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문혁이 나의 처참한 모습에 박수라도 치며 좋아할 줄 알았다. 아니면 비꼬는 소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그가 20년 넘게 가장 해온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 주다니 뜻밖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 “필요 없어.” 나는 여전히 거절했다. 지나쳐 가려는 순간 그는 내 손목을 낚아챘다. 오늘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시비 당한 탓에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심문혁, 놀 사람 찾으려면 때를 좀 가려. 나 지금 네 장난감 해 줄 기분 아니야!” 심문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널 장난감으로 생각한 적 없어.” 그는 내게 거절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상쾌한 애프터셰이브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그는 되레 강하게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일단 병원부터 가서 약이라도 바르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순간 곽서준에게 당했던 서러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손등으로 그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너 누구야? 심문혁한테서 당장 나와!” 그가 내 손을 쳐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주위에 이렇게 못생긴 게 있어 보긴 처음이라 거슬리는 것뿐이야.” 그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모습에 나도 비웃으며 몇 마디 비꼬는 소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꼬리를 움직이자 볼이 아팠다. 그에게 웃어 보이는 것도 서툴러서 더 이상 애쓰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않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거절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조심해!” 그는 갑자기 내게 몸을 던지며 나를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검은색 승용차 한 태가 거의 등에 닿을 뻔하며 지나갔다. 갑작스런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며 오른쪽 뺨에 고통을 가했다. 곽서준의 차였다. “
“쳇, 그까짓 한 끼에 고마워할 사람으로 보여? 나한테 밥 사겠다고 하는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어.” ...그는 함께 병원에 가서 처치하는 것도 기다려주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며칠 쉬다가 출근해. 우리 로펌은 못생긴 사람 받지 않으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가 병원까지 동행해 준 것을 봐서 나는 딱히 말대꾸하지 않았다. 그를 보내고 나서 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원래 남북으로 탁 트인 복도의 창문 중 하나가 꽉 막혀 있었다. 커다란 실루엣이 복도 끝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낱 그늘막처럼 나의 마음을 깡그리 가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37층이라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침착한 뒷모습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심문혁이 나와 학교에 갔던 것도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나는 당장이라도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가 버렸다. 곽서준이 돌아서는 순간 마치 거친 바다를 누군가의 손으로 쓸어내리듯 내 심장은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곽서준은 언제나 내 감정을 휘둘렀다. 나는 그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 애써 침착하며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가 두 발짝 다가오며 우리 집 문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문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새까만 눈동자로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심 도련님을 초대하지 그랬어?”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곽서준은 정말 바쁜 모양이었다. 신윤아를 돌보는 동시에 나를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지금 당장 모셔 올게.” 나는 몸을 돌려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곳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빨랐다.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곽서준에 대한 불만을 전부 그 조그마
“대표님 손이 정말 짜네. 고작 얼마짜리라고, 4,000원이나 되나?”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윤아에게는 그렇게 잘해주면서 나한텐 고작 4,000원짜리 연고로 모욕했기 때문이다. “허.” 곽서준은 온몸을 어두운 그림자에 숨긴 채 오로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럼 뭐가 값나가?” 그가 나에게 물었다. “심문혁이 발라준 약은 금이라도 되냐? 그건 가치 있고, 내가 준 건 쓰레기통에나 던져야 할 정도로 하찮다는 거지?”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압박감을 느끼며 그를 밀어내자 손목을 붙잡고 따졌다.“심문혁이 너에게 월급으로 400만을 주는 건 가치 있고 내가 널 4년 동안 먹여 살린 건 가치 없어?”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하도현과 체결한 계약까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신윤아를 위해 남에게 몇백만의 치료비를 보상할 수도 있으면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는 않았다. 그저 4,000원짜리 연고로 어물쩍 넘기려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모습을 그에게 내보이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꼬지 마. 4년이 뭐? 난 우리가 사랑 때문에 결혼한 줄 알았지만 넌 날 사랑한 적 없잖아. 곽서준, 네 사랑은 4,000원 가치도 없어. 그리고 우리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 “네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 스물아홉이야, 이젠 너무 유치하다.” “그래, 다시는 말하지 않을게.” 사랑도 없는 사람과 무슨 사랑을 논하겠는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니, 너도 알긴 아는구나.” 그가 냉소를 지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윤아를 끌어들였지? 그녀는 혈액형이 특이해서 정말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아, 그래서였구나.’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신윤아를 곤경에 빠뜨린 게 나였나?’‘그녀와 애매하게 얽혀있는
