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원은 뒷말을 삼켰다.‘서화를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 보이지 않을까? 예나가 싫어하면 어떡하지?’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바꾸었다.“저는 서화 시장을 연구하는 걸 좋아해요. 전에 수집했던 서화를 지난달에는 세 배 이상으로 팔았지요.”세 배를 벌어들인 돈은 모두 예나의 기사를 막는 데 사용했었다.“할아버지, 그러면 그림 그릴 줄 아세요?”세윤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저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그림을 좋아한다고?”장서원의 눈에 빛이 돌았다.“밥 먹고 나서 할아버지한테 그림 한 장 그려줄 수 있을까?”세윤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하죠. 유치원 그림 대회에서 1등도 한 걸요.”너무 똑똑한 세훈이와 제훈이 탓에, 그 누구도 세윤이의 그림 재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실질적으로 세훈이와 제훈이, 그리고 수아의 재능에 비하면 그의 그림 재능은 평범한 정도였으니…….장서원은 아주 기뻐했다.장서원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 하나로 해외 진출도 했었다. 그러다가 가업을 이어받고 가족이 생기고 나서는 그림에 대한 영감도 사라지고, 마음도 비웠다. 그래서 이젠 수집이 취미가 되었다.예전에는 장명훈을 화가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재능이 없는 아이를 보며 장서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외손자가 자신의 그림 재능을 물려받았을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장서원은 재빠르게 그림 도구들을 준비해 왔고, 직접 세윤이가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세훈은 세윤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실력은 몰랐기에 가만히 옆에 서서 살폈다.제훈이와 수아는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이 평화로운 장면에 예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리고 이 틈을 타 화장실을 다녀오기로 했다.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는데 복도에서 도우미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오신 손님이 바로 도예나 씨인데, 이 가문 사생아라는 말이 있
도예나는 다시 거실에 있는 베란다로 돌아갔다.그녀는 세윤의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겨울철 마른 연꽃을 담은 그림이었는데 벌써 절반 정도 완성이 되었다. 아직 미성숙한 감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남달랐다.예나는 세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옆자리에 착석했다.시간은 눈 깜짝 할 새로 지나 벌써 오후 세 시가 넘어갔다. 세윤이의 그림도 마무리 단계가 되었고 별장 밖에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장서원은 세윤의 그림 재능에 푹 빠져 외부 상황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예나가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승용차에서 훤칠한 소년 하나가 내리는 걸 발견했다.장명훈이었다.그러자 점심시간 도우미들이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후계자 경쟁을 포기했다는 장명훈.예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앞으로 걸어갔다.층계로 올라가려던 명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조금 당황한 듯 물었다.“당신이 여긴 무슨 일로?”예나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장서원 씨가 나와 아이들을 초대한 걸 장씨 가문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인가?’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장서원 씨가 점심 식사로 초대하셔서 왔어요.”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럼 식사마저 하세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침착했다.이에 예나는 도우미들이 허튼소리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몇 번 만난 적도 없는 배다른 형제를 위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한참 고민을 하는데 명훈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말했다.“앞으로는 좀 주의하시는 게 좋겠어요. 몰래 사진이나 찍히지 마시고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딱히 사진이 찍혀도 문제가 될 만한 게 없어서요.”명훈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무슨 말을 꺼내려 다가 또 멈칫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잠시만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이지원 씨가 무슨 일로 당신을 협박하고 있나요?”명훈이 고개를 휙 돌렸다
명훈은 할 말이 없어졌다.‘대체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도예나는 나한테 멍청하다고까지 말했다고!’예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장서원 씨, 명훈 씨가 대체 왜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장서원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왜 대화가 거기로 흘러간 거죠?”비록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장서원은 마음을 접기로 생각했었다.“이지원 씨가 제 스캔들 기사로 명훈 씨를 협박해서 포기하게 만든 거예요.”장서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명훈아, 나는 네가 예나를 친 누나로 받아들이지 못한 줄만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큰 희생을 하다니, 아버지는 네가 참 달리 보이는구나…….”“…….”‘포인트가 그게 아니잖아, 포인트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다는 건데.’‘두 사람 모두 참 멍청해.’명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아버지, 저는 그저 스캔들 기사가 저희 가문 명예에 해가 끼칠까 걱정이 되어…….”“외부 사람들은 예나 씨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데 어떻게 명예 실추가 될 리 있겠어.”장서원은 아들의 새로운 모습에 아주 흡족스러워했다.“아들아, 네가 누나를 받아들여서 나는 참 기쁘구나. 그동안 예나 씨도 많은 고생을 했는데 누나한테 잘해드리거라…….”“큼큼!”예나는 마른기침으로 장서원의 말을 끊었다.“이지원 씨가 손에 쥔 건 별 볼 일 없는 카드예요. 