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도착한 후, 잘 회복된 선월을 보자 윤아는 너무 기뻤다. 그녀는 계속 선월의 곁에서 함께 있었다.선월은 열몇 살짜리 어린 여자애처럼 기뻐하는 윤아를 보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할머님, 목 안 마르세요? 상처는요? 아프지 않으세요? 드시고 싶은 거는요? 아니면 조금 더 주무실래요? 어, 만약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제가 이야기라도 해드릴까요?”너무 흥분한 윤아는 지금 자기 말이 모순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하지만 선월은 그녀에게 알리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잠이 오지 않는단다. 우리 윤아가 이야기 해주겠다니 들으면서 잘까?”그러자 윤아는 선월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선월은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 입가에 자상한 웃음을 머금었다.곁에 있던 선희는 윤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참지 못하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보면 볼수록 이 며느리가 마음에 들었다.자신이었다면 이런 인내심으로 선월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무런 참조물이 없는 상태에서 이토록 조리 있게 말하는 것 말이다.결국, 윤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선월은 잠이 들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윤아는 이야기를 멈추었다.선월의 병상 변두리에 앉으려고 했을 때 선희는 윤아를 향해 손을 저었는데 마치 할 말이 있어 보였다.윤아는 그녀와 함께 병실에 있는 베란다에 갔다.선희는 유리문을 닫으면서 소리가 병실에 흐르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그러고는 윤아를 가볍게 끌고 의자에 앉았다.“다리는 좀 어때? 아까 걸을 때 거의 다 나은 것 같던데. 그래?”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많이 나았어요.”“그럼 다행이고. 만약 계속 불편하면 무리하지 말고 앉아서 쉬어.”“그럴게요.”“아, 맞다. 이거.”선희는 갑자기 자기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윤아에게 건넸다. 윤아는 이 카드를 보자 놀라서 멈칫했다.“어머님?”“윤아 너에게 주는 용돈이야.”선희는 조용히 말했다.“아, 됐어요.”윤아는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는 카드를 도로 선희 쪽으
아무튼 그건 아마 많은 남자가 좋아하고 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윤아를 보니 선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좋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 게 알렸다. 혼자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니까 말이다.소영은 또...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수현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것쯤은 쉽게 보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진씨 집안의 은인인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선희는 겉으로는 예의를 갖춰 대했다.하지만 이런 예의는 손님에 대한 것일 뿐이었다.만약 소영이 윤아의 자리를 탐낸다면 엄마인 그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너무 소박하게 입었다고?’사실 선희가 귀국하기 전 윤아의 옷차림은 소박하지 않았다.그녀는 늘 예쁜 것을 좋아했고 심씨 집안이 부도나기 전 그녀의 옷이며 액세서리며 가방은 모두 그 시즌의 최신상이었다. 그리고 브랜드들이 아주 선호하는 VIP 고객이기도 했다. 그래서 매년 특별한 선물을 받았고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많이 받기도 했다.하지만 집안이 망한 후, 윤아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수현이 돈을 준다 해도 마찬가지였다.윤아는 눈을 내리깔면서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돈은 역시 자기 집의 것을 쓰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수현과 쇼윈도로 가짜 결혼까지 한 마당에 계속 그의 돈을 쓰는 건 조금 불편했다.하지만 겉으로 윤아는 웃으며 받았다.“알겠어요. 이제 시간 날 때 옷 몇 벌 더 살게요. 고마워요, 어머님.”이렇게 말한 후, 더는 거절하지 않고 카드를 넣어두었다.이제 이혼한 후, 수현더러 선희에게 돌려주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윤아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아, 맞다...”윤아에게 용돈을 준 선희는 이렇게 윤아를 돌려보내려 하지 않고 그녀가 카드를 받는 것을 본 후 그날 일을 물어보았다.“그날, 선우가 널 구했니?”그날 일을 떠올리며 윤아는 고개를 끄떡였다.“네.”“참 다행이구나. 선우가 정말 신경 썼어. 그날 네 할머니가 수술한다는
