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이 점에 대해선 윤아도 인정하는 바이다.윤아는 문득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을 누군가가 떠올랐다.그러나 곧바로 이 쓸데없는 생각은 윤아에 의해 내팽개쳐졌다.이제 더 그 사람 생각을 하면 안 된다. 5년이나 견지했는데 귀국했다고 온통 그의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다니.윤아는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그때, 윤아의 핸드폰이 울렸다.“차서원 대표네요.”“차서원 대표요? 그분이 왜요? 설마 차 대표님도...”“아니에요. 저 전화 좀 받을게요.”민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대표님?”그날, 그의 회사에서 그렇게 나간 뒤로 윤아는 굳이 다시 그를 찾지 않았다.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안 이상 그에게 더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원에서 회사를 키우려면 그와 척을 져서도 안 됐다.“윤아 씨, 요즘 회사는 좀 어때요? 저번 일은 죄송했어요.”“아니에요.”“다름이 아니라 제가 윤아 씨 회사에 직접적인 투자를 하긴 좀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아랫사람들을 풀어서 대신 회사 홍보를 해드릴 수는 있거든요. 이것도 꽤 효과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차서원이 해주는 홍보라면 아마 꽤 효과가 있을 거다.윤아는 고마운 마음에 말했다.“신경 써주셔서 고맙지만 저희 회사 일은 이제 해결돼서요.”“해결됐다고요?”투자 관련 일이 해결됐다는 말에 서원이 꽤 놀란 듯 보였다.“어떻게요? 어느 회사가요?”윤아는 고민 끝에 결국 알려주기로 했다.“진 씨 그룹이요.”차서원:“...이 자식. 버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무너진다고?”그가 놀라움을 토로하는 동안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차서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윤아 씨 마음 얻으려고 참 애를 쓰네요.”윤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바로잡았다.“차서원 대표님. 그런 말은 조심해주세요. 저흰 그저 파트너 관계입니다.”“그 자식이 그냥 협업하려고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왜지, 혹시 진수현이 별로예요?”그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깨어나시면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의사는 진수현이 생명을 간과하는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말문이 막혔다.“죽고 싶은 거면 병원에 오질 말았어야죠. 절 찾지도 말았어야 하고요.”그의 훈계에 이민재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작게 맞장구쳤다.옆에서 보고 있던 윤아는 의사의 반응으로부터 수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의사는 민재에게 몇 마디 더하고는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이민재는 버려진 강아지 같이 침울해져서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푹 떨어트렸다.그렇게 한참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윤아는 발걸음을 떼 그에게 다가갔다.윤아가 다가오는 소리에 민재가 고개를 들었다. 윤아는 그제야 이 다 큰 남자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음을 발견했다.의사에게 혼이 나서 그런 건지 수현이 걱정되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꽤 서러워 보였다.민재는 윤아를 보고 얼른 몸을 돌렸다.그 모습에 윤아는 말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그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줬다.2분 정도 지났을까, 민재가 그제야 몸을 돌려 윤아를 바라보았다.“아가씨.”윤아는 민재가 괜찮아진 듯 하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물었다.“진수현은요?”“막 응급처치 끝났어요.”민재가 다시 목이 메는 듯 말했다.그의 말에 윤아는 더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한참 뒤에야 다시 입을 떼는 윤아,“데려다줘요.”“네.”윤아를 병실로 데려다주는 동안에 민재가 쉬지 않고 말했다.“와주셔서 감사해요, 아가씨. 윤아 아가씨 아니었으면 전 정말 어쩔 줄 몰랐을 겁니다.”그의 말에 윤아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저한테밖에 전화 못 해요? 수현 씨... 집사람은요?”윤아는 원래 강소영을 말하려 했으나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어색해 집사람이라 정정했다.그에 민재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말했다.“아가씨.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어요. 대표님이 다른 가족분들 말을 들었으면 오늘 이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민재는 딴생각하고 있었던 탓에 윤아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그저 윤아의 발걸음이 멈춘 걸 느끼고는 그도 걸음을 멈추고 설명했다.“제 말은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대표님 상태가 그래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가끔 술을 마시긴 하셨어도 어르신을 만나러 가기 전에는 스스로 컨트롤 하시고 몸에서 나는 술 냄새 때문에 어르신께 들킬까 봐 한동안 술은 입에 대시지도 않으셨으니까요. 그런데 어르신이 돌아가시고는 대표님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민재가 많은 말을 했지만, 윤아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보일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한순간에 그녀를 둘러싼 모든 소리가 흐릿해졌다.마치 물에 잠긴 듯 먹먹해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또렷하던 눈앞이 서서히 흐려지며 그나마 보이던 민재의 입도 어둠에 잠겨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예전엔 강소영 아가씨께서 대표님을 말려보기도 했지만, 쓸모가 없었어요. 저희 대표님이 그분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어요. 심지어 그분을 보려고도 하지 않으셨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윤아 아가씬 달랐어요. 대표님이 아가씨 말씀만은 들으시니까...”민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윤아가 바닥에 쓰러졌다.“아가씨!”윤아는 정신을 잃은 채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상태로 민재의 부축을 받았다. 민재가 그녀를 몇 번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서둘러 윤아를 안고 의사를 찾아갔다._수현이 눈을 떴을 땐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의료기기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그는 병상에 누워 다시 주삿바늘이 꽂힌 채 수액을 맞고 있는 자기 팔을 내려다보았다.