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설명을 들은 이선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배고팠나봐?”“당연하지. 나 지금 식욕이 얼마나 왕성한 줄 알아? 너 후회해도 소용없어.”이선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이 정도는 사줄 수 있지.”사실, 그는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면 그녀가 놀랄까 봐 걱정되었다.천천히 다가가야 했다.식당으로 가는 길에 이선우는 그녀와 진수현의 일에 관해 물었다.지금 진수현이 그녀와 이혼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닌다는 것을 전해 들은 이선우는 검은색 안경 뒤의 눈동자가 흠칫 놀라는 눈치였지만, 곧 자연스러워지더니 입꼬리를 올렸다.진수현의 행동은 정말이지 그의 예상 밖이었다.옆자리에 앉은 심윤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럼, 넌 어쩔 생각인데?”“뭐?”“계속 이혼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넌 계속 진씨 가문 사모님으로 살 거야?”‘그 집안 사모님으로 계속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심윤아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바보도 아니고, 진수현이 지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혼하지 않으려 하는지 모르지만, 강소영이 그의 생명의 은인인 이상, 진수현은 절대 그녀와 인연을 끊을 수 없을 것이다.남녀 사이에 어떻게 제삼자를 허락할 수 있을까?게다가 진수현은 진작 심윤아와 이혼하기로 했다. 이건 심윤아가 그의 첫 번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하지만 그녀는 이선우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고 덤덤하게 웃을 뿐 말을 잇지 않았다.눈치가 빠른 이선우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다만, 문득 재미있는 일이 생각 난 듯 고개를 돌려 심윤아를 보며 말했다.“내가 회사에 너 데리러 간 거 수현이가 언제쯤 알 것 같아?”심윤아는 흠칫 놀랐다. 어차피 진수현은 지금 자신을 피하고 있는데, 안다고 한들 뭐 어떨까?“차라리 우리 내기 할래?”“무슨 내기?”“네가 내 차에 탄 걸 알고 수현이가 바로 너 찾으러 올지 말지 내기하는 거지.”심윤아는 그자리에 멍하니 있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선우
“말도 안 돼!”만약 진수현이 오고 싶어 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급하게 달려온다는 건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우리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네. 그럼 내기하는 거다? 수현이가 오면 내가 널 돕기로.”이렇게 된 이상 심윤아도 거절하지 않고 물었다.“어떻게 도울 건데?”이선우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야? 왜 신비로운 척해?’그들이 예약한 식당은 꽤 멀었다. 거의 30분 동안 운전해서 도착했고, 이선우는 어김없이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연기는 완벽하게 해야지.”“...”심윤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려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오기 전에 이선우는 이미 비서를 시켜 2층에 있는 단독 창가 쪽 자리로 예약해놓았다.위층에 올라가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하는 데까지 대략 8분 정도 걸렸다.심윤아는 계속 이선우의 말이 마음에 걸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다.몇 번이고 그의 말대로 진수현이 오는지 돌아보고 싶었지만, 애써 꾹 참았다.‘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 그러다 그 인간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자기를 기다린 줄 알잖아?’그녀의 목적은 이혼이다. 진작 결정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긴장돼?’갑자기 이선우가 물었다.심윤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그의 물음을 이해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아니.”“내가 뭘 물어보는 줄 알고 아니라고 해?”“...”갑자기, 그녀의 맞은편에 있던 이선우의 시선이 여자의 뒤로 떨어지더니 입꼬리를 치켜올렸다.“내가 이겼네.”심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약속대로 할 거야.”그러더니 이선우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심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선우는 몸을 숙이더니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진한 담배 냄새가 그녀를 순식간에 에워쌌다.이선우의 행동을 자각한 심윤아는 몸이 굳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움직이지 마.”이선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수현이
심윤아는 더이상 저항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듯 온순해졌다.이선우도 그녀의 순종을 느꼈다.아니, 순종이라기보다는, 마치 바다 위에 파도를 따라 오랫동안 떠다니는 부목과 같았다. 비바람에 시달리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아 그저 바다의 흐름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이런 그녀를 보며 이선우는 허탈하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비록 부목이지만, 그래도 조심히 인양하고 아껴주어야 하지 않은가?어느새, 그녀를 안고 있던 남자의 손가락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밖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성큼성큼 테이블과 의자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진수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그 웃음은 승리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선우가 그에게 이런 표정과 웃음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퍽!진수현은 성큼성큼 다가와 이선우를 향해 강한 펀치를 날리더니 심윤아를 자기 뒤로 잡아당겼다.그러나 그는 주먹 한 방으로 분노를 다 터뜨리지 못한 모습이었다.심윤아를 뒤로 끌어당긴 후, 다시 이선우의 멱살을 잡고 한 방 날렸다. 진수현의 이마에는 핏줄이 솟구쳐오르고 약간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이선우를 노려보았다.지난번 병원에서는 잘 참더니, 이번에는 왜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일까?“대체 왜?”진수현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고, 눈에는 폭발할 듯한 분노가 들끓었다.하지만 이선우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희미한 웃음이 보였고, 심지어 도발하는 것 같았다.“내가 윤아에 대한 감정, 너도 진작 알고 있었잖아?”“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파렴치한 짓을 할 줄은 몰랐지!”이선우는 핏자국이 배어 있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파렴치하면 또 어때? 윤아를 가질 수만 있다면 더 한 것도 할 수 있지!”진수현은 그의 말에 폭발하더니 다시 한번 주먹을 쳐들었다.“그만!”마침내 정신을 차린 심윤아가 진수현의 손을 잡고 끌어올리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온갖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진수현은 끄떡도 없었다.심윤아는 입가에 핏발이 선
