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우가 이렇게 보니 만령성의 성주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제가... 공자, 용서하십시오... 당장...”“솔직히 말해!” 서현우가 차갑게 소리를 질렀다.놀란 만령성의 성주가 벌벌 떨었다.“무극조는 내가 쓰고 있어요.”만령성의 성주가 쩔쩔매고 있을 때 청초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현우가 고개를 돌려서 보니 입구에는 빨간색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긴 머리가 폭포처럼 흩어져 있었고, 나비 장식의 비녀가 머리 위에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이마에는 붉은 연꽃이 그려져 있어서 아름다운 얼굴에 부드러움과 귀여움을 더했다.만령성 성주의 떨리는 마음이 조금 풀렸다.홍세령 아가씨가 온 이상 극락산과 천잔노인의 게임이지, 작은 만령종 종주인 자신과는 관계가 없었다.서현우의 눈빛이 반짝였다.‘이 여자는 지존경 초기인 자신의 기운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어. 기운의 파동이 아직 좀 큰 걸 보니, 분명히 이제 막 경지를 굳히게 된 거야.’‘그러나 이 아가씨는 아주 젊어, 뼈의 나이로 볼 때 겨우 서른 살도 안 됐어.’‘기세가 대단할 수밖에 없지!’“만령종 종주께서는 먼저 나가세요.” 홍세령은 서현우를 몇 번 훑어보더니 만령성의 성주에게 말했다.“네, 두 분 천천히 말씀하세요.”만령성의 성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나온 뒤에는 방문을 가볍게 닫았다.방안이 고요해졌다.홍세령은 궁금해하며 말했다. “당신은 극락산의 사람입니까?”서현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왜요? 안 닮았어요?”“닮지 않은 게 아니라, 전혀 아니예요.”다가와서 의자에 앉은 홍세령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담력이 꽤 크군요. 감히 극락산의 사람이라고 사칭하다니 재미있네.”서현우의 눈에서 매서운 빛이 번쩍였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홍세령의 맞은편에 앉고서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사칭이라고 확신하는 겁니까?”“당신이 나를 모르고, 나도 당신을 모르기 때문이지요.”“극락산이랑 친합니까? 모든 사람을 다 알아요?” 서
“아직도 나를 속이려는 거예요?”홍세령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다른 세계에서 허공을 부수고 온 무자가 결코 극락산과 관계가 있을 수 없어요!”“절대로?”“바로 그래요. 절대로요!”홍세령이 말했다.“극락산은 예로부터 폐쇄되어 있어서 계약을 맺은 사람과 자기 일족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이 진입하기 어려워요. 일족들은 일정한 실력에 도달하지 못하면 절대 외출을 허용하지 않으니, 더더욱 혈맥이 유출될 수도 없지요. 하물며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번산, 이 여자가 말한 것이 사실이야?” 서현우는 머릿속에서 번산에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번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하지만 나는 확실히 극락산 사람이예요.”서현우는 홍세령에게 말하면서 이마에 있는 핏방울 비수 자국을 직접 드러냈고 영패도 건넸다.영패를 받은 홍세령은, 그 안에서 전해지는 극락산만의 기운을 느끼자, 표정이 바뀌면서 놀라움을 드러냈다.“설마 당신이 정말 극락산 사람이예요? 그런데 그게 말이 돼요?”홍세령은 헝클어졌다.‘저주 때문에 극락산의 직계 혈통은 아주 적고 소중해. 누구든 보물처럼 중시하지.’‘어떻게 다른 세계에 떨어진 혈맥이 존재할 수 있어?’‘정말 터무니없어!’“어때요? 이제는 믿나요?”“나는 정말 믿을 수 없지만, 당신이 준 물건은 확실히 조작할 수 없어요.”영패를 서현우에게 던진 홍세령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됐어요, 당신이 극락산 사람이든 아니든, 무극조는 내가 먼저 쓰는 거예요.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빼앗아 쓰려고 한다는 것을 들었으니, 우리 한 번 싸워 보고 이긴 사람이 쓰도록 하지요.”말하면서 홍세령이 전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천수방에는 수라계 전체의 젊은 세대 중에서 절세의 뛰어난 인물들이 나열되어 있다.7위에 오른 홍세령의 실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일반적인 같은 경계의 무자도, 모두 정면으로 대하지 않는다.그러나 서현우는 달랐다. 다른 세계에 떨어진 극락산의 혈통은 그야말로 금시초문이었다.그래서 서
