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거즈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안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 더 이상 거즈가 필요 없었다.도예나는 거울로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생각했던 것보다 흉측하지 않았다. 다만 왼쪽 얼굴이 오른쪽보다 회복이 빨랐다.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볼을 가볍게 건드렸지만, 어젯밤처럼 따끔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오른쪽 볼이 가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 왼쪽 얼굴은 그런 적이 없는데, 왜 그럴까요?”의사는 상처를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오른쪽 상처가 더 깊고 면적도 더 큽니다. 아마도 아물고 있는 과정이라 따끔한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손으로 긁으시면 안 됩니다.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깐요.”“이 따끔한 느낌은 치료가 가능하나요?”예나가 계속해서 물었다.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아마도 오른쪽 볼이 따끔거리다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그런 일이 생긴 것으로 그녀는 추측했다.강현석도 입을 열었다.“진통제를 처방해 주실 수 있나요?”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진통제는 대체로 큰 수술 직후 복용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상처에는 큰 부작용이 따르는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상처가 아무는 고통은 낮은 단계의 고통으로 약 없이도 견딜 수 있습니다…….”의사는 자신의 의학적 견해를 늘어놨지만 들어보면 예나가 엄살을 피우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예나도 자신이 오버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진통제는 괜찮아요. 참아볼 게요.”현석이 그녀를 뒤에서 껴안으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플 때면 날 꼬집어요. 적어도 함께 아파줄 게요.”예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요, 다음엔 현석 씨를 꼬집을 게요.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나 마요.”병원에서 나온 뒤 현석은 예나를 끌고 성형외과로 향했다.언젠간 가야 했으니, 예나도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그녀는 주차장에서 현석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그 몇 분 사이에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녀를 알아보았다.몇몇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강현석이 바람을 피운 거야. 아내 얼굴이 그렇게 되니까 이혼도 하려는 거고.][맞아, 도예나와 강현석의 이혼설은 어떻게 된 거야? 왜 뒷말이 없어?][도예나 얼굴이 망가지기 전부터 강현석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도예나 얼굴이 이렇게 된 이상 이혼은 당연한 수순 아니야?][남자들은 다 시각 동물이라, 얼굴이 망가진 아내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댓글은 하나같이 기발하고 무책임했다. 예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핸드폰을 껐다.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연예인도 아닌데 왜 사소한 일이 기삿거리가 되는지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앞으로 외출할 때는 현석처럼 마스크라도 껴야 겠다고 예나는 다짐했다.현석은 핸들을 잡은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네티즌들이 내 얼굴이 망가져서 남편이 날 버리고 이혼하는 거래요.”장난처럼 꺼낸 예나의 말에 현석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예나 씨, 나는 절대 예나 씨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영원히 이혼도 하지 않을 거고요.”예나는 가슴이 따듯해졌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툴툴대며 말했다.“장난이에요,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그리고 당신이 이혼하려고 한다고 해도 누가 허락해 준 대요?”‘그 먼 곳에서 어렵게 되찾은 남편을 누구 좋아하라고 놔줘?’성형외과 앞으로 차가 멈춰 서고 예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서 현석의 차에서 내렸다.이 곳은 성남시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전문적인 성형외과였다. 수많은 여배우가 이곳을 찾았는데 그렇다 보니 안전과 보안도 큰 보장이 있었다.현석은 미리 예약을 잡아 두었고 둘은 성형외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VIP실로 들어갔다.의사는 우선 현석의 상처를 살폈다. 면적은 큰 편이었지만 상처가 깊지 않았으므로 수술을 거치면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예나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고 있는 단계라 완전히 아문 뒤에야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성형외과에서 나오고 예나는 한숨을 돌렸다.“그래도 당신 상처는 한 달 안으로 아물 수 있다고 하니까 다
