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가씨께서 갑자기 대표님에 관해 물으셔서 대표님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 상황 설명을 해드린 것 뿐 정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수현은 숨을 헐떡이며 민재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엔 살기가 일렁거렸지만 결국엔 잘 참아 넘겼다.아마 소란을 피웠다간 윤아의 휴식에 방해가 될거라 생각한 모양이다.그는 민재를 놓아주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말했다.“꺼져요.”민재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링거는...”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현이 손에 있던 주삿바늘을 뽑으려 했다.그 모습에 민재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대표님, 충격으로 쓰러지신 윤아 아가씨가 깨서도 대표님 걱정을 하게 만드실 겁니까?”그 말에 수현이 잠시 동작을 멈췄다.“원래 아가씨께선 대표님을 상관 안 하려고 하셨는데 피를 토했다는 얘기에 오신 겁니다. 이래도 제대로 치료 안 받으시려고요?”말하다 보니 민재는 점점 용기가 나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걱정하고 말고를 떠나 대표님이 몸에 정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아가씨를 다시 모셔 오겠습니까?”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수현은 위험하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이 비서. 지금 나 훈계하는 겁니까?”“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전 그저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화는 나지만 그의 말이 수현의 마음에 와닿은 건 사실이다.결국 수현은 화가 나긴 했지만 다른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민재도 자연스레 계속 링거를 들고 서있었다.처음에는 들고 서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누워있으라는 그의 만류에도 수현이 자꾸 윤아 쪽으로 가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는지를 확인하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링거를 윤아의 베드 쪽에 걸어두었다.그리고는 누울 수 있는 의자를 찾아와 수현에게 줬다.“대표님, 돌아가 누우시래도 듣질 않으시니 여기에 눕는 건 되시죠?”민재가 이러면 거절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의자를 윤아의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아니나 다를까,
이혼했으니 이젠 할머니를 가족으로 생각 안 한다?차라리 그랬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신경 쓰지 않으면 슬플 일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윤아는 호텔에서도 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물었었다. 그때부터 수현은 그녀가 할머니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이제 할머니 소식을 알아버려 쓰러진 것이다.지금은 혼수 상태지만 수현은 그녀가 의식이 돌아온 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그럼 그다음은?여기까지 생각한 수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윤아의 손목을 살포시 잡았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흘러갔다.수현과 민재는 그렇게 계속 병실을 지켰다.얼마나 지났을까, 윤아의 가방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핸드폰 벨소리가 긴 정적을 깼다.민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윤아의 가방을 수현에게 가져다줬다. 수현은 손이 불편한 탓에 간신히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냈다.발신인을 확인한 수현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이선우.“윤아 아가씨께서 쓰러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퇴근 시간이니 평소대로라면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잖아요. 가족분들이 찾으시는 거 아닐까요? 대표님, 전화를 받아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럴 필요 없습니다.”이선우가 가족은 아니지 않나?“네? 괜찮나요?”수현이 싸늘한 얼굴로 핸드폰을 한 눈 보더니 민재에게 말했다.“전원 꺼버려요.”“하지만…”민재는 수현의 눈치를 슬쩍 보고 다시 핸드폰 화면 속의 이름을 한 눈 보고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 했다.이 이선우라는 사람, 대표님 연적일지도?민재는 고민 끝에 핸드폰 전원을 껐다.선우는 통화음이 한참이나 울렸는데도 윤아가 받질 않자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들려오는 건 발신인의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기계음이었다.선우의 눈에 찰나의 그늘이 스쳤다. 이윽고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잠시 고민한 뒤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난 학교로 가 두 아이를 픽업할 테니 윤아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줘요. 아이를 데려왔을 땐 저한테
“3년 전?”수현이 대답을 하지 않자 윤아가 다시 물었다.그녀의 시선은 수현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떨어졌다. 마치 반드시 대답을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듯이.그러나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눈가가 붉어지거나 그런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분명 방금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기절한 것일 텐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이게 정상인가?아니. 그럴 리가.수현이 입술을 꾹 깨물며 윤아를 지그시 바라봤다.“더 쉬지 않을래?”“진수현.”윤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내가 지금 묻잖아.”한참 후에야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비슷해.”“비슷해?”윤아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시는지도 모르나? 비슷하다는 게 무슨 말인데?”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둘 사이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뒤에 앉아있던 민재는 급소라도 맞은 사람처럼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역시.