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는 보기에는 온화에 보이지만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았기에 그녀는 감히 이선우를 평범한 남자를 대하듯이 할 수 없었다.알고 지낸 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아마도 그녀가 심윤아의 절친이기도 했기에 이선우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주었다.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녀에게도 선물하곤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주현아는 이선우의 편에 서게 되었다. 심지어 때때로 이선우의 칭찬을 심윤아에게 하기도 했다. 거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이선우를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심윤아의 곁을 5년 동안 지켰고 거기에 한 번도 옆에 다른 여자가 없었다.이 정도로 지극정성인 남자는 이 세상에 이선우를 제외하고는 오래전에 멸종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심윤아가 이혼한 뒤 애들을 낳은 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처럼 대했다.이게 사랑이 아니라면...“뭘 얻는다는 거야?”이때 심윤아는 부엌에서 나오면서 주현아가 한 말의 절반은 들었지만 앞의 내용은 듣지 못한 듯했다.주현아는 헛기침하면서 얼굴이 붉어지거나 더듬지도 않고 거짓말을 했다.“뭘 얻겠어? 당연히 프로젝트지.”이선우는 심윤아의 손에 들린 그릇을 받아 들며 말했다.“내가 할게.”심윤아도 그릇을 이선우에게 건네주었다.“식사 시간 다 됐는데 아직도 일 얘기 중인 거야?”“야, 일 얘기가 어때서? 이건 우리가 그만큼 일에 열정이 있다는 거야. 일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다고.”그 말을 들은 심윤아는 고개를 돌려 주현아를 바라보았다.“그래? 그럼 지금 바로 네 상사한테 전화해서 일이 네 생명이라고 말한다?”주현아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좋은 분위기에 갑자기 개 같은 상사 얘기는 왜 꺼내? 그 사람 얘기 꺼내지도 마.”다들 앉은 뒤 심윤아는 주현아의 방금 주현아의 표정이 떠올라 계속 웃었다.“내 느낌에는 너하고 네 상사 곧 원수를 사랑할 것 같은데?”“쯧쯧, 누가 그 사람을 사랑한대? 심윤아 내가 경고하는데 날 그 남자와 엮지 마. 내가 5년 동안 솔로 탈출을 못한 건 모두 그 사람 덕분이니까. 내가
저녁 식사 후 이선우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설거지는 내가 할게.”“설거지 안 해도 돼. 식기세척기에 넣기만 하면 돼.”하지만 이선우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심윤아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릇들을 모두 그가 가져갔다.주현아는 옆에서 구경하다가 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냥 둬 윤아야. 하고 싶다잖아. 네가 계속 말리면 선우 씨가 언제 또 점수를 따겠어?”“맞아.”이선우도 주현아의 말에 동의했다.“나한테도 점수 딸 기회를 줘야지.”이렇게까지 말하니 심윤아도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남은 그릇들을 이선우에게 가져다주었다.잘 시간이 되자 주현아는 자기 방이 있으면서도 굳이 베개를 안고 와서는 심윤아와 함께 자겠다고 했다.창밖에서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방 안의 온도도 많이 떨어졌지만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우니 이불 안의 온도는 올라갔다.“전에 학교 다닐 때 내가 너희 집에 자주 놀러 가서 몰래 자고 왔던 거 기억난다. 근데 그때 너희 집 침대 엄청 컸었는데. 사실 나는 그때 부잣집 침대는 다 이만큼 큰가 싶었어.”전에 일을 얘기하니 심윤아는 웃음이 터졌다.“아빠는 내가 침대서 떨어질까 봐 걱정되셨나 봐.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맞춤 제작한 침대에서 잤어.”“아이고, 네가 그 말하니까 그때 아무리 네 침대에서 굴러도 떨어지지 않던 기억이 떠오르네.”세월이 흘러 지난 일을 얘기할 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주현아는 마치 작은 새처럼 예전에 재미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했다.“맞다. 너 그때 기억나? 우리 잘 때 몰래 훔쳐 먹다가 너희 집 도우미한테 들켰던 거.”하지만 주현아의 말에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주현아는 심윤아가 잠이 든 줄 알고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바라봤더니 그녀는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윤아야, 윤아야?”주현아가 몇 번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너 왜 그래?”심윤아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 방금 잠깐 멍때렸어.”하지만 주현아는 그녀의 뒤통수를 움켜쥐고서는 겁을