서현우는 몹시 고민하는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외람되지만, 내가 서둘러 스승님께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극조는 내가 양보할 수 없어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말하면서 예의를 갖춘 홍세령이 아주 시원스럽게 일어나서 떠났다.“잠깐만요.”서현우가 입을 열었다.“홍세령 아가씨, 만약 당신이 바쁘지 않다면 나와 함께 천림곡에 가기를 원합니까? 얻은 이익은 우리가 반반으로 나눕시다.”“응?”홍세령은 멍해졌다.“당신은 정말 봉인진법을 통과할 수 있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수천 년 동안 거의 모든 신급 강자들이 시도해 봤어요. 당신들 극락산의 신의 경지인 강자들조차도 통과할 수 없는데, 당신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요?”“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지요.”서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극락노조의 직계 후손입니다. 끝없는 세월 전에 극락노조는 허공을 깨뜨리고 여러 세계로 가서 일계의 지존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찾았습니다. 내가 있는 그 세계에 한 여자가 있었지요...”서현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거짓말은 너무 가득 차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환상의 공간을 주어야 해.’‘결국 내가 아무리 진실하게 말해도 다른 사람이 환상 속에서 만든 진실보다 못해.’“그럴 리가요?”홍세령은 이 말을 듣고 아주 놀랐다. “3만 년 전 극락노조가 신의 경지의 정점에서 허공을 깨뜨리고 갔는데, 그런 강자가 어떻게 후사를 남길 수 있겠어요?”‘천도의 균형술인지도 몰라.’‘실력이 강한 존재일수록 후손을 낳기 어려워.’‘이치대로라면 신의 경지의 강자는 이미 자손이 있을 수 없아.’“극락선조는 조상을 늘 생각하면서 정말 사랑했으니, 그 실력으로 생각을 어쨌든 방법을 찾았을 지도 모르지요.”서현우가 조용히 말했다.홍세령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어쩐지 극락산의 혈맥이 다른 세상에 전해졌다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오히려 합리적이야.”서현우의 머릿속에서 번산은 감개무량했고 서글프기도 했다.“원래 이
무극조는 참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참새보다 천 배 이상 커서, 지구의 과학기술로 만든 대형비행기와 비슷했다.등에는 연골이 있는데 좌석이 잇달아 있는 모양과 같았다.두 사람은 고사하고 2백 명이 타더라도 결코 붐비지 않을 정도였다.게다가 속도도 마치 유성처럼 대단히 빨랐다.만령성에서 나와서 한 시간 남짓 만에 이미 천림곡의 숲으로 들어갔다.천림곡의 숲은 면적이 방대하고 나무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끝없는 불바다처럼 보였다.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흉수가 살고 있는데, 숲의 지하에는 신급 흉수가 잠들어 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아무도 본 적이 없었고 신급 강자가 탐색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천림곡은 숲의 중심에 있다.서현우가 홍세령을 초청해서 함께 천림곡을 탐색하게 한 것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번산의 건의다.이유는 서현우에게 말한 바와 같다.3만 년의 세월은 상전벽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안에 도대체 어떤 흉악한 것이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서현우가 비록 지존경이라 해도 의외의 일이 일어나는 걸 피할 수가 없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어쨌든 자신이 혼자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물론 홍세령이라는 이 여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서현우가 일부러 그녀를 해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방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그리고 홍세령이 남아서 함께 탐색하게 된 이유도, 천잔노인이 앞서 이마에 있는 홍련 무늬를 통해 먼저 자신의 일을 끝내도 된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천림곡으로 가는 도중에 두 사람은 간단히 교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서로 여러 모로 탐색을 시도해 보았다.하지만 둘 다 총명한 사람들이다.아무런 수확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확이 크지는 않았다.그러나 서현우는 여전히 홍세령의 말에서 자신과 번산도 모르는 상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쿠우!”천림곡에 도착했다.고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과 안개가 거대한 지역을 깊이 뒤덮고 있었다.서현