하지만 윤아는 날짜가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몰랐다.고작 이틀이 지나자, 선희는 윤아를 잡으며 기쁘게 말했다.“윤아야, 우리 내일 검사 받을까?”갑자기 이런 날벼락을 듣자, 윤아는 깜짝 놀랐다.“어머님, 왜 갑자기 앞당기셨어요? 할머님께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셨잖아요.”선희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요즘 너희 할머니께서 회복이 꽤 잘되신 것 같아. 의사 선생님도 할머니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셨고 게다가 요 며칠 아주 대단하신 의사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리를 들었지 뭐니. 아마 며칠 동안 이 병원에 계실 거야. 그러니까 이 틈에 검사를 받고 그 선생님께서 보여 드리자.”여기까지 듣자 윤아는 드디어 선희가 왜 검사를 앞당겼는지 알 것 같았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머리를 굴려 머쓱하게 거절했다.“저희는 그저 간단한 검사만 받잖아요. 일반 기계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평범한 의사 선생님께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네 말도 옳다만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받아보면 좋잖니. 네 할머니께도 이미 말씀드렸어. 두 날 동안 널 데리고 검사 좀 받아보겠다고 하니 금방 허락하셨어.”이 방법이 쓸모가 없다고 여겨 선월을 끌어내려고 했던 윤아: “...”선희가 선월도 설득했을 줄은 몰랐다.너무 빠르잖아!만약 지금 거절한다면 선희는 아마 그녀를 의심할 것이다.같은 여자로서 생각이 비슷할 수가 있으니까.차마 거절할 수 없으니 윤아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로 결심했다.그래서 그날 밤, 윤아는 수현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병원에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길에서 이 일을 꺼냈다.“할머님께서 요즘 많이 회복되신 것 같아.”이 첫마디에 수현은 윤아의 뜻을 알아챘다.그는 순간 눈썹을 찌푸리고는 윤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진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왜인지 모르게 윤아의 마음도 함께 무거워졌다.그녀는 어떻게 그에게 이 말을 할지 고민하며 운을 뗐다.이때까지도 좋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비록 앞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수현은 차를 세운 후, 손으로 핸들을 꽉 잡으면서 음흉한 눈빛으로 윤아를 보았다.“날 위해 모든 걸 생각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까? 심 공주?”마지막에 이를 악물고 그녀를 불렀다.윤아는 원래 대꾸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니 이렇게 되었다.“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고 가능하다면 우리 내일 법원 가는 건 어때?”이번엔 수현이 침묵했다. 그는 조금 전부터 계속 그녀를 뚫어지게 보면서 시선이 조금도 윤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이글이글 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한 말을 들었으면서 아무 대답이 없는 수현을 보니 윤아는 어쩔 바를 몰랐다.지금 그가 뭔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수현이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그는 빨리 이혼하며 소영과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만약 선월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자신과 쇼윈도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일찍이 소영과 결혼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가슴이 시렸다. 그녀는 더는 수현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그럼 이렇게 결정한 거로 알고 있을게. 우리 내일 시간 내서 법원 가자.”그녀는 수현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결정했다.수현의 안색은 썩어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후에도 원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차도 길가에 세운 상태로 움직이지도 않았다.차 안의 분위기는 잠시 얼어붙었다.얼마 지났을까. 윤아는 수현이 계속 운전하지 않는 것을 보자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오늘 밤 여기에 있을 생각은 아니지?“안 가?”그녀는 물었다.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그녀에게 닿았다.윤아는 수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됐어. 마음대로 하라고 해.’이렇게 많이 말하니 그녀도 힘들었다.수현이 가지 않으니, 윤아도 갈 수 없었다. 오늘 밤 여기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여긴 윤아는 더는 이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무표정으로 차