병원에서 곽서준은 큰 키와 긴 다리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당신은 여기서 더 이상 할 일 없으니 이만 돌아가.”내가 막 다가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 있던 가방까지 빼앗아 갔다.곽서준의 의붓동생이 밤늦게 병원에 들어갔고 새언니로서 내 역할은 그저 옷 좀 가져다 주는 것 외에는 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결혼한 지 4년이 된 나는 남편의 냉대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혼자서 의사를 찾아갔다.의사는 파트너와의 성교로 환자의 항문이 파열되었다고 했고 순간 나는 얼음 동굴에 떨어진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린 기운을 느꼈다.내가 아는 신윤아는 남자 친구가 없고 오늘 그녀를 병원에 데려온 사람은 내 남편이다.의사는 콧등에 건 낡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다소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젊은 사람들은 원래 새롭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죠.”“무슨 뜻이죠?”나는 그가 좀 더 자세히 말해 주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새벽 1시인데도 병원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고 이런저런 생각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꽤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다.신윤아는 그녀의 어머니 신경숙을 따라 곽씨 가문으로 들어왔고 나와 곽서준이 결혼한 후 저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 신혼집은 세 식구가 지내는 곳이 되었다.신윤아가 곽서준 볼에 뽀뽀하는 걸 수없이 봤지만 그저 다정한 남매 사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무도 없을 때 볼이 아니라 입을 맞댔을 수도 있지 않나?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틀거리며 병동으로 향했다.신윤아의 창백한 얼굴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곽서준의 소매를 당기는 모습이 무척 가련해 보였다.드라마에서 몰래 엿듣는 장면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현대식 문은 굳게 닫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곽서준은 나를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에 표정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가슴 아파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문을
내 시선이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곽서준의 바지로 향했다. 헐렁한 바지가 우는 얼굴처럼 일그러졌고 툭 튀어나온 검은 휴대폰이 눈물점보다 더 슬프게 했다.결혼 생활에서 나는 애정과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공간을 남겨줘야 한다고 여겼기에 상대의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그의 서재도 뒤져보았는데 고작 휴대폰 정도가 대수겠나.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간 뒤 머리까지 뒤집어썼다.긴장되었다.다들 연인의 휴대폰을 보고 나서 웃지 못한다 던데 신윤아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될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나만 편집증 환자로 변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그가 평소에 즐겨 차고 다니던 염주 팔찌를 생각하니 이가 시큰거렸다.곽서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다닌 거야?손이 떨려서 인지, 버튼을 잘못 누를까 봐 긴장해서인지 몇 번을 입력해도 비밀번호가 틀려 화면에 30초 후에 다시 시도하라는 글이 튀어나왔다.역시 나는 단순하다. 금고는 열어도 휴대폰은 열지 못했다.나는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번호를 떠올렸고 입이 바싹 말라 마른침을 삼키며 카운트다운 시간을 초 단위로 기다렸다.5, 4, 3, 2...갑자기 머리를 덮고 있던 이불이 걷혔다.“뭐 하는 거야?”곽서준의 벌거벗은 상체는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정석으로 박힌 에잇 팩 복근을 자랑하며 하체는 회색 목욕 타월에 둘러싸인 채 적나라한 반골 라인을 드러내 저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난 그의 아름다운 몸이 아닌 이불을 걷는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는 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있을 줄 몰랐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여보.”낮게 그를 부른 나는 범행 현장을 들킨 도둑처럼 죄책감이 밀려와 순간의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의 목 울대가 일렁거리며 두 눈에 분노가 빗발치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안예린!”그가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는데 나는
