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석이 주방 문을 열고, 한창 바쁘던 요리사들이 서둘러 하던 일을 놓더니 어색하게 “대표님.”이라며 인사를 건네왔다.“모두 나가셔도 돼요.”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부엌에 울리자, 요리사 몇 명이 서로를 한 번 보고 눈치 있게 물러나며 주방의 미닫이문을 닫았다.환풍기 소리 때문에 그들이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 도예나는 재료를 썰면서 말하고 있었다.“이제 파를 썰어야 되죠? 비스듬히 썰까요, 아니면…….”그녀가 말을 하면서 대파 한 줌을 내밀었을 때, 관절이 뚜렷하고 잘생긴 손이 파를 건네받았다.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낀 도예나가 고개를 들었다.“강 대표님, 어떻게 들어오셨어요?”그 물음에 강현석이 담담하게 말했다.“같이 요리 배우려고요.”“요리를 배우신다고요? 집안에 이렇게 많은 요리사가 있는데, 직접 요리할 일이 있을까요?”“어제 저녁에 수아가 배가 고팠는데, 제가 국수를 끓였더니 당신 아들이 놀리더군요. 처음 끓여본 국수였지만, 수아가 다 먹었으니 제가 요리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니겠죠?”강현석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자, 도예나가 멍해졌다.이 남자가, 국수를 만들었다고? 뭔가 상상되지 않는 화면이다.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니 턱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 손등에도… 아마 기름이 튀어서 다친 것 같다.어젯밤에도 알아차렸지만 당시에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마 수아에게 국수를 만들어 주다가 다친 거겠지.“상처에 약은 좀 발랐어요?”“약도 발라야 하나요? 며칠 지나면 낫겠죠.”강현석은 개의치 않았다.“약을 안 바르면 흉터가 생길 수도 있어요.”이렇게 잘생긴 얼굴에서 턱에 흉터라니, 얼굴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도예나가 손을 닦고 물었다.“약 어딨어요?”그러자 강현석이 몸을 돌려 찬장 위쪽의 서랍을 열었다.“양집사가 주방에 화상약을 놔뒀다고 한 것 같은데…….”그가 작은 상자를 들고 와 열어 보니, 안에 각종 약이 있었고 알콜솜과 반창고도 있었다. 도예나가 화상약을 찾아 뚜껑을 열고 손끝에 연
그녀의 부드럽고 맑은 향기가 갑자기 멀어지자, 마음이 텅 빈 듯 실의에 빠진 강현석이 손을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손에 안 발랐어요.”도예나는 그가 들어올린 오른손을 바라보며 눈꺼풀을 늘어뜨렸다.“그냥 스스로 바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요리를 해야 하니까…….”당황하여 얼굴을 돌린 그녀는 식칼을 들고 마구 채소를 썰었고, 그 모습을 본 강현석은 입꼬리를 올려 낮은 웃음을 지었다.원래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풍기며 뼛속까지 성숙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던 그녀가 처음으로 소녀처럼 허둥대는 모습…….그의 웃음소리가 도예나의 귀에도 선명하게 전해졌다. 주방 환풍기 소리가 이렇게 큰 데도, 채소를 써는 소리가 이렇게 큰 데도 그 웃음소리가 크게 전해지는 듯했다.도예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약간 괴로웠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용솟음치는 영문 모를 감정을 억누르며 일부러 침착하게 말했다.“대표님, 전에 저에게 이 변호사를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더라구요.”그녀는 화제를 돌린 후에야 비로소 당황했던 마음을 평온하게 돌릴 수 있었다.“전에 이 변호사님께서 방송에 출연하신 걸 본 적 있어요. 얼마나 대단하시던지, 직접 얘기를 나눠 보니까 방송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시더라구요…….”그 이야기를 듣는 강현석의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이 여자가 그의 앞에서 다른 남자의 칭찬을 끊임없이 하는 게, 어째서 이렇게 불편한 걸까?“여효는 입만 살았지 다른 건… 쯧쯧쯧.”그가 누가 들어도 비꼬는 듯한 소리를 내자, 도예나가 그를 힐끗 보았다.“대표님과 이 변호사님은 동창이잖아요?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전에 외국에서 유학할 때, 그 친구가 뻔뻔스럽게 우리 집에서 2년을 살았어요. 차마 쫓아낼 수가 없었죠.”강현석이 차갑게 입을 열며 말했다. 그는 원래 전혀 뒤에서 다른 사람을 흉보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도예나가 여효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걸 듣고 참지 못한 것이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유치하다고 느꼈지만, 통제할