이 광경에 수현이 그늘진 얼굴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천천히 밀어주세요, 천천히.”민재가 두 명의 간호사와 함께 베드를 밀며 들어왔다.누워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수현은 민재가 허둥대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자신이 이렇게 아픈데 다른 사람한테 정신이 팔려있다니.‘게다가 지금 다른 사람을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쓰러집니까? 나 부축해 줘요.”수현이 이를 꽉 물며 그를 제지하는 민재에게 맞섰다.그가 힘을 쓰고 있음을 느낀 민재는 결국 포기하고 그를 부축했다.그는 수현의 손에 있는 상처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링거를 들고 수현을 부축해 윤아의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윤아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낯빛이 아주 창백했다. 평소 선홍색 빛을 띠던 입술도 그 빛깔을 잃어 누워있는 모습이 유난히 초췌해 보였다.이런 윤아의 모습은 비수가 되어 수현의 가슴에 꽂혔다.그는 얇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물었다.“어떻게 된 겁니까?”민재도 알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윤아 님께 대표님이 피를 토하셨다고 얘기해서 병원에 오셨는데 그때까진 안색도 나쁘지 않으셨거든요,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실 줄은….”“의사는 뭐라고 했어요?”“너무 놀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요. 우선은 쉬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놀라서?수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피를 토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놀랐을거라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걱정된다고 여기까지 왔을 것 같지도 않았다.하지만...그 뒤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오는 길에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민재가 어리둥절하며 대답했다.“별일 없었습니다. 오는 길에 제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제가 대답을 해드리는 도중에 보니까 쓰러져 계시더라고요.”물어봐?수현은 그 과정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뭘 물어봤는데요?”민재는 사실대로 얘기해주었다.“대표님 병세가 지속된 지 얼마나 되셨는지 물어보셔서 있는 대로 얘기해 드렸습니다.”“그뿐인가요?”“네. 다른 얘긴 딱히 안 했는데요.”그 때문에 민재도 잘 얘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쓰러진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건강에 무슨 문제라도?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하셨으니 갑자기 쓰러진 건 뭔가 충격을 받은 게 맞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가씨께서 갑자기 대표님에 관해 물으셔서 대표님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 상황 설명을 해드린 것 뿐 정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수현은 숨을 헐떡이며 민재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엔 살기가 일렁거렸지만 결국엔 잘 참아 넘겼다.아마 소란을 피웠다간 윤아의 휴식에 방해가 될거라 생각한 모양이다.그는 민재를 놓아주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말했다.“꺼져요.”민재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링거는...”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현이 손에 있던 주삿바늘을 뽑으려 했다.그 모습에 민재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대표님, 충격으로 쓰러지신 윤아 아가씨가 깨서도 대표님 걱정을 하게 만드실 겁니까?”그 말에 수현이 잠시 동작을 멈췄다.“원래 아가씨께선 대표님을 상관 안 하려고 하셨는데 피를 토했다는 얘기에 오신 겁니다. 이래도 제대로 치료 안 받으시려고요?”말하다 보니 민재는 점점 용기가 나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걱정하고 말고를 떠나 대표님이 몸에 정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아가씨를 다시 모셔 오겠습니까?”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수현은 위험하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이 비서. 지금 나 훈계하는 겁니까?”“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전 그저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화는 나지만 그의 말이 수현의 마음에 와닿은 건 사실이다.결국 수현은 화가 나긴 했지만 다른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민재도 자연스레 계속 링거를 들고 서있었다.처음에는 들고 서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누워있으라는 그의 만류에도 수현이 자꾸 윤아 쪽으로 가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는지를 확인하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링거를 윤아의 베드 쪽에 걸어두었다.그리고는 누울 수 있는 의자를 찾아와 수현에게 줬다.“대표님, 돌아가 누우시래도 듣질 않으시니 여기에 눕는 건 되시죠?”민재가 이러면 거절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의자를 윤아의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아니나 다를까,
이혼했으니 이젠 할머니를 가족으로 생각 안 한다?차라리 그랬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신경 쓰지 않으면 슬플 일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윤아는 호텔에서도 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물었었다. 그때부터 수현은 그녀가 할머니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이제 할머니 소식을 알아버려 쓰러진 것이다.지금은 혼수 상태지만 수현은 그녀가 의식이 돌아온 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그럼 그다음은?여기까지 생각한 수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윤아의 손목을 살포시 잡았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흘러갔다.수현과 민재는 그렇게 계속 병실을 지켰다.얼마나 지났을까, 윤아의 가방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핸드폰 벨소리가 긴 정적을 깼다.민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윤아의 가방을 수현에게 가져다줬다. 