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첫사랑과 딸을 데리고 초원에 놀러 갔다가 도중에 딸을 버리고 첫사랑과 단둘이 떠났다. 딸이 차 안에서 늑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안 나는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 차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과자만 피가 묻은 채 남아 있었다. 남편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명절날 왜 분위기를 망쳐.] 허, 명절? 그래, 피로 물든 과자를 선물해 줄게.
더 보기사흘 내내 방에만 갇혀 지냈고 장태양은 소식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그날 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숨 막히는 가슴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막 계단을 내려오던 중 갑자기 눈이 캄캄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달리는 차에 묶여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바로 내 앞에 유미연이 앉아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고 얼굴은 팅팅 부어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이희주, 드디어 깨어났구나!”깨어난 나를 보며 유미연은 이를 악물고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 원하는 게 뭐야!”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이미 머릿속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다.“원하는 게 뭐냐고? 그러는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서은이가 죽었는데 넌 왜 안 죽어?”유미연은 갑자기 흥분했다.“빌어먹을 너희 때문에 태양 오빠가 날 때린 것도 모자라 나랑 단우까지 쫓아냈어!”“잘됐네. 당연히 그래야지.”고개를 홱 들어 화가 나서 그녀를 노려보았다.“네가 우리한테 들러붙지 않았어도 서은이는 죽지 않았어.”“그래서 뭐? 누가 오빠 옆에 붙어 있으래?”유미연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나랑 오빠는 소꿉친구고 우리야말로 천생연분이야.”“소꿉친구가 뭐? 그래봤자 내연녀는 내연녀야!”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네가 날 죽여도 장태양은 아내를 사별한 사람이고 넌 영원히 떳떳하지 못한 내연녀야!”“너!”유미연은 내 말에 제대로 자극받아 홱 손을 들고 내 뺨을 세게 때렸다.얼굴이 옆으로 돌려지고 입가에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이희주, 잘 들어.”유미연이 다가와서 또박또박 말했다.“서은이의 죽음은 내가 다 꾸민 일이야! 단우한테 아픈 척하라고 시킨 것도 나고 기사님에게 일부러 데리러 오라고 알리지 않은 것도 나고 목소리를 합성한 것도, 심지어 차 안에서 늑대에게 공격당하게 한 것도 내가 창문에 수작 부린 거야.”“유미연! 너 가만 안 둬!”나는 성난 암사자처럼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그녀의 살점을 물어뜯어
내 구타에도 그는 꼼짝하지 않았고 심지어 내 손을 잡고 자기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희주야, 날 때려. 세게 때려. 네 기분이 풀린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도 괜찮아...”그의 눈은 마치 구원을 간구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원과 절망으로 가득했다.“이거 기억나?”차갑게 그를 바라보는 내 말투에 조롱이 가득했다.장태양은 내 손에 쥐어진 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서은이가 직접 만든 건데 명절날 밤에 엄마, 아빠랑 텔레비전 볼 때 아빠한테 선물하려고 했던 거야.”목소리가 떨리고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러기도 전에 결국...”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삼키며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과자를 그에게 홱 던졌고 그의 가슴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진 과자엔 먼지가 가득했다.“넌 그럴 자격 없어! 넌 서은이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그에게 삿대질하며 소리 지르는데 장태양은 떨리는 손으로 피와 흙이 묻은 과자를 집어 들었다.그는 영혼을 잃은 듯 멍하니 과자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마치 홀린 듯 무모하게 과자를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맛있어? 피로 물든 과자 맛있지?”내 말투엔 혐오와 분노가 가득했다.“유미연이 만들어준 과자만큼 맛있나?”나는 계속해서 다그쳐 물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하지만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눈은 공허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로봇처럼 과자만 계속 먹었다.갑자기 휴대폰의 날카로운 벨 소리가 방안의 숨 막히는 정적을 깨뜨렸다.장태양의 휴대폰이고 발신자 이름은 ‘미연’이었다.굳어버린 장태양은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나는 단숨에 그에게 달려가 그의 휴대폰을 빼앗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태양 오빠, 언제 돌아와?”일부러 애교를 부리듯 유미연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우랑 집에서 저녁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세 식구가 참 오붓하네, 장태양. 사이가 좋아 아주.”피식 웃고는 장태양의 귀에 전화를 건네며 조롱 섞인 어투로 말했다.장태양은 몸이 휘청거리더니 정신
장태양의 손바닥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지며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말도 안 돼... 이럴 수가...”나는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말도 안 돼? 서은이는 죽었어! 네가 초원에 버려두고 가서 늑대 무리한테 찢겨 죽었다고!”그는 고개를 치켜들고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무슨 소리야? 서은이는 괜찮아, 거짓말하지 마!”“거짓말? 내가 왜 거짓말을 해!”나는 울부짖었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겼다.“그날 왜 서은이를 차에 혼자 두고 왔어? 왜 한적한 곳에 혼자 두고 왔어!”장태양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떨렸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말해! 서은이 데리러 가라고 기사님 보냈다며? 근데 왜 기사님은 아무것도 모른대?”쉬지 않고 몰아붙이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그는 고통스럽게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에 무력하게 앉아있었다.“나... 난 엄마 전화를 받고 단우가 갑자기 심각하게 아프다고 해서...”“그래서 서은이를 차에 혼자 두고 왔어? 그게 친딸을 버린 이유야? 그날 밤 돌아왔을 때 단우는 아주 멀쩡했어! 게다가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어?”화가 치밀어 그의 말을 가로챘다.