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의 차는 구청 앞에 세워져 있었다. 한참 동안 조용히 심윤아를 바라보던 이선우가 막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심윤아의 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진 심윤아는 전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선우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가져와 통화버튼을 눌렀다. “윤아야, 나 구청 앞에 도착했는데, 네가 안 보이네? 너 어딨어?”청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자의 말에 이선우가 구청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앞에는 과연 검은색 패딩을 입고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여자가 구청 입구 앞에서 심윤아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선우는 그 여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심윤아의 제일 친한 친구인 주현아였다. 주현아를 알아본 이선우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선우예요.”구청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이선우의 말을 듣고 멈칫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조금 경계심을 띄며 물었다. “이선우? 누구세요? 윤아는요?”이선우는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날 잊었어?’“저 잊으셨어요? 어렸을 때 윤아랑 자주 같이 있었던.”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주현아는 한참 만에야 기억을 떠올렸다. “아, 이선우 씨였구나. 지금 윤아랑 같이 있어요?”“네. 울다가 지쳐서 지금 차에서 잠들었어요.”“차에서요?”잠시 머뭇거리던 주현아는 곧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선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선우가 차창을 내리더니 주현아에게 손짓했다. “봤어요. 선우 씨 차예요?”주현아가 통화하며 물었다. “네.”이선우 차라는 것을 확인한 주현우가 얼른 휴대폰을 손에 쥐고 뛰어왔다. 생각하던 이선우는 차에서 내려 주현아와 마주했다.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온 주현우는 먼저 창문에 달라붙어 눈을 감고 있는 심윤아를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 “윤아는 잠이 든 거예요, 날 보기 싫은 거예요?”예상외의 질문에 이선우가 멈칫하더니 어이없다는
하지만 조금 전 통화에서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할 정도로 울던 심윤아를 떠올린 주현아는 조금 머뭇거렸다. ‘겨우 잠든 것 같은데, 내가 깨우면 또 우는 거 아냐?’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주현아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바로 이때 이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요.”그 말에 멈칫한 주현아가 고개를 돌려 이선우를 쳐다보았다. 이선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모셔다 드릴게요. 윤아도 좀 더 자게 놔두고요.”그제야 주현아는 이선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고마워요.”주현아가 얼른 휴대폰을 넣고 차에 올라탔다. 심윤아는 조수석에서 잠이 들었던 터라 주현아는 뒷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선우까지 올라타자 그들을 태운 차는 곧 구청 앞에서 사라졌다. 얼마간 주행한 뒤, 심윤아가 그렇게 빨리 잠에서 깨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자 이선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디 가실래요?”뒷좌석에 앉은 주현아가 얼른 대답했다. “저희 집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지금 이런 상황에 갈 수 있는 것은 주현아 집밖에 없었다. 어쨌든 진수현과는 이혼했으니 집으로 데려다줄 수는 없었다. 곧 주현아는 이선우에게 주소를 알려주었고 이선우는 주현아의 집을 향해 운전했다. 주현아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이성우와 깊은 잠에 빠져있는 심윤아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말을 삼켰다. ‘됐어. 윤아가 일어나면 그때 물어보자.’구청에서 멀지 않은 것이라 이선우의 차는 곧 주현아의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지만 심윤아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현아가 감탄했다. ‘사람이 속상하면 이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질 수도 있구나.’주현아가 심윤아를 깨우려는데 이선우가 그녀를 만류했다. “깨우지 마세요. 더 자게 놔둬요.”이선우가 그렇게 얘기하니 주현아도 심윤아를 깨우지 않고 가만히 놔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렸고 이선우가 심윤아를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주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심윤아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심윤아는 꽤 오랫동안 잠들었다. 깨어나니 주변은 어두웠고 익숙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참을 조용하게 둘러보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고는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주현아의 집이었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주현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조용한 방 안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오래 잤는데 왜 아직도 안 일어나는 거야. 설마 무슨 일 생긴 거 아냐?”말을 마치기 무섭게 심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야.”주현아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얼른 심윤아에게 달려갔다. “인간아, 드디어 일어난 거야?”주현아는 침대맡에 있던 조명을 켰다. 아까는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으로 간신히 집안을 확인했었다. 갑작스레 환해진 눈앞에 적응하지 못한 심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눈이 환한 불빛에 적응했다. “응.”“다행이야. 배 안 고파? 내가 국수 좀 했는데.”말하기 전엔 몰랐는데 말하고 나니 허기진 배가 느껴졌다. 비록 입맛은 없었지만 배 속의 아이는 배고플 것이 분명했다. 심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파.”“일어나서 밥 먹어.”주현아가 손을 뻗어 심윤아를 부축했다. 주현아가 이끄는 대로 몸을 일으키던 심윤아는 일어나는 순간 가슴에서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갑작스러운 통증에 심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손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심윤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래?”그 모습에 깜짝 놀란 주현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심윤아는 아파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있었다. 주현아는 어쩔 수 없이 심윤아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뭐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119부를까?”말하며 주현아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막 휴대폰을 찾아 119에 전화하려는데 심윤아에게 제지당했다. “괜, 괜찮아. 그냥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그래.”심윤아는 갑자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왜 이 상황이 이렇게 익숙한 것 같지?
