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시지를 보낸 후 상대방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핸드폰을 쥔 윤아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만약 너무 돌려서 말한다면 그가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 그가 바람둥이라고 알려주었던 민우의 말 때문에 윤아는 경계심을 높였다.기나긴 오 분 후 상대방은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동부 승마장에 지금 올 수 있어요?」승마장?비록 얘기를 나누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이건 기회였다.윤아는 더는 주저하지 않고 가방과 목도리를 들고 밖에 걸어 나갔다.밖에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윤아는 아래층에 내려가자마자 목도리를 두르고 택시에 앉았다.승마장 안에는 모래가 흩날렸고 검은색의 커다란 준마 한 마리가 마장 안을 누비고 있었다. 말 위에는 늘씬한 키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잘생긴 남자가 앉아 있었다.고삐를 쥔 남자의 손은 단단했다. 그러나 굳은 표정을 하도 있으니 먼 거리를 두고서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그가 승마장에 온 후, 기타 사람들은 남자의 노여움에 영향이라도 받을까 봐 얼른 말을 끌고 떠났다.서원은 마침 한바퀴를 뛰고 왔었다. 비록 겨울이긴 했지만 그는 음료수를 뜨거운 물 삼아 한 번에 반병을 마셨다.다 마신 후, 그는 병마개를 닫고 승마장에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장난삼아 말했다.“이 사람 오늘 무슨 충격으로 이렇게 세게 달려요?”곁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곧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오늘뿐이 아니에요. 요즘 매일 저러는 걸요.”최서원: “?”“진수현 대표님께선 이미 보름 동안 저러셨어요. 저분 때문에 승마장 장사가 잘 안 돼요. 여기 사장이 마음고생을 그렇게 한다잖아요. 하지만 상대방이 진 대표님이기 때문에 또 뭐라 할 수도 없고요.”여기까지 듣자 서원은 혀를 끌끌 찼다.“누가 저분 건드렸어요? 왜 이렇게 화를 내요? 보름이나 지나도록 진정하지 못하니 말이에요.”곁에 있던 사람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요? 진 대표님의 생각은 정말 황제의 마음처럼 알아차릴 수
승마장에 도착했을 때 윤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 서 있는 서원을 보았다.그는 승마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주 훤칠했다. 서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윤아 씨.”윤아는 그가 자신을 기다리러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놀라운 표정으로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대표님, 어떻게 나오셨어요?”"쯧쯧, 윤아 씨.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공손하게 존칭을 사용하지 않겠는가. 왜요, 제가 늙어 보여요?”윤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원은 먼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괜찮다면 저를 이름으로 편히 불러요.”심윤아: "...”그녀가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원래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차 대표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서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말했다."좋아요. 그럼 계속 차 대표님이라고 불러요. 나중에 말을 바꾸도록 하죠.”“...”“하지만 편하게 대해요.”윤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차 대표님.”"가죠. 안내할게요.”그리고 서원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마장으로 데려갔다.윤아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서원은 이미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마장은 매우 컸고 오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서원의 걸음걸이는 매우 빨랐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윤아는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그의 손을 떼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의 뒤를 따라갔다.서원은 걸으면서 물었다."윤아 씨는 말을 탈 줄 알아요?”심윤아: "안 타봤어요.”"아, 잘됐네요. 못 타봤으면 모르는 거겠네요. 조금 있다가도 필요 없을 겁니다.”어쨌든 그가 그녀를 데리고 달릴 것이니 말이다.윤아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끌려갔다.그녀가 계속 손을 빼내지 못한 것도 서원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동작이 전혀 애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끌어당긴 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녀를 목적
날렵하고 차가운 눈매, 오똑한 코, 발그스름한 입술이 그녀의 작고 하얀 얼굴에 분포되어 있었다.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차 대표님이 이번에 데려온 여자는 일품이네요.”윤아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서원의 투자를 원했기 때문에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나중에 어떻게 말할까 하는 생각만 했기 때문에 윤아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서원이 그녀를 난간 곁으로 데리고 간 다음 승마장에서 말을 탄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윤아도 그의 시선을 따라 보았다."진수현 씨, 이쪽이에요!”서원의 뒤를 따라가다 시선을 돌렸던 윤아는 말에 올라앉은 사람을 보자 얼굴에 자리 잡았던 웃음이 순간 사라졌다.어떻게......이런 우연이? 지난 일이 있은 지 벌써 보름이 지났고 그동안 심윤아는 줄곧 바빴다.그래서 그녀는 이 일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수원은 수현이 자주 머물던 지역이 아니므로, 진작에 남성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가 아직 여기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먼 거리를 두고 그녀와 마주친 남자의 시선에 윤아는 엉겁결에 도망치려고 돌아섰다.옆에 있던 서원이 의도했는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았다."윤아 씨 자자. 소개해 줄게요. 진씨 그룹의 진수현 대표님, 알죠?”윤아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알기만 할까.하지만 서원은 그녀가 도망갈까 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내가 시합할 건데 윤아 씨가 내 말에 올라타는 건 어때요?”싫거든요. 지금 가고 싶어요.그러나 남자는 이미 그녀를 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려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승마복을 입은 수현은 더 훤칠해 보였다. 하지만 시선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낯선 사람이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다.수현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그의 매서운 눈빛이 칼처럼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수현 씨, 소개할게요. 조금 있다가 나랑 함께 말을 탈 여자예요.”
