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승마장에서 승마복을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던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견딜 수 없다.왜 하필 진수현 여자인 건데?하지만 다른 남자였다면...뒤를 한참 따라 걷던 비서가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대표님, 좋아하면 대쉬해야죠. 어쨌든 둘 사이는 이미 과거형이고, 아가씨는 솔로이니 대표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도의에 어긋나지 않아요.”“비서님은 몰라요. 말은 그렇게 해도, 진수현이 어떤지 보셨어요? 진수현은 윤아 씨에게 미련이 남았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대쉬를 하나요. 수현과 싸우겠다는 것도 아니고.”비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대표님 약혼녀 있는 거 아니었어요?”“강소영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떻게 약혼녀입니까.”“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걸요. 진 대표님 주변에도 오랫동안...”“진수현의 주변에 아무도 없고 강소영 한 사람만 있었다고 말하려고요? 그래서 강소영이 그의 약혼녀인 줄 알았다고요?”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잘 생각해 봐요. 진수현의 곁에 사람이 없었음에도 강소영과 왜 약혼하지 않았겠어요? 이미 5년이나 되었는데, 사귀려면 진작에 사귀었죠.”비서: “...”비서는 서원의 예리한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윤아가 금방 회사에 도착하자 오민우가 계획서를 내밀었다.“어제 작성한 계획서입니다. 다른 회사들은 진 씨 그룹보다 효과는 좋지 못하겠지만 투자 자금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윤아가 계획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받아 들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그녀의 풀이 죽은 모습에 오민우는 대략 상황을 짐작하고 그녀 앞의 의자에 앉았다.“왜요?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읽어드릴까요?”윤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어느 회사든 소용 없으니까요.”수현의 말처럼 그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어느 회사가 그에게 미움까지 사면서 갓 세워진 그녀의 작디작은 회사에 투자해 주겠는가.
오민우가 한 이 말을 듣자 윤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그의 확신에 가득 찬 표정과 말투는 마치 일이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아닌 것도 그렇다고 말했다."만약 아니라면 제가 이렇게 말했을 때 대표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여야 했어요. 상처가 만약 다 나았다면 손으로 만졌을 때 아무 느낌도 없어야 하거든요.""그래요?"윤아는 가볍게 웃었다."오 매니저님, 아문 상처는 만졌을 때 아프지는 않지만 만약 거센 방망이로 친다면 안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요?""그냥 대수 한 말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면 다친 사람이 받은 상처가 너무 심한 나머지 아직 아물지 않았겠죠."여기까지 듣자 윤아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은 점차 사그라들었다."잘못 생각했네요. 전 정말 신경 쓰지 않습니다."민우는 어깨를 으쓱했다."대표님께서 그런 감정을 내려놓으시고 사업에만 몰두한다면 저희 같은 직원들에게 가장 좋은 일이에요."여기까지 말한 후, 민우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서류는 테이블에 올려놓았어요. 하지만 대표님께서는 필요하지 않으시겠네요. 그럼 전 이만 일 하러 갈게요. 오늘 드디어 새 직원이 입사했거든요. 하지만 남을지는 모르겠어요. 필요한 일 있으면 절 부르세요."민우가 나간 후, 윤아는 혼자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그제야 아까 민우의 말에 욱했던 감정이 점점 진정되기 시작했다.마음을 진정시킨 후, 윤아는 아까 민우가 했던 말이 비록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과거의 일을 내려놓고 또 수현을 낯선 사람으로 대하려고 마음먹었으니 그와의 콜라보를 꺼려서는 안 되었다.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바로 윤이와 훈이였다.그녀의 두 아이.진씨 그룹과 콜라보를 한다면 수현과 마주칠 일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시간이 길어질 수록...다른 사람은 보아낼 수 없겠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두 아이가 얼마나 수현과 닮았는지 말이다.하지만 나이가 아직 어리다
