 정말 기뻐요. 앞으로 어디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거 먹을 때 나 데리고 가요. 우리 가족이 오늘처럼 지내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대답하지 않고 곽서준도 말이 없자 신윤아가 다시 물었다.

“오빠도 좋죠?”

“좋아.”

곽서준의 대답으로 부족했는지 이번엔 고개를 돌려 나한테 애교를 부리듯 묻는다.

“예린 언니, 예린 언니, 예린 언니…”

“좋아요”

그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 안심이네요. 이제 다시 싸우지 마요.”

예전에는 놀리듯 귀찮은 요물이라고 했는지 이제 보니 아주 고단수다.

오빠를 중심으로, 나를 반경으로 애교를 부리며 나에게 둘 사이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목적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성공했다.

저택에 도착하자 신경숙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더니 주방으로 끌어당겼다.

내 손이 다친 것을 보고는 잡고 호호 불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다 다친 거야, 많이 아파?”

나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손을 뒤로 뺐다.

병실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기 싫어서 둘러대는데 그녀가 한약 한 그릇을 가져왔다.

“내가 며칠 전에 B시에 놀러 갔는데 거기 아주 유명한 한의원이 있길래 너 몸 챙기라고 특별히 가져왔어.”

그녀는 그릇을 내밀었고 다정한 눈빛으로 내 배를 바라봤다.

“따뜻할 때 마셔.”

신경숙은 가끔 나와 곽서준에게 보약을 챙겨주곤 했는데 손자를 무척이나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한 사람 노력으로 어떻게 아이를 낳겠나. 내가 정자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코를 막고 한약을 들이켜자 그녀가 내 입에 사탕을 넣어주었다.

“착해라.”

신경숙은 웃으며 나를 격려했다.

“이건 하준이 줘. 그 자식은 내 말 안 들어.”

만약 나와 곽서준의 결혼 생활이 정말 되돌릴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내가 놓지 못할 유일한 것은 이 가족애일 것이다.

“여보, 어머님이 한약 끓이셨어. 따뜻할 때 마셔.”

나는 쟁반을 들고 곽서준에게 다가가 옆에 쪼그리고 앉은 뒤 수줍은 척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이 손주 안고 싶나 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수줍어하기 바빴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니까.

곽진욱이 웃었다.

“아니야, 아이 낳을지 말지는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망할 영감탱이가 낚시 단톡 방에서 매일 손녀 자랑해서 문제지. 예린아, 참 얄밉지?”

그는 연달아 말을 뱉아내고 격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한평생 강신그룹을 위해 일한 그는 몸이 다 망가졌고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일찌감치 물러나 낚시나 하면서 지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그는 병원에 다니기 바빴고 취미도 없어서 집에 있는 향만 바라보았다.

내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어르신을 달래자 곽서준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에 만족했는지 눈에 웃음기를 머금고 약을 단번에 들이켰다

나는 몸을 숙여 그의 입술에 입 맞추었다.

“이러면 안 쓰지?”

신윤아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굳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나는 먼저 치부를 들추지 않는다. 당사자가 먼저 참지 못하고 날뛴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겁이 나지만 시도해 보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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