"어떻게 차 대표님과 사귀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배우게 경험 좀 전수해 주세요.”여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수현이었다. 그래서 서원의 여자인 줄 알았던 윤아에게 아무런 적개심도 느끼지 못하고 곧 그녀를 데리고 옷을 갈아입는 곳으로 들어갔다.승마장의 직원들은 수현과 서원이 겨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두 사람을 위해 장소를 청소했고, 그들의 파트너를 공손히 대했다.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은 승마복을 건넸다.직원 중 한 명은 승마복을 윤아에게 전달하며 칭찬했다."아가씨께선 몸매가 좋으시니 사이즈 선택이 쉬울 겁니다.”말을 마치고 승마복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심윤아: "…”그녀는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가 오늘 이렇게 바로 간다면, 아마도 사람들 앞에서 서원의 체면을 구길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기는커녕 그에게 완전히 미움을 살 것이다.윤아는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여전히 우울했다.오늘 외출할 때 운세를 보지 않아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았다.어쨌든 지금 아주 많이 후회하고 있다.윤아는 심지어 민우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었다."우리, 정말 이 투자를 끌어들여야 합니까?”이렇게 말이다.하지만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민우가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으니까.윤아는 들고 있는 승마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잠시 후, 회사를 차리고 싶은 마음은 점차 윤아를 공략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현과 오래전부터 연락을 끊은 거다. 그가 자신에게 준 재산도 변호사를 통해 모두 돌려주었으니 참 다행이었다.만약 순조롭다면, 그는 아마 벌써 받았을 것이다.이건 그녀와 그가 이미 깨끗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그녀가 한국에서 발전한다면 반드시 그와 마주칠 것이다.설마 매번 만날 때마다 황급히 도망가야 할까?비현실적이고 너무 낭패스럽다.그래서 그녀는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이건 기회였다.잘 생각한 후, 그녀는 심호흡하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선반 위에 놓았다.그리고 흰색 스웨터를 벗으려는데 누가 밖에서 탈의실 문을
수현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조금씩 갖다 붙였다.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틈도 없을 정도로 붙었을 때 수현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선우가 다른 남자랑 함께 나가 놀게 해? 너한테 별로 잘해주는 것도 아니네.”이 말을 듣자 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선우가 날 어떻게 대하는지 네가 알 바가 아니야.”말을 마친 후, 윤아는 또 몸부림을 쳤다.원래 가까이 붙어있었고 또 입은 옷도 두껍지 않으니 윤아가 몸부림을 치자마자 수현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라인이 자신의 몸에서 마찰하는 것을 느꼈다.수현의 안색은 급변했고 윤아의 손목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몸부림을 치던 윤아도 뭔가 의식한 듯 표정을 굳히더니 동작도 멈추었다.공기 속에는 애매한 분위기로 가득했다.몇 초 후, 윤아의 하얀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앞의 사람을 보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너 정말 뻔뻔해.”수현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심지어 타버린 가마처럼 시커멓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계속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아까 붙어있기는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움직이지 않았고 또 그의 정서가 분노에만 몰려있어서 괜찮았다.하지만 그녀가 지금 이렇게 움직이니…수현은 깊은숨을 몰아쉬며 절망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자신의 몸이 아직도 그녀에게 반응할 줄은 정말 몰랐다.윤아는 사정없이 몰아붙였다.“함부로 움직이는 게 뭐 어때서. 네가 계속 날 잡고 있지만 않았어도 내가 몸부림을 치겠어?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짐승과 다른 거야. 아니면 길거리에서 발정한 개랑 뭐가 달라!”뒤에 말에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어금니를 깨물었다.“뭐라고?”“내가 뭘 잘못 말했어? 네가 했으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지.”진수현: “…”그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윤아는 수현을 그대로
큰 손이 감자기 윤아의 허리를 둘러쌌다.갑작스러운 촉감에 윤아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탈의실 밖의 여자는 그녀의 소리를 듣자 의심해서인지 아니면 걱정돼서인지 문을 열며 들어오려고 했다.“언니, 이 문 왜 열리지 않아요? 괜찮아요? 말 좀 해봐요!”“아 괜찮아요.”아직 놀라움 속에서 진정하지 못한 윤아는 마음을 정리하며 말했다.“아까 제대로 서지 못해서 넘어질 뻔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정말요?”여자는 아직도 의심스러운 듯했다.그녀는 탈의실 밖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사실 옷을 갈아입을 때부터 착각인지 윤아 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남자 목소리는 진수현 대표님의 소리와 비슷했다.그래서 그녀는 밖에 나왔는데 지금은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마치 아까 들렸던 소리가 그녀의 환청인 것처럼 말이다.이렇게 생각한 여자는 또 참지 못하고 말했다.“언니,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아니면 문 좀 열어봐요. 내가 들어가서 많이 다쳤는지 보게 말이에요.”“괜찮아요. 거의 다 갈아입으니까 먼저 나가 있어요.”“그럼 차 대표님 불러올까요?”