“알아.”심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설명서 봤어. 통증이 심하고 오래 지속되면 병원에 가야 한댔어. 하지만 난 괜찮잖아?”“괜찮긴 뭐가 괜찮아. 통증도 증상이야. 안 그러면 왜 아픈 건데? 너 분명 요즘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래. 아니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나. 안 되겠어. 내가 널 데리고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받아야 마음이 놓이겠어.”“알겠어, 알겠어.”주현아의 잔소리에 심윤아는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진수현에게도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야 했다. ‘그 뒤로 다시 아픈 적 있나 모르겠네…’생각하던 심윤아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두 사람은 이미 분명 이혼한 사이였다. 앞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남남인데, 왜 이런 순간에서 진수현을 생각하는 걸까?오늘 구청 앞에서 악수조차도 거부했다. 심지어 그는 심윤아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 인간을 내가 왜?’‘이젠 정말 정신 차려야 해, 심윤아. 너랑 진수현은 애초부터 안되는 거였어.’“윤아야, 무슨 생각해?”주현아가 눈에 초점이 없는 심윤아를 보며 호기심에 물었다. 그 말에 심윤아가 생각을 멈추었다. 그녀의 입가엔 옅고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쓸데없는 생각 좀 했어.”심윤아와 주현아 사이엔 숨길 얘기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주현아도 바로 심윤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치챘다. “쓸데없는 생각인 거 알면, 하지 마.”주현아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어차피 이젠 이혼한 사이야. 이제부터 어떻게 살지, 그거나 생각해.”심윤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야지.”심윤아의 모습에 주현아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심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어떻게 되든, 너에겐 내가 있잖아. 게다가 넌 지금 혼자도 아니고. 너에겐 아이가 있어. 아이가 너에게 힘을 줄 거야.”“맞아. 나에겐 우리 아기가 있지.”만약 아기가 없었다면 심윤아는 자기가 이토록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커플을 맺어주려고 그랬다고?”이때 주현아는 어리둥절해서 저도 모르게 물었다.“누구랑 누군데?”심윤아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진수현이랑 강소영.”“...”한참 뒤 주현아가 말했다.“나 진짜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을 지경이야.”심윤아는 그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고 고개를 들어 웃었다.“됐어. 난 괜찮아. 틀린 말도 아닌데 뭐. 두 사람 커플 맞잖아.”“커플은 개뿔.”주현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만약 강소영이 진수현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강소영을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 목숨을 구해준 은혜로 마음을 얻었을 뿐이야.”그 말을 듣자 심윤아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됐어. 그 얘긴 그만하자.”“내가 잘못했어.”주현아는 무안한 듯 혀를 내밀며 말했다.“너 먼저 좀 쉬어. 내가 면을 삶아 놓을 테니까 조금 있다가 일어나서 좀 먹어.”“그래.”주현아가 나가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심윤아는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그녀는 다시는 진수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그날 밤 심윤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이선희는 한참 기다리다가 이상하다 싶어 진수현에게 물었다.그는 집에 돌아온 뒤로 서재에 들어가 틀어박혀 있었다. 이선희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윤아는?”이선희가 물었다.심윤아의 이름을 듣자 진수현은 마치 가슴이 찢기는 듯했지만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부터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이선희는 그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일었음을 확신했다.그녀는 입술을 앙다물다가 물었다.“왜, 너희 둘 사이 나빠졌어?”진수현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말했다.“저 바빠요.”“뭐가 그렇게 바쁜데?”이선희는 그의 앞에 놓인 노트북을 가리키며 코웃음을 쳤다.“꺼진 검은 스크린을 쳐다보느라 바쁜 거야?”집에 돌아오고부터 지금까지 그의 노트북은 켜진 적이 없었다.진수현은 눈썹을 찌푸
밖으로 나갈 때 이선희는 너무 화가 나 머리가 찌릿찌릿 아팠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추었다.진수현은 그녀의 아들이기 때문에 엄마로서 자신의 아들이 어떤 성격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화내는 모습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분노한 건 처음이었다.교양까지 버릴 정도라니.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이선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렇다면...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이선희가 떠나자 서재는 다시 조용해졌고, 진수현은 제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이선희가 가기 전에 했던 말이 끊임없이 맴돌았다.“혹시라도 윤아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후회하지 마.”마치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그에게 심윤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꼭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서 데려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또 정신 차리고 보면 우스웠다.무슨 일이 생긴다고?심윤아는 이선우와 같이 있지 않은가?진수현에게 오랫동안 갇혀 있던 심윤아는 요즘 따라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이혼하고 나서 이선우와 만나려는 게 아닐까?