이튿날.윤아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이튿날 아침 여덟 시였다.그녀는 새하얀 천장과 익숙한 환경을 둘러보며 아래에 있는 부드러운 침대를 진지하게 느껴보면서 드디어 집에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인지했다.잠시 멍해 있다가 이마를 부여잡고 일어났다.지금까지 잘 줄은 몰랐다. 어젯밤에 분명 차에서 잠들었는데 수현이 결국 그녀를 데려왔었다.한참 동안 앉아있다가 핸드폰 메시지를 보았다.수현은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고 채팅 기록은 공백이었다.잠시 고민한 후, 윤아는 수현에게 전화를 걸며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다.한참 후, 수현이 전화를 받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윤아는 칫솔에 치약을 짜서 입에 가져가려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동작을 멈추었다.“어제 한 얘기 말인데, 우리 오늘...”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수현은 서늘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지금 아주 중요한 미팅이 있어. 세 시간 정도 할 거야.”심윤아: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뒤로 미룰 수 없어? 반 시간 정도 시간 내는 건 가능하지 않아?”하지만 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안 돼. 아주 급한 회의거든.”진 씨 그룹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하지 않았으면 아마 수현의 헛소리를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수현은 이렇게 말했다.“미팅하러 갈 거야. 끊어.”그리고 수현은 전화를 끊었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바쁜 음성을 들으며 윤아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어이가 없었다.역시 어제 그녀의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이혼하기 싫은 건가? 왜?이런 의혹을 품고 그녀는 빠르게 양치하고 어제 하지 못한 샤워를 했다.그녀가 깔끔히 정리하고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거실에 있는 선희를 보았다.윤아를 보자마자 선희는 달려갔다.“윤아야, 깼구나.”선희를 보니 윤아는 어제 그녀가 자신을 데리고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겠다는 일이 떠올랐다.원래 어젯밤 돌아갈 때 수현과 이혼 얘기를 하면서 만약 그가 동의한다면 오늘
이 말을 듣자, 윤아는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아니에요. 그날 다리만 다쳤어요. 다른 데는 아무 문제 없어요.”다리를 다친 것도 주연이 발로 차서였다.그리고 그녀를 납치했던 최준태는 놀랍게도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준태와 주연을 떠올리니 지금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아, 어머님. 그날 두 사람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선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선우가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더구나. 선우는 늘 일 처리가 확실하니 나도 마음이 놓여. 그리고 걱정하지 말렴. 내가 현이 보고 그 일을 제대로 알아보라고 했어. 그러니까 분명 벌을 받을 거야.”“그러니까 지금 이 일은 선우가 맡고 있다는 뜻이세요?”“그럴 거야.”여기까지 떠올린 윤아는 선우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이제 갈까? 이미 의사 선생님하고 얘기 해뒀어. 오늘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셨거든.”말을 마치고 선희는 윤아의 손을 잡았다. 윤아는 정말 거절하고 싶었지만 선희는 이미 그녀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결국 윤아는 선희와 함께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그때부터 윤아는 오늘 정말 이대로 들키는 건 아닌지 긴장되기 시작했다.선희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임신한 사실을 안다면 무조건 말할 것이다.“어머님, 저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이선희?”놀란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들려왔다.이 목소리는...윤아는 고개를 돌리고는 온 사람이 누군지 본 후 입술의 혈색이 순간 사라졌다.어떻게 저 사람이...이선희와 조씨 집안 사모님인 임진숙은 듣기 좋게 말해서 친구였다.임진숙은 선희의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능력을 질투했고 선희는 진숙의 오만함과 옹졸함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늘 겉으로 친구 행세를 하였다.이 모든 건 진씨 집안과 임씨 집안의 사업 합작 때문이었다. 다들 여러 행사에 참여할 때 그래도 체면을 갖추었다.“임진숙?”진숙은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눈앞의
