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윤아 님. 방금 대표님과 연락했는데 그쪽에선 이미 아이스크림을 사서 다음 행선지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도 지금 출발하면 그쪽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윤아는 이 상황이 몹시 불쾌했다. 구조요청까지 다 해놓고 시간을 못 끌어서 망친 꼴이라니.하윤이도 분명 옆에 있었는데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아이마저 잃고 말았다.윤아는 스스로가 미워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아이스크림 사러 가게 해줄걸 그랬다.“윤아 님.”우진이 아직 생각에 잠긴 윤아를 재촉했다.“지금 가야 합니다. 더 늦으면 못 따라가요.”윤아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짐 좀 챙기고요.”“네. 저희는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5분 내로 나오세요.”우진이 나간 후, 훈이와 함께 방으로 돌아간 윤아는 짐을 챙기다 말고 뭔가 떠오른 듯 다시 캐리어 속에서 옷을 하나 꺼내 옷장에 걸어 넣었다.그뿐만 아니라 옆 서랍에도 물건을 몇 개 집어넣고서야 윤아는 캐리어를 끌고 훈이와 함께 밖에 나갔다.“윤이 만나러 가자.”“네.”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우진이 나서서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윤아는 지금 사실상 압송 되는 상태나 마찬가지였기에 아예 모든 짐을 우진에게 다 들게 했다.떠나기 전에 윤아는 미련 가득한 얼굴로 호텔 룸을 다시 한번 봤다. 나오기 전에 남긴 물건들을 그들이 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면 호텔 측에서 룸을 청소하러 올라갈 거다. 현아가 그 전에 와줘야 할 텐데.선우가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르기에 이제부터는 윤아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윤아에게 뺨까지 맞은 우진이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공손했다. 짐도 들어주고 차 문도 열어주며 또 사람을 시켜 차에서 먹을 음식도 준비해 줬다.“윤아 님, 입맛이 없어도 조금 드세요.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여기 음식을 준비했으니까 가는 동안 드시고 싶으시면 얼마
처음엔 순탄하던 길이 점점 거칠고 험해지기 시작했다. 윤아는 초반엔 그래도 참을만했지만 10분 정도 있으니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 났다.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서훈도 눈에 띄게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윤아는 자기 몸도 불편했지만 서훈을 살뜰히 챙겼다. 멀미에 맞서기 위해 서훈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좀 나아지는 것 같아?”그러나 서훈은 많이 불편한지 대답이 없었다.윤아는 어쩔 수 없이 운전석에 탄 사람한테 말했다.“좀 천천히 가주세요. 아이가 멀미를 해서요.”운전기사는 급하게 가는 바람에 험한 길에 들어서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호텔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후사가 걱정되었던 우진이 서두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개를 돌려 본 서훈은 괴로운 듯 몸을 구부리고 있었고 윤아도 창백한 안색으로 간신히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우진은 하는 수 없이 운전기사더러 속도를 늦추라고 했다.속도가 줄자 조금 전보다 훨씬 덜 덜컹거렸다.윤아는 구역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으며 서훈을 꼭 안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곁에 없는 하윤이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이런 길은 윤이도 분명 버티기 힘들 텐데, 떠날 때도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아이라 지금쯤 울음은 그쳤을지, 무섭다고 더 울어대는 건 아닌지, 울다 숨이 막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덮쳤다.윤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심란해져 아예 눈을 감고 이 긴 여정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산 중턱에 위치한 별장에 도착해서야 차는 멈췄다.차 문이 열리자 보인 건 별장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 한 대와 열려있는 대문, 그리고 그 양옆을 지키고 서있는 수많은 경호원이었다. 보기에는 경비가 삼엄하니 매우 안전해 보이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도망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었다.“윤아 님, 도착했습니다.”윤아는 서훈을 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윤을 찾았다.우진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우진의 말에 윤아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혹시 저희 대표님 집안 사정을 알고 계십니까?”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릴 적 선우네 집안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선우 아버지가 소문난 바람둥이라 아내고 아들이고 상관도 안 하고 온종일 술과 젊은 여자에 미쳐 산다고.그의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선우를 위해 나서주는 사람도 있었다.“돈 많은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돈도 있고 권력도 있으니까 밖에서 유흥을 즐기는 거지. 놀다 지치면 집으로 돌아갈 거야. 무슨 큰 사고 치는 것도 아니고.”그 사람은 세상 모든 남자를 그저 그렇게 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윤아는 알고 있었다. 모든 남자가 다 선우네 아버지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적어도 그녀의 아빠만큼은 말이다. 엄마를 잃은 윤아를 홀로 키워온 그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윤아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그의 아내를 사무치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어도 지킬 건 지키는 사람도 있는데 다른 남자들은 왜 그게 안 되겠는가. 그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 뿐이겠지.윤아는 당시 선우를 위로해 주려 했으나 선우가 그녀를 볼 때마다 수현과 소영 얘기를 해대던 터라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찾아가지 않았다.그렇게 윤아의 위로는 선우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그리고 얼마 후, 선우네 어머니가 이혼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었다. 내연녀가 임신한 상태로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나.남성의 모든 사람이 선우네 집안을 두고 혀를 찼고 학교에서도 그는 씹기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었다.그때 윤아도 여자애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우와. 선우 진짜 잘생겼다.”“쳇. 생긴 값 하는 거지 뭐. 바람둥이를 누가 좋아해?”“바람둥이? 왜? 선우 연애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너희들 뭐 아는 거라도 있어?”“선우 말고 걔네 아빠 말이야. 불륜도 모자라 그 여자 임신까지 시켰대.
