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눈꺼풀도 덩달아 떨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나는 즉시 반박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가봐. 윤아가 조금이라도 다치기만 해봐, 가만히 안 있을 거야.”하도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고막을 뚫고 지나갔다. 통화가 끊긴 뒤의 삐 소리보다 더 나를 짜증 나게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두 남자를 바라봤다.“저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심문혁은 이미 테이블 위의 차 키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내 여동생 문제니 당연히 내가 가서 확인해야지.”심씨 가문과 곽씨 가문의 사이로 따지면 심문혁이 신윤아를 여동생이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세상 모두가 신윤아의 오빠가 되어 주는 것 같은 상황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했다면 둘이 함께 나를 비난하지는 않을까? 하도현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친절하게 말했다. “예린 씨, 마침 잘됐네요. 문혁 씨 차를 타고 가면 되겠어요.” 상황이 급해서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도현 씨, 다음에 다시 식사 대접할게요.”“야, 지금 널 학교에 데려다줄 사람은 나야!”심문혁이 불쾌해하며 말했다. 나는 그를 무시한 채 신윤아의 학교 주소를 불렀다. 심문혁은 핸들 위에 손을 올려두고는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 신윤아 말이야, 도대체 왜 네 집에서 계속 지내고 있는 거야?”심문혁이 이런 일에 관심을 보이다니 정말 의외였지만 가정사를 외부 사람에게 알리기 적절하지 않았다. “네 여동생 문제를 나한테 묻는 거야?”나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고량주 두 병이나 마시게 한 일을 까먹을 리 없었다.“쳇!”심문혁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진짜 나랑 한판 붙어볼래? 지금 당장이라도 널 여기 버릴 수 있어, 학교까지 뛰어가고 싶어?” “차 세워.”나는 즉시 말했다. “안예린, 너 진짜 내가 못 멈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차 세워, 너랑 싸울 기분 없어
“딱히 이유는 없어요. 걔는 맞아야 정신 차려요.”신윤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여학생을 가리키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도 내 눈에 띄면 또 때릴 거야.” 그야말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곽서준은이 들어오며 내 뒤에 있던 신윤아를 끌어당겼다.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밀었는지 그 여자의 뺨을 맞았다. 머릿속이 잠시 새하얘지며 오른쪽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뺨은 빠르게 부어올랐다. 곽서준이 신윤아가 다칠까 봐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는 모습을 보며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조여왔다. 신윤아는 곽서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오빠, 저 여학생이 내 침대를 차지했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살겠다고 했는데 비켜 주지도 않았어.” 신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 “오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기숙사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네. 나 이제 갈 곳 없어요.”곽서준이 데려온 사람들이 곧 상황을 정리했다. 여학생을 병원으로 보냈고 부모와 배상 문제를 논의했다. “네가 때리고 싶으면 때려. 돈 물어주면 되는 거잖아.” 그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었고 오직 등가 교환만 존재했다. 그리고 신윤아를 위해서라면 가족을 다 잃어도 괜찮다는 듯이 단호했다. 순간,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곽서준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며 마침내 나를 보았는지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번 사건의 책임을 전적으로 내게 돌리는 듯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오빠, 언니도 집에 데려가면 안 돼요? 같이 살고 싶어요.” 신윤아가 내게 손을 뻗었지만 곽서준은 이내 그녀의 손을 감싸며 차갑게 나를 훑어보고는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오빠가 데려다줄게.” 나는 목구멍에서 차오르는 냉소를 참을 수 없었다. 서둘러 왔더니 뺨 맞은 것도 모자라 마음마저 다 헤집힌 상태였다. 가족? 그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이었다! 곽서준은 정말로
나는 심문혁이 나의 처참한 모습에 박수라도 치며 좋아할 줄 알았다. 아니면 비꼬는 소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그가 20년 넘게 가장 해온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 주다니 뜻밖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 “필요 없어.” 나는 여전히 거절했다. 지나쳐 가려는 순간 그는 내 손목을 낚아챘다. 오늘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시비 당한 탓에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심문혁, 놀 사람 찾으려면 때를 좀 가려. 나 지금 네 장난감 해 줄 기분 아니야!” 심문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널 장난감으로 생각한 적 없어.” 그는 내게 거절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상쾌한 애프터셰이브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그는 되레 강하게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일단 병원부터 가서 약이라도 바르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순간 곽서준에게 당했던 서러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손등으로 그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너 누구야? 심문혁한테서 당장 나와!” 그가 내 손을 쳐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주위에 이렇게 못생긴 게 있어 보긴 처음이라 거슬리는 것뿐이야.” 그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모습에 나도 비웃으며 몇 마디 비꼬는 소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꼬리를 움직이자 볼이 아팠다. 그에게 웃어 보이는 것도 서툴러서 더 이상 애쓰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않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거절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조심해!” 그는 갑자기 내게 몸을 던지며 나를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검은색 승용차 한 태가 거의 등에 닿을 뻔하며 지나갔다. 갑작스런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며 오른쪽 뺨에 고통을 가했다. 곽서준의 차였다. “