네 아이들은 방안에서 서로를 마주 향해 앉았다.눈가가 촉촉하고 코를 한번 훌쩍인 세윤이 입을 열었다.“엄마가 조금 다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였어?”“엄마가 많이 속상했겠어…….”수아도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아는 예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여자아이였으니 엄마도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내 얼굴에 그렇게 큰 흉터가 났다면 난 매일 울었을 거야…….’‘엄마도 울었을지도 몰라. 우리 앞에서 울지 않았을 뿐이지.’“엄마가 어떤 얼굴을 하든 우리 엄마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아.”제훈이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그러니까 절대로 엄마 앞에서 티 내지 마. 우리가 엄마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세윤이 눈물을 벅벅 닦으며 말했다.“응, 울지 않을 게. 웃으면서 엄마를 반길래.”제훈이 입술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수아야, 너한테 화장품 장난감 있지 않았어?”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할머니가 사 주셨어.”정지숙은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만 장난감은 모조리 구매했고 따로 수아의 놀이방까지 만들어주었다.세훈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럼 화장할 줄 알아?”“조금.”수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오빠, 그건 왜?”세훈의 물음에 제훈은 바로 눈치를 채고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검색해 수아 앞으로 내밀었다.“이것처럼 우리 넷에게 화장을 해줘.”세윤이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 화장품 세트를 들고 내려왔다.수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신만만하게 세 오빠에게 화장을 해주기 시작했다…….예나와 현석이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예전에는 문을 열자마자 세윤이와 수아가 달려와 품에 안겼지만, 오늘에는 아이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설마 낮잠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걸까?’예나는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넣으며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마스크를 착용했다.예나의 상처는 깊은 편이었고 아직 아무는 단계라 색깔이 아주 흉측했다.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놀랄 게 뻔했다.그녀와 현석 두 사람 모두 마스
수아가 세윤의 뒤를 따랐다.“엄마, 이번엔 정말 잘 숨었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찾아도 한참이나 찾지 못했잖아요!”세훈이와 제훈이도 커튼 뒤에서 나왔다.예나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세훈이와 제훈이는 절대로 이렇게 유치한 게임에 참여할 아이들이 아니었는데 오늘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 아이 모두 함께 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역시 아이들이랑 함께 있으면 동화가 되는 게 있지…….’예나는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깜짝 놀라 하던 말을 삼켰다.어둡던 방안의 희미한 불빛이 아이들의 얼굴을 비췄고, 네 아이의 얼굴에 총 8개의 흉터가 보였다.빨간 립스틱 위로 아이섀도, 파운데이션으로 덧바른 모습은 마치 깊은 상처를 연출했다…….“엄마, 이건 수아가 우리한테 해준 메이크업이에요.”세윤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형이 그랬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상처 메이크업이 유행이래요. 어때요? 진짜 같죠?”예나는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아이들이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자기 얼굴에 상처를 그린 게 틀림없었다.‘난 대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거야. 이렇게 착하고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이 넷씩이나 있다니…….’“엄마, 울지 마요…….”제훈이 걸어와 언제 흘러내렸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앞으로 외출할 때마다 상처 메이크업을 함께 해요. 우리 가족 모두 얼굴에 흉터가 있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예요.”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두 눈에 빛이 났다.“엄마 얼굴에 상처가 나도 예쁜 걸요.”제훈이도 입을 열었다.“엄마가 어떤 모습을 해도 우리는 엄마를 사랑해요.”“나도, 나도 사랑해.”현석이 허리를 숙여 예나와 네 아이들을 동시에 품에 안았다.여섯 식구 얼굴에는 모두 크고 작은 흉터가 자리 잡았다. 황금빛 노을 아래 그들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웅웅-핸드폰 진동 소리가 좋지 않은 타이밍에 울렸다.예나는 황급히 아이들을 품에서 놓고 수신자를 확인했다. 장서원이 걸어온 전화였다.인터넷 기사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자,