"만약 정말 찾기 어렵다면 한 명만 찾아도 좋은 거죠. 하지만 저흰 아직 작은 회사니까 어려워요. 현재 한국 사회를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안정적인 걸 추구하니까요. 해외 기업은 크긴 하지만 너무 멀기 때문에 업무가 익숙하지 못할 수 있어요. 아마 올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여기까지 듣자, 윤아도 초보적인 생각이 섰다."그러니까 다른 길이 통하지 않을 때 해볼 수 있다는 말이죠?""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부르세요? 해외에 뒷백이라도 있으십니까?"민우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사적인 문제 물어보는 거 신경 쓰세요?"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아는 그가 뭘 물어보려는지 눈치챘다. 그래서 민우가 이렇게 물어본 후 당장 거절했다."네, 신경 씁니다."이 말을 듣자 민우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사실 사장님께서 재결혼 하셨는지, 지금 싱글인지 물어보려고 했어요."심윤아: "..."그녀는 못 말린다는 듯 민우를 보았다."이 물음에 답하지 않죠.""에잇, 그래요. 출근하려는 사람도 없는데 이런 것도 못 물어보세요."출근하러 오는 사람은 확실히 없었다. 윤아는 시간을 한 눈 보았다. 아이를 픽업할 시간이 거의 된 것을 발견하고 친구에게 말했다."오늘 할 일이 없다면 일찍 퇴근해도 좋아요.""네. 그럼 전 오늘 일찍 퇴근합니다. 이거 조퇴 아니죠?""글쎄요?"두 사람은 웃으며 회사를 떠났다.-윤아는 차에 앉아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학교에 도착한 후 선생님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른 말했다."어머님, 또 윤이와 훈이 데리러 오셨어요? 아이들 아버지가 이미 데려갔는데 모르셨어요?"오늘 또 다시 아이 아버지란 소리를 들었을 때 윤아는 이미 긴장되지 않았다.선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일하라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했어요."그녀는 간단하게 설명한 후 돌아갔다.집에 도착했을 때 선우가 두 아이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숙제를 도와주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윤아는 현아가 자신에게 고려해 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선우는 분수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제 하룻밤만 자고 오늘 저녁엔 남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가기 전, 선우는 윤아에게 말했다."내일 아침을 갖다주는 겸 널 데리러 올게."윤아는 멈칫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그녀가 더는 자신을 거절하지 않은 것을 보자 선우는 손을 뻗어 윤아의 머리를 가볍게 만졌다."드디어 됐다고 안 하네. 이거 나한텐 엄청 좋은 현상이야. 계속 노력할게."윤아는 선수를 보며 할 말이 있는 듯했다."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선우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사실, 예전에 해외에 있을 때 말할 기회를 놓쳤어. 지금은 비록 시기가 너무 알맞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인 것 같아서 말할게. 윤아야, 만약 네가 날 택한다면 난 꼭 좋은 아빠가 될게. 윤이랑 훈이를 내 친 자식처럼 여길게. 장담할 수 있어. 그리고 저 아이들 외 다른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윤아는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오늘도 이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가 선뜻 말해주었다.그녀는 잠시 고민한 후 말했다."이건 아니야. 너한테 불공평했다.""공평?"선우는 낮게 웃었다."윤아야, 감정에 공평을 찾기 어려워. 더욱이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달라. 그러니 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대신 네가 날 한 눈이라도 더 봐주었으면 좋겠어.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심윤아: "...""네가 날 이용한다고 해도 괜찮아.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돼."마지막까지 듣자 윤아는 입안에 쓴 맛이 맴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럴 필요 있겠어?"이런 윤아의 모습에 선우는 그녀의 코를 가볍게 터치했다."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널 슬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날 좀 더 고려해 줬으면 좋겠어. 훈이랑 윤이는 이미 컸잖아.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야. 그래서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어. 학교에서 쓸데없는 소리 듣지 못하게 말이야.""너...어떻게 알았어?"이 일을 말하자 선우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