윤아는 원래 함부로 말을 지어내는 여자애들한테 몇 마디 해주려던 것뿐인데 이것들이 면전에서 남의 집안까지 들먹일 줄이야.윤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그들을 노려봤다.“뭐라고?”“왜? 우리가 뭐 틀린 말 했어? 하긴 애초에 가정환경에 문제 있는 애들이 선우같이 모자란 애들이랑 노는 거지. 모자란 것들끼리 아주 그냥 끼리끼리네.”“아참. 우리 심씨 가문 아가씨가 선우랑 사귀게 되면 과연 누가 먼저 바람을 필까?”윤아는 그들의 선 넘은 막말에 이성의 끈이 뚝 끊기는 걸 느꼈다. 화가 치밀어 당장 다가가 따지려던 그때, 난데없는 굉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학교 쓰레기통이 주먹에 맞아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주먹을 쓴 사람은 옆에 있던 선우였다.아직 애티 나는 얼굴에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풍겼다.그의 스산한 눈빛은 윤아를 지나쳐 그 뒤의 막말을 쏟아내던 여자애들에게 향했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때아닌 미소가 피어나더니 말했다.“알고 싶은 게 많은가 봐... 내 주먹한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때?”“미친놈.”여자애들은 공포에 질려 외마디 욕설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그제야 선우는 조금 전의 살기는 온데간데없는 자상한 남자아이 모습으로 윤아에게 다가갔다.“너 왜 이렇게 멍청해? 쟤네들이 말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잖아. 뭣 하러 거길 껴?”윤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쟤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좀 정정해 줬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말을 마친 윤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 쌩하니 가버렸다.그날, 선우는 윤아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동시에 그날은 윤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까지 크게 화를 내는 선우를 본 날이었다.사실 그때 일은 윤아에게 이제 거의 잊혀가는 어릴 적 헤프닝일 뿐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선우의 어린 시절은 정말 엉망진창이었겠다 싶었다.오합지졸인 집안은 한 부모 가정보다 못하다. 적어도 윤아네 집은 평화로웠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아빠가 있었으니.잠시 옛 생각에
윤아는 그 뒤의 말이 훈이가 듣기 부적절한 얘기임을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시간 될 때 찾아와주세요.”“네.”기나긴 복도를 지나 드디어 별장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윤아는 저 멀리 하윤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선우를 보았다.그는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왔어? 오는 길에 멀미 하진 않았고?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선우는 윤아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걱정스레 물었다.윤아는 사람을 감금하고 있으면서 뻔뻔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올 뻔했다.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우진이 얘기해줬던 선우 어머니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결국 윤아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떨구었다.‘됐어. 말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걸.’그때, 하윤이 윤아에게 달려왔다.“엄마!”윤아는 그제야 하윤의 눈시울이 붉은 것을 발견했다. 보아하니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멀미했어?”그러자 하윤이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꿀물 타 줄게. 응?”“네.”그래도 다행인 건 선우가 아이는 살뜰히 챙겨준 듯했다.곧이어 집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윤아 씨. 전 이곳의 집사, 임춘재라고 합니다.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그러나 윤아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집사가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니라 결국 이곳에 와있는 자신의 처지가 싫어서였다. 그러니 윤아는 자연히 이곳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필요를 못 느꼈다. 만약 집사가 그녀의 태도로 인해 기분이 상한다면 그것 또한 선우가 골치 아파야 할 일이지.아니나 다를까, 윤아의 쌀쌀맞은 반응에 춘재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내가 뭘 잘못 말했나?’어색한 분위기 속, 선우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험한 길 오느라 다들 지쳤을 테니 올라가 쉴 수 있게 준비
10분 후, 우진은 방에서 나왔고 그 안에 남겨진 건 숨 막히는 적막과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윤아였다.윤아는 선우가 그런 일을 겪고도 성격이 정상인 게 더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선우의 어머니가 자살을 했던 그 해, 그런 일이 있기 전에 그녀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헛소리는 기본이고 자기 아들한테 폭력까지 일삼았으니 말이다.선우는 집에서 맞은 상처로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으나 젊은 나이에 미쳐버린 엄마에 대한 동정심 때문인지 반항 한번 없이 꾹 참으며 살았다고 한다.그러다 선우의 할아버지가 그 일을 알게 되면서 선우는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선우가 할아버지를 따라 떠나던 그날,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그 일로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선우의 아버지와 달리 품행에 늘 심혈을 기울이던 할아버지는 선우의 아버지의 권력을 모두 몰수하고 방금 엄마를 잃은 선우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었던 것이다.