“구급차가 세 명만 태울 수 있다고 해도 머리를 굴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 어린 딸을 두고 떠나야만 했냐고! 서은이가 늑대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뼈도 남지 않았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해 봤어? 네가 그러고도 아빠야!”내 질문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장태양은 할 말이 없어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그는 서은이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뺨을 세게 치며 용서를 빌었다.“서은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돌아와 줄래... 아빠가 이렇게 빌게...”눈앞의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는 그에게 달려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밀쳐냈다.“넌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어! 넌 서은이한
그 후 며칠 동안 로봇처럼 서은이 일을 마무리했다. 내딛는 한 걸음이 칼끝을 밟는 듯 지옥이고 아팠다.써늘한 장례식엔 나 혼자였다.친척이나 친구도, 눈물이나 웃음도 없이 그저 끝없는 슬픔과 절망만이 나를 압도했다.후회와 자기혐오가 독사처럼 내 마음을 갉아먹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었다.서은이 장례를 마치고 따라갈지 생각도 했었다. 가는 길에 서은이 혼자면 외로울 테니까.온갖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장태양의 문자 하나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내 온몸을 싸늘하게 했다.[이제 충분해? 서은이는, 어디로 데려갔어?][와서 미연이한테 사과하면 그냥 넘어갈게.]당연한 듯한 그의 오만한 말투는 날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갔다.그 문자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장태양, 네 착한 동생이 네 딸을 죽인 건 알고 있어?그렇게 잘 챙겨주겠다던 서은이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난 건 알아?문득 그가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충격? 후회? 아니면... 무관심?[사과를 원해? 그래, 나 여기 있어. 데리러 와.]주소가 적힌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 다음 힘에 겨워 손마디가 하얗게 변한 채로 휴대폰을 꽉 쥐었다.장태양이 한 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직접 보여줄 거다.장태양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들어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사과한다니 됐어. 진작 이러면 좀 좋아? 나랑 미연이는 그냥 남매라고 몇 번을 얘기해! 그리고, 여긴 뭐 하는 데야? 재수 없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선은 벽에 걸린 사진으로 향했다.확대된 영정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녀는 서은이었다.멍하니 자리에 굳어진 장태양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몇 초 후, 그는 정신을 차렸고 분노가 순식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이희주, 또 뭐 하는 거야? 이런 걸 왜 붙여? 왜 우리 딸을 저주해!”그는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사진을 가리켰다.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냉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얼마나 멍청하면 아직도 서
무표정한 얼굴로 팔찌를 빼 쓰레기통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장태양 같은 쓰레기 난 필요 없어. 갖고 싶으면 너나 재활용 해.”“너...”유미연은 화가 나서 몸을 벌벌 떨면서 나한테 홱 다가와 이를 악물고 이렇게 말했다.“이희주, 네가 뭔데?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 지금 네 꼴을 봐. 넌 그냥 버림받은 아줌마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잘난 척 해?”나는 겁 없이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뭐가 됐든 난 장태양과 당당히 결혼한 아내고 넌 그저 남의 가정 파탄 낸 내연녀일 뿐이야.”택시에 올라타서 정리된 딸의 유품을 품에 꼭 안았다.서은이, 우리 아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널 지켜주지 못했어...서은이의 귀엽게 웃는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고 앳된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던 게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았다.장태양과 나는 대학 동창으로 졸업 후 순조롭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정 환경이 우월한 장태양은 회사를 물려받았고 난 조건은 평범했지만 배운 사람이라 우리 둘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특히 서은이가 태어난 후 장태양은 ‘딸바보'가 되어 매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서은이를 안은 채 뽀뽀하고 놀아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일상이 됐다.주말이면 장태양은 회사 일을 제쳐두고 서은이와 나를 데리고 놀이터나 공원에 가서 한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고 그런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던 어느 날,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유미연이라는 여자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장태양은 다른 사람이 된 듯 나와 서은이에게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유미연 모자는 살갑게 챙기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그제야 유미연이 장태양의 소꿉친구였고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며 사랑에 빠졌는데 대학에 가기 전 유미연의 가족이 갑자기 작별 인사도 없이 출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수
