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화

내 시선이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곽서준의 바지로 향했다. 헐렁한 바지가 우는 얼굴처럼 일그러졌고 툭 튀어나온 검은 휴대폰이 눈물점보다 더 슬프게 했다.

결혼 생활에서 나는 애정과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공간을 남겨줘야 한다고 여겼기에 상대의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의 서재도 뒤져보았는데 고작 휴대폰 정도가 대수겠나.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간 뒤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긴장되었다.

다들 연인의 휴대폰을 보고 나서 웃지 못한다 던데 신윤아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될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나만 편집증 환자로 변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가 평소에 즐겨 차고 다니던 염주 팔찌를 생각하니 이가 시큰거렸다.

곽서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다닌 거야?

손이 떨려서 인지, 버튼을 잘못 누를까 봐 긴장해서인지 몇 번을 입력해도 비밀번호가 틀려 화면에 30초 후에 다시 시도하라는 글이 튀어나왔다.

역시 나는 단순하다. 금고는 열어도 휴대폰은 열지 못했다.

나는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번호를 떠올렸고 입이 바싹 말라 마른침을 삼키며 카운트다운 시간을 초 단위로 기다렸다.

5, 4, 3, 2...

갑자기 머리를 덮고 있던 이불이 걷혔다.

“뭐 하는 거야?”

곽서준의 벌거벗은 상체는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정석으로 박힌 에잇 팩 복근을 자랑하며 하체는 회색 목욕 타월에 둘러싸인 채 적나라한 반골 라인을 드러내 저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난 그의 아름다운 몸이 아닌 이불을 걷는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는 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있을 줄 몰랐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여보.”

낮게 그를 부른 나는 범행 현장을 들킨 도둑처럼 죄책감이 밀려와 순간의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목 울대가 일렁거리며 두 눈에 분노가 빗발치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안예린!”

그가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는데 나는 그가 나를 때리려는 줄 알고 무의식적으로 피했고, 우리 중 누가 셔터 버튼을 눌렀는지 찰칵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화면 속 나는 흐트러진 머리에 얼굴은 눈물로 얼룩진 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게 어젯밤 거울 앞에서 천하일색이라 생각하며 그의 영혼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내가 맞나?

곽서준은 휴대폰을 가져가 들여다보더니 아까보다 한결 누그러진 표정과 장난기가 담긴 어투로 말했다.

“이게 뭐야? 처음으로 날 위해 란제리를 입었다고 기록한 거야?”

나는 그제야 거의 다 벗은 제 몸을 발견하고 수줍게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

“미안해.”

나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두 팔로 그의 허리를 세게 감싸며 거의 애원하듯 그를 향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여보, 안아줘.”

내 나이 26, 20년 동안 곽서준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멀리서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었고 어린 소녀의 여린 마음은 짝사랑의 환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이 이대로 무너지길 원하지 않았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그 남자도 나를 온 마음으로 사랑해 주길 바랐다.

곽서준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갑고 딱딱한 턱 선이 휘어 올라갔다.

“당분간 윤아 곁에 있어야 하니까 나중에 너랑 놀아 줄게.

나는 떠보듯 물었다.

“윤아 씨 어쩌다 다쳤어, 왜 한밤중에 병원에 갔어?”

“별일 아니야. 늘 그렇지 뭐.”

늘 차갑고 단호하던 곽서준의 눈빛에서 회피의 기미가 보여서 깜짝 놀랐다.

그가 나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눈에 보여 조금 실망했다.

“그럼 우리 둘만 노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곽서준과 나는 신혼여행을 갈 때도 신윤아를 데리고 갔다.

우리 둘이 결혼 후 신윤아가 꽤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았는데 당시 온 가족이 긴장하며 나한테는 정확한 병명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새언니로서 아량 넓은 모습을 보여주고 시댁 식구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병 치료로 신윤아를 해외여행에 동행시키라는 시댁 식구들의 요청에 동의했다.

당시 신윤아는 아직 미성년자여서 새언니인 나를 경계했고 곽서준만 동행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녀가 환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곽서준과 나는 다시는 단둘이 여행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곽서준과 내 결혼생활이 얼마나 이상한지, 둘의 일상에 제삼자가 끼어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곽서준은 망설였다.

“우리 둘이 해외 가서 다시 신혼여행 하자. 아이 가질 때도 됐고 어머님이 재촉하셔.”

내가 덧붙이자 곽서준도 나에게 진 빚이 생각났는지, 아니면 엄마가 자신에게 주던 보약을 떠올려서 인지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가 펴고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나라로 가고 싶어?”

그는 내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애정과 증오는 언제나 호환되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신윤아가 애교 부리던 모습대로 말했다.

“첫 목적지는 당연히 국내로 해야지. J시 해운 별장, 바로 여기 침대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그의 목에 두 팔을 걸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며 진한 키스를 했다.

그도 내 키스에 화답했고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엉덩이를 받치며 우리 둘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마른나무가 마침내 나라는 타오르는 불에 의해 점화되었다.

그는 몸에 걸쳤던 천 쪼가리를 휙 집어 던지고 거칠게 다가왔다.

그가 양손으로 내 발목을 잡고 곧 다음 단계로 진입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

알림 표시줄에 메시지가 뜨며 발목에서 전해지는 힘에 나는 통증을 느꼈다. 그도 분명 보았다.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오빠, 나 예뻐요? 빨리 칭찬해 줘요!]

[아직 샤워 안 끝났어요? 언제 돌아와요?]

신윤아는 항상 열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고 메시지 텍스트마저 따발총처럼 쏘아 댔다.

곽서준은 나를 놓았지만 나는 그를 놓지 않고 그의 허리에 내 다리를 걸었다.

“가지 마, 계속하자, 응?”

나는 최대한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를 유혹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내 다리를 세게 꼬집었다.

“하기 싫어졌어.”

나는 통증에 다리의 힘을 풀었고 그는 가운을 두른 채 드레스 룸으로 갔다.

이 집에서 신윤아와 나는 위치가 달랐다. 그녀는 온 집안이 예뻐하는 아이고 귀하게 자란 아가씨다. 하지만 나는 늘 사모님으로서 아량을 베풀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현모양처’ 행세를 해야 했다.

예전이었다면 그가 이렇게 말한 뒤 난 혼자 누워 쓸쓸함과 적막함을 맛봐야 했겠지만 한번 싹이 튼 의심은 뿌리를 내린 뒤 아무런 증거가 없이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다급히 맨발로 그를 쫓아가는데 드레스 룸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