세윤의 얼굴에는 경악으로 가득 찼다. 수아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제훈이와 세훈이는 마치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한 모습이었다.“이 일을 설명하려면 사실 많이 복잡해. 어쨌든 장서원 씨가 엄마의 친아버지이고, 그러니 너희들의 외할아버지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돼.”예나가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세윤이 폴짝폴짝 뛰었다.“너무 좋아요, 드디어 나도 외할아버지가 생겼어요!”세윤은 도설혜를 미워했으므로 자연스레 도진호를 외할아버지라고 인정하지 않았다.세윤은 장서원을 몇 번 만나보고,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며, 용돈을 주는 모습이며, 더구나 그림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에…… 장서원이 외할아버지로 마음에 들었다.수아의 눈망울도 반짝거렸다.“나는 엄마랑 아빠랑 세 오빠, 그리고 할머니, 양 집사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외할아버지도 생겼어요! 너무 행복해요.”“작은 삼촌도 생길 거야.”예나가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제훈은 예나의 표정을 살며시 살폈다. 엄마의 미소가 억지로 지어낸 것 같지는 않았다.‘엄마는 진심으로 장씨 가문 사람을 받아들였나 봐. 그 사람들이랑 함께 어울리려고 하고…….’‘그런데 장씨 가문 사람들은 엄마가 강씨 가문 사모라는 이유로 엄마랑 친하게 지내려는 건 아닐까?’“아빠가 이미 장씨 가문에 대한 조사를 마쳤어. 외할아버지와 삼촌 모두 엄마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챙겨주고 있어. 이외의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고.”현석이 덤덤하게 꺼낸 말 한마디는 제훈이와 세훈이 마음속 마지막 방어막을 무너뜨렸다.이튿날 아침, 예나는 네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현석은 남천이 남긴 강씨 그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피팅샵 앞으로 데려다 주고 회사로 향했다.예나와 네 아이가 입구로 막 들어서려는 데 장서원이 한걸음에 달려 나와 그들을 반겼다.장서원은 오늘, 회색이 도는 연미복 차림이었는데 하늘색 나비넥타이가 전체적인 스타일링과 조화로웠고, 과연 귀족다운 풍모를 뽐냈다.“예나 씨,
예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럼 피팅 시작할까요?”직원이 드레스를 가지고 왔다.맞춤 제작된 드레스는 총 두 개였다. 하나는 핑크색 롱 드레스로 우아하고 여성스러웠으며, 다른 하나는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로, 청순하고 깨끗한 스타일이었다.두 드레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것이었다. 팔다리도 꽁꽁 감춰진 드레스는 마치 18~19살 여자아이가 입을 법한 스타일이었다.예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아버지의 눈에 딸은 영원히 크지 않는 소녀로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예나가 피팅룸 안으로 들어갔다…….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던 드레스를 막상 입으려니 한층 한층 겹겹이 쌓인 구조였고, 전체적으로 클래식한 드레스라 입는 데에 힘이 들었다…….예나는 7~8분 동안 끙끙대며 핑크 드레스를 입었고 마지막으로 허리 부분을 손보고 커튼을 열려는 찰나, 외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봤어? 얼굴에 진짜 흉터가 있더라고.”“상처가 엄청 깊던데 시술로 흉터가 지워질까? 흉터가 남을 것 같은데.”“얼굴이 그렇게 망가졌는데 맞춤 제작된 드레스가 입고 싶을까? 드레스만 아깝게 됐지 뭐.”“됐어, 그만해. 도예나가 아직 안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는데 들리겠어…….”직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예나는 바로 커튼을 열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직원들을 깜짝 놀라 허둥대다가 바로 한 줄로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드레스가 정말 어울리세요…….”“드레스가 예쁜 거예요? 아니면 사람이 예쁜 거예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방금까지 예나의 흉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던 직원들은 또 저마다 입바른 소리를 해댔다.“당연히 도예나 씨가 아름다우셔서 이 드레스가 빛을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태어나신 것 같아요…….”예나는 거울 속 자신을 확인하며 말했다.“얼굴에 두 흉터가 너무 흉측스러워서 걱정이 많았는데 당신들 얼굴을 보니까 내 흉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가벼운 말 한마디에 직원들의 표
