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는 약속은 잘 지켰다.우진을 만나게 하겠다고 약속한 그날 오후 윤아는 바로 우진을 만날 수 있었다.우진은 전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그녀를 대할 때도 공손했다.“윤아 님, 대표님한테서 듣기로는 저를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제게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윤아는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우진은 정자세로 서 있었고 얼굴과 목에도 다친 흔적은 없었다.그렇게 살피던 윤아가 바로 물었다.“혹시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이 물음에 우진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틀렸어요.”윤아가 당장에 거짓말을 까발렸다.“정말 다치지 않았다면 제가 그렇게 물었을 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물었어야죠. 바로 이렇게 아니라고 대답할 게 아니라.”윤아는 이렇게 말하더니 바로 손을 들어 우진의 가슴을 눌렀다.예고 없이 닥친 그녀의 행동에 우진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윤아가 꽤 세게 눌렀기 때문에 아픔을 참지 못하고 짧게 신음했다.윤아는 표정이 변하더니 그를 부축했다.“괜찮아요?”우진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켰음을 알고 윤아를 밀쳐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제게 선우 과거에 대한 얘기를 해준 것 때문에 그래요?”이를 들은 우진이 걸음을 멈췄다.“선우를 그렇게 오래 따라다녔는데 고작 그거 알려준 거로 이렇게 당한 거예요?”들어올 때 선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윤아 님, 그런 거 아니에요. 대표님은 저를 그렇게 대한 적 없어요.”“그럼 몸에 난 상처는 어떻게 된 거예요?”우진은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제 몸에 상처가 났다고 어떻게 단정해요? 아까 저를 밀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윤아 님 힘이 너무 세서 남자인 저도 미처 반응하지 못해서 그래요.”“확실해요?”우진이 인정하려 하지 않자 윤아는 더 의외였다.고작 그 일로 다쳤는데 우진은 선우를 위해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혹시 협박딩했어요?”윤아가 이렇게 묻더니 이내 침묵을 지켰다.우진이 진짜 협박받은 거라면
교훈만 살짝 줬다라...가벼운 말투는 마치 이 모든 게 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이 말을 들은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그럼 나도 하윤이도 서훈이도 그렇게 대하고 싶은 거 아니야?”태연하던 선우가 이를 듣더니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윤아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그녀가 더는 뒤로 물러서지 못하게 했다.“당연히 아니지!”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은 선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곧 으스러질 것 같았다.“내가 약속했잖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겠다고. 내가 맞는 한이 있어도 너와 하윤이, 서훈이한테 손을 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하지만 윤아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난 네가 너무 무서워. 이거 놔.”“윤아야!”선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잘 들어. 내가 죽을 때까지 너랑 아이들한테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야. 그 누구도 너희를 다치게 할 수는 없어.”“이거 놔! 넌 아무것도 몰라. 우린 네 보호가 필요한 게 아니야.”윤아가 힘껏 그를 밀쳐냈다.선우는 그 힘에 뒤로 몇 걸음 뒷걸음질 치며 중심을 잡았다. 숨결이 가빠지는 듯하더니 이내 흐트러졌다. 윤아 때문에 여간 화난 게 아닌 것 같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선우는 손을 들어 비뚤어진 안경을 바로잡고는 고개를 들었고 표정도 어느새 덤덤해졌다.“윤아야,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일단 먼저 진정 좀 하고 이따 다시 찾으러 올게.”선우가 나가고 나서도 윤아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숨을 길게 내뿜었다.진 비서님...윤아 때문에 우진이 다쳤다. 그저 조금 힘을 주어 눌렀을 뿐인데 아파서 뒷걸음질할 정도면 매우 심각한 부상일 것이다.저녁 식사 때 윤아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우진을 다시 만났다.우진은 집사와 나란히 옆에 서 있었다.윤아의 눈길을 느꼈는지 우진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인사했다.“윤아 님.”윤아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선우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내가 해코지할까 봐 걱정했잖아. 앞으로
연속 며칠 현아는 수현이 준비한 곳에 있느라 회사 일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도대체 며칠 휴가를 내야 할지 몰랐다.이 정도면 퇴사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하지만 이건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소리였다.현아를 따라온 주한은 회사 내 위치로 생각했을 때 이렇게 자주 자리를 비우면 회사에 큰 손실을 줄 것이다.윤아와 친한 현아는 손실을 봐도 괜찮지만 주한은 처음 윤아가 납치당한 걸 알고 피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사실 수현이가 그들을 여기 데려오면서 그의 임무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도 주한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현아는 주한을 찾아갈 생각이었다.그녀는 주한 바로 옆방에 살고 있었기에 옆방의 문을 두드렸고 이내 주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문도 안 열어주고 들어오라니.현아는 약간 망설여졌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들어가 보니 주한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회의하고 있었다.현아는 이 모습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회의하는데 가서 귀찮게 하면 살짝 예의가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현아는 걸음을 돌려 살금살금 도망가려 했다.하지만 이때 컴퓨터를 바라보던 주한이 그런 현아를 힐끔 쳐다봤고 그녀가 도망가려고 하자 입을 열었다.“이쪽으로 와요.”현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잠깐 망설이더니 그녀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주한은 맞은편 위치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눈짓했다.직속 상사라 현아는 명령을 거스르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현아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주한이 회의하고 있긴 했어도 이 방에는 둘 뿐이었다.자리도 주한의 맞은 편이라 어딘가 더 불편해 보였다.그래도 처음엔 꽤 정상적인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심심해진 현아는 핸드폰을 꺼내 게임하기 시작했다.다운한 게임을 하려고 켰는데 무음으로 설정하는 걸 까먹는 바람에 게임 음악이 흘러나왔다.현아는 순간 너무 난처해 얼른 핸드폰을 껐고 마침