“쳇, 그까짓 한 끼에 고마워할 사람으로 보여? 나한테 밥 사겠다고 하는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어.” ...그는 함께 병원에 가서 처치하는 것도 기다려주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며칠 쉬다가 출근해. 우리 로펌은 못생긴 사람 받지 않으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가 병원까지 동행해 준 것을 봐서 나는 딱히 말대꾸하지 않았다. 그를 보내고 나서 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원래 남북으로 탁 트인 복도의 창문 중 하나가 꽉 막혀 있었다. 커다란 실루엣이 복도 끝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낱 그늘막처럼 나의 마음을 깡그리 가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37층이라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침착한 뒷모습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심문혁이 나와 학교에 갔던 것도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나는 당장이라도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가 버렸다. 곽서준이 돌아서는 순간 마치 거친 바다를 누군가의 손으로 쓸어내리듯 내 심장은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곽서준은 언제나 내 감정을 휘둘렀다. 나는 그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 애써 침착하며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가 두 발짝 다가오며 우리 집 문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문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새까만 눈동자로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심 도련님을 초대하지 그랬어?”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곽서준은 정말 바쁜 모양이었다. 신윤아를 돌보는 동시에 나를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지금 당장 모셔 올게.” 나는 몸을 돌려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곳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빨랐다.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곽서준에 대한 불만을 전부 그 조그마
“대표님 손이 정말 짜네. 고작 얼마짜리라고, 4,000원이나 되나?”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윤아에게는 그렇게 잘해주면서 나한텐 고작 4,000원짜리 연고로 모욕했기 때문이다. “허.” 곽서준은 온몸을 어두운 그림자에 숨긴 채 오로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럼 뭐가 값나가?” 그가 나에게 물었다. “심문혁이 발라준 약은 금이라도 되냐? 그건 가치 있고, 내가 준 건 쓰레기통에나 던져야 할 정도로 하찮다는 거지?”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압박감을 느끼며 그를 밀어내자 손목을 붙잡고 따졌다.“심문혁이 너에게 월급으로 400만을 주는 건 가치 있고 내가 널 4년 동안 먹여 살린 건 가치 없어?”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하도현과 체결한 계약까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신윤아를 위해 남에게 몇백만의 치료비를 보상할 수도 있으면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는 않았다. 그저 4,000원짜리 연고로 어물쩍 넘기려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모습을 그에게 내보이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꼬지 마. 4년이 뭐? 난 우리가 사랑 때문에 결혼한 줄 알았지만 넌 날 사랑한 적 없잖아. 곽서준, 네 사랑은 4,000원 가치도 없어. 그리고 우리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 “네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 스물아홉이야, 이젠 너무 유치하다.” “그래, 다시는 말하지 않을게.” 사랑도 없는 사람과 무슨 사랑을 논하겠는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니, 너도 알긴 아는구나.” 그가 냉소를 지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윤아를 끌어들였지? 그녀는 혈액형이 특이해서 정말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아, 그래서였구나.’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신윤아를 곤경에 빠뜨린 게 나였나?’‘그녀와 애매하게 얽혀있는
병원에서 곽서준은 큰 키와 긴 다리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당신은 여기서 더 이상 할 일 없으니 이만 돌아가.”내가 막 다가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 있던 가방까지 빼앗아 갔다.곽서준의 의붓동생이 밤늦게 병원에 들어갔고 새언니로서 내 역할은 그저 옷 좀 가져다 주는 것 외에는 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결혼한 지 4년이 된 나는 남편의 냉대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혼자서 의사를 찾아갔다.의사는 파트너와의 성교로 환자의 항문이 파열되었다고 했고 순간 나는 얼음 동굴에 떨어진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린 기운을 느꼈다.내가 아는 신윤아는 남자 친구가 없고 오늘 그녀를 병원에 데려온 사람은 내 남편이다.의사는 콧등에 건 낡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다소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젊은 사람들은 원래 새롭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죠.”“무슨 뜻이죠?”