단번에 서은이 목소리와 비슷하지만 우리 딸은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분명 문제가 있는 음성이다.장태양을 노려보며 분명하게 말했다.“장태양, 저 음성 메시지 수상해. 자세히 들어봐, 평소랑 다르지 않아?”하지만 장태양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이희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이제 와서 또 무슨 거짓말을 지어내려고?”심호흡하며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이렇게 말했다.“거짓말 아니야! 날 믿어. 서은이는 진짜...”이때 옆에 있던 유미연이 날카로운 어투로 내 말을 가로막았다.“언니, 계속 억지 부릴 거예요? 거짓말이 들통났는데 아직도 막무가내로 구네요. 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 오빠가 바보 같아요?”장태양은 화가 나서 유미연을 데리고 방을 나가며 조롱하듯 문을 쾅 닫았다.나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절망에 사로잡혔다.‘장태양, 변했어. 이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됐어.’한 이불 덮고 자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믿네. 진짜 나와 우리 딸을 걱정한 적은 있을까?나는 천천히 일어나 딸의 옷장으로 걸어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딸의 옷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딸의 온기를 느끼듯 하나하나 어루만지다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딸아이의 옷, 장난감, 책 등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든 물건을 가방에 담았다.집으로 가자, 이 추운 곳에서 벗어나자.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방 밖으로 나오니 거실에 유미연만 남은 채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내가 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잡지를 내려놓더니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그녀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이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그런데 유미연이 일어나서 내 앞을 가로막더니 두 팔로 팔짱을 끼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이렇게 빨리 짐 싸서 나가는 거야? 어떻게든 꾸역꾸역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나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내가 너무
고개를 들어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지금 이 남자는 내 눈에 너무나 낯설고 역겨운 존재였다.“뭐가?”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무슨 태도야?”장태양은 불쾌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내가 물었잖아. 표정이 왜 그래?”“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왜 우리 딸을 차에 혼자 남겨뒀어? 왜, 대체 왜!”장태양은 무슨 대단한 농담을 들은 듯 비웃었다.“이희주, 미친 거야? 그때 차가 고장 났고 단우가 갑자기 열이 나서 구급차를 불러야 했는데 구급차는 세 명밖에 태울 수 없어서 서은이는 차에 뒀어.”“구급차에 세 사람밖에 못 탄다고?” 그의 말을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심장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그래, 그게 뭐?” 장태양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아니면 미연이랑 애를 벌판 한가운데서 기다리게 할까? 게다가 서은이 데리러 갈 사람도 보냈어. 잠깐인데 대체 뭐가 문제야?”“사람을 보내? 잠깐이라고?” 나는 격렬하게 일어나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며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장태양, 그 망할 잠깐 때문에 우리 딸이...”목이 메어 더 이상 그 잔인한 말을 할 수 없었고 장태양은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말해줄게. 서은이가...”심호흡을 깊게 하고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서은이가 늑대 무리에게 물려서... 죽었어.”그 말을 내뱉는 순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심연에 떠밀려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온몸이 얼어붙은 채 눈앞이 캄캄해졌다.장태양은 잠시 멈칫하다가 소리쳤다.“이희주, 너 정말 미쳤구나? 이젠 딸한테 저주까지 퍼부으며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내? 정말 양심도 없네!”그의 눈에 담긴 경멸과 조롱이 날카로운 칼처럼 내 가슴을 찔러 고통스럽게 했다.“무슨 뜻이야?”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날 못 믿는 거야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를 멈춰 서게 했다.환한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식탁에는 풍성한 음식이 차려진 채 달콤한 과자 향이 공기를 가득 채우는 즐거운 모습이 펼쳐졌다.반면 내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장태양과 유미연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꼭 붙어있었다.시어머니는 맞은편에 앉아 유미연의 아들 단우를 품에 안고 과자를 조금씩 먹이고 있었다.아이의 작은 얼굴은 과자 부스러기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내 딸을 떠오르게 했다.과자... 내 딸...심장이 심하게 뛰고 눈앞이 침침해지며 기절할 뻔했다.“어머, 언니 왔네요? 명절날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요?”유미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입구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그녀는 말하면서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과시하는 듯 일부러 장태양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장태양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번쩍 떠올랐다.“명절날에는 좀 웃을 수 없어? 그리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좀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고. 미연이 좀 따라 배워.”흐트러진 옷과 뒤집어쓴 먼지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겠는데 그는 걱정이 아니라 불만과 혐오감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심호흡하고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장태양,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옆에 있던 시어머니는 내 질문을 듣고 품에 있는 아이를 토닥거리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 말 할 염치가 있니? 네가 낳은 애는 너처럼 철이 없어. 명절날에도 밖에 돌아다니기나 하고. 단우를 봐...”“뭐라고요?”몸을 똑바로 세우고 시어머니를 잔뜩 노려보며 잇새로 겨우 소리를 뱉어냈다.날카롭고도 낯선 내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리면서 자리에 있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그들은 지금처럼 실성한 내 모습을 본 적이 없다.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장태양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화난 표정으로 나에게 삿대질했다.“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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