라이브 방송을 말하지 않았으면 윤아는 정말 이 일을 까먹을 뻔했다.귀국하려고 준비했을 때 두 아이의 라이브 방송은 끝났다.환경을 고려해 다시 시작하는 시간을 통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 며칠 윤아도 바빴기 때문에 이 일에 더 관여하지 않았다.지금 두 아이가 이 얘기를 꺼내니 윤아는 드디어 핸드폰을 꺼내 댓글을 보았다.보름이나 지났는데 인스타에 새로 올린 영상에 벌써 몇만 개의 댓글이 늘어났다.이 댓글에 모두 라이브 방송 날짜를 물어보는 거였다. 심지어 두 아이가 보고 싶다는 댓글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음."윤아는 잠시 고민했다."실은 너희들 지금 학업 상황을 보았을 때 라이브 방송을 해도 돼. 그런데 차수는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대부분 시간엔 야외 활동에도 참여해야 하거든."이 말을 듣자 윤이는 작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엄마, 그럼 윤이랑 오빠가 야외활동에 참여할 때 영상을 찍으면 되잖아요."이 제안은 듣기엔 괜찮은 것 같았다. 원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영상 몇 개를 더 찍는 것도, 혹은 라이브 방송을 많이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그래. 너희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저녁 아홉 시 무렵, 수현의 핸드폰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샤워한 후 그는 핸드폰을 보았는데 자신이 유일하게 팔로우한 그 계정에 새 영상이 오른 것을 발견했다.두 아이의 계정이었다. 설마 새 영상을 올렸나?수현은 영상을 클릭했다. 화면 속엔 두 아이가 똑같은 옷을 입고 탁자에 앉아있었다.영상은 아주 조용했고 찍는 사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두 아이가 공부하는 장면만 찍었다.거의 중간쯤 되었을 때 구석에 앉은 윤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았다."엄마, 책을 찾지 못하겠어요."일 초후, 화면이 바뀌더니 아이는 이미 책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수현은 눈을 깜박였다. 이 중간 부분은 아마 삭제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이 사이에 벌어진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이튿날.수현이 금방 잠에서 깼을 때 양훈이 전화를 걸었다."이민재 씨가 나한테 전화했더라. 어젯밤 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며?"수현은 어젯밤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깬 후 윤아의 그 매정한 말들이 떠오르자 지금 표정은 또 썩어 있었다."무슨 일이야?"양훈은 혀를 찬 후 입을 열었다."친군데 아무 일 없으면 연락도 못 하냐?""됐어."말을 마치고 수현은 전화를 끊으려고 했었다."잠깐만."그의 의도를 알아챈 양훈은 즉시 그를 말렸다."할 말이 있어."친구를 대할 때 수현은 그래도 조금의 인내심이 있었다."말해.""또 소영이 마음 상하게 했냐?"여기까지 듣자 수현의 눈동자엔 조롱의 기색이 스쳐 갔다."왜, 또 너한테 달려가서 하소연했냐?""내가 아니라 석훈이한테 가서 했나 봐. 석훈이가 어찌나 가슴 아파하던지 나더러 널 말리래."진수현: "...""김양훈, 정 한가하다면...""아, 됐어 됐어."양훈이 얼른 수현의 말을 끊었다."한가하지 않으니까 뭘 시킬 생각 접어. 너한테 전화한 것도 무슨 생각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야."여기까지 말한 후 양훈은 조금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너 수원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야? 일 처리가 아직 안 끝났어?"수현은 원래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윤아의 태도를 떠올리자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고 말했다."돌아왔어."양훈은 의식적으로 물었다."누구?"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양훈은 조금 놀랍다는 듯 물었다."너 설마..."양훈은 수현의 아픈 곳을 찌를까봐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수현의 침묵은 양훈에게 확신을 주었다. 정말 그녀가 돌아왔다는 것을.두 사람은 모두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하며 정적이 오가는 순간 속에 푹 빠질 뿐이었다.결국 양훈은 먼저 물었다."그래서? 너 어쩔 건데?"어쩔 거냐고?수현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모르겠어."김양훈: "