밤하늘의 어둠이 짙게 캄캄해졌고, 식사를 하는 집주인과 손님들이 모두 즐거워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도예나는 아이를 끌고 문어귀로 걸어갔다.“제훈아, 수아야, 양집사님과 삼촌에게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그러자 도제훈이 영리하게 인사했다.“양집사님 안녕히 계세요, 삼촌도 안녕히 계세요, 세윤이 안녕.”그리고 수아는 분홍색 입술을 오므리고 손을 흔들었다.“예나 아줌마, 내일 저녁에는 일찍 오세요. 저녁 먹기 전에 일단 좀 놀게요! 수아야, 내가 내일 새로운 퍼즐을 살 테니까 우리 같이 맞추고 놀래?”강세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수아는 그를 몇 초 동안 쳐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선 강현석이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데려다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말 괜찮아요. 제가 차를 몰고 왔으니 혼자 돌아가면 돼요, 그냥 집에 계세요.”도예나가 고개를 가로젓고 아이들을 끌고 나와 차문을 열고 수아를 안은 채 차에 태웠다. 그리고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매줄 때, 뒤에서 뜨거운 시선이 자신을 주시하는 걸 느꼈다.방금 저녁을 먹을 때도 이 남자는 줄곧 매우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까만 눈동자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재빨리 차에 올라탄 도예나는 시동을 켜고 떠났다.강씨 가문 저택은 산 중턱이 있는데, 앞에는 양방향 도로가 있었고 모두 강씨 가문 소유였기에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다. 계속 질주하며 산을 내려가던 도예나는 산기슭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길가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차의 속도를 늦춘 그녀는 그림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 아이였다!그 아이, 자신을 한 번 구하고, 또 자신을 떠봤던, 도설혜의 아들!도예나가 천천히 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제훈아, 동생 잘 챙겨. 금방 올게.”도제훈도 강세훈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몸 옆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수아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졸려서 바깥에 사람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강현석의 말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도예나는 자신의 오른팔이 싸늘함을 느꼈다. 돌아보니 옷이 찢어진 구멍으로 찬바람이 불어와 몸서리치는 한기가 느껴졌다.“도련님, 괜찮으세요?!”차를 수리하고 있던 오연희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강세훈을 부축하더니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강세훈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괜찮아요.”그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도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구해줘서 감사해요.”만약 도예나가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오토바이에 치여 날아갔을 것이다.“괜찮으면 됐어.”도예나가 담담하게 한 마디 하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방금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도설혜의 아들을 살렸다고? 자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자비심 넘치는 사람이었던가?“엄마, 팔 다쳤어요?”도제훈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옷은 찢어졌지만 다치지 않았어. 안에 옷을 몇 벌 더 입고 있었으니 다행이지.”웃으며 답한 도예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천천히 도로를 떠나자, 도제훈은 백미러에 비친 강세훈을 바라보았다. 강세훈은 그들의 차가 도로에서 사라질 때까지 끊임없이 주시했다.도제훈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엄마, 강세훈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예요. 앞으로 좀 거리를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요.”그러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도예나가 놀라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엄마가 강세훈이랑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구요. 쟤는 너무 똑똑해요. 세윤이랑 달라요. 쟤는…….”“쟤가 강세훈이라고?”차의 속도를 늦추며 도예나가 다시 한 번 물었다.“방금 그 아이가, 강세훈이라고?”반복되는 물음에 도제훈이 멍하니 도예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강현석이 이렇게 가까워질 동안, 지금까지 강세훈은 본 적이 없단 말인가? 그런데 엄마의 방금 그 행동은 분명히 강세훈을 아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이름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엄마, 쟤는 확실히 강세훈이 맞아요. 강세윤의 친형이요.”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도예나는 두 아이를 재운 후 방으로 돌아와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아 매일 늦게 자는 편이고, 그녀가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예나야, 왜 이런 시간에 전화한 거야?”할머니의 목소리 속에 의심이 깃들어 있다.