나는 그가 좀 더 자세히 말해 주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새벽 1시인데도 병원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고 이런저런 생각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꽤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다.신윤아는 그녀의 어머니 신경숙을 따라 곽씨 가문으로 들어왔고 나와 곽서준이 결혼한 후 저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 신혼집은 세 식구가 지내는 곳이 되었다.신윤아가 곽서준 볼에 뽀뽀하는 걸 수없이 봤지만 그저 다정한 남매 사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무도 없을 때 볼이 아니라 입을 맞댔을 수도 있지 않나?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틀거리며 병동으로 향했다.신윤아의 창백한 얼굴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곽서준의 소매를 당기는 모습이 무척 가련해 보였다.드라마에서 몰래 엿듣는 장면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현대식 문은 굳게 닫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곽서준은 나를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에 표정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가슴 아파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문을
내 시선이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곽서준의 바지로 향했다. 헐렁한 바지가 우는 얼굴처럼 일그러졌고 툭 튀어나온 검은 휴대폰이 눈물점보다 더 슬프게 했다.결혼 생활에서 나는 애정과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공간을 남겨줘야 한다고 여겼기에 상대의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그의 서재도 뒤져보았는데 고작 휴대폰 정도가 대수겠나.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간 뒤 머리까지 뒤집어썼다.긴장되었다.다들 연인의 휴대폰을 보고 나서 웃지 못한다 던데 신윤아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될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나만 편집증 환자로 변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그가 평소에 즐겨 차고 다니던 염주 팔찌를 생각하니 이가 시큰거렸다.곽서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다닌 거야?손이 떨려서 인지, 버튼을 잘못 누를까 봐 긴장해서인지 몇 번을 입력해도 비밀번호가 틀려 화면에 30초 후에 다시 시도하라는 글이 튀어나왔다.역시 나는 단순하다. 금고는 열어도 휴대폰은 열지 못했다.나는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번호를 떠올렸고 입이 바싹 말라 마른침을 삼키며 카운트다운 시간을 초 단위로 기다렸다.5, 4, 3, 2...갑자기 머리를 덮고 있던 이불이 걷혔다.“뭐 하는 거야?”곽서준의 벌거벗은 상체는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정석으로 박힌 에잇 팩 복근을 자랑하며 하체는 회색 목욕 타월에 둘러싸인 채 적나라한 반골 라인을 드러내 저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난 그의 아름다운 몸이 아닌 이불을 걷는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는 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있을 줄 몰랐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여보.”낮게 그를 부른 나는 범행 현장을 들킨 도둑처럼 죄책감이 밀려와 순간의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의 목 울대가 일렁거리며 두 눈에 분노가 빗발치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안예린!”그가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는데 나는
곽서준은 시계가 놓인 캐비닛 위 두 개의 시계 상자 사이에 휴대폰을 놓은 채 한 손은 옷장에,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쥐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멀지 않은 바닥에는 그가 발로 차버린 회색 목욕 타월이 놓여 있었고 몸을 거의 가린 상태에서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드레스 룸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미치도록 섹시했다.나무 바닥 위로 내 발가락이 움츠러들며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듯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는 재빨리 휴지 몇 장을 뽑았고 끝난 줄 알았지만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했다.그제야 나는 마음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의 팔이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베는 것 같았다.신윤아는 사진 몇 장으로 내 남편을 내 침대 위에서 데려갔고 사진을 보면서 거듭 혼자 해결할지 언정 멀쩡히 침대 위에 있는 나랑은 안 한다는 거다.그 순간 내 머릿속은 곽서준이 바람을 피웠다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그의 행동은 내 세상을 산산조각 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에게 짓밟힌 자존심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를 방해하지 않고 나는 홀로 방으로 돌아가 방문을 굳게 닫았다. 엉엉 울고 나서 재빨리 세수한 뒤 화장하고 남편보다 먼저 병원에 가서 신윤아를 만날 생각이었다. 남자가 사진을 보며 자위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는 재산을 더 나눠주지 않는다. 반드시 더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야 했다. 병실에서 신윤아는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표정이 신호등보다 더 빈번하게 바뀌는 게 제법 볼만했다. “예린 언니, 여긴 어떻게 왔어요?”그녀는 날 새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예전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들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다.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의 병상 옆에 다가가 앉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빠한테서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보러 왔죠.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