양훈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수단 아니면 윤아 일 알 수 없어?""알겠어."전화를 끊은 후, 수현은 깊은 사색이 빠졌다.다른 수단?아마 한 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오늘은 선우가 직접 차를 운전하여 윤아를 회사에 데려다주었다.그 사이 당연히 두 아이도 학교에 보냈다.회사에 가는 길에 윤아는 계속 창밖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선우는 당연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어제 돌아온 후, 계속 이랬으니까."왜?"그렇다 하더라도 선우는 차 안의 노래를 끄고 윤아에게 물었다.역시나 그녀는 처음에 선우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선우가 두 번이나 불렀을 때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회사 일 생각하고 있었어."이선우: "회사? 회사 요즘 좀 어때? 나도 요즘 좀 바빠서 묻지 못했어. 내가 뭐 도울 거 없어?""그건 없어."윤아는 고개를 흔들었다."내가 처리할 수 있어.""혼자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마. 요즘 뭐 하는데?""딱히 하는 건 없고 회사에 뒷백을 좀 찾아볼까 해. 직원 구하기 쉬울 것 같아서."실은 이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선우가 물을 때 윤아는 회사 일을 핑계로 숨기려고 했다."회사? 뒷백도?"그러나 선우는 이 말을 듣자 얕게 웃었다."내 회사를 찾으면 되잖아."이 말을 듣자 윤아의 표정은 변했다. 그녀는 얼른 해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이걸 말하는 건 네 회사를...""그런데 어쩌나?"선우는 안경을 위로 밀며 조용히 말했다."난 널 위해 귀국한 거야. 회사도 널 위해 차린 거고. 그런데 네가 날 뒷백으로 안 삼으면 또 누구를 찾으려고 그래?"심윤아: "너 전엔 분명...""그건 네가 불편해서 도망이라도 갈까 봐 알려주지 못했지. 그런데 지금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했으니까 이걸 추가 조건으로 하려고. 어때? 나도 꽤 괜찮은 것 같지?"윤아는 말을 하지 않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늘 선우가 아주 좋
이 말을 듣자 선우의 안색은 조금 변했다."그래?"그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어느 회사가 안목이 그렇게 좋아? 너희같이 잠재력이 큰 회사를 발견하고."윤아는 복잡한 시선으로 선우를 보았고 그녀의 시선을 접수한 선우는 마음속이 불안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왜?""걔야. 걔가 투자했어."아무리 담담하기로 소문난 선우라도 이때 브레이크를 밟으며 길옆에 차를 세웠다.윤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선우를 보았다.뒤에 차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자칫하면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차를 세운 후, 선우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정리하고는 곧 진정했다."그래?"윤아는 지금 선우의 모습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데 너 괜찮아? 내가 운전할까?""아니야, 윤아야."선우는 다시 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며 조용히 설명했다."아까는 내가 너무 예민했어. 걔가 그럴 줄 몰랐거든. 놀랐지?""그 정도는 아니야. 그런데 다음엔 갑자기 브레이크 밟지 마. 아까 뒤에 차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자칫하면 사고 났을 수도 있어. 엄청 위험해.""응, 이번엔 내가 잘못했어. 잘 기억할게."선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윤아에게 사과했다.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선우는 이 점이 참 좋았다. 그는 체면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만사에 그녀를 양보한다.만약 오늘 수현이었다면 그녀가 그에게 뭐라고 한 후, 분명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했을 거다."왜, 나 때문에 네가 다칠까 봐 겁나? 걱정하지 마. 죽더라도 내가 먼저 죽을 테니까."오 년이나 만나지 못했지만 수현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의 표정이나 말투가 아주 쉽게 눈앞에 나타난다.윤아는 고개를 흔들며 이런저런 생각과 장면을 잊었다.회사에 도착한 후 윤아는 재빨리 가방을 들고 내렸다."데려다줘서 고마워. 너도 조심해서 출근해."말을 마치고 윤아는 빨리 몸을 돌려 떠났다.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