아까 여기서 회의하는 모습을 보니 서준이 얼마나 업무적으로 닦달하는지 알 것 같았다.“귀한 분이 처리할 일도 많다라...”주한은 현아가 쓴 단어를 두어 번 곱씹더니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음, 맞아요. 요 며칠 회사 일에 영향 준 건 맞아요.”“그럼...”“그래서 어떻게 보상해 줄 건데요?”“?”현아는 할 말을 잃었다.뭔가 상황이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원래는 이 일로 회사 일에 영향을 미쳤다면 먼저 돌아가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주한이 대뜸 어떻게 보상할지 묻고 있다.현아는 막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는 일개 사원일 뿐이에요. 제가 무슨 수로 보상하겠어요?”이를 들은 주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보상해 줄 게 없다? 본인한테 이렇게 자신이 없는 거예요?”“...”현아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빨간 입술을 앙다문 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대표님, 설마...”주한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뭐요?”“설마 이번 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면 저 두 배로 부려 먹을 거 아니죠? 아니면 연말 보너스를 없애버린다든지. 어쩔 수 없죠. 무섭긴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저를 도와줬으니 착취를 해도 달게 받을게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아의 표정은 이미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주한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현아의 단순함에 감탄했다.그러면서 천천히 다가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주한은 이어폰을 빼고 이 화제를 건너뛰었다.“친구는 아직도 소식이 없어요?”“네.”이 얘기만 꺼내면 현아의 눈빛은 수심이 가득 찼다.“처음엔 수현이 윤아가 있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고 해서 믿음직스러웠는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못 찾으니 화가 나네요.”“사람을 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찾았다고 해도 경거망동하기보다는 천천히 방법을 생각하는 게 맞고요.”이를 들은 현아는 약간 놀란 듯 주한을 바라봤다.“대표님 말은 수현이 이미 윤아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지만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는 거예
선우는 더는 윤아와 입씨름을 하지 않았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제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분명 그녀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면서 그녀를 위한 일인 것처럼 위선을 떨고 있었다.윤아가 화를 내든 모진 말을 내뱉든 선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이에 윤아는 더 싸울 의미를 못 느끼고 두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방에 돌아온 윤아는 창가에 서서 약 5분을 기다렸고 이내 선우의 차가 별장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선우뿐만 아니라 별장을 지키던 사람들도 절반쯤 빠진 것 같았다.윤아는 살짝 놀랐다. 우진은 오늘 그가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하지만 이내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녀를 여기 가둬두려고 결심한 그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빼가는 이유가 뭘까?설마 그녀를 이미 찾아낸 사람이 있는 걸까?하지만 누가 그녀를 찾았다면 빨리 그녀를 다른 곳에 옮겨야 할 텐데 말이다.똑똑.윤아의 사색은 노크 소리와 함께 멈췄다.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고 밖에 서 있는 우진을 발견했다.“윤아 님.”“비서님.”윤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우진이 이를 잘랐다.“윤아 님, 얼른 하윤이와 서훈이를 챙겨서 저를 따라오세요.”몇 분 뒤.우진은 하윤이를, 윤아는 서훈이를 안고 신속하게 빠져나갔다.가는 길은 매우 순조로웠고 막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윤아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벌렁거렸고 탈옥하는 기분이 들었다.우진은 그녀를 한 차 앞으로 데려갔다.윤아와 아이들을 안에 앉히더니 우진도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는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말했다.“윤아 님,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 밑에 누워야 할 것 같습니다.”이 제안에 윤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누워있는 것만으로 안 들킬 수 있을까요?”우진은 입을 앙다문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들이 문만 안 열면요.”이를 들은 윤아는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검사하는 사람이 문만 안 열면 그들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하지만 재수 없이 문을 열어 검사한다면...“제가 줄 수 있는 기회는 이 한 번이에요. 한번