“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그리고는 잠시 멈추었다가 천천히 말했다.“설혜한테 아들이 둘 있죠?”그러자 할머니가 한바탕 한숨을 내쉬었다.“맞아, 5년 전에 혼전임신으로 쌍둥이를 낳았어… 당시에 네 일 때문에 떠들썩해서 설혜 일은 네 아버지가 숨겼지. 우리 집안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몰라…….”손가락을 꽉 쥔 도예나가 계속 물었다.“그 두 아이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강씨네 두 도련님인데 하나는 강세훈, 하나는 강세윤이야.”그 말을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유난히 늙어 보였다.“설혜가 강씨 가문 아이 둘을 낳았는데, 태어난 첫날에 그 집안으로 보내졌어. 지금 4살이 넘었지만 내가 그 아이들을 본 건 손에 꼽을 만큼 적지… 그 두 아이는 우리 가문과 친하지 않아. 예나야, 시간 될 때 네 아이들 좀 데리고 와서 할머니한테 보여줘.”할머니의 말을 듣는 도예나의 마음이 조금씩 골짜기로 가라앉았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베란다로 천천히 걸어가 커튼을 열고 차가운 눈동자로 캄캄한 별하늘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강세훈이 도설혜의 아들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강세훈이 도설혜와 강현석 아이의 아들이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일까?강현석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괜한 마음이 생긴 걸까?도설혜와 잠자리를 가졌던 남자에게, 자신이 환상을 품고 있었다니…….미친 게 분명해.손을 들어 커튼을 친 도예나는 밤새 몸을 뒤척이며 날이 밝아올 때가 돼서야 얕게 잠들었다. 알람이 울릴 때 피곤하게 침대에서 일어났고, 예민한 도제훈이 그녀의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엄마, 어제 밤에 잘 못 잤어요?”“새벽 3시까지 일하느라 바빠서
그림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분홍색 치마를 입은 소녀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아이.그림을 본 도예나는 바로 그 둘이 수아와 강세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이건 수아가 세윤이에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예요.”옆에서 도제훈이 설명했다. 비록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여동생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면서 아직 선물을 받은 적이 없는데, 강세윤 그 녀석이 여동생이 직접 그린 그림을 받을 수 있다니…….한편, 도예나의 얼굴도 복잡해졌다.만약 강세윤이 도설혜의 아들이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절대 수아와 강세윤을 이렇게 가까워지게 두지 않았을 텐데…….하지만 두 아이는 이미 친해졌다. 만약 이 우정을 강제로 파괴한다면 틀림없이 수아의 정서를 다치게 할 것이다.“이걸 받으면 세윤이가 아주 기뻐하겠네!”이렇게 말한 도예나는 시동을 걸어 강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어른들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든, 아이는 죄가 없다. 세윤이가 자신과 수아를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도설혜 때문에 그 아이를 밀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큰 길을 천천히 달리던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 입구에 멈추었고, 강세윤이 마치 즐거운 새처럼 별장에서 뛰쳐나왔다.“예나 아줌마, 보고 싶었어요! 와, 수아야, 이 그림은 날 그린 거야? 네가 직접 그린 거야? 와!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 수아가 직접 준비한 선물을 받다니!”강세윤이 그림을 들고 환호를 멈추지 않았고, 수아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옅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그 무뚝뚝하고 말도 없고 정서의 변화도 없던 자폐증 소녀가 마침내 서서히 닫히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도제훈이 수아의 손을 잡고 저택으로 들어가자, 강세윤도 따라 달려왔다.“수아야, 나도 선물을 준비했어!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자!”수아가 얌전하게 그를 따라 위층으로 가자, 도제훈은 왠지 질투가 나서 입술을 오므리고 따라 올라갔다.신발을 갈아신은 도예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요리를 할 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지만, 오늘은 유