그녀의 딸이 저지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임씨 집안 사업이 큰 만큼 그녀 임진숙의 딸은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제일 처음 진숙이 선희와 가까이 한 이유는 진씨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인 수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만약 임씨 집안과 진씨 집안이 사돈으로 맺어진다면 두 집안의 사업은 경쟁자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할 것이다.진씨 집안 이 큰 배에 임 씨네도 타고 싶었다.하지만 중도에 강씨 집안이 뛰어 들어올 줄 몰랐다.진숙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강 씨네 딸을 아주 미워했었다. 그런데 수현이 윤아와 결혼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그래서 진숙은 또 그런 질투와 원한을 윤아에게 돌렸다.저번에 윤아가 그 병원에 간 것을 보았을 때 진숙은 그녀가 아마 낙태하려는 것을 눈치챘다.진 씨네 와 같은 집안은 정말 수현의 아이라면 일찍이 알려 자신의 지위를 높일 것이다.그런데 윤아는 몰래 작은 병원에 와서 낙태했다.겉으로 보기엔 도도해 보이는 윤아가 남편 몰래 바람피울 줄은 몰랐다.자기 딸이 그런 짓을 하지만 않았어도 정말 윤아의 일을 다 퍼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윤아가 자기 딸을 팔아넘길까 봐 두려웠다.여기까지 생각한 진숙은 입꼬리를 간신히 올리며 말했다.“요즘 몸이 조금 안 좋아서 검사받아보려고.”이 말이 끝나자 조보아가 이쪽으로 걸어왔다.“엄마.”딸의 목소리를 들은 진숙은 안색이 급변했다.“네 딸도 함께 왔네?”선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숙은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좀 바빠서 나중에 연락할게.”이 말을 마치고 진숙은 보아를 데리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선희는 원래 더 물어보려고 했으나 두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선희는 윤아에게 말했다.“윤아야, 임진숙 저 여자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니? 많이 긴장한 것 같던데.”하지만 윤아의 답을 듣지 못한 선희는 어쩔 수 없이 윤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윤아가 고개를 숙인 채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발견했다.“윤아야, 윤아
”윤아야, 윤아야.”선희의 목소리가 또다시 귓가에서 울린다.윤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선희의 앞에서 딴생각한 게 이미 세 번째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머쓱했고 또 선희에게 미안했다.“죄송해요, 어머님. 오늘은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검사는 안 하면 안 될까요?”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선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잠시 고민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정 하기 싫다면 다음 날에 하자꾸나.”“고마워요, 어머님.”윤아는 미소를 지었다.“제가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요, 지금 처리하러 가봐야겠어요. 조금 있다가 할머님 병실에 갈게요.”선희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윤아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을 때 금방 허락했다.“그래. 빨리 가봐. 계속 딴생각을 하는 걸 보니 아직 하지 못한 그 일이 마음에 걸린 것 같구나.”이 말을 마치고 선희는 윤아에게 손을 저었다.“가봐. 엄마 도움 필요할 때가 있다면 언제든 말하고.”이 말을 하고 선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네가 할머니를 친엄마처럼 생각하잖아, 그렇다면 나도 친엄마처럼 여겨줬으면 해.”원래 자리를 떠나려고 했던 윤아는 선희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친엄마처럼 여기라고?얼마나 가슴이 울리는 말인가.만약 더 일찍 들었더라면 좋았다. 그렇다면 더 기뻐했겠지.하지만 지금도 늦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앞으로의 삶에서 이 말을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갑자기 성큼성큼 나아가 선희를 힘껏 껴안았다.윤아가 이미 간 줄 알았던 선희는 그녀가 갑자기 달려와 자신을 껴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이 포옹에 깊은 감정이 폭발하듯 나오는 것을 느꼈다.왜인지 모르겠지만 선희는 이런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윤아가 분명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윤아는 선희를 한참 동안 껴안고 있다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 수줍은 나머지 빨갛게 달아올랐다.“고마워요, 어머님. 저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