“걱정하지 마. 나가면 괜찮아질 거야.”하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윤아와 아이들 모두 바닥에 엎드리자 우진은 윤아가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윤아 님, 꽉 잡으세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에 시동이 걸렸다.우진의 시선은 앞으로 향했고 차를 운전하며 말했다.“약 2분 뒤 대문에 도착할 거예요. 사람이 절반 이상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이 꽤 많아서 제가 혼자 상대하기엔 무리예요. 운이 좋으면 일단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고 오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저들이 차를 검사하려 한다면 아예 차에 속도를 올릴 거예요. 그러면 뒤에서 안전벨트를 하고 조심하세요.”우진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얘기했지만 윤아는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우진은 입꼬리를 당기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분 뒤, 차는 대문에 도착했다.선우가 나갈 때와는 다르게 우진은 나갈 때 검사를 받아야 했다.차가 멈춰서자 윤아는 호흡이 가빠졌고 얼른 옆에 있는 녀석들에게 눈치를 줬다. 둘은 얌전하게 엎드린 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누군가가 창문을 톡톡 두드리자 우진은 창문을 절반쯤 내리고 아무 표정 없이 밖에 선 사람을 내다봤다.문을 지키던 사람은 선우를 보고 표정이 살짝 변했다.“진 비서님, 어디 나가시게요?”“네.”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대표님이 놓고 간 물건이 있어서 가져다줘야 해서요.”문 지킴이가 살짝 망설였다.“하지만... 대표님께서 진 비서님은 별장에 남아 심윤아 씨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심윤아 씨도 보호하고 있고 물건도 가져다줘야 해요. 아니면 그쪽이 나를 대신할 건가요?”“그게...”“길을 내주세요.”여기서 이렇게 대치하고 있자 다른 사람들도 달려와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우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사람이 많으면 일이 복잡해진다.하필 이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우진은 활짝 열린 대문을 보며 이대로 질주해 나갈지 고민되었다.하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하지만 아까 진 비서님이 너무 화나 계셔서 혹시나 미움 살까 봐...”대장은 이를 듣더니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큰일났다. 얼른 저 차 쫓아. 그리고 윤아 씨 지금 방에 있는지 확인하고.”대장의 지시하에 다들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누구는 차로, 누구는 방으로 달려갔다.“큰일이에요! 심윤아 씨가 사라졌어요!”“진 비서 이 사람이! 얼른 쫓아가! 차 몇 대 더 보내고! 그리고 이 소식을 대표님께 알려!”순간 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별장을 순조롭게 탈출한 우진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윤아와 아이들도 바닥에서 일어나 곧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 셋 다 안전벨트를 맸다.우진도 전혀 속도를 늦출 엄두를 내지 못했고 백미러로 윤아를 보며 말했다.“아마 저들이 바로 발견할 거예요. 최악의 상황이라면 지금 이미 우리를 쫓아오고 있을 수도 있어요. 윤아 님, 만약 저들이 이미 쫓아오고 있다면 이따 다른 곳을 찾아 내려드릴게요. 그럼 일단 잘 숨어계셔야 해요. 이 차는 이미 찍혀서 너무 위험해요.”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다시 데리러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내려서는 알아서 방법을 찾아야 해요.”우진은 이렇게 말하며 백미러로 그녀를 쳐다봤다.“윤아 님, 여기는 지금 외국이에요. 밖에서 홑몸도 아니고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있으면 별장에 있는 것보다 백배 천배 위험해요.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돌아가도 돼요.”“아니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후회 없어요.”윤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혼자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서 살아본 적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우리를 어디 내려줘요.”우진은 굳건한 그녀의 말투에 더는 걱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얼마나 지났을까, 우진은 아마도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자기도 어느 길인지 모를 만큼 이리저리 에돌아 갔다. 그러다 결국 약간 은밀한 곳을 찾아 윤아를 내려줬다.차를 세우고 우진은 먼 곳을 내다봤다.“앞에 농장이 하나 있을 거예요. 일단 그쪽
차에 사람이 없으니 우진도 속도를 조금 내렸다. 우진이 도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앞에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도 잘 몰랐다.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이미 끝난 일을 후회하든 하지 않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우진의 차가 따라잡힌 건 1시간 뒤였다.그는 차와 함께 선우에게 끌려왔다. 마치 자신의 결말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표정이 어두웠지만 구걸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들이 어디에 있어요?”선우의 말투는 여전히 가벼웠다.하지만 우진은 이게 폭풍 전야임을 잘 알고 있었다.우진은 고개를 들어 선우의 두 눈을 쳐다보며 웃었다.“어디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 중간에 헤어졌거든요.”이 말에 선우 눈가의 핏줄이 불끈 솟아났다.“왜 그랬어요?”우진은 입술을 앙다물더니 말했다.“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이에요.”“내가 전에 벌준 것 때문에 그래요?”선우는 안경을 위로 올리며 물었다.“그래서 윤아와 아이들을 놓아주는 것으로 복수하는 거예요?”“아니요.”우진이 고개를 저었다.“정확히 말하면 대표님은 제게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죠. 그러니 대표님이 제게 벌을 준다 해도 복수하지는 않을 거예요.”우진은 이렇게 말하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봤다.“돌이킬 수 있을 때 그만하세요.”선우는 그런 우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얼굴엔 이미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그만하라고요?”“대표님 혹시 그거 아세요? 저번에 윤아 님이 유심 카드를 가졌지만 바로 신고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선우는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그때 윤아 님이 신고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대표님, 윤아 님은 대표님께 희망을 안고 있었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했어요.”“이제 그만해요. 그러면 대표님도 윤아 님과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어요.”“친구라.”이 말에 선우가 웃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찮다는 듯 가벼운 웃음이었지만 이내 세상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 점점 커졌다.우진은 그 자리에 서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