곽서준은 시계가 놓인 캐비닛 위 두 개의 시계 상자 사이에 휴대폰을 놓은 채 한 손은 옷장에,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쥐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멀지 않은 바닥에는 그가 발로 차버린 회색 목욕 타월이 놓여 있었고 몸을 거의 가린 상태에서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드레스 룸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미치도록 섹시했다.나무 바닥 위로 내 발가락이 움츠러들며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듯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는 재빨리 휴지 몇 장을 뽑았고 끝난 줄 알았지만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했다.그제야 나는 마음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의 팔이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베는 것 같았다.신윤아는 사진 몇 장으로 내 남편을 내 침대 위에서 데려갔고 사진을 보면서 거듭 혼자 해결할지 언정 멀쩡히 침대 위에 있는 나랑은 안 한다는 거다.그 순간 내 머릿속은 곽서준이 바람을 피웠다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그의 행동은 내 세상을 산산조각 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에게 짓밟힌 자존심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를 방해하지 않고 나는 홀로 방으로 돌아가 방문을 굳게 닫았다. 엉엉 울고 나서 재빨리 세수한 뒤 화장하고 남편보다 먼저 병원에 가서 신윤아를 만날 생각이었다. 남자가 사진을 보며 자위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는 재산을 더 나눠주지 않는다. 반드시 더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야 했다. 병실에서 신윤아는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표정이 신호등보다 더 빈번하게 바뀌는 게 제법 볼만했다. “예린 언니, 여긴 어떻게 왔어요?”그녀는 날 새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예전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들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다.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의 병상 옆에 다가가 앉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빠한테서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보러 왔죠. 어디
나는 막장 드라마를 즐겨 보곤 했기 때문에 소위 첫사랑이 남자에게 가져다 주는 치명적인 매력을 잘 알고 있다.그런 첫사랑이란 가지지 못해 더욱 갖고 싶은 거다.그들은 세속적인 이유로 함께할 운명이 아니다. 곽씨 가문은 명망 높은 재벌가로 그들은 혈연이 아니더라도 만날 수 없다.곽서준이 정말 신윤아를 좋아한다면 그녀에게서 구린내가 나도 향기롭다고 할 텐데 그걸 내가 어찌 이기나.수술은 조용히 순조롭게 끝났고 밖으로 나온 난 2층에 앉아 약을 가지러 번호가 불릴 때까지 기다렸다.병원 소독수 냄새를 맡으며 내 머리도 제대로 소독한 뒤 어느 때보다 멀쩡한 정신으로 곽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나와 신윤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래?]그가 신윤아를 선택한다면 난 흔쾌히 손을 놓으며 두 사람의 행복을 빌 거다.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건 알지만 이럴 때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 사랑한 사람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나 자신을 어떻게 설득하나.휴대전화를 들고 애타게 기다렸지만 메시지는 저 바다에 던진 돌멩이처럼 파문도 일지 않았다.아무런 소리 없는 휴대폰을 보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신윤아 병실로 갔다.병실에서 곽서준은 깎은 사과에 포크를 꽂아 신윤아에게 건넸고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따스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타이밍이 안 맞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바람 피웠단 증거를 잡았을 거고 나도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나는 곽서준을 불렀고 그는 나에게 적대적인 싸늘함을 보였다.“굳이 병원에서 해야 할 얘기가 뭐야?”“답장 기다리고 있어.”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곽서준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내더니 혀로 볼 안쪽을 밀어냈다.“무슨 뜻이야?”내가 찔러봐도 그는 전혀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태연한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 건 오히려 나였다.그는 나른한 어투로 말했다.“내가 왜 선택해, 이게 무슨 짓인데?”심지어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불을 붙이려 다
이마를 문지르며 눈물마저 찔끔 나왔고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부딪힌 것은 벽이 아니라 곽서준의 단단한 가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양씨 아주머니 1억 명이 모여서 널 배불리 먹여도 난 거덜 안 나.”곽서준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싫은 기색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뭐가 그렇게 당당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양씨 아주머니 월급은 내가 주는데.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끌고 그를 무시한 채 지나쳐갔다.곽서준은 무표정하게 나를 가로막더니 캐리어 밑부분을 발로 차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양씨 아주머니에게 명령했다.“이 사람 물건 제자리에 갖다 놓으세요.”양씨 아주머니는 얼른 미끄러지는 캐리어를 잡았고 나는 그녀가 의리 없다고 탓하지 않았다. 곽서준에게 들켜도 민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집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착한 개는 주인 길을 안 막아.”곽서준과 알고 지낸 이후로 내가 뱉은 가장 독한 말이었다.그는 내 말에 대답 대신 몸을 반쯤 굽히더니 어느 틈엔가 내 두 발이 허공에 들렸다. 그 가 나를 둘러멘 것이다.내가 몸부림치자 그는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고 당황한 나는 그의 어깨를 깨물며 반항했다.이빨의 통증과 함께 순식간에 형언할 수 없는 시큰함이 내 가슴에 퍼졌고 한심하게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왜 나를 보내주지 않는 걸까. 배덕한 변두리에서 아내와 내연녀를 동시에 즐기고 싶은 걸까, 아니면 몰래 하는 사랑의 긴장과 짜릿함에 중독되어 버린 걸까?나는 못된 생각으로 내 마음속 고통을 떨쳐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가 나를 침대에 던지고 몸을 덮쳐오며 내 얼굴에 마구 입을 맞추었지만 짭짤한 눈물에 닿을 뿐이었다.“나한테 손대지 마!”이미 혼자 해결해 놓고 또 실전까지 해대면 정력이 남아나겠나.나는 그와 두 번 연속으로 해본 적도 없었고 솔직히 말해서 그 짓이 어떤 느낌인지도 가물가물했다.그는 다소 놀란 눈으로 똑바로 날 바라보았다.“아침에 나랑 못한 게 억울해서 우는 거야?”“아니!”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