이 말에 심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하지만 감정이란 건 그런 것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잖아.”“그럼 뭘 봐야 하는데? 네가 말해 봐.”뭔가 떠올랐는지 주현아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러지 말고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 봐. 5년 동안 네 마음에 든 사람이 있었어? 너한테 마음 있었던 사람이 이선우뿐만은 아니었잖아.”심윤아가 말했다.“현아야, 난 애들이 있잖아.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아.”“하지만 그 사람들은 너한테 애가 있다는 거 신경 쓰지 않았잖아. 이선우는 아예 하윤하고 서훈이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며 키우고 있던데?”“그건 나도 알아. 내가 신세를 너무 많이 졌어.”아마도 이번 생에는 다 갚지 못할 것이다.“아이고, 내가 이선우라면 방금 네 말 듣고 무조건 상처 받을 것 같아.”주현아는 이선우 대신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내 느낌엔 이선우 씨 괜찮은 사람 같아. 외모도 집안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깔끔하고 매너가 좋다는 거야. 주위에 다른 여자도 없잖아. 오직 너뿐이지. 만약 네가 이선우 씨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남은 인생은 분명 행복할 거야.”“현아야...”“됐어 됐어. 이선우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던지 이선우 이미지가 얼마나 좋던지 상관없이 난 널 위한다는 것만 믿으면 돼. 그래서 괜찮은 사람 같으니까 너한테 고민해 보라는 거고. 만약 네가 정말 싫다면 차버리면 되지. 뭔 큰일이라고. 이제부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주현아가 자기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줄 알았던 심윤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랐다.“내가 널 설득해서 뭐 해? 바보야? 넌 내 친구야.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왜 강요하겠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강요한다고 해서 소용이나 있겠어?”이 말을 들은 심윤아는 어린 소녀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이렇게 웃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이런 말이 효과가 있을 줄 알았다면 더 많이 했을 텐데. 친구로서 심윤아의 미소를 지켜주는 것도 주현아의 의무였다.귀국하는 날짜가 정해진 뒤 심윤
이런 생각을 하며 진수현은 전에 추가했던 연락처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답장하지 않아 두 사람의 연락은 끊겼다.후원금을 주면 거절했었는데 앞으로 라이브 방송을 계속하면 자기가 또 후원금을 보낼 것 같아서 그러나? 그래서 아예 라이브를 접는 건가?만약 그가 카드 번호를 보낸다면?진수현은 이 두 아이를 좋아했다. 비록 두 아이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두 아이의 라이브 방송을 볼 때마다 그는 삶의 어둠을 쫓아낼 수 있었다.두 꼬마가 너무 귀여워서 그는 지난 1년 동안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그는 자신의 기분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만약 두 꼬마가 정말 그 이유로 라이브를 하지 않는 거라면...순간 진수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해결책이 떠올랐다.그러나 그가 더 오랫동안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 전에 라이브에서 서현이가 하윤이의 말실수를 바로 잡았다.“앞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최근 이사를 해야 해서 이사할 때까지 방송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네.”하윤아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이사해요.”두 꼬맹이가 단순히 이사 때문에 잠시 라이브 방송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그제야 진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도 단지 이사 때문이었다.그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두 꼬맹이의 IP주소를 찾아보았는데 외국이었다.자기가 지금 있는 주소와 같은 위치에 있어 진수현은 깜짝 놀랐다.전에는 특별히 두 꼬맹이의 주소를 찾아보지 않았었다. 이번에 회의차 해외 출장을 왔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두 꼬맹이와 같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하지만 나라가 너무 커서 꼭 같은 도시에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라이브 방송 댓글에는 다들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두 꼬맹이는 아주 똑똑했다. 직접적으로 주소를 밝히지 않고 그저 귀국할 수 있다고만 했다.귀국한다는 얘기에 진수현은 살짝 움찔했다.두 꼬맹이는 모어인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했기에 당연히 어느 나라인지 물을
