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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허이서는 감히 여도준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아무리 화장을 짙게 했다고 한들, 여도준이 그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오정식은 마치 상품을 고르듯 여자들을 쭉 훑어보더니 마지막에 허이서의 앞에 섰다.

그는 허이서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아이 괜찮네요. 딱 봐도 아주 사람을 홀릴 아이예요.”

여도준은 진지하게 카드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대꾸했다.

“오정식, 여자에게 환장했어?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가 생각나?”

“대표님, 이게 유흥이라는 거예요.”

“그중에 기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허이서는 흠칫 놀랐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오정식 같은 사람들은 기자를 가장 혐오했다. 만약 여기서 정체가 까발려진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뻔했다.

오정식은 여도준의 말을 듣더니 빛이 번쩍이는 머리를 만지면서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대표님 말씀이 맞네요. 이 애들 몸에 카메라라도 숨겨져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다들 지금 당장 옷 벗어! 당장!”

허이서는 만짐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게 될 줄은 몰랐다.

옆에 있던 여자들은 아주 태연했다. 그들은 원래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다들 가녀린 허리를 움직이면서 짧은 치마를 바닥에 툭 던졌다. 허이서는 그들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도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허이서는 아마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자극적인가?

허이서는 가슴이 컸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짧은 원피스의 가슴 쪽에 브로치가 하나 달려 있었다.

오정식의 부하들이 다가와서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 룸 밖으로 던졌고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은 허이서에게로 향했다. 오정식은 음흉한 눈빛으로 허이서를 바라보았다.

“너도 벗어.”

허이서는 치맛자락을 손에 꼭 쥐었다.

“오빠, 제가 기자일 리가 없잖아요.”

“벗으라니까!”

오정식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여도준은 테이블 위에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시선 한 번 들지 않았다. 허이서는 바짝 긴장한 채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지금 도망쳐 봤자 이미 늦었으니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허이서는 여도준 쪽을 바라보다가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다리 옆에 기대어 앉았다.

“뭐 하는 거야?”

여도준은 들고 있던 카드를 몇 장 뽑다가 멈칫했다. 그의 얼굴 반쪽에 조명이 내려앉았다.

“대표님, 전 대표님을 선택하고 싶어요. 전 대표님 같은 남자가 좋거든요.”

“하하하.”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접대부가 손님을 선택한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들어 보네.”

허이서는 여도준의 손목을 잡으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정맥을 만지작댔다. 여도준은 카드 한 장으로 허이서의 손등을 툭 쳤다.

“혼자 옷을 입고 있는데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안 들어?”

“대표님, 대표님은 제가 모실게요.”

오정식은 그 말을 듣자 기분이 나빠졌다. 허이서가 룸 안에 들어온 순간 그는 이미 허이서를 점 찍어 뒀다.

그는 허이서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끌어오려고 했다.

“이쪽으로 와.”

허이서는 아예 여도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오정식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여도준이 눈빛으로 그를 물러나게 했다.

“됐어. 그냥 놔둬.”

“하지만...”

오정식은 다른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은 다 헐벗고 있는데, 대표님, 저 중에서... 선택하실래요?”

“내가 헐벗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오정식은 허이서의 등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는 여도준에게서 그녀를 빼앗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뒤로 물러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허이서는 감히 시선을 들 수 없어 바닥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룸 안에 있는 여도준 외의 남자들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여도준은 허이서를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곁에 앉혔다.

“대표님, 대표님 같은 분은 제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제 형님의 체면을 봐서...”

여도준의 손가락은 길고 마디마디 분명했다. 그는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걸 싫어했다.

“오원동 강제 철거 사건 네가 시킨 일이지?”

허이서는 저도 모르게 오정식을 힐끔 보았다. 오정식은 사실을 얘기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날 위해 움직이겠다고 하는데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네.”

“대표님, 제가 시킨 일 맞습니다.”

