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원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제일 먼저 장대휘를 찾아갔다.“아버지, 해외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한 분을 알고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혹시 저한테 소개해 줄 수 있나요?”장서원의 말에 장대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장서원,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모두 귓등으로 들은 게냐?”장서원이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아버지, 예나는 제 딸이에요. 제가 23년을 빚졌다고요. 이제 겨우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는 것 아닙니까?”“겨우 사생아 주제에 장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온 성남시에서 우리 장씨 가문을 비웃을 거다!”장대휘가 핏줄을 곤두세워가며 말했다.“그 애가 강씨 가문 사모라면 아무 소리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혼한다고 소문이 떠들썩하던데 언제 이혼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이런 애를 우리 가문으로 데려온다고 해서 좋은 점 하나 없다!”“그냥 딸아이에게 빚진 걸 갚고 싶은 것뿐이에요!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었다고 해도 전 꼭 딸아이를 가문에 데리고 왔을 거예요!”장서원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아버지가 계속 반대하셔도 세 날 뒤 연회는 정상대로 진행될 겁니다.”“삼촌, 할아버지도 다 삼촌을 위해서 하시는 말씀 아니겠어요?”이지원은 옆에 앉아 이간질했다.“삼촌도 잘 생각해 보세요. 왜 도예나가 여태껏 장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요. 그땐 강현석한테 시집간다고 우리 가문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혼하게 되니까 급히 비빌 만한 구석을 찾느라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삼촌도 도예나한테 속지 마세요.”장서원이 실망한 눈길로 지원을 바라보았다.예전의 장서원은 딸이 없어 지원을 자기 친딸로 생각하고 사랑을 주었었다.세상에 좋다는 건 모두 지원에게 가져다줬을 정도로 지극 정성이었다.하지만…… 지원은 자기 친딸을 모욕하고 있다. 이에 장서원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예나는 내 딸이에요. 당신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어요.”장서원이 한 글자 한 글자 차갑게 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성형외과
‘도예나를 가르치라고? 허, 말도 안 돼!’이지원은 도예나의 추태를 보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그녀를 진심으로 가르칠 리가 없었다.하지만 성남시 최고 미녀라던 예나의 얼굴에 흉터가 생겼으니, 세 날 뒤 연회에서도 꼴사나울 게 뻔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지원이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아직도 웃음이 나오는 게냐?”장서영 (이지원 모친)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도예나가 장씨 가문으로 돌아온다고 그러던데, 모르는 건 아니지?”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오면 뭐 어때요? 날개 꺾인 독수리가 뭐가 무섭다고.”“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 단다.”장서영이 말했다.“아직 1개월이라는 수습기가 지나야 장씨 그룹 후계자로 정식 인정이 되는데, 한 개월 사이에 문제라도 생겼다가 할아버지가 말을 바꿀 수도 있지 않느냐…….”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설마 도예나가 일부러 나한테 시비를 걸려고 장씨 가문에 돌아오는 거예요?”“그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지.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도 사람을 붙여 도예나를 감시할 테니.”장서영이 손가락 스트레칭을 하며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예나는 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온 후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아이들은 예나의 음식을 좋아했고, 그녀도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겼다.그녀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서려는데 별장 앞에 빨간색 스포츠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전에 본 적이 없는 차종이었다.양 집사가 공손히 다가가 차 문을 열자, 운전석에서 우아한 귀부인이 내렸다.예나는 눈을 가다듬고 살피다가 그 사람이 바로 결혼식 당일에 뵈었었던 강현석의 둘째 숙모 박정화라는 게 기억이 났다.현석에게는 첫째 고모와 둘째 삼촌이 있었다. 고모는 해외로 시집을 갔고 국내에는 극히 드물게 돌아왔으니 예나는 얼굴을 뵌 적이 없었다.둘째 삼촌의 이름은 강지섭으로, 강씨 그룹 최대 규모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박정화는 바로 강지섭의 아내인 둘째 숙모였다.현석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고,
정지숙이 물을 한 모금 삼키고 입을 열었다.“나는 괜찮네, 며칠 더 누워있으면 나을 테니.”“형님, 이게 다 마음의 병이 도진거에요.”박정화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형님,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알고 지낸 지 수십 년이 넘고 다른 사람보다도 가깝게 지냈는데 저한테라도 털어놓으세요. 그렇게 끙끙 앓다가는 큰일 나요.”현석의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박정화와 정지숙의 관계는 꽤 가까웠다.그러나 현석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두 형제 간의 관계는 남들보다도 못한 상태로 변하면서, 정지숙은 그 곳에 마음을 모두 쏟아붓게 되었다. 박정화와 정지숙 사이의 유대도 이 영향을 받아 서서히 흐지부지해졌다…… 그리고 집안의 일은 다른 이에게 쉽게 말할 수 없었다.정지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별일 아니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걸세.”“설마 예나가 형님 속을 썩이기라도 한가요?”박정화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현석이 다른 여자랑 만난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것 때문에 형님한테 화풀이라도 한 거예요?”“그런 일 없네.”정지숙이 대답했다.“예나는 나한테 아주 잘 해주고, 내 병은 예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정지숙의 병은 마음의 병이 맞았다.두 형제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 그 형제의 어머니가 마음의 병에 걸린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자신이 외로운 섬에 갇힌 것 같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혼자 섬에 갇혀 언제 파도가 자신을 덮칠지 불안해했다.“형님, 예나를 위해 말하지 마세요. 그 애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건 저도 눈치챘어요.”박정화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망한 도씨 가문의 큰 딸이잖아요. 작은딸은 감옥에서 미쳤다고 했는데…… 여태 도씨 가문으로 돌아가 보지도 않은 걸 보세요. 도씨 가문에서 딸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도씨 가문의 일은 성남시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예나는 도씨 가문의 큰딸이자, 강씨 가문의 사모이니 여러 귀부인이 박정화에게 이야기를 날랐다.그 사람들이 박정화에게 전한 말은 차마 입