진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하긴.”이선우는 그저 웃더니 화내지 않고 심윤아를 보며 말했다.“그럼 공주가 직접 말해볼래?”공주, 이것은 심윤아의 별명이었다.진수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설마 그녀는 결국 이선우를 선택한 걸까? 그래서 공주라고 부르게 한 걸까?심윤아는 갑자기 큰 압박감이 몰려왔다.이선우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진수현에게 말하고, 순조롭게 그와 이혼할 수 있도록.그녀는 눈앞의 진수현을 보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해.’심윤아가 결심하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진수현이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심윤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남자의 말에 심윤아는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이선우는 옆에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수현아, 너희는 계약 결혼이란 거 잊었어? 지금 너의 행동은 심윤아를 협박하고 있는 거야.”말을 마친 이선우는 덤덤하게 웃으며 심윤아를 보았다.“윤아야.”심윤아는 잘 알고 있었다. 이선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녀에게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지금 놓치게 되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이다.하지만 심윤아는 눈앞의 진수현을 보고 있으니 좀처럼 입을 열기 어려웠다.분명 입가에 맴돌고 있는 말이었지만 한 글자도 내뱉을 수 없었다.결국 진수현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차갑게 말했다.“나랑 집에 가. 오늘 일은 더 따지지 않을게.”진수현에게 이끌려 두 걸음 내디딘 심윤아는 갑자기 한쪽 손목이 꽉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선우가 갑자기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잡은 것이다.지금의 이선우는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보다 덜 부드러운 모습이었다.심윤아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눈동자에도 매서움이 묻어 있음을 발견했다.이선우가 손목을 잡자, 진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차갑게 명령했다.“그 손 놔!”지금의 진수현은 한껏 예민해 있었다. 최근 심윤
심윤아가 이혼하고 싶을 뿐인데, 이선우가 대신 매를 맞을 필요가 없었다.방금도 너무 억울하게 두 대나 맞아버렸다.이때 진수현의 시선이 이선우를 스쳐 그의 손목에 떨어졌다.“마지막 경고야. 놔.”심윤아는 이내 이선우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설명했다.“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이선우는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번졌다.“그래, 기다릴게.”말을 마친 이선우는 손을 놓았다.약간 힘을 풀었을 뿐인데, 진수현은 바로 여자를 끌고 나가버렸다.그들이 떠나간 후에야 이선우의 비서가 들어오더니 손수건을 꺼내 이선우에게 건넸다.“도련님, 괜찮으세요?”이선우는 손수건을 받아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입가를 닦았고, 눈에는 차갑고 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수현에게 맞은 곳이 분명 상처가 낫지만, 그는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듯 힘껏 닦아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서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또 시작이야. 도련님의 이런 모습...”비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옆을 지켰다. 잠시 후, 이선우는 손수건을 옆 휴지통에 버리고는 차갑게 물었다.“준비하라고 한 일은 어떻게 됐어?”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진수현에게 끌려간 심윤아는 한 줄기 바람을 탄 것 같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차에 올라탔고, 차는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여전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하지만 진수현은 그녀에게 전혀 쉴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고는 침대로 데려갔다. 심윤아가 발버둥 치자, 진수현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양쪽으로 누른 뒤 이를 악물고 노려보며 말했다.“나랑 이혼하고 선우랑 만나려고? 꿈도 꾸지 마.”말이 끝나자 그의 뜨거운 숨결이 여자의 몸을 덮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심윤아는 제때 고개를 돌렸고, 진수현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진수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반대 방향으로 다가와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심윤아는 피하면서