윤아 아가씨는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막 내뱉은 건지.“왜? 말을 못 하겠어?”윤아가 물었다.수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낯빛이 안 좋아 보였다.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아 피까지 토했는데 이 일로 윤아 곁을 지킨다고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수현은 얼굴이 흙빛인 데다 입술도 자색을 띠고 있었는데 윤아는 그런 수현을 보면서도 일말의 연민도 없어 보였다.그녀는 지금 오직 할머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했다.“말해 봐. 도대체 언제냐고?”한참 뒤에야 수현이 겨우 입을 뗐다.“3년 전, 그믐날 밤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심경색?윤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할머니 심근경색이 있으셨어? 난 왜 몰랐었지?”수현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윤아가 미간을 구기며 그를 재촉했다.“말해 봐.”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수현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결국 참다못한 민재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윤, 윤아 아가씨. 우선 진정하시고요. 어르신께서 나이도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네 얘기를 하셨어.”수현의 말에 윤아가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봤다.“정말?”수현도 그런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널 많이 그리워하셨어.”수현의 한마디에 윤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손잡이 없는 수도꼭지처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그 모습에 수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윤아를 꽉 끌어안았다.윤아는 숨을 죽이고 울었다.수현을 밀어내지도 않았는데 마치 모든 힘을 잃은 듯 그의 품에 기대어 한없이 눈물만 쏟아냈다.얼마 안 가 수현은 그의 어깨가 이미 축축해진 걸 느꼈다.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채 윤아가 제 안의 눈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걸 생생히 느꼈다.한참 후에야 그는 손을 올려 윤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한 편,선우가 두 아이를 차에 태우자 타이밍 좋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급하게 운전하지 않고 먼저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얘기에 다정하던 선우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하지만 그는 차에 두 아이가 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급하게 표정 관리를 했다.“네. 알겠어요.”통화를 끝내기 바쁘게 뒷좌석에 타고 있던 윤이가 꼬물꼬물 다가와 물었다.“선우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일 얘기야.”“네에.”윤이는 순순히 대답하더니 또다시 물었다.“우리 오늘 같이 엄마 데리러 가는 거예요?”같이 심윤아를 데리러 가?평소라면 그들 가족에 끼고 싶어 흔쾌히 수긍했을 선우였지만 오늘은…“오늘은 엄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저씨가 데리러 왔어.”평소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두 아이는 별다른 투정 없이 받아들였다.목적지까지 도착했을 땐 진 비서가 이미 집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비서 아저씨가 데리고 올라갈 테니까 돌아가면 아저씨 기다리지 말고 숙제하고 있어.”그의 말에 훈이가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보았다.“선우 아저씨는 같이 안 올라가요?”“아저씨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비서 아저씨가 같이 있어주
문을 열고 나온 윤아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현과 마주쳤다.그는 혼자서 링거를 들고 나와 있었다.윤아가 나오는 모습을 보자 수현의 얼굴에 졌던 그늘이 조금을 걷혔다.윤아는 흙빛인 그의 낯빛을 한 눈 보고는 주동적으로 물었다.“몇 병 남았어?”“몰라. 알고 싶다면 가서 볼게.”그의 말에 윤아는 대답 대신 차트를 확인하러 갔다.“이게 마지막 병이네.”“응.”수현이 짧게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윤아에게 머물러 있었는데 윤아는 한바탕 울고 난 사람 치고 과하게 평온해 보였다.“아참, 네 옷은…”윤아가 옆에 있는 서랍을 열며 말했다. 이윽고 안에서 새 환자복을 꺼냈다.“아까 네 옷 젖었을 것 같아서. 미안해. 이걸로 갈아입어.”그 말에 수현이 잔뜩 젖어있는 그의 옷을 한 눈 보고 이윽고 그에게 새 옷을 건네는 윤아를 한 눈 보았다.“괜찮아. 금방 말라.”“아픈 몸이잖아. 추우면 회복에 안 좋아.”수현은 윤아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했다.“손이 불편해.”윤아는 그제야 수현이 수액을 맞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저 상태로 옷을 갈아입긴 불편하겠지.잠깐의 침묵 끝에 윤아는 수건 한 장을 꺼내 그의 어깨에 올려주었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수현은 윤아가 다시 그의 곁에서 이렇게 담담하게 그를 걱정해 줄 날이 올 줄 몰랐다.그는 순간 몸이 좀 아픈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찝찝했다.윤아는 지금 너무 평온하다.한참 뒤에야 윤아는 수건을 도로 가져갔다.수건을 내려놓으며 입을 여는 윤아.“시간도 늦었으니 난 이만 가볼게.”간다는 말에 수현의 미간이 움찔했다.“어딜 돌아가?”수현은 저도 모르게 새하얀 윤아의 손목을 확 잡으며 물었다.어떻게 오게 했는데 또 간다고?윤아는 멈칫하더니 자기 팔을 잡은 그의 손을 한 눈 보고는 천천히 손목을 빼내며 말했다.“집에 가야 해.”하지만 윤아를 잡은 수현의 손에 힘이 들어가 쉽게 빼낼 수가 없었다.윤아는 하는 수 없이 말했다.“내일 다시 올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윤아.“왜?”“내일 올 거지?”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당연하지. 난 내가 한 말은 지켜.”“더 할 말 있어?”수현은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그럼 가볼게.”윤아는 그가 더 말을 하지 않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병실은 순식간에 다시 고요해졌다.수현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눈 밑엔 칠흑 같은 그늘이 졌다.병실을 나선 윤아는 문 앞에 있던 이민재와 마주쳤다.자신이 한 말실수 때문에 밖으로 쫓겨났던 민재는 복잡한 심경으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윤아가 나오는 소리에 그는 서둘러 몸을 바로 세우고 그녀를 향해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머뭇거렸다.