“사령관님, 이건 적국에서 온 투항서입니다. 땅 3000km를 내준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철수하길 원합니다.”“우리 용국을 도발하더니 군사들이 죽어나가니 땅 3000km를 내주고 살려 달라? 웃기지도 않는군!”용국 남강 변강의 전략 회의실에서 10명의 장군들이 군복을 입고 예리한 눈빛을 하고 수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주시했다.이 사람이 바로 남강의 총사령관 서현우다.6년 전 범죄자의 신분으로 남강에 도착하여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다져 6년 만에 9개의 적국을 무찔러 적들 사이에서 명성이 대단한 남자였다.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에는 스물여섯의 나이의 젊은 나이에 사령관의 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톡, 톡, 톡...서현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릴 뿐이었다.급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상대가 굴복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의 항복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쾅!바로 이때 회의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온 아름다운 여인에게로 향했다.여인은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훤칠하고 잘 빠진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그녀는 서현우의 심복 중 한 명인 홍성이었다.홍성이 빠르게 걸어오는 모습에 서현우가 입꼬리를 올렸다.‘결론이 난 모양이군.’“보고드립니다!”홍성은 그에게 다가와 경례를 했는데 얼굴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서현우는 그녀의 표정을 읽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오랫동안 그를 따른 홍성의 처음 보는 표정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사령관님, 중연시에서 소식이 전해졌는데 여동생분께서...”서현우는 벌떡 일어나 비장한 눈빛으로 물었다.“내 여동생이 왜?”홍성이 이를 악물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쉽사리 사진을 꺼내지 못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화나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연시는 피바다가 될 것이다.“꺼내.”서현우가 명령했다.“네...”홍성은 심호흡을 하고는 사진을 꺼냈다.사진을 받
중연시 공항.“빨리! 행동 더 빠르게!”무장을 한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방어태세를 갖췄다.그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몰랐지만 큰일이 났다는 소식을 받고 긴급 출동하여 공항을 엄호했다.중연시 총독 천우성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것이 왔다!전투기가 회오리를 뚫고 착륙했다.문이 열리고 서현우는 홍성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이어 그는 병사들이 총구를 자신에게 묘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비켜!”홍성의 수려한 눈빛에 살기가 흐르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변방에서 살육을 행하던 그녀에게서 흐르는 살기에 모든 사람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사령관님!”천우성이 얼른 달려가 서현우의 앞에서 깍듯이 예를 갖추고 서현우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중연시 총독인 천우성이라 합니다. 사령관님께서는 어쩐 일로 남강에서 오셨습니까?”홍성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사람들을 철수해요. 차를 준비시켜 사령관님을 제1병원으로 모셔요!”“그게...”천우성이 고개를 살짝 들어 서현우의 안색을 살폈다.그 눈짓 한 번에 그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서현우의 눈빛은 마치 피바다를 연상케 했다.홍성이 다시 엄격하게 말했다.“어서요!”“남강의 총사령관으로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셔야죠. 얼른 돌아가서...”천우성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홍성이 그를 향해 발길질했고 천우성은 그대로 자빠졌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살기를 담아 다시 명령했다.“얼른 차 대기시켜!”척!!!수백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총구를 홍성에게 조준했다.“서현우 님!”일촉즉발의 상황에 누군가 등장했다.천우성은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도착한 사람은 이천용이었는데 금용 감찰사의 총독으로서 전장 구역을 감찰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서현우가 이천용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나에겐 낭비할 시간 없어. 얼른 차 대기시켜.”이천용은 바짝 말라가는 입으로 말했다.“걱정하지