진수현 어머니의 지시가 있었기에 이민재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건 여우의 권력을 빌려 호랑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았기에 서둘러 진수현에게 약을 먹으라고 했다.가장 좋은 점은 약을 먹으라고 재촉하는 것만으로 두 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꿀 직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대표님이 약을 드시지 않으면 잠시 후에 사모님께서 전화해서 물으시면 제가 곤란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이민재는 차가운 시선의 자기 얼굴에 날아와 꽂히는 것이 느껴져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진수현 어머니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진수현은 그녀의 아들이었다. 지금 이렇게 막무가내로 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었다.하지만 이어지는 진수현의 행동에 이민재는 깜짝 놀랐다.진수현이 자기 앞에 놓은 약을 그가 따라준 따뜻한 물에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물컵을 테이들 위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올려놓았다.“만족해?”이민재는 정신을 차리고서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신거린 뒤 만족한다고 말하며 방을 나갔다.그가 나가자 진수현은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라이브 방송이 끝난 화면을 켜며 입술을 오므렸다.다음 방송이 또 언제일지 몰라 늦지 않게 빨리 돌아오길 바랐다.“라이브 끝났어?”심윤아는 방금 물건들을 정리해 주머니에 넣어두자마자 두 녀석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네, 엄마.”심서훈은 얌전하게 핸드폰을 심윤아에게 건넸다.“사람들한테 한동안 라이브 방송 못 한다는 거 말했어?”“네, 사람들한테 다 말했어요.”“그럼 됐어. 우리 요 며칠 동안 먼저 짐 정리 끝내고 돌아가면 되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돼.”심서훈은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물었다.“마미, 외할아버지한테 말했어요?”그 말에 심윤아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알아차렸다.“맞다, 요즘 너무 바빠서 그건 깜빡했어. 다음 날 저녁에 우리는 외할아버지 집에 갈 거야.”“좋아요.”5년 전 심윤아가 금방 외국에 왔을 때 심인철의 회사는 보잘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너무 오랫동안 외로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렵게 서로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나셨는데 그녀가 강제적으로 끊어 놓는다면 아버지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그 여자분은 아주 적극적이었다.심윤아가 두 사람의 일을 알게 된 뒤 그녀는 몰래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었다.“윤아양 가족에 대한 일은 나도 아버지한테서 들었어요. 특별한 상황이라는 거 나도 알아요. 내가 맹세할게요. 윤아양 아버지와 만나는 건 절대로 뭔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래도 윤아양이 걱정된다면 윤아양한테 각서라도 써줄 수 있어요. 심씨 가문의 어떤 것도 갖지 않겠다는 각서 말이에요. 우리 두 사람만 아는 걸로 하고요.”“각서요? 그럼, 좋습니다.”이에 심윤아는 이선우의 회사 법무팀을 통해 각서 대신 계약서를 준비해 그녀에게 건넸다.그녀는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펜을 들더니 바로 사인하려고 했다. 그 모습에 심윤아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며 물었다.“계약서 읽어보셔야죠. 제가 속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으세요?”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인철 씨가 좋은 사람인데 그런 인철 씨의 딸인 윤아양이 절 해칠 리가 있겠어요.”상대방의 진심에 감동한 심윤아는 어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못하게 했다.심윤아가 계약서를 집어넣자 그녀는 당황하며 물었다.“윤아양, 갑자기 왜 계약서를 쓰지 않아요? 나와 인철 씨가 함께하는 걸 반대하는 건가요?”“아니요.”심윤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았다.“이제부터 절 윤아라고 불러주세요.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요. 만약 저희 아버지와 함께하시게 되면 절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계약서를 쓰게 된다면 꼭 잘 확인하시고요. 오늘처럼 하시면 쉽게 사기당하세요.”계약서를 쓰자고 한 건 딸로서의 작은 이기심 때문이었다.그녀는 한부모 가정이었고 두 아이를 제외하면 가족은 아버지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그녀가 한 번쯤 테스트해