이제 자유로워졌으니 아마도 이선우의 품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통화가 안 되는 건 이선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전화를 못 받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큰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비록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하고 남이 되었지만 진수현은 지금 이 순간 심윤아가 이선우와 같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성인 남녀가 저녁에 같이 있으면 무엇을 할지 안 봐도 뻔하다.진수현의 머릿속에서 저도 모르게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젠장!”생각만 해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진수현은 손으로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쓸어 던졌다.방 안에서 갑자기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물건이 떨어지고 부서져도 진수현의 흥분된 마음은 전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가슴은
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싸워서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성격이 더럽고 오만한 진수현이 심윤아를 찾으러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한 도우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강소영 씨가 여기 왔을 때부터 대표님과 사모님의 관계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나중에 다시 좋아지는 것 같긴 했는데 전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저희 대표님이랑 사모님... 설마 이혼하신 건 아니겠죠?”이혼이라는 단어를 듣자 집사는 펄쩍 뛰며 그 도우미를 나무랐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앞으로 그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돼. 부부 사이에 모순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아. 대표님과 사모님이 싸우셨다고 해도 다시 화해하실 거야. 심심하면 가서 창문이나 한 번 더 닦아.”도우미들은 집사에게서 꾸중을 듣고 입을 삐죽거리며 떠났다.집사는 화가 나 머리가 아파서 손을 내저으며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하지만 도우미들은 그가 떠나자 참지 못하고 함께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사실 전 저희 대표님이랑 사모님이 이혼하신 것 같아요. 지금 이혼 안 했다고 해도 언젠가는 하실 것 같아요. 두고 보세요. 이번엔 확실히 심각하게 싸운 것 같아요. 저희가 진씨 집안에 들어온 지 몇 년 됐는데 대표님이 언제 이렇게 화내시는 거 본 적 있어요?”“맞아. 다들 아까 못 들었지? 난 서재 문 앞까지 갔다가 안에서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다니까. 어휴, 근데 그게 다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사모님이 나가신다고 해도 그 강소영이란 여자랑 우리가 잘 지낼 것 같지는 않아. 내 생각엔 지금 이 사모님이 제일 좋아. 평소에 우리한테 어려운 거 시키지 않잖아.”“맞아요.”원래 그들은 부잣집 아가씨인 심윤아의 집안이 망하자 깨고소해하며 그녀를 비웃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자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다, 심윤아를 얕잡아 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그녀가 떠나도 앞으로 또 새로운 사모님이 오실 것이다. 그리고 새로 온 사모님은 심윤아보다 좋을 거란 보장이 없다.만약 그때 가서 그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면...불확실
그녀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아직 휴대폰을 잡고 있던 심윤아는 화면에 진수현의 이름이 뜨는 것을 보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이렇게 된 마당에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하는 걸까?”심윤아는 전화를 받을지 말지 망설였다.두 사람은 이미 이혼까지 했는데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다. 전화 한 통 받는 건 괜찮겠지?그녀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전화를 받으려 할 때 벨소리가 끊겨버렸다.그래서 심윤아는 할 수 없이 심호흡하고 다시 진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먼저 설명했다.“미안, 방금 좀 바빴어.”그녀가 말을 마치자 전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풉” 하고 웃음소리가 들렸다.“이선우랑 같이 있느라 바쁜가 봐? 내가 방해한 거 아니야?”심윤아는 어이가 없었다.“...”그녀와 이선우는 아무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진수현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할 때 저도 모르게 반박하려고 했으나, 전에 그의 앞에서 이미 인정해 버렸기 때문에 그 순간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지금 진수현은 그녀와 이선우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어젯밤에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심윤아는 결국 침묵하기로 했다.그런데 그녀의 침묵은 진수현에게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래서 어젯밤에 윤아와 선우는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네.’순간 진수현은 큰 실망감에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참 뒤에야 심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에 아직 내 물건이 남아 있어서... 나 오늘 가서 짐 좀 챙겨도 돼? 그리고 우리 둘이 이혼한 거 어머님 아버님한테...”심윤아는 말하다가 갑자기 호칭을 잘못 부른 것을 깨달은 듯 멈추고 다시 고쳐서 말했다.“우리 이혼한 거 아직 아저씨 아줌마한테 말 안 한 거야?”그녀는 진수현과 결혼하기 전에 썼던 호칭으로 그의 부모님을 불렀다.아저씨, 아줌마.그 말을 듣고 진수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