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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허이서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여도준은 가운을 벗었고 겉으로 드러난 구릿빛 피부에서 강한 공격성이 느껴졌다.

허이서는 위로 몸을 움직였다. 휴대전화 화면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엄마가 복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허이서의 엄마는 강태윤을 바라보았다.

“혹시... 우리 딸 보셨어요?”

강태윤은 휴대전화를 쥐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못 봤습니다.”

“집중 좀 해.”

여도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전화 너머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허이서의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강태윤은 지금 이런 상황이 몹시 난처했다. 그러다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휴대전화가 바닥에 떨어졌다.

허이서의 엄마는 그를 알지 못했지만 그를 은인으로 생각했다. 강태윤이 허리를 숙이기도 전에 허이서의 엄마가 빠르게 다가와서 대신 휴대전화를 주웠다.

허이서는 긴장 때문에 몸도 뻣뻣해졌고 여도준이 그런 그녀를 다그쳤다.

허이서의 엄마는 본능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잘 보이지는 않았다. 카메라가 사람 정수리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는 걸 잊은 건 아니세요?”

강태윤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 지면서 전화를 건네받았다. 그러나 감히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허이서의 엄마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허이서는 손을 뻗어 통화를 끊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잠깐 다퉜고 여도준은 티 나게 화를 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네.”

“이렇게 하면 아무 느낌 없어요.”

“그래? 어떻게 하면 느낌이 있는데?”

여도준은 허이서의 손을 뿌리치더니 카메라로 허이서의 얼굴을 비췄다. 허이서는 상반신을 일으켜서 휴대전화를 빼앗느라 여도준이 자기 위에 있다는 걸 잊었다.

허이서의 뒤통수가 여도준의 코를 강타했고 여도준은 통증 때문에 앓는 소리를 했다.

“허이서!”

여도준의 말투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허이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눈치 빠르게 얌전히 엎드렸다.

고개를 돌린 허이서는 여도준의 얼굴에 어린 분노를 보았다.

“여도준 씨, 난 일부러 친 거 아니에요.”

“그래?”

여도준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더니 눈빛이 달라지며 몸을 붙였다.

“난 일부러 그런 건데. 마음에 들어?”

허이서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바위가 아니었고 경험도 많지 않았기에 여도준의 이러한 수작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강태윤은 전화 너머로 여도준이 참으로 사람을 잘 유혹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침대 위에서의 여도준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여도준은 여자보다도 더 매혹적이었다.

응급실 문이 열리자 허이서의 엄마는 빠르게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 제 딸은 어떤가요?”

“이미 깨어나셨어요.”

강태윤은 카메라로 그쪽을 비추었다.

“도련님, 깨어났다고 합니다.”

여도준은 통화를 끝낸 뒤 허이서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여동생을 정말로 소중히 여기나 봐. 여동생이 깨어났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긴장이 풀리는 걸 보면 말이야.”

허이서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여도준으로 인해 뼈가 전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여도준 씨, 제 여동생 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도준은 손을 뻗었고 허이서는 그의 손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여도준 씨에게는 약이 있잖아요.”

허이서는 여도준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더니 점점 힘을 주었다.

허이서의 눈가가 촉촉했다. 여도준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곧바로 충동에 휩싸였다.

그날 밤, 여도준은 허이서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허이서는 여도준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일어나 침대맡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허이서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다. 그와 그녀는 이미 잤고 이 길에 발을 들인 이상 더는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동생의 목숨은 건졌으니 말이다.

창밖에서는 큰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사정없이 때리며 소리를 냈고 몸을 돌린 여도준은 부드러운 허이서의 몸을 품에 안지 못했다.

그는 눈을 떴다.

“늦었는데 안 자고 뭐 해? 네 순결을 위해 애도하는 거야?”

정말 지독한 말이었다.

허이서는 이불로 하반신을 가렸다.

“여동생이 걱정돼서요. 그리고 엄마도 걱정돼요. 엄마도 몸이 편찮으시거든요.”

“아빠는?”

허이서는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실종된 지 1년도 지났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요.”

여도준은 허이서가 처음으로 그의 침대에 올라왔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 허이서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만약 허이서의 몸매가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그녀처럼 무미건조한 여자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 있어요?”

허이서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여도준은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담배도 피워?”

“아뇨. 그냥 한번 피워보고 싶어서요.”

여도준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담배에 손을 대면 이곳에서 쫓겨날 줄 알아.”

“왜요? 남자들은 다들 피우잖아요.”

여도준은 긴 팔을 쭉 뻗더니 침대맡 서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는 침대 끝에 걸쳐 앉았고 허이서의 앞에 그의 늘씬하면서도 길쭉한 몸이 전시되었다.

여도준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허이서는 남자의 차가운 눈빛만을 보았다.

여도준은 허이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허이서는 앞으로 몸을 옮겼다.

그녀를 품에 안은 여도준은 허이서가 두 손으로 이불을 꼭 잡고 있는 걸 보았다.

“뭘 그렇게 자꾸 가리려고 해? 볼 거 다 본 사이에.”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일부러 허이서의 얼굴에 대고 연기를 뿜었다.

“이 냄새가 좋아?”

허이서는 연기 때문에 사레에 들려서 기침을 하며 안개 너머 남자를 보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여도준은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허이서는 눈을 가늘게 뜬 그의 섹시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 아니었어요? 술을 마시는 것처럼 말이에요.”

“정말 말을 안 듣네. 설득해도 소용이 없고 말이야.”

허이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은 것뿐이에요. 딱 한 번만 해볼게요.”

여도준은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담배에 옅은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음 순간, 여도준은 허이서의 턱을 손으로 쥐더니 조금 힘을 줘서 허이서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 담배를 그녀의 입에 물려줬다. 그러나 맛을 보기도 전에 여도준이 입을 맞췄다.

그의 키스는 마치 한 곳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섬세했고 그 때문에 허이서의 입안은 전부 담배 향으로 가득 찼다.

허이서를 놓아준 뒤 여도준은 피우고 있던 담배의 담뱃불을 껐다.

“어때?”

허이서는 그 느낌을 되돌이켜보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나쁘지 않네요. 온통 여도준 씨 향 같아요.”

여도준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고, 허이서는 그가 기분이 좋아 보이자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저번에 준 약 다 먹었어요.”

“그래서?”

여도준이 먼저 준다고 하지 않았기에 허이서는 어쩔 수 없이 뻔뻔하게 굴어야 했다.

“더 받고 싶어요.”

여도준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이서는 그의 시선 아래 발가벗겨진 채 저울 위로 올라가서 그에게 저울질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도준은 피식 웃더니 조롱 가득한 눈빛을 해 보였다.

“그래. 한 번 올 때마다 한 박스씩 줄게.”

허이서는 여도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거절할 자격이 없었다.

“네.”

“한 박스가 열흘 치야.”

여도준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 오면 한 박스 줄게.”

“...”

‘아예 하루에 한 번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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