그리고 그 집을 찾아왔던 내연녀는 본래 선우의 할아버지가 처리해 버리려고 했으나 아이를 가졌다기에 강제로 친자 검사를 시켰다.그 아이 정말 선우네 일가의 핏줄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그동안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어린 선우는 위로받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결국 선우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완벽한 후계자가 되었지만 그 내면에 있는 아이는 영원히 치유받지 못한 채 더없이 차갑게 변했던 것이다.우진이 왜 그를 미친놈이라 여기게 되었는지는 그 내연녀가 딸아이를 낳고 나서 벌어진 일로부터 시작된다.남자아이를 낳지 못한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출산 후 다시 임신 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또다시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선우의 앞에서 온갖 유세를 다 떨곤 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아이는 매일 보는 선우를 가족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에게 안아달라며 애교까지 부리곤 했었다.어린 소녀가 몇 살째 되던 해, 선우의 곁에 서서 짧은 두
여자애의 눈매는 선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외모로만 보면 오누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여자애가 울기 시작하자 선우는 쪼그리고 앉아 구경이라도 난 듯 눈물을 뚝뚝 떨구며 통곡하는 걸 지켜봤다.아이의 울음소리가 성가실 법도 했지만 선우는 마치 감미로운 멜로디라도 감상하듯 즐기고 있었다.감상할 만큼 한 선우는 사람을 불러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데려가라고 했다.그 뒤로 아이는 한 번도 선우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우진은 그때부터 선우가 어딘가 미쳐 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정상적인 심리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우진은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잘못했다간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말이다.윤아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선우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납치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이렇게 생각하며 윤아는 미간을 주물렀다. 만약 그가 비정상적인 심리로 이러는 거라면 일이 복잡해진다.윤아는 방에 잠깐 있다가 바로 두 아이를 찾으러 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찾아와 주방에 디저트를 애피타이저로 준비했으니 내려와 먹으라고 했다.윤아는 멈칫하더니 대답 대신에 집사에게 물었다.“선우는요? 좀 만나고 싶은데.”“그게... 대표님은 일이 있어서 나갔습니다.”윤아는 이 질문에 집사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진 걸 발견했다.신경이 갑자기 곤두서는 그녀였다.“어디로 간 거예요?”하지만 집사는 표정을 삭 정리하더니 말했다.“심윤아 씨,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대표님이 부른 집사일 뿐 개인 일정까지 관리하지는 않습니다.”집사가 대표의 일정을 모른다고?윤아는 이걸 믿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속으로 이를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일정을 모른다니 어쩔 수 없죠.”집사가 말을 이어갔다.“심윤아 씨, 그럼 디저트는...”“됐어요. 배고프지 않으니 식사할 때도 부를 필요 없어요.”“...”집사는
공항.현아와 주한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윤아가 보낸 주소로 향했다.차가 호텔 앞에 멈춰서고 현아는 윤아가 전에 알려준 건물을 하나씩 대조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전부 들어맞았다.현아는 윤아의 관찰 능력과 기억력에 감탄하며 안전벨트를 풀고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렸다.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따라서 내린 주한이 팔을 잡았다.“침착해요. 바로 들어가면 안 돼요.”이를 들은 현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급하게 물었다.“여기까지 왔는데 못 들어간다고요? 친구가 위험한데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요? 뭐라도 해야죠!”주한은 까만 눈동자로 그런 현아를 힐끔 쳐다보더니 실눈을 뜨고 호텔을 올려다보며 지령을 내렸다.“나 혼자 들어갈게요.”“뭐라고요?”현아는 이 말에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 시간 후에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신고해요.”“...”현아는 할말을 잃었다.“내가 대표님을 어떻게 혼자 들여보내요?”주한이 현아의 어깨를 부여잡았고 현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둘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현아 씨, 잘 들어요. 같이 들어갔다가 무슨 일 생기기라도 하면 누가 신고해요? 그러니까 한 명은 꼭 밖에 있어야 해요.”“맞는 말이긴 한데, 윤아... 내 친구예요. 모험하더라도 내가 해야죠. 대표님이 밖에 있어요.”현아를 바라보는 주한의 눈빛이 점점 난감해졌다.“들어가서 사고 안 치고 잘 해낼 자신 있어요?”“...”현아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남자라도 마주치면 맞짱 뜰 수 있어요?”“아니요...”주현아가 이를 부정했다.“그럼 이제 말해봐요. 그래도 들어갈 거예요?”“그래요, 그럼 대표님이 들어가요. 근데 20분이에요. 20분이 지나도 안 나오면 바로 신고합니다.”“그래요.”주한은 덤덤한 표정으로 현아를 놓아주더니 몸에 지닌 물품을 정리하며 말했다.“길 저쪽 편에 카페가 하나 있어요. 거기서 기다려요. 기억해요. 내가 나오기 전까지 절대 들어올 생각하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