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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곽서준은 시계가 놓인 캐비닛 위 두 개의 시계 상자 사이에 휴대폰을 놓은 채 한 손은 옷장에,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쥐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멀지 않은 바닥에는 그가 발로 차버린 회색 목욕 타월이 놓여 있었고 몸을 거의 가린 상태에서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드레스 룸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미치도록 섹시했다.

나무 바닥 위로 내 발가락이 움츠러들며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듯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휴지 몇 장을 뽑았고 끝난 줄 알았지만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의 팔이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베는 것 같았다.

신윤아는 사진 몇 장으로 내 남편을 내 침대 위에서 데려갔고 사진을 보면서 거듭 혼자 해결할지 언정 멀쩡히 침대 위에 있는 나랑은 안 한다는 거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곽서준이 바람을 피웠다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의 행동은 내 세상을 산산조각 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에게 짓밟힌 자존심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를 방해하지 않고 나는 홀로 방으로 돌아가 방문을 굳게 닫았다. 엉엉 울고 나서 재빨리 세수한 뒤 화장하고 남편보다 먼저 병원에 가서 신윤아를 만날 생각이었다.

남자가 사진을 보며 자위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는 재산을 더 나눠주지 않는다. 반드시 더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야 했다.

병실에서 신윤아는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표정이 신호등보다 더 빈번하게 바뀌는 게 제법 볼만했다.

“예린 언니, 여긴 어떻게 왔어요?”

그녀는 날 새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예전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들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의 병상 옆에 다가가 앉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빠한테서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보러 왔죠. 어디 아파요, 새언니인 나한테 말해봐요.”

나는 일부러 새언니라는 호칭을 강조했다. 곽서준이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밀폐된 창구라면 내 돌파구는 신윤아다.

신윤아가 얼굴을 붉히자 나는 그녀가 나한테 사적인 이야기를 할 면목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곧 그녀는 내 손바닥에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잇, 오빠도 참. 언니 걱정할까 봐 가족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녀는 웃으며 계속해서 애교를 부렸고 자기 가슴을 가리며 살갑게 말했다.

“예린 언니, 나 여기 아파요. 사과 먹고 싶어요.”

나는 곽서준이 바람 피운 증거를 찾으러 병원에 왔기에 시누이한테 별로 좋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한테 이렇게 말하고 옛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4년을 같이 살면서 나는 진심으로 신윤아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친동생처럼 대하면서 내 물건을 사면 그녀 것도 빠짐없이 챙겼다.

그녀가 내 방에 들어와 둘러볼 때면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고 먹고 입는 것에는 더더욱 아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챙겨준 두 사람이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몸에 칼을 들이밀었다.

내가 그동안 눈이 멀었지.

나는 한 손에는 사과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는데 사과와 신윤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나를 택할 거다. 너무 멍청한 나를.

“역시 예린 언니가 최고예요.”

내가 사과를 깎아주려 하자 그녀는 나한테 넉살 좋게 얘기하며 휴대폰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방금 찍은 사진인데 예뻐요?”

사진 속 신윤아는 필터를 잔뜩 씌워 생기 어린 얼굴을 연출해 아파서 환자복을 입은 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코스프레 같았다.

“예뻐요, 우리 윤아 씨는 어떻게 찍어도 예쁘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녀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촬영한 결과물을 하나씩 보여주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빠는 진짜 나빠요. 나한테 대충 대답해 주고. 봐요, 내가 사진 보냈는데 응 한 글자만 왔어요.”

늘 차가운 박서준이었지만 신윤아에겐 무척 관대하게 굴며 말끝마다 답장했다.

[나 예뻐요?]

[응.]

[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금방 가.]

[어느 사진이 제일 예뻐요?]

[두 번째.]

...

곽서준과의 채팅창을 떠올리니 그가 내게 보낸 답장을 모두 합쳐도 신윤아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거다.

“오빠 바빠요.”

나는 다소 넋이 나갔다.

“스읍...”

“안예린, 여기서 뭐 해!”

“오빠 왔어요?”

좁은 병동에서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려 퍼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곽서준이 불빛을 등지며 다가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지는 내 눈물 소리가 귀를 울렸다.

손목이 덥석 잡히고 곽서준이 몸을 기울여 나를 병실 밖으로 끌어냈다.

어깨가 문 옆 벽에 부딪혔고 나는 통증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천천히, 그러나 진지하게 말했다.

“말해,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윤아 씨 보러 왔어. 안 오기엔 너무 걱정돼서. 당신 왔으니까 난...”

“볼 게 뭐 있어서. 늘 앓던 병이라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오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는 밤낮으로 곁을 지키는 걸 보니 켕기는 게 있나 보다.

“내가 오는 걸 왜 그렇게 무서워해, 뭘 감추는...”

“오빠!”

병실 안에서 땅을 뒤흔드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곽서준은 감전된 듯 반사적으로 병실 안에 뛰어갔다.

알고 보니 신윤아가 내가 미처 다 깎지 못한 사과를 깎다가 실수로 손을 베인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의 소매를 당겼다.

“여보, 그럼 난...”

곽서준이 내 말을 끊었다.

“그만해, 우리 일은 집에 가서 얘기해. 윤아 다친 거 안 보여?”

그의 초조한 모습에 넋이 나간 나는 순간 손에 힘을 푸는 것도 잊었다. 그가 힘껏 당기자 내 엄지 손톱이 그의 소매에 걸려 뒤집혔고 고통에 비틀거리다가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눈엔 신윤아밖에 없다.

다른 여자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20년간의 정성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두 손 가득 피를 묻힌 채 돌아섰고 쾅 세게 닫힌 문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내 세상과 단절되었다.

나는 알아서 치료하러 갔고 간호사는 외과 의사들이 모두 VIP 병동으로 올라갔다며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기다렸는데 여기서 더 기다려야 하나?

나중에 의사가 와서 손톱이 살에 붙었다며 손톱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작지만 그래도 수술이니 보호자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하세요.”

내가 살펴보니 손톱이 살점에 붙어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확실히 수술이 필요하긴 했다.

곽서준이 그 모습을 본다면 가슴 아파할까?

하지만 그는 지금 병원에 있으면서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괜찮아요, 선생님.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나는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서 의사가 큰 바늘로 손가락에 마취제를 꽂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의사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아파요. 덩치 큰 남자들도 못 참아요. 아까 어린 아가씨 작은 상처 치료해 주는데 어찌나 우는지, 남자 친구한테 계속 기대더라고요. 근데 남자 친구도 괜찮은 게 계속 걱정하는 거 있죠.”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저도 남편 여기 있었으면 울었어요.”

의사는 내가 겁먹을까 봐 일부러 농담을 던졌다.

“그럼 남편 오실 때까지 기다리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남편이 아마 선생님이 말씀하신 좋은 남자 친구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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