“윤아 아가씨…”윤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같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민재도 윤아의 얘기를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전 오늘 밤에 대표님께 드릴 음식을 사 오면 될까요?”“네. 만약 먹기 싫어하면 제가 내일 안 올 거라고 얘기하세요.”“알겠어요.”민재가 머리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아가씨. 제가 댁까지 바래다 드릴까요?”“괜찮아요.”윤아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곧장 떠났다.민재는 멀어지는 윤아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윤아 아가씨가 이렇게 좋은 사람일 줄이야. 그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도 대표님을 보러 다시 와준다니.그 말은 곧 대표님의 병세가 나아질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_코너를 돈 윤아는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윤아는 그렇게 벽에 기댄 채 잠시 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비록 의식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할머님에 대한 생각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병원 출입문에 도착했을 때 윤아의 앞에는 그녀를 찾아온 선우가 서있었다.선우와 눈이 마주친 윤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네가 왜 여기 있어?”“너 찾으러.”말을 마친 선우는 곧장 윤아의 손목을 잡고 병원을 떠났다.돌아가
“아니야.”윤아가 곧바로 부인했다.“선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더 정확히 말하면 난 네가 아깝다고 생각해. 네 시간을 나한테 낭비하지 마.”이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윤아는 진심으로 선우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집안에, 외모에, 인품까지 다 갖춘 데다 사생활도 깨끗한 것이 좋은 조건 믿고 여자들이나 꼬시는 다른 남자들과는 전혀 달랐다.“내가 아깝다고?”선우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윤아에게 다가갔다.“그런데 윤아야, 네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한테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 고려해 볼 여지가 있는 거야?”윤아가 대답하지 않자, 선우가 말을 이었다.“아니면 네 마음은 이미 그 사람한테 가 있는 거야? 만약 귀국하지 않았다면 넌…”“5년.”선우가 멈칫했다.“5년이야. 네가 나한테 너무 잘해줬다는 거 알아. 나도 시도를 안 해본 게 아니야. 널 받아들이려 했지만 난 안된다는 걸 깨달았어.”윤아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우의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내가 전에 너한테 얘기했었지, 난 네 마음을 되돌려줄 수 없으니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선우는 그늘진 얼굴로 윤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너한테 잘해주지 않는 건 못해. 널 보지 않는 것도 못 하고 네가 다른 남자와 함께있는 걸 보는 것도 안돼.”선우가 그녀에게 더 다가가며 말했다.순식간에 윤아의 가녀린 허리에 그의 손이 다가오더니 그에게로 훅 당겨졌다.윤아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둘 사이 거리는 어느새 상대방의 체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윤아는 선우의 몸에서 나는 서늘한 향을 느꼈다.그의 목소리엔 그전의 촉촉함은 줄어들고 점유욕이 그 자리를 채웠다.“너도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단 걸 알고 있잖아. 내가 그 5년 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도. 날 받아주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전보다 더 잘해줄 거야. 뭐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선우의 진지한 고백에 윤아는 미
뭐로 보나 그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하지만 그런 조건들은 오히려 윤아에게 독이 되었다.윤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미안해.”선우는 한참을 그대로 윤아를 주시하다 다시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오늘 많이 힘들었지? 먼저 올라가. 할 얘기 있으면 이틀 뒤에 얘기하고.”“선우야...”“애들 기다리겠다. 얼른 올라가 봐.”선우는 윤아의 어깨를 밀며 그녀를 엘리베이터까지 데려갔다.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는 손수 층수까지 눌러주고 그제야 나갔다.“올라가면 진 비서 내려오라고 해줘.”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는 잠시 후 스르륵 닫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윤아는 선우가 그녀를 향해 웃고 있는 걸 발견했다.“잘 자, 좋은 꿈 꿔.”이윽고 매정하게 닫히는 엘리베이터.윤아가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진우진과 당직 도우미분이 후다닥 일어나며 그녀를 맞이했다.선우의 말이 떠오른 윤아는 우진에게 말했다.“비서님, 선우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엥? 대표님 오늘은 왜 안 올라오셨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는 의아해하면서 짧은 인사와 함께 떠났다.우진이 나간 뒤 윤아는 커튼을 치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너머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선우를 볼 수 있었다.차 옆에 서있는 그의 훤칠한 몸매는 비춰오는 조명 아래 더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었는데 진우진이 내려가고서야 뭔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곧장 떠났다.올 때는 선우가 운전했지만 갈 때는 진우진이 운전석에 앉았다.윤아는 그제야 커튼을 완전히 내렸다.“엄마.”윤아의 뒤로 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오늘 어디 갔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윤아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엄마가 요즘 일이 좀 있어서 집에 종종 좀 늦게 올 것 같아.”두 아이는 다행히 달리 더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나이가 어려 이런 일에 딱히 관심이 없는 걸지도.오늘 밤엔 라이브를 켜지 않았다.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