이것 때문에 큰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명훈 씨가 다시 후계자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장서원 씨.”하지만 명훈은 덤덤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장서원이 말했다.“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나는 지원이 자신을 빌미로 명훈을 협박했다는 게 거슬렸다.‘감히 나를 밟고 올라가려고 했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어.’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장씨 별장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세윤이는 돌아오는 길 내내 흥분 상태였다.“장씨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림 재능이 있다고 하셨어요. 제 그림을 전국 청소년 그림 대회에 출제해도 손색이 없다고 하셨다고요.”“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그림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셨는데, 엄마 매주 저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면 안 돼요?”예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림 그리는 건 생각보다 따분한 일이 될지도 몰라. 일시적인 생각으로는 견지할 수 없을 거야. 정말 계속하고 싶어?”세윤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엄마, 저도 동생처럼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정말 대단하네, 우리 세윤이.”예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일 엄마랑 필요한 그림 화구랑 도화지 사러 가자. 오늘은 일단 푹 쉬고.”“고마워요, 엄마!”세윤은 동생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며 돌아갔다.예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을 현석이 책임진다면 저녁은 그녀의 차례였다.주방에는 각종 신선한 식재료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새우 손질을 마치고 끓는 물에 새우를 삶고, 곁들여 먹을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싱싱한 고등어를 손질해 구웠고, 닭으로는 닭볶음탕을 완성했다. 이어 제육볶음, 미나리 볶음과 된장국을 끓였고, 간단한 집 밥이 완성되었다.요리가 완성되자마자 현석이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실내화로 갈아 신고 바로 검은색 마스크를 벗었다.수아가 가장 먼저 그를 향해 달려갔다.“아빠. 왜 항상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거예요?”“아빠 흉터를 보고 사람들이 무서워할까 봐 그러지.”현석이 다정한 말투로 대답하고 나서는 아이를 들어 목말을 태웠다.이에 세윤이가 현석의 몸에 퐁퐁 매달리며 말했다.“저도요! 저도 해주세요!”“얘들아, 아빠 그만 괴롭히고 이젠 손 씻고 밥 먹을 준비해야지.”아이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예나의 요리는 셰프가 한 요리처럼 화려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집밥 향이 물씬 났다. 아이들과 현석의 입
예나는 이 말을 하면서 현석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현석은 입술을 매만지면서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서재 흰 벽 위로 감시 카메라 장면이 투영되었다.카메라는 어느 방안을 찍고 있었다. 언뜻 보면 호텔 방 같아 보였지만, 또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불빛, 작은 창문, 전체적으로 방은 작고 비좁았다.어두운 방 안에서, 어느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하얀 가운을 대충 껴입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그의 모습은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캐서린의 눈에 순식간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남천아…….”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헐벗은 두 여자가 걸어가 남천의 양 팔에 안겨 그의 몸을 더듬고 키스를 했다.캐서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도예나 씨, 선 넘지 마세요!”예나는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선 넘지 말라고요? 제가 무슨 과분한 행동을 했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강남천은 제 남편을 죽일 뻔했고 당신은 제 남편의 기억을 지우기까지 했는데, 겨우 잠시 감금한 거로 왜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우리가 선을 넘은 게 어느 부분인지 말해보세요.”“왜 다른 여자를 방안으로 보낸 거예요?”캐서린이 화를 참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를 대신하고 싶은 모양이군요.”그 말에 캐서린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그녀는 남천을 많이 유혹 했었지만 남자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었다.캐서린은 남천을 사랑했고, 그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남천은 그녀와 키스하는 것도 싫어했다.그러나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양팔에 서로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거리니 캐서린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요.”현석이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오늘 제 기억을 모두 돌려줘야 해요. 그러면 바로 사람을 시켜 당신을 남천의 옆으로 데려다 줄게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캐서린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진심이죠?”“당연하죠.”현