‘오빠, 약 잘 먹어야 해. 엄마가 약 먹어야 낫는다고 했어.’무당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서현우가 1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침대 옆에서 5살의 서나영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약을 먹이며 방긋 웃었다.“이 나쁜 놈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초등학교 3학년의 서현우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고 양갈래머리를 한 서나영은 작은 팔을 벌리고 으르렁대며 서현우의 앞에서 사나운 모습으로 그를 보호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모습이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고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를 것이다.“오빠, 난 왜 항상 이빨이 빠져? 자꾸 바람이 새잖아. 너무 못생겼어... 웃지 마! 오빠 미워!”유치가 빠진 서나영은 당황했지만 그런 자신을 웃는 서현우에게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오빠, 내 치마 예뻐?”엄마가 자신에게 치마를 사주면 서나영은 항상 가장 먼저 서현우의 앞에서 자랑했다. 그럴 때면 서현우는 매번 입을 삐죽대며 못생겼다고 놀렸다.“엉엉, 이제 엄마 없어. 오빠, 엄마 보고 싶어...”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던 그날, 밝은 성격의 서나영은 서현우의 옷자락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오빠, 빨리 달려. 순찰 왔어. 이 돈은 내가 오랫동안 몰래 모은 거란 말이야. 얼른 가져가. 몸 잘 챙겨...”서나영은 발개진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꼬깃꼬깃 접은 돈을 서현우에게 건네고는 얼른 방향을 틀어 달렸다. 서현우를 잡으려고 혈안인 순찰을 따돌리기 위해서.그날 서현우는 스무 살 생일을 보냈다. 동생이 준 돈을 손에 쥐고 그녀가 떠난 자리를 보며 그의 세상은 암흑에 잠겼다.눈물이 앞을 가렸다.밝고 귀여운 동생의 모습과 처참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의 모습이 겹쳤다.마치 무형의 손이 서현우의 심장을 터질 듯이 세게 잡고 있는 것 같았다.터덜... 터덜...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서현우는 어렵게 발걸음을 옮겼다. 줄곧 꼿꼿했던 그의 등이 조금 휜 것만 같았다.마치 남강의 커다란 산을 모두 등에 업고 있
‘왜?’‘왜!’서현우는 처참한 심정으로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먹을 쥐었는데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아팠다.하지만 가슴이 아픈 것에 비할 바가 되진 못했다.그는 숨을 고르며 터져 나오는 분노를 삼켰다. 세상을 멸망시키고도 남을 분노였다.남강의 총사령관으로서 백만 군대를 이끌고 적을 물리쳐 6년의 시간 동안 용국을 수호한 그였다.모든 사람들이 그가 변경에서 떨친 위엄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알지 못했다.무수히 많은 죽음에 직면했고 또 그만큼 살아서 돌아왔다.만약 그의 옷을 벗긴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들을 보아낼 것이다.그건 철과 피가 뒤섞인 훈장으로서 그는 국가를 위해 몸에 새긴 영광으로 여겼다.하지만 돌이켜보니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이었는지 실감이 났다.몇억의 백성들을 살렸지만 유일한 동생은 지켜주지 못하는 꼴이라니!어릴 적부터 발랄하고 외유내강인 동생은 숨이 꺼지고 있다.그녀는 지금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이 세계에 그녀가 살아갈 의미는 없었다.그녀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전의 강렬했던 삶의 의지는 죽기 전에 6년 동안 실종이 되었던 오빠를 보는 것이었다.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걸 만족한 그녀는 이제 유감이 없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무서운 기운이 흐르며 테이블에 있던 유리잔에 금이 갔다. 조금만 건드려도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홍성, 이천용 들여보내.”밖에 있던 홍성은 그의 냉랭한 목소리에 한기가 뼛속을 파고들었다.홍성은 흠칫하더니 동공이 커졌다.서현우가 처음 이렇게 화를 냈던 것은 혼자의 힘으로 적국의 9대 전신을 물리칠 때였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중연시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이천용이 들어왔다.서현우의 목소리는 아주 컸기 때문에 홍성이 전달할 필요도 없이 이천용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