차화연은 심하윤을 안고서는 심서훈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심서훈도 빠뜨리지 않고 예뻐해 준 뒤 몸을 돌려 심윤아에게 말했다.“밖에 바람 많이 불지. 우리 어서 들어가자.”“네.”심윤아는 차화연과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차화연은 걸어가면서 말했다.“너희 아버지는 지금 위에서 샤워하고 계셔, 식사 끝낸 뒤에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바로 씻지 않더니. 하여간 말을 듣지 않아.”그녀의 일상적인 잔소리를 들으며 심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평소에 아버지 챙겨주시느라 고생 많으세요.”그 말을 들은 차화연은 심인철을 대신해 해명했다.“꼭 그런 것도 아니야. 너희 아버지 혼자서 많은 일을 하셔. 오히려 내가 챙김을 받는걸.”“서로 챙겨주면 좋죠.”차화연은 심하윤을 한번 돌아보며 그녀를 향해 수줍게 미소를 지은 다음 품에서 심하윤을 내려놓았다.“내가 올라가서 빨리 씻으라고 할게.”“괜찮아요. 저희 오늘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그 말에 차화연의 눈빛이 빛났다.“그럼 오늘 자고 갈래?”심윤아는 고개를 돌려 심하윤과 심서훈을 바라보았다.“어때? 외할머니가 너희들 여기서 자고 싶은지 물으셔?”“자고 싶어요.”심하윤은 바로 차화연의 종아리를 안으며 말했다.“저 오늘 밤은 외할머니하고 잘래요.”심하윤은 하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손짓했다.“마지막 밤이에요.”이뻐하던 차화연은 마지막 밤이라는 말에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마, 마지막 밤? 그게 무슨 뜻이야?”심윤아가 말했다.“심하윤, 누가 아무렇게나 말해도 된다고 가르쳤어? 할머니 놀라셨잖아?”그 말을 들은 심하윤은 고개를 갸웃했다.“엄마?”심하윤의 귀여운 모습에 심윤아는 손을 뻗어 심하윤의 코를 콕하고 눌렀다.“우리가 한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 밤이라고 했지.”“어!”지적을 받은 심하윤은 바로 말을 고쳤다.“할머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이에요.”여기까지 들은 차화연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그녀는 조금 놀라며 심윤아를 바라보았다.“너희 한국에 가
사실 심윤아는 아버지께서 모두 물려주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앞으로 아버지 회사가 모두 그녀의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동이 밀려왔다.“그러니까 이제 국내로 돌아갈 생각 말고 여기서 아버지를 도와 회사나 관리해.”비록 아주 감동적이었지만 심윤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심인철은 어리둥절 해 하며 물었다.“왜 안 되는데? 공주야, 너 애 둘 데리고 사업까지 하려면 힘들 거야.”“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있어요. 아빠, 저 사업 하고 싶어요.”그녀는 자기 힘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었다.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몰라도 심윤아는 이제 부모가 되었고 또 두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줄 능력이 있는데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심윤아는 탁자를 지나 어렸을 때처럼 아빠의 팔을 껴안으며 말했다.“가장 중요한 건 지금 아빠의 잘나가는 회사가 저의 든든한 산이라는 거예요. 제가 혹시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전혀 걱정 없어요. 아바가 뒤에서 공주를 지켜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심윤아의 말에 아빠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아버지로서 그는 딸의 든든한 산이다. 그녀가 밖에서 사업을 하며 다닐 때 그는 영원한 딸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그녀에게 물러설 길이 있는 한 영원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이다.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심인철이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공주야, 사업은 힘들어.”심윤아는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아빠, 전 힘든 거 전혀 두렵지 않아요.”엄마는 강하다고 했다. 심윤아는 엄마가 된 후 두려워서 감히 하지 못했던 일도, 하기 싫어하던 일도, 이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넌 이거 하나만 기억해. 아빠는 너 하나만의 아빠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아빠한테 전화해.”“알았어요~”-며칠 후,한 가족이 공항에 모였다.심인철과 임향은 심윤아와 두 아이와 헤어지기 아쉬워했다.“돌아가면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