허이서는 이곳으로 들어와 이렇게 중요한 말을 녹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오원동 사건 때문에 오정식에게 접근하려고 한 것이었다.

“일가족 3명이 강체 철거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 꽤 큰 사건이지.”

“그건 그 자식들이 자초한 거예요.”

오정식은 히죽거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가볍게 말했다.

“그 늙은이들이 돈을 더 뜯어내겠다고 아이 둘을 데려와서 그레이더를 막아섰다니까요. 죽고 싶어서 그런 게 틀림없어요.”

여도준은 곁눈질로 허이서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그녀에게 술잔을 건넸고 허이서는 입을 벌리고 술잔을 반쯤 비웠다.

그러나 술이 너무 독한 탓에 허이서는 사레가 들렸고 오정식은 더욱 추악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점검해 보니까 그레이더에 문제가 있었어요. 브레이크가 고장 났던 거죠. 그게 어떻게 제 탓입니까?”

여도준은 들고 있던 잔을 흔들며 말했다.

“정말 지독한 놈이네.”

“전 대표님을 제 편이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얘기 드린 겁니다. 앞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일이 생기신다면 제가 언제든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여도준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여도준 같은 귀한 신분의 사람이 오정식처럼 무자비하고 수준 떨어지는 건달 같은 오정식을 마음에 들얼 할 리가 없었다.

오늘 밤 오정식이 먼저 제 발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여도준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허이서는 소파 끝에 앉아 있었는데 오정식이 다가왔다.

“넌 여기 아가씨야?”

허이서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서 서둘러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여기 아가씨 같아 보이지 않는 건가요?”

오정식은 짧고 두꺼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주 꼿꼿이 앉아 있는 게 그냥 평범한 여자 같은데? 대표님이 여기 앉아계시는데 제대로 모시지도 않고 말이야.”

허이서는 상황을 보더니 서둘러 그에게 술을 따라주려고 했다.

그녀는 조금 허둥댔다. 그녀와 함께 들어온 여자 중에는 남자 밑에 깔린 사람도 있었고 남자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여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허이서는 힐끔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질까 봐 서둘러 잔을 들어 여도준에게 술을 권했다.

“대표님, 드세요.”

허이서의 청순함은 짙은 화장 때문에 완전히 지워졌고 여도준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도준은 고개를 돌렸고 오정식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더 재밌는 애로 바꿔드릴게요.”

“그래.”

여도준이 동의하자 허이서와 오정식 모두 화들짝 놀랐고 오정식은 곧 잘됐다는 듯이 허이서를 잡아당겼다.

허이서는 손목이 아주 가늘어서 두 손가락 만으로도 손목을 다 감쌀 수 있었다. 허이서는 오정식의 흉측한 몰골을 보자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대표님께서 동의하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허이서는 여도준의 곁에 기대서 꿈쩍하지 않았다.

“대표님이 버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빼앗으려고 하는 거예요?”

지나친 언사였다.

오정식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대표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어.”

“어머, 이미 두 번이나 대표님께 여자를 바꿔드리겠다고 했잖아요.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당신이 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다들 눈치챘을 텐데 대표님이 그걸 모르겠어요?”

허이서는 이간질하고 있었다.

오정식은 흠칫 놀라더니 말까지 더듬었다.

“대표님, 이 여자가 하는 헛소리 믿지 마세요. 전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여도준은 얼굴 반쪽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내 것이 그렇게 욕심 나?”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얘가 대표님 시중을 잘 못 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욕심나면 가져가.”

허이서는 오정식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았다.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여도준은 룸 안이 덥게 느껴져서 겉옷을 벗어 옆에 놓았다.

허이서의 찡그려졌던 미간이 풀리려고 하는데 여도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아래로 눌렀다. 허이서의 얼굴이 여도준의 허벅지에 부딪혔다. 허이서가 일어나려는데 여도준이 정장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렸다.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아주 야릇한 자세였다.

여도준은 천을 사이에 두고 허이서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집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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