안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강현석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못했다.도예나는 에센셜 오일로 그의 머리를 문지르듯 안마하며 현석의 옆을 지켰다.자정이 넘어서야 현석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예나 씨, 기억이 돌아왔어요. 2~3살 때부터 납치되기 한 달 전 그날까지의 기억 모두 돌아왔어요.”현석이 예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드디어 우리의 첫 만남이 기억이 나요.”예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머리는 아직도 아파요?”남자가 고개를 저었다.“돌아온 기억을 정리하고 아니 머리가 엄청 개운 해졌어요.”“정말 다행이에요.”예나도 무척 기뻐했다.“빨리 강씨 가문 양아치들을 처리해요. 나는 자꾸 걱정돼요.”오늘 감시 카메라를 통해 남천의 눈빛을 확인한 뒤로 그녀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남천은 결코 이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예나 씨, 강씨 그룹을 해결하는 건 모두 나중의 일이에요. 저는 우선 진심으로 예나 씨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현석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넣으며 말했다.“결혼식 당일 내가 납치되고, 강남천이 나를 대신했는데 예나 씨가 달라진 우리를 알아봐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죽지 않았다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모든 걸 버리고 아이들과 해외로 날 찾으러 온 것도 정말 고맙고요.”“기억이 돌아오기 전,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 과거와 우리의 과거를 찾고 나니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결정을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예나 씨, 내가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결혼을 한 것이에요.”“예나 씨, 사랑해요.”예나는 텅 비었던 가슴 한구석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그녀의 노력을, 그녀의 헌신을 현석이 알아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부는 아마 이런 것이겠지.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현석의 입술에 직진했다.이건 예나가 현석에게 처음으로 먼저 다
“뛰어내려!”목소리가 또다시 예나의 귓가에 울렸다. 그녀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오른쪽 얼굴은 마치 누군가에게 뺨을 세게 맞은 것처럼, 또는 얼굴이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왔다…….만약 이런 아픔이 끝이 난다면 그녀는 기꺼이 뛰어내리고 싶어졌다.예나는 차가운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몸을 던져 뛰어넘으려 했다.“예나 씨!”현석은 혼비백산해서 달려가 떨어질 뻔한 예나를 품에 안았다.“날 놀래 키지 마요, 예나 씨!”그는 여자를 품에 안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고 베란다 문도 잠갔다.갑자기 따뜻해진 방 안 온도에 예나는 몸이 덜덜 떨렸다.천천히 고개를 돌린 예나가 현석에게 물었다.“아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현석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더니 뛰어내리려고 했어요.”“내가…… 뛰어내려요?”예나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았다.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려고 했으나 머릿속은 텅텅 비워졌다.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그런데, 오른쪽 볼이 또 아파졌다.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현석 씨…… 아파요. 얼굴이 너무 아파요. 요즘 약을 계속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내일 병원에 같이 가 줄게요. 괜찮을 거예요.”현석은 예나를 품에 안은 채로 그녀를 달랬다.“예나 씨,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얼굴에 흉터가 생긴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성남시 최고 미인이고, 당신보다 아름다운 여성은 세상에 없어요…….”예나는 그의 옷깃을 당기며 말했다.“설마 내가 외모 스트레스 때문에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현석은 침묵으로 일관했다.요즘 들어 예나에게 있어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일을 제외하고 또 다른 충격은 무엇일지 그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그리고 세상에 자기 외모에 관심이 없는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아무리 침착하고, 용감하고 똑똑한 그녀라고
의사는 거즈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안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 더 이상 거즈가 필요 없었다.도예나는 거울로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생각했던 것보다 흉측하지 않았다. 다만 왼쪽 얼굴이 오른쪽보다 회복이 빨랐다.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볼을 가볍게 건드렸지만, 어젯밤처럼 따끔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오른쪽 볼이 가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 왼쪽 얼굴은 그런 적이 없는데, 왜 그럴까요?”의사는 상처를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오른쪽 상처가 더 깊고 면적도 더 큽니다. 아마도 아물고 있는 과정이라 따끔한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손으로 긁으시면 안 됩니다.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깐요.”“이 따끔한 느낌은 치료가 가능하나요?”예나가 계속해서 물었다.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아마도 오른쪽 볼이 따끔거리다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그런 일이 생긴 것으로 그녀는 추측했다.강현석도 입을 열었다.“진통제를 처방해 주실 수 있나요?”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진통제는 대체로 큰 수술 직후 복용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상처에는 큰 부작용이 따르는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상처가 아무는 고통은 낮은 단계의 고통으로 약 없이도 견딜 수 있습니다…….”의사는 자신의 의학적 견해를 늘어놨지만 들어보면 예나가 엄살을 피우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예나도 자신이 오버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진통제는 괜찮아요. 참아볼 게요.”현석이 그녀를 뒤에서 껴안으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플 때면 날 꼬집어요. 적어도 함께 아파줄 게요.”예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요, 다음엔 현석 씨를 꼬집을 게요.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나 마요.”병원에서 나온 뒤 현석은 예나를 끌고 성형외과로 향했다.언젠간 가야 했으니, 예나도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그녀는 주차장에서 현석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그 몇 분 사이에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녀를 알아보았다.몇몇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