양 집사는 여러 번이나 입을 벙긋거렸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지 몰랐다.도예나는 채소를 씻으며 말했다."도설혜가 친모인데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도련님은 아직 나이가 어리셔서 친모가 무슨 뜻인지 모를 거예요."양 집사가 해석했다."작은 도련님은 어렸을 때부터 도설혜씨를 따르지 않았어요. 철이 들고 나서는 어머니라는 말도 하기 싫어했었죠. 큰 도련님은 그렇게 티가 나게 싫어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많이 어색했습니다......."도예나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세훈이는 주장이 강한 아이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도설혜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겠네요.""큰 도련님은 도설혜씨에게 잘 해드리는 편이었습니다. 매년 도설혜씨에게 각종 선물을 사주었는데 이 별장 2층에는 큰 도련님이 도설혜씨에게 사준 가방과 신발로 꽉 찬 방이 있었습니다."여기까지 말하던 양 집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저번 일로 화가 난 사장님께서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내다 버리시라고 하셔서......."양 집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말이 많아졌다. 강세훈과 도설혜의 일도 스스럼없이 말을 꺼냈다. 도예나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강세훈은 자신의 어머니인 도설혜를 많이 아꼈다.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도예나에게 함정을 파지도 않았겠지.이렇게 모든 힘을 들여 그녀에게 함정을 파놓았는데 앞으로 이 화살이 제훈이와 수아를 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도예나가 채소를 다듬던 손을 멈추었다.요리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조금도 이어갈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집 문 앞에 한 대의 차가 들어섰다. 양 집사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사장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그는 주방의 다른 셰프들에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각자 일 보세요."주방은 도예나와 사장님을 위해 비워두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다.그는 사장님이 도예나를 향한 마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처음으로 여자에게 이토록 많은 관심과 인내심
그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하루하루 미뤘던 건 어떻게 말을 꺼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도예나가 말을 꺼낸 이상 그는 반드시 입을 열어야 했다."세훈이와 세윤이의 친모가 바로 도설혜입니다."강현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도예나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비록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직접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더없이 가라앉았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렸다."어쩐지 세윤이가 나를 엄청나게 따르더니 내가 큰이모라서 그랬던 거였군요. 아이들도 모두 사촌이니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요."그녀는 애써 가볍게 말했다.그러나 강현석은 그녀의 말에서 조금의 풍자를 느꼈다.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다."5년 전 그날, 저는 손동원때문에 인사불성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한 여자와 한방을 쓰게 되었고 저는 도설혜와 기억에도 없는 하룻밤을 보냈어요. 그날 이후로 도설혜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도설혜는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사려졌지요. 그런데 8개월 후 두 아이를 안고 별장 앞으로 찾아왔어요. 저는 그제야 제게 두 아들이 생겼다는걸 알았고요......."몇 마디 말이었지만 그는 5년 전의 일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냈다.도예나는 자기 심장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그가 뱉은 매 한마디 말이 사슬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그 질식감은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갔다.그녀는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5년 전의 그날 밤에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몰랐다.도설혜와 이 남자의 과거가 그녀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저한테 이런 말해 주실 필요 없어요."도예나가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에 감정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제가 오늘 몸이 좀 불편해서요, 먼저 돌아가도 될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주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강현석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겼다.손이 닿는 순간, 도예나는 강현석과 도설혜가 침대 위를 뒹굴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순식간에 속이 메슥거렸다.그녀는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