세윤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 두 손을 허리에 짚은 채로 화를 냈다.“엄마는 도씨 가문 사람이 아닌데 왜 도씨 가문을 챙겨야 해요? 그리고 엄마는 우스워질 행동을 한 게 없어요! 작은할머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말해요?”박정화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 험담을 하다가 딱 들킨 것도 모자라 겨우 네 살짜리 아이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박정화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제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정지숙의 창백한 얼굴에 닿았다.“할머니, 둘째 할머니가 한 말이 틀렸는데 왜 가만히 있으셨어요?”정지숙은 제훈의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는 다른 가문을 말하고 있었단다. 너희 엄마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너희들이 잘못 들은 거야.”“할머니, 우리 엄마는 정말 도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수아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엄마의 친아버지이자 우리의 외할아버지는 장서원이에요…… 세날 뒤 장씨 가문에서 연회도 할 거래요. 할머니는 몸이 아파서 못 가도 둘째 할머니는 꼭 가보세요.”수아의 목소리는 귀여웠지만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정지숙은 놀란 눈치였다.‘이렇게 중요한 일을 내가 몰랐 다니.’‘세 날 뒤가 연회인데 시어머니가 되어서 며느리의 친부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예나가 나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야.’정지숙이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다들 이만 나가줘. 좀 피곤해서 그래.”박정화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형님, 그럼 푹 쉬세요. 며칠 뒤에 다시 올 게요.”그 말을 끝으로 박정화가 방에서 나갔다.세훈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아빠가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강씨 가문이든 강씨 그룹이든 강남천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어 위험하다고 판단해 엄마는 강씨 가문 모든 사람을 초대하지 않았어요.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빠도 초대하지 않았는 걸요.”그 말은 해명 같기도 했다.정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강현석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곧장 도예나를 향해 걸어갔다.그의 큰손이 그녀의 가녀린 허리에 닿고, 현석은 그녀의 이마에 자기 머리를 가져다 댔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주변 공기도 달콤해졌다.“아빠, 뽀뽀하면 안돼요…….”세윤이 눈을 가리며 말했다.“우리 넷도 아직 여기 있다고요.”예나는 얼굴을 붉히며 남자를 휙 밀어버렸다.“그래, 조심 해야죠.”네 아이들은 물론이고, 멀리 서 있는 도우미들도 감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갈게요, 갈게요.”세훈이 마른기침하며 말했다.“채소 다듬는 건 아빠한테 맡기고 우리는 이만 가서 놀게요.”‘매일 뽀뽀하는 걸 모른 척하는 것도 힘이 드네.’네 아이는 손에 쥔 채소를 내려놓고 거실로 향했다. 예나는 채소 바구니를 현석의 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여기 채소를 모두 다듬어요.”그리고 예나는 몸을 돌려 다른 일을 시작했다.현석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그는 식탁 끝자리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몰래 살폈다. 지극히 단순한 일상에서 그는 마음의 안정감을 찾았다.이게 바로 그가 평생 찾아 헤맸던 평온과 행복일 것이다.그는 자신이 최고의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완벽한 가족을 가졌으니.“아!!”갑자기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현석이 다듬던 채소를 버려 두고 빠르게 예나를 향해 걸어갔다. 예나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마도 채소를 썰다가 손이 베인 모양이었다.그는 고민도 없이 그녀의 얇은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예나는 손가락이 아픈 것도 잠시,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아찔한 화면이 다시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엘리자의 괴이한 웃음, 얼굴을 가로지른 칼날, 쏟아 내리는 피, 참을 수 없는 고통, 총을 맞고 죽어가는 엘리자…….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차갑게 변해갔고, 그녀는 남자를 팍 밀어버렸다.“아프잖아요, 살살할 수 없어요?”현석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예나 씨. 약상자를 가지고 올 게요.”그는 빠르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 강현석은 도예나가 화를 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괜찮아, 내가 엄마랑 잘 말해볼 게.”현석은 아이들을 다독인 후, 약상자를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그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예나 씨, 손가락에서 아직 피가 흐르고 있어요. 상처만 처리해 주러 들어가도 될까요? 치료만 하고 날 혼내든 때리든 해요.”방안은 조용했다.현석은 더 의아해졌다.‘내가 정말 아프게 한 걸까?’그는 계속 문을 두드렸다.“예나 씨, 문 좀 열어 줄래요? 얼굴 보면서 얘기해요…….”네 아이는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수아는 빨간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엄마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아요.”“엄마 손에서 피가 났어요.”제훈도 입을 열었다.