윤아는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만약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이 여자랑 여기서 언제까지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녀를 보내는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윤아의 말을 듣자마자 얼른 입을 열었다.“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줘요. 금방 불러올게요.”원래 여자는 수현이 윤아의 탈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나 계속 의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밖에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윤아는 고개를 돌려 수현이 그녀의 허리에 두고 있는 손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나가.”수현은 윤아를 한 눈 보고는 움직이지 않았다.윤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마지막으로 말할게. 나가.”수현은 그녀를 조용히 보고 있다가 뭔 생각을 하는지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갔다.그가 간
“왜?”수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서원을 보며 말했다.“어디 가는데?”“내가 어디 가는지도 신경 쓰는 거야?”서원은 빙그레 웃었다.“내 파트너가 탈의실에서 발목을 접질렸다기에 가보려던 참이야.”이 말을 듣자 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원은 수현이 왜 이러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설명한 후 몸을 돌려 안으로 걸어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리에 멍하니 서서 승마복으로 갈아입은 윤아를 넋을 잃고 보았다.여자의 승마복은 제법 멋졌다. 그리고 묘하게 빨간색과 하얀색의 조합을 사용했다.윤아는 승마복으로 갈아입은 후, 원래도 연약한 허리가 더 조여졌다. 아름다운 어깨, 가녀린 허리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장발...서원은 넋을 잃고 윤아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풀고 승마복으로 갈아입은 윤아가 이런 모습일 줄은 정말 몰랐다.너무 놀라운 나머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심장이 격렬하게 뛰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있었다.“윤아 씨, 다 갈아입었어요?”윤아는 서원과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수현을 한눈 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서원의 앞에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이건 서원에게 있어서 윤아의 아름다운 미모에 공격당하는 느낌이었다.그의 심장은 또 예고 없이 뛰기 시작했다.“그럼 갈까요?”윤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차 대표님, 전 말을 타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말을 타는 걸 무서워해요. 하지만 오늘 대표님께서 직접 초대하셨으니 기꺼이 해드리죠. 하지만 오늘 시합이 끝난 후, 사업에 관한 일을 얘기할 수 있게 시간을 내주셨으면 해요.”“당연히 되죠.”서원은 저도 모르게 알겠다고 했다.“어떤 얘기를 나누든 다 돼요.”심윤아: “...”그녀는 웃었다.“고마워요.”“고맙긴요 뭘. 가죠.”윤아는 서원의 뒤를 따라 승마장에 들어갔다.민아영은 그녀의 곁에 서서 놀랍다는 시선으로 윤아를 보았다.“이렇게 입으니 정말 예뻐요."윤아는 그녀를 한눈 본
아영과 서원은 말 할 것도 없고 주위에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수현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기세에 깜짝 놀랐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폭풍전야를 방불케 했다.그러나 이 승마장의 주인인 그를 감히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모두 얼어붙은 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당황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윤아는 그 가녀린 몸으로 꿋꿋이 버티고 서있었다. 그녀는 마치 수현의 기분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분한 모습이었다.심지어는 미간을 찌푸리고 다들 보는 앞에서 말했다.“사람 잘 못 본 거 아냐? 난 차서원 씨랑 왔어. 네 파트너가 아니라고.”이는 분명한 거절이었다.주위 사람들은 윤아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마 그녀가 이런 공공연한 방식으로 수현을 깔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아니나 다를까,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윤아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갑자기 말을 타고 그녀에게 돌진했다.그걸 본 아영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윤아를 칠 기세로 달려드는 수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설마 말로 사람을 치려는 건가?“진수현!”차서원도 수현이 윤아를 치려는줄 알고 깜짝 놀라 그의 이름을 외치며 윤아에게 손을 뻗었다.그러나 서원의 손이 윤아에게 닿기 전에 큼지막한 다른 누군가의 손이 다가오더니 윤아를 말 위로 휙 끌어 올렸다.“악!”윤아도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이 나오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사실 말이 자기를 향해 돌진할 때도 윤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비록 5년이나 못 봤지만, 그녀는 수현을 잘 알았다.그는 윤아를 해치지 못한다. 기껏해야 겁이나 주려는 거겠지.그러니 윤아도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그런데 진수현이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 된 그녀를 무작정 끌어올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랴.”윤아가 말에 타자마자 수현은 말고삐를 풀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윤아는 반사적으로 곁에 있는 수현을 꽉 잡았다. 덕분에 미처 묶지 못한 머리가 사정없이 공중에서 흩날렸다.수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한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