수현은 손이 불편한 탓에 간신히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냈다.발신인을 확인한 수현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이선우.“윤아 아가씨께서 쓰러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퇴근 시간이니 평소대로라면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잖아요. 가족분들이 찾으시는 거 아닐까요? 대표님, 전화를 받아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럴 필요 없습니다.”이선우가 가족은 아니지 않나?“네? 괜찮나요?”수현이 싸늘한 얼굴로 핸드폰을 한 눈 보더니 민재에게 말했다.“전원 꺼버려요.”“하지만…”민재는 수현의 눈치를 슬쩍 보고 다시 핸드폰 화면 속의 이름을 한 눈 보고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 했다.이 이선우라는 사람, 대표님 연적일지도?민재는 고민 끝에 핸드폰 전원을 껐다.선우는 통화음이 한참이나 울렸는데도 윤아가 받질 않자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들려오는 건 발신인의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기계음이었다.선우의 눈에 찰나의 그늘이 스쳤다. 이윽고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잠시 고민한 뒤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난 학교로 가 두 아이를 픽업할 테니 윤아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줘요. 아이를 데려왔을 땐 저한테
“3년 전?”수현이 대답을 하지 않자 윤아가 다시 물었다.그녀의 시선은 수현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떨어졌다. 마치 반드시 대답을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듯이.그러나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눈가가 붉어지거나 그런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분명 방금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기절한 것일 텐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이게 정상인가?아니. 그럴 리가.수현이 입술을 꾹 깨물며 윤아를 지그시 바라봤다.“더 쉬지 않을래?”“진수현.”윤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내가 지금 묻잖아.”한참 후에야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비슷해.”“비슷해?”윤아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시는지도 모르나? 비슷하다는 게 무슨 말인데?”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둘 사이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뒤에 앉아있던 민재는 급소라도 맞은 사람처럼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역시.윤아 아가씨는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막 내뱉은 건지.“왜? 말을 못 하겠어?”윤아가 물었다.수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낯빛이 안 좋아 보였다.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아 피까지 토했는데 이 일로 윤아 곁을 지킨다고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수현은 얼굴이 흙빛인 데다 입술도 자색을 띠고 있었는데 윤아는 그런 수현을 보면서도 일말의 연민도 없어 보였다.그녀는 지금 오직 할머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했다.“말해 봐. 도대체 언제냐고?”한참 뒤에야 수현이 겨우 입을 뗐다.“3년 전, 그믐날 밤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심경색?윤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할머니 심근경색이 있으셨어? 난 왜 몰랐었지?”수현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윤아가 미간을 구기며 그를 재촉했다.“말해 봐.”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수현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결국 참다못한 민재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윤, 윤아 아가씨. 우선 진정하시고요. 어르신께서 나이도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네 얘기를 하셨어.”수현의 말에 윤아가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봤다.“정말?”수현도 그런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널 많이 그리워하셨어.”수현의 한마디에 윤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손잡이 없는 수도꼭지처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그 모습에 수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윤아를 꽉 끌어안았다.윤아는 숨을 죽이고 울었다.수현을 밀어내지도 않았는데 마치 모든 힘을 잃은 듯 그의 품에 기대어 한없이 눈물만 쏟아냈다.얼마 안 가 수현은 그의 어깨가 이미 축축해진 걸 느꼈다.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채 윤아가 제 안의 눈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걸 생생히 느꼈다.한참 후에야 그는 손을 올려 윤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한 편,선우가 두 아이를 차에 태우자 타이밍 좋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급하게 운전하지 않고 먼저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얘기에 다정하던 선우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하지만 그는 차에 두 아이가 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급하게 표정 관리를 했다.“네. 알겠어요.”통화를 끝내기 바쁘게 뒷좌석에 타고 있던 윤이가 꼬물꼬물 다가와 물었다.“선우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일 얘기야.”“네에.”윤이는 순순히 대답하더니 또다시 물었다.“우리 오늘 같이 엄마 데리러 가는 거예요?”같이 심윤아를 데리러 가?평소라면 그들 가족에 끼고 싶어 흔쾌히 수긍했을 선우였지만 오늘은…“오늘은 엄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저씨가 데리러 왔어.”평소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두 아이는 별다른 투정 없이 받아들였다.목적지까지 도착했을 땐 진 비서가 이미 집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비서 아저씨가 데리고 올라갈 테니까 돌아가면 아저씨 기다리지 말고 숙제하고 있어.”그의 말에 훈이가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보았다.“선우 아저씨는 같이 안 올라가요?”“아저씨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비서 아저씨가 같이 있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