‘해외에 있을 때 엄마는 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어. 더구나 이렇게 화를 낸 적도 없었다고. 오늘은 어딘가 좀 이상해.’‘아빠가 다른 일로 엄마를 화나게 한 걸까?’‘하지만 평소에 화가 난 엄마는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없었어.’“아빠는 참 바보 같아요. 화가 난 엄마 달랠 줄도 모르고!”세윤이 씩씩거리며 말했다.“내가 엄마 데리고 올 게요!”세훈이 세윤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말했다.“엄마가 일부러 애교 부리는 게 아닐까?”수아의 눈이 반짝였다.“맞아, 소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이랑 잘되려고 일부러 연약한 척하는 걸 읽은 적 있어. 지금 엄마는 아빠한테 지켜 달라고 애교 부리는 걸지도 몰라.”심각해하던 제훈의 표정이 드디어 조금 풀렸다.‘여태껏 엄마를 지켜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 엄마는 모두 혼자 이겨내야만 했지.’‘이제는…….’‘든든한 방패막이 생겼고, 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이건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그럼 퍼즐이나 계속하는 게 어때?”세훈의 말에 네 아이들은 다시 거실 카펫으로 돌아갔다.안방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예나는 멍하니 안방 소파에 앉아있었다. 식지 상처의 피가 멎어갔고
예나는 자신의 기억이 왜 끊어졌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20여 분 동안의 기억이 깨끗이 사라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가락을 치료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현석 씨,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잊어버린 게 아니에요.”현석은 조심스레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도 붙여주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헝클어진 여자의 머리를 매만졌다.“예나 씨,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 조금 있다가 우리 병원 가보지 않을 래요?”갑자기 부분적인 기억을 잃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이상 증세가 한 번뿐이라면 몰라도, 며칠 전 밤 예나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었다.그 기억도 잊었다는 게 가장 심각한 부분이었다.예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이 네 명을 낳고 나서 기억이 자주 끊겨 출산 후유증이구나 싶었어요. 그때도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는데…… 설마 나도 캐서린한테 최면 당한 걸까요?”현석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최면 증세는 이런 게 아니에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병원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예나는 그의 옷깃을 살짝 당겨 눈을 마주한 채로 물었다.“내가 기억을 잃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도 날 사랑할 수 있어요?”현석이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그런 말 하지 마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만약이라는 거죠. 성격이 괴팍해지고 못생겨진대도 날 사랑할 수 있어요?”예나가 굽히지 않고 계속 물어왔다.현석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그는 힘껏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깊고 끈적이는 키스는 입가에서 그녀 얼굴의 흉터까지 이어졌다…….키스 한 번에 후끈해진 방 안의 온도. 키스 하나로 둘은 만족하지 못했다.밖은 점점 어두워졌고 전등을 켜지 않은 방안도 점점 어두워졌다. 방안이 캄캄해질 때쯤 둘은 방 안에서 나왔다.방에서 나오자, 도우미들이 이미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후였다.네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세훈이 마른기침을 하며
세윤도 현석이 예나에 대한 독점욕을 잘 알고 있었다.“알겠어요. 데이트 잘 다녀오세요.”세윤이 마지못해 손을 흔들었다.“엄마, 맛있는 거 사가지고 오세요.”수아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아빠, 엄마 잘 지켜주세요. 올 때까지 기다릴 게요.”네 아이가 별장 입구에 서서 둘을 배웅했다.차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대부분의 검진은 저녁 시간대에는 종료가 되었지만, 현석이 미리 전화를 걸어 전문의로 예약을 잡았다.예나는 검사지를 꼼꼼히 적고 여러 검사를 마쳤다. 검사 보고를 쥔 둘은 진찰실로 향했다.의사는 네다섯 장의 검사 보고를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보고서를 살펴보니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어났던 일을 갑자기 잊어버리는 걸 의학적으로는 일시적인 기억장애라고 합니다. 이런 기억 장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호전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심각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증상은 40세 이후에 나타나는데…….”예나는 의사의 말을 겨우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이상 증세는 정상적인 상황이며 천천히 호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현석이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기억을 잃은 시간대의 성격과 평소의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거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일시적인 기억 장애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정말 그런 증세가 있으시다면 정신과로 가서 검사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가 진지하게 조언했다.진료실을 나선 예나의 표정이 착잡해 보였다.“현석 씨, 설마 정말 분열증 같은 병은 아니겠죠?”‘그래서 성격이 변하고, 그 시간대의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그런 생각 마요.”현석이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얼마 전 나를 찾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래요. 그러다가 드디어 긴장이 풀려 이상 증세가 나타났을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호전될 거라고 했잖아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요, 꼭 다시 좋아질거에요…….”예나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당신이 옆에 있다면 무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