피팅룸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세윤이 수아를 끌고 가장자리의 드레스 코드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럴싸한 목소리로 말했다.“수아야, 이 하얀색 드레스가 별로인 것 같은데, 다른 거로 갈아입을까?”한 직원이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물었다.“손님, 마음에 드시는 드레스가 있으면 제가 바로 가지고 올 게요.”수아는 직원의 뒤로 작은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저 예쁜 직원이 가져다줬으면 좋겠어요.”지목된 여 직원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비록 예나와 현석이 앞으로 이혼할지 몰라도, 네 아이만큼은 확실한 강씨 가문 후손이었으므로 이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지위는 여전했다…… 그러니 강씨 가문 공주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도예나는 나한테 평범하다고 했는데, 저 아이는 나한테 예쁜 직원이라고 해줬어…….’‘역시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해.’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손님, 어느 예복이 마음에 드세요?”세윤은 가장자리에 걸린 핑크 레이스 치마를 가리키며 말했다.“동생한테 저 드레스가 어울릴 것 같아요. 가지고 와주세요.”직원이 바로 몸을 일으켜 드레스를 가지러 갔다.그쪽에 걸린 드레스는 모두 최신 한정판 드레스였으므로 직원의 손길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드레스에 주름이라도 생길까 그녀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그런데 직원이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발 하나가 몰래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그녀는 손에 쥔 드레스에 정신이 팔려 바닥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꽈당!드레스는 철 옷걸이에 걸려 쫙 찢겼고 큰 구멍이 났다.직원은 깜짝 놀라 멍하니 찢긴 구멍을 바라보았다.옆에 선 직원도 깜짝 놀랐지만 행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그녀를 부축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어머, 옷이 찢어졌네요.”수아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 옷을 찢었으면 배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배상, 두 단어에 직원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분명히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세윤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형은 왜 하필 강아지와 나를 비교하는 거야…….’“CCTV 확인하시죠.”제훈이 입을 열었다.“고소한다고 해도 당신이 불리할 거예요. 그리고 여기 배상 금액이 얼마인지 계산 좀 해주세요.”얼어붙었던 다른 직원이 황급히 계산기를 두드렸다.총 17벌 예복에서 가장 싼 게 3,000만 원이고, 가장 비싼 건 1억이었다. 계산해 보니 총 10억에 가까운 금액이었다.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첫 번째 드레스도 배상할 수 없는 가격이었는데 17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무슨 일이야?”예나는 피팅 중에 들려오는 소란에 빠르게 환복하고 피팅룸에서 나왔고,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엉망진창이 된 드레스 룸이었다.세윤이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엄마, 이 직원이 옷을 17벌이나 망가뜨려서 10억이나 배상해야 한대요…….”“제, 제가 그런 게 아니라…….”직원이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도예나 씨, 당신 아들이 일부러 발을 걸어 제가 넘어진 거라 저 혼자 감당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예나는 고개를 돌려 세윤을 살폈다. 세윤은 멋쩍은 듯 코를 만지고 있었다.그러자 예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이 직원이 앞장서 예나의 뒷담을 했고 그걸 들은 아이들이 이러한 일을 벌인 게 틀림없었다.예나는 침착하게 첫 번째 드레스를 손에 쥐며 말했다.“첫 번째 드레스는 저희 쪽에서 부담할 게요.”직원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은 17벌은요?”“저희 강씨 가문이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배상해주지는 않아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첫 번째 드레스는 확실히 제 아들의 잘못이 맞아요. 하지만 남은 17벌은 저희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그리고 그녀는 드레스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직원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엉망이 된 드레스룸을 바라보았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예나는 돈을 지불하며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