공기 중의 아름다운 분위기는 삽시에 사라졌다.진수현은 한참 만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그는 뭔가 떠올랐는지 검은 눈동자에는 정욕이 물들더니, 다시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빨갛게 부어오른 여자의 입가를 부드럽게 만졌다.“결혼은 가짜지만, 내가 널 덮치는 건 진짜지.”심윤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뭐라고?”“아니야?”진수현은 손끝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고운 목선을 따라 아름다운 쇄골에 머무르더니, 약간 잠긴 목소리로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었다.“나랑 자지 못해서 안달 났을 때는 너 이런 모습 아니었잖아?”심윤아의 동공이 약간 움츠러들었다.그러더니 손을 들어 다시 한번 남자의 뺨을 때렸다.진수현의 얼굴은 다시 옆으로 쏠렸고, 그는 곧 차가운 웃음을 보였다.“또 때려? 심공주, 내가 너한테 손을 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말이 끝나자, 심윤아는 또 뺨을 한 대 갈겼다.짝!진수현의 잘생긴 얼굴이 잔뜩 어두워졌다.하지만, 눈시울을 붉히며 화가 난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를 보며 그는 도저히 손찌검할 수가 없었다.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그래, 네가 때린 만큼, 이따가 내가 두 배로 돌려줄 거니까.”남자가 또 망나니 같은 소리를 하자 심윤아는 또 손을 들어 때리려 했다.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진수현의 손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잘하는 짓이다. 내 뺨은 망설임 없이 때리면서, 내가 선우를 건드리기만 해도 나서서 감싸줬던 거야? 응?”심윤아는 몇 번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미쳐 날뛰는 진수현이 자신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아예 포기하고 진수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너 이러는 거 정말 싫어하는 거 알아?”그 말을 들은 진수현의 얼굴이 약간 굳어지더니, 조롱하듯 입꼬리를 쓱 올렸다.“그럼 누구를 좋아하는데? 이선우?”“맞아!”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진수현은 조용해지더니, 입가의 조롱도 사라졌다.잠시 후, 남
진수현에게 맞은 것도 모자라, 친한 친구와 적을 친 이선우가 오히려 그녀에게 사과하니, 심윤아는 미안함이 극에 달했다.“망치지 않았어. 나 괜찮아. 사과는 내가 해야지. 나 때문에 맞기까지 했잖아.”그녀의 말을 들은 이선우는 피식 웃었다.“그게 뭐? 사내 대장부가 맞을 수도 있지.”“하지만 너랑 수현이 앞으로...”“걱정하지 마. 그래도 친한 친구였잖아. 기껏해야 한동안 나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내가 가서 사과할 거야.”이 말을 들은 심윤아도 마침내 마음을 놓았다.“그럼 다행이야.”“그래서 일은 잘 해결됐어?”심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전화 통화라는 생각에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응. 일단은.”“어떻게 해결됐는데?”심윤아는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방금 사과한 것도 이미 한계였는데, 더 이상 그의 물음에 대답할 기분이 없었다. 만약 이선우가 전에 그녀를 돕지 않았다면 벌써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애써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선우야, 나 쉬고 싶어.”이선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조용해지더니 말했다.“그래, 일단 진정하고 쉬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전화를 끊은 심윤아는 휴대폰을 옆으로 던지고 침대 위에 몸을 웅크렸다.스트레스 때문인지 배가 불편한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속으로 말했다.‘아가야, 조금만 견뎌. 이혼하면 이 지옥 같은 곳을 떠날 거야. 앞으로는... 엄마랑 둘이 사는 거야.’심윤아는 누워 있다가 어느새 사르르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깨어보니 여전히 똑같은 잠자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보니 베개의 한 부분이 흥건히 젖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눈물 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눈가를 가볍게 닦았다.젖어 있었다. 꿈에 울었을까?한참을 앉아 있던 그녀는 젖은 베갯잇을 벗긴 다음 캐비닛에서 새것을 찾아 갈아 끼웠다.베갯잇을 바꾼 후, 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자기
이혼 신고를 하러 가는 길,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차 안의 온도는 굉장히 낮았지만 진수현은 히터도 켜지 않았다. 아마 화가 나 히터 키는 걸 까먹은 듯했다. 심윤아는 급히 준비하느라 외투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다. 막 차에 앉았을 때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점점 추워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옷을 여몄다. 운전석에 있는 진수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줄곧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곁눈질로 옷을 여미는 심윤아를 확인한 진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히터를 틀었다. 잠시 후, 차 안의 온도가 올라갔다. 심윤아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진수현을 바라보았다. 슬림한 옆얼굴은 화가가 정성 들여 조각해 놓은 것 같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옆에서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잘생겨 보였다. 단점이라면 지금 그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알고 지냈으니, 심윤아는 지금 진수현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엄청 많이. 하지만 그는 분명 화가 났음에도...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히터를 켜줬다. 심윤아는 진수현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순간 차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꽉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혼 신고하러 도착하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야 했다. 순서가 다가오자 심윤아가 나지막이 진수현을 불렀다. “어머님 아버님께는 내가 돌아가서 말씀드릴게.”그 말에 진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심윤아를 쳐다보더니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대화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서 줄을 섰다. 갑자기 눈에 익은 커플이 심윤아에게 인사했다. 심윤아도 곧 그들이 지난번 혼인신고 하면서 마주쳤던 커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난번의 그들은 서로 웃고 떠들